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65
“선두 영명!”
선두에 서서 대부를 들어 올린 방덕은 눈앞에 보이는 기병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 실력은 빤히 들여다보인 탓이었다.
‘모자란 놈들, 서북에서 그렇게 말을 탔다가는 대번에 활 맞아 죽을 줄도 모르고.’
방덕은 상대가 달려오는 것에 맞춰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딱 적당한 거리가 만들어지며 방덕이 도끼를 휘둘렀다.
대부에 맞는 순간, 선두의 기병은 순식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비록 창을 들어 대부를 막으려 했으나, 방덕의 무지막지한 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산산이 박살 난 창의 잔해가 흩뿌려지는 가운데, 주인 잃은 말만이 혼란스러운 듯 계속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병사 몇몇이 급히 멈추느라 속절없이 낙마했고, 곧 사납게 날뛰는 말에 밟혀 온몸이 짓이겨졌다.
그 순간, 방덕의 입에서 우렁찬 호령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파고든다! 놈들을 쓸어버려라!”
“우아아아아!”
방덕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기세 넘치게 소리를 지르며 다시금 무기를 부여 쥐었다.
방덕은 적의 기병 사이로 뛰어들자마자 대부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마치 추풍낙엽이라도 된 것마냥 기병들은 우수수 쓰러져 갔다.
거기에 방덕을 따르는 병사들마저 덮쳐들자, 전세는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퍼어어어억!
한차례 무용을 뽐낸 방덕의 몸에서는 미처 식히지 못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본능을 일깨우듯 기운이 더욱 솟아났다.
적이 혼비백산해 흩어지려는 것을 본 방덕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 겨우 한 번 맞았다고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꼴이라니.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들, 적을 쫓아라!”
“네!”
방덕의 외침에 그의 부곡들이 다시금 고삐를 움켜쥐고는 맹렬하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방덕도 질 수 없다는 듯 대부를 고쳐 잡고는 외쳤다.
“내가 바로 방영명이다!”
한편, 그 모습을 목책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학소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허, 그간 보아 온 방 공과는 무척이나 다르구나. 신중하고 묵직한 분이라 여겼거늘.”
마치 불과 같이 적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학소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태산과 같은 굳건함이 있고, 전장에 나서서는 불과 같은 위용을 뽐내는구나.”
한참을 추격하며 적을 주살하던 방덕은 이윽고 사냥을 마친 맹수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돌렸다.
***
학소와 방덕이 지키는 장하의 목책은 업성의 공격으로부터 굳건히 버텼다. 마치 간을 보듯 조금씩 보내는 병사들만으로는 어쩌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자신만만하게 나선 저곡과 윤해를 포박하는 성과마저 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사히 작업을 마쳤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가후는 주저 없이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거대한 물길이 들이닥치자, 업성은 순식간에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러자 가후는 마치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업성을 떠났다. 마초가 한번 넘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가후는 전혀 미련이 없다는 듯 호관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 와중에 마초와 방덕에게 명을 내려 기주 주변을 약탈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수몰된 업성을 바라본 심영은 마치 넋을 잃은 듯 멍한 상태였다. 그러는 사이, 병사들이 쓸려 내려간 사람과 물건들을 건지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심영은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들을 공격한 병력만 수천이네. 물론 몇 차례에 나눠 병사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려 열 배가 넘는 숫자였어. 그런데 고작 수백을 처리하지 못하여 결국 이런 꼴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군.”
시선을 성 밖으로 돌린 심영은 더욱 망연자실했다. 평야 가득 펼쳐져 있어야 할 농작지들은 물에 잠겨 엉망이었다. 아마도 그 아래 있을 농작물들은 모두 썩어 사용하지 못할 것이리라.
“내가 모든 일을 망가트렸구나. 원가의 보루인 업성을 내가······.”
심영은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보이다가 말했다.
“원 장군께서 돌아오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스스로 옥에 들어가겠네.”
그러자 옆에 있던 부하들이 황급히 말렸다.
“도위, 그렇게 되면 누가 업을 맡아 다스리겠습니까? 부디 정신을 차리시고 한시라도 바삐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심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그것으로 내 죄가 갚아지겠는가?”
“갚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내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어. 가문의 재화를 털어서라도 업을 회복시켜야지.”
***
심영이 마음을 다잡는 그때, 업성의 또 다른 가문인 신씨 가문은 은밀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신비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따로 불러 모았다.
“작금의 상황은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내는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물에 잠긴 상태라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계속 물이 들어차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고 온 천지가 물에 잠기었으니, 이다음은 빤할 것입니다.”
“···전염병(傳染病)이 돌겠군요.”
“그럴 것입니다. 아마 업성은 곧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신비의 부정적인 전망에 그들은 턱을 쓰다듬으며 숙고에 들어갔다. 이미 아비규환은 확정된 상황이나 다름없는데, 그 가운데에서 자신들이 어찌 움직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신비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추가 다시 기울었습니다. 순 사공이 폐하를 잃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명분을 잃은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 모든 게 순 사공이 수였다면, 저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럼 어찌하자는 것인가? 우리가 등을 돌린다면, 분명 원가에서 보복을 가해 올 것이 분명한데.”
“변명을 대야겠지요. 전염병에 대하여 말하고 약재를 구한다는 핑계로 직접 움직인다면 충분히 공간을 내줄 것입니다.”
“하기야 지금 심영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가족들의 안위를 지키려면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호족들 대다수가 업성이 큰 타격을 받으며 자신들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자 원담에게 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구원을 오지 않은 원담과 전풍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 또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
허도에도 가후의 대대적인 승전 소식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황제가 몰래 도성을 빠져나가고 내부에서 난까지 일어난 암울한 상황에서 약간의 희망을 가져왔다. 하지만 도리어 화가 난 인물도 있었다.
그건 바로 원상과 그를 따르는 인물들이었다. 업의 수몰 소식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 하북을 호령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원상으로서는 마치 자신의 본거지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원상은 순욱에게 문제를 따지기 위해 찾아갔다.
곧 순욱을 만난 원상은 예를 표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순욱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어인 일인가?”
그에 원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 냈다.
“소신, 원가의 적통자로서 업성의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왔사옵니다.”
“흠, 안타까운 일이지. 그런데 그걸 나한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어차피 업성은 원담이 차지하고 있는 곳인데.”
“물론 그렇긴 하나, 순 사공께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니 언젠가는 제 손에 들어올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저 이번에 큰 어려움을 겪은 백성들의 고초가 안타까워 이를 알리고자 왔습니다.”
순욱은 부드럽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하나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겠는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네.”
순욱은 원상의 속내를 대충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 그럼 종제와 함께 준비하는 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순조롭사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순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군. 알겠네. 그럼 따로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나가 보게. 내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마중은 못 나가겠군.”
원상은 순욱의 축객령에 순간 분기가 차올랐다.
자신이 누구던가. 비록 지금은 끈 떨어진 연 신세이지만, 명색이 원가의 적자였다.
그런 자신에게 이런 푸대접을 하는 사람은 지금껏 없었는데, 순욱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무엇 하는가? 나가 보라니까.”
원상은 속으로 분기를 삭이며 예를 취한 후, 밖으로 물러났다.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승태가 그런 원상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원상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고, 승태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순욱에게 다가갔다.
“사공, 원상의 표정이 좀 안 좋던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뭐, 그럴 일이 있었네. 그런데 자네는 이제 봉지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안 그래도 곧 돌아갈 생각입니다. 단지 집금오께서 큰 승전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찾아온 것입니다.”
“그야 집금오의 능력이지, 내가 축하받을 일은 아니네.”
약간 피곤한 것 같은 순욱의 얼굴에 승태는 걱정이 들었다.
“너무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조금 쉬시는 것은 어떤지요?”
“자네는 지금 이 앞에 쌓인 서류가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중간에 비어 버린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고생이 말이 아닌데, 쉬라고? 그래, 말 잘했네. 이참에 나도 푹 쉴 수 있게 양주나 서주의 인재들을 불러 올려야겠어.”
순간, 승태는 찔끔하여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희도 매일 업무에 치이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니 그것만은 좀 봐주시지요.”
승태의 죽는소리에 순욱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흥, 오라고 해도 그 말에 따를 인재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제 이곳은 폐하를 모시는 곳도 아닌데 말이야.”
승태는 아무 말 없이 순욱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낙양과 하내는 언제쯤 수복하고자 하십니까?”
순욱은 조용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잠시 후 입을 뗐다.
“알아서 무너질 것이네. 기주 일대가 망가져 버렸는데, 사주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아니라고 보네. 아마 전풍과 폐하의 갈등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네.”
승태는 멍하니 순욱을 바라보았다.
‘원래 순 사공이 이렇게 모략을 잘 짜는 사람이었나? 무슨 흑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승태가 혼자서 잡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순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주의 분란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고 장군과 자네가 남방을 잘 다스려야겠지.”
순욱의 눈빛은 마치 승태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그저 따뜻하기만 하던 순욱인데, 어느 사이에 무서운 상사가 된 느낌이었다.
“···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