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67
주유는 어떠한 불평의 말도 없이 그저 자신을 인도하는 병사들을 따라 오까지 당도했다.
그런 와중 고매한 주유의 기품에 병사들이 감복하여 스스로 종복을 자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주유를 이렇게 대하는 손가에 분노까지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오의 병사들이 주유를 함부로 대하려 하자, 칼을 뽑아 겨누었다. 주유는 그런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치우게. 이 또한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도독, 어찌하여 도독께서 이런 수모를 당하여야만 합니까?”
“주공께 믿음을 드리지 못한 신하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독······.”
병사들은 주유의 말에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주유를 포박하기 위해 온 병사들이 그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우물쭈물하자, 주연이 그들을 향하여 호통을 쳤다.
“역모의 죄를 의심받는 자이다! 어찌 제멋대로 입을 놀리게 내버려 두는 것인가!”
그 말에 병사들이 주유에게 달려가 동아줄로 손을 묶고 신을 벗기었다. 그러고는 마치 주유를 죄인마냥 포박하여 끌고 가기 시작했다.
투구를 벗겨진 주유의 머리에서 성성한 흰머리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백성 중 몇은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주연은 담담한 태도를 견지하는 주유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라고 해서 어찌 모르겠는가. 주유가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자신은 군인이고, 명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겪으며 이윽고 주유가 옥사에 들어가자 많은 이들이 손권을 성토하였다. 그러나 그런 백성들의 마음이 손권의 귀에는 들어갈 리는 만무했다. 아니, 도리어 이 내용은 다른 시각으로 변질되어 손권의 귀에 들어갔다.
***
“뭐? 성민들 다수가 주유를 지지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그게 사실인가?”
“그렇사옵니다. 백성들이 하나같이 주유를 지지하며 손가를 욕했다고 합니다.”
분노한 손권은 주먹으로 상을 내려쳤다. 그에 상이 박살 나며 술과 음식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주곡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이고, 자중하시옵소서. 그러다 귀한 몸 다치십니다.”
손권은 자신을 걱정하는 주곡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오 부인이 늙은 몸을 이끌고 직접 손권을 찾아왔다.
오 부인은 자신을 만류하는 이들을 모조리 물러 세우며 손권의 앞까지 들이닥치며 호통치듯 말했다.
“아드님!”
서슬 푸른 오 부인의 기세에 손권은 급히 일어나 예를 취했다. 그러면서 슬쩍 주곡을 향해 손을 들어 흔들었다. 주곡은 눈치 빠르게 술과 안주 따위를 치웠다.
오 부인은 그 모습조차 한심스러운 듯했으나, 굳이 말을 꺼내 지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중여한 일이 있으니 말이다.
“주 도독을 진정 불러들인 것입니까? 내 분명 주 도독은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후의 일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어머니, 이후의 일이라니요? 누가 감히 강동에서 손가를 거부한단 말입니까?”
오 부인은 손권을 빤히 바라보았다. 손권의 눈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휴, 백부가 어째서 아드님을 후계로 선택했는지 모릅니까?”
“그야··· 조카는 아직 어리고, 가문을 지킬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닙니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손권의 논리에 오 부인은 주름진 손을 들어 이마를 감싸 쥐었다.
“백부는 아드님께서 장수와 문관들을 한데 어우르며 모두가 뜻을 모을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공신을 잡아들이고, 오의 기둥들을 쫓아냈습니다. 이제 누가 손가를 받들겠습니까? 손가병들은 주유를 따르고 있는데, 어쩌려 합니까?”
“되찾아와야지요. 손가병은 본시 손가의 것이니 말입니다.”
“아드님, 진정 내가 죽어야 그런 멍청한 소리를 그만둘 것입니까!”
오 부인의 준엄한 질책에 손권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술기운과 가슴속 깊이 새겨진 손책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구신들의 충언에 의한 자괴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오 부인을 향해 말이 쏟아졌다.
“국가의 대소사는 아녀자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반역자일지도 모르는 주유를 감싸는 계십니다. 혹시 주유가 조금이라도 역심을 품었다면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순간, 손권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 부인의 얼굴이 검게 죽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진정 그리 생각하신다는 것··· 이 어미는 잘 알겠습니다.”
손권은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손권은 그저 분노를 뿜어내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나가신다고 한다! 뫼시거라!”
손권은 거친 호령에 궁인들이 급히 다가와 오 부인을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오 부인은 인상을 팍 쓰며 손을 뿌리쳤다.
“놓아라! 내 발로 갈 것이다!”
그러고는 손권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드님, 명심하세요. 지금 그 자리는 아드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먼저 가신 백부와 지금 옥에 갇힌 주유가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 부인이 끝까지 성질을 건드리며 돌아가자, 손권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 집기를 마구 부수며 내던졌다.
주곡은 멀리 피하여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잠잠해지자 술을 들고 다가와서 말했다.
“주공, 이렇게 성을 낼 필요가 없사옵니다. 대부인께서는 그저 주공이 걱정되어 그러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번에도 또 구신들이 달려가 일을 고해 바쳤겠지. 이러니 중심이 잡히지 않고 역당들이 나타나는 것 아니겠는가!”
“다들 자신의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공의 힘이 커질수록 거족들이 움직이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손권은 술을 쭉 들이켜고는 주곡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 말이 맞다. 따지고 보면 형님 또한 권력을 지키려는 놈들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지. 그런 놈들을 어찌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는 것인가? 엉? 공신이라 해도 엄격히 처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모든 권력은 나의 손 위에 올라올 것이다.”
주곡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손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때렸다.
손권은 권력을 향한 욕망을 너무나 빨리 드러냈다. 그랬기에 이궁의 변과 같은 일들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물론 손권 역시 주유가 손가를 배신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공이 큰 주유를 추국하면서 공신들보다 자신의 권위가 더욱 높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번 일을 벌인 것이었다.
***
승태는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예를 배우겠다며 조운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조단과 그런 형의 모습에 옹알이를 하며 기어가려는 조경. 승태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참 힘찬 아이들이야.”
조운은 팔자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 승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단은 조운의 다리를 꽉 부여잡고 있는데, 어찌나 힘이 좋은지 은근히 다리를 흔들어 봐도 굳건히 매달린 채 응석을 부려 댔다.
“조 장군, 조 장군! 나도 나도 창술 알려 줘요! 어머니는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단 말이에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차라리 말을 타시지요. 이번에 먼 곳에서 과하마(果下馬)의 새끼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것을 타 보시지요.”
“왜요? 다른 형들은 다섯 살에도 칼을 쥐고 전장에 나갔다고 하던데요?”
조운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상산병 일부가 자신의 무용을 과하게 부풀려 거짓을 고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섯 살 때는 흉적이 나타나면 숨어 다니기 바빴지, 칼을 쥐긴 무슨. 따끔하게 한소리 해 놓아야 이놈들도 정신을 차리겠군.’
그런 조운의 속내도 모른 채 조단은 계속해서 응석을 부려 댔다.
“조 장군, 알려 주세요. 아버지도 장군께 배웠고, 어머니와도 매번 대련하잖아요.”
조운은 떼를 쓰는 단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가진바 용력만 본다면, 상산의 창법으로 능히 후대를 휘저을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여혜가 신신당부한 내용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호신검술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조운도 주모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기에 조단에게 호신용 무술을 제외한 어떠한 창술도 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처럼 달라붙어 애원을 하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 안 되면 내가 조 장군이랑 상산 삼촌들을 보고 배운 것을 한 번 봐줘요.”
곧 잘 깎여진 창 모양의 나무가 조단의 손에 잡혔고, 그 모습을 보며 조운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갓 다섯 살을 넘긴 아이가 뭘 얼마나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창의 효용은 찌르는 데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듯 좌우로 쳐 내는 동작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조가창법의 핵심 기술인 현촌(眩寸)마저 선보였다.
‘아니, 저건 대체 언제 배운 것인가? 아니, 저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조가에서 직접 창을 배운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기술인데······.’
단순히 형을 따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맞춰 창을 휘두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어린 조단은 마치 제 몸이라도 된 것마냥 자유자재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단의 창술 시범이 끝을 향해 치닫는 순간, 조운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서서로,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서서는 거칠어진 숨을 헐떡이며 급히 입을 열었다.
“주공,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유가, 주유가 뇌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지만, 승태는 미리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우리가 준비한 계책이 유효했나 보군. 그런데 굳이 이렇게 급히 소식을 전할 필요가 있나? 그냥 진 노사께 알려도 될 일인데 말이야.”
“그게··· 그 와중에 오 부인이 죽었다고 합니다.”
순간, 승태의 눈이 확 치켜떠졌다.
“뭐? 왜 죽었다던가?”
“주유를 변호하다가 노환으로 쓰러지고 나서 바로 졸하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손권은 추국을 파하고 급히 오 부인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에 승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것 봐라? 어쩌면 이번 기회에 주유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이야, 그럼 강동을 얻는 것은 진짜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도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