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0
노숙은 병사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이내 저택에서 나왔다.
“사람이 숨어 있거나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경계를 놓아서는 안 될 것이네.”
제갈균은 노숙의 말에 망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굳이 사람을 숨길 필요는 없겠지요. 어차피 저곳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흠, 그렇긴 하군. 어차피 무슨 말을 나누는가 하는 것보다 우리와 접촉하는 사람만 알아내면 될 테니 말이야.”
노숙이 맞장구를 치자, 제갈근도 턱을 쓰다듬으며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도리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딱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요.”
노숙은 제갈근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의 말만 듣고 있자면, 손가 정도는 쉽게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노숙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손권이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고는 하나, 손견이나 손책이 쌓아 올린 공덕이 그리 만만치는 않겠지.’
노숙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제갈근에게 물었다.
“손가 형제가 도착하면 손권에게 불만이 있는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는가?”
“나쁜 생각은 아닌 듯한데, 그게 끝은 아니시겠지요?”
“흐음, 내가 강동에 아는 인물이 없어 그런데, 그들과 함께 여러 인재들을 불러 의심을 받게 하는 것도 좋다 생각하네.”
제갈근은 노숙의 말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대단한 계책입니다. 어차피 우리야 분란이 될 미끼를 던지면 그만이니,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갈근의 말이 약간 웃기기는 하나, 이번 일의 목적을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좋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
며칠 후.
수춘후의 조문단이 머무는 저택으로 많은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강동에서 나름 재능을 뽐내는 젊은이들로, 저마다 출사에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가문의 추천으로 뽑히는 효렴이나 수재 같은 지위는 작금의 강동에서 얻기 힘든 처지라 대부분이 백수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기어이 벼슬을 얻기 위해서는 손가에 어마어마한 뇌물을 바치거나 이미 자리 잡은 이의 속관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맥이나 재산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입신양명할 유일한 기회가 바로 노숙이었다. 만약 그의 눈에만 든다면 새로운 출셋길이 열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강동을 벗어나 높은 지위로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저택의 앞까지 길게 줄지어 섰다.
그 모습을 본 제갈근은 염소같이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바로 과거 여남의 월단평에서 펼쳐진 모습과 같으려나?”
제갈균은 그런 제갈근의 옆에 서서 연신 입에 무엇인가를 넣고 있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던 제갈균이 마침내 그것을 삼키고는 말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을 못 했는데 말입니다.”
“넌 아이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느냐?”
“아, 이번에 강남으로 간다고 했을 때 공자님이 챙겨 주신 것입니다. 엿이라 하셨나? 하여튼 제법 맛이 좋습니다.”
제갈균이 계속 줄어드는 주머니를 아까운 듯 바라보자, 제갈근이 은근하게 물었다.
“그 정도더냐?”
순간, 제갈균은 경계 가득한 눈으로 제갈근을 바라보았다. 딱 보아도 나눠 달라는 뉘앙스가 아닌가. 하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크흠, 공자님께서 특별히 저를 걱정하면서 주신 것입니다.”
제갈근은 천연덕스럽게 외면하는 제갈균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과 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이 녀석이 수춘후의 아들인 조단과 친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 욕심만 챙기려 들 줄이야.
제갈근은 문득 골려 주고고 싶은 마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래? 대공자께서 너만 먹으라고 그것을 주었단 말이더냐? 내 알기로 대공자께서는 마음이 넓어 모든 이들에게 베풀길 좋아하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다.”
의표를 찌르는 제갈근의 지적에 제갈균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당황한 채 엿이 담긴 주머니와 제갈근을 번갈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했다.
“공자님께선 마음이 넓고 곧은 분이니, 분명 그 말씀처럼 나누어 주셨을 것입니다.”
결국 제갈균은 마지못한 듯 엿을 꺼내 제갈근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더없이 귀엽게 느껴진 제갈근은 웃으며 엿을 입안에 넣었는데, 이내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굉장하구나!”
단맛을 즐기기 어려운 시대에서 엿과 같은 음식은 제갈근에게 큰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향하자, 제갈균은 주머니를 얼른 품에 숨겼다.
“안 됩니다. 이미 드렸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하나는 너무 적지 않느냐. 하나만 더······.”
제갈근의 요청에 제갈균은 단호히 거부했다.
“절대 안 됩니다. 저도 아끼고 아껴서 겨우 하루에 한 개 먹을까 말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의 넓은 배포는 베푸는 것에 있지, 욕심을 부리는 자에게까지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제갈근은 바짝 경계하는 제갈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엿을 먹은 것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터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이 빼앗아 먹었으니,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새삼 제갈균이 아직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균아가 조문단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주공께서 인정한다는 말이니, 좀 더 곁에서 가르침을 준다면 분명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제갈근은 이 자리에 없는 동생, 제갈량을 떠올렸다.
‘량이도 수춘으로 오면 참 좋을 텐데.’
***
현재 형주의 형세는 굉장히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유비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점점 유표를 압박해 나가고, 유표는 이들을 쳐 내기 위해 채모에게 큰 권한을 내주었다.
거기다 유표는 병석에 누워 골골대는 터라 대신 말을 전하는 채부인을 의심하는 이들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유비는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풍에게서 온 서신을 화로에 던져 버렸다. 그 옆에서 관우는 꼿꼿이 앉아 춘추를 읽고, 장비는 한숨을 내쉬며 차를 들어켰다.
“전풍이라는 놈이 엄청 뛰어난 모사라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유비의 말에 관우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 이곳의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형님이 그간 걸어온 행보가 황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지금 나더러 군을 움직이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최소한 고순과 이통이 실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유비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솔직히 낙양까지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명분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유비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보다 기반이었다.
“절대 안 될 일이지.”
만약 자신이 움직인다면, 채모가 무슨 짓을 할지는 빤했다. 무슨 모함을 해서라도 다시는 형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유비가 어림도 없다는 듯 성을 내자, 장비가 머리를 긁으면서 물었다.
“큰형님, 이렇게 계속 머물러 있다고 해도 형주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닙니까?”
유비는 그런 장비를 살짝 째려보면서 말했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형주를 차지하다니? 나는 그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유기를 지지할 뿐이다.”
장비는 애써 변명을 늘어놓는 유비를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뭐가 많이 부족하지 않소? 채가 놈들은 호족들을 모조리 모아 철옹성마냥 유종을 지지하고 있는데 말이오.”
그때, 관우가 끼어들었다.
“옳은 일은 언제나 바로 서게 되어 있다.”
장비는 관우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게 지금 뭔 되도 않는 소리요? 우리 살아 있을 때 바로서야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오? 그러니 형주의 정세를 파악하고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오.”
“······.”
“얼마 전까지야 순 사공을 막는 구원자 같은 모습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그뿐 아니오. 이제 뭔가를 해야지.”
장비의 냉정한 평가에 유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콧등을 긁으면서 말했다.
“하긴 네 말이 맞다. 우리의 명성을 듣고 모여드는 게 죄다 장수뿐이니, 관리를 해 줄 사람도 필요하지. 언제까지 미축과 미방이 다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여전히 낙관적인 유비의 대답에 장비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오. 솔직히 두 사람이 자신들의 재산까지 쏟아부으며 살림을 챙기니, 미안해지기까지 합니다.”
관우는 그런 장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다면 그자는 많은 부를 갖고 있어야겠군.”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오? 요가(廖家) 사람들을 한번 보시오. 작은 형님 밑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엄청 재산을 쓰는 걸 보면··· 어휴, 말도 안 나올 지경이오.”
“그러니 더욱 많은 재산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뭐, 그렇다 칩시다. 그래서 이제 어찌할 거요?”
유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경 선생을 초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제자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니, 적당히 추천해 줄 것 같은데.”
사실 유비의 속마음은 간단했다. 수경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할 테니, 그런 이들 몇만 잘 구슬린다면 당장의 문제는 해결될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비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선생, 돈을 좀 챙기기는 하지만 충분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니, 그의 밑에서 수학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인정할 만하오. 내 직접 그를 모시러 가겠소.”
그에 유비는 장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다. 막내는 여기 있거라. 내가 네 속셈을 모르겠느냐? 나간 김에 술이나 마시려는 것이겠지. 내 직접 수경 선생을 만나러 가겠다.”
“형님, 그러다 고순이나 이통이 완에서 내려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고순 같은 인물이 아직도 완에 주저앉아 있는 것만 봐도 우리를 크게 견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 사공도 생각이 있으면 전선을 늘리려 하지는 않을 테고.”
잠시 말을 끊은 유비는 장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만인적(萬人敵) 두 형제가 있는데, 뭐가 문제겠느냐.”
“···알았소. 그럼 진도와 같이 가는 것입니까?”
“그래야지. 문장(文長 위연의 자)은 군을 훈련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유비의 말에 관우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연의 병사 조련 솜씨는 관우나 장비도 인정할 만했다. 관우는 병사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자체를 이해 못 하고, 장비는 손이 너무 자주 올라갔다.
결국, 그간 유비가 맡아 온 병사 조련을 이어받은 것이 위연이었다.
“내 조용히 다녀올 것이니, 괜히 일 만들지 말아라.”
“걱정하지 마시오. 일이랄 것이 뭐 있겠소? 터진다면 위쪽이나 양번에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