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1
사마휘의 저택에 도착한 유비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시동을 바라보았다. 이미 오늘 오기로 서신으로 알렸는데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뿐인가. 수경 선생도 저택에 없었다. 시동은 그저 곧 올 것이라는 말만 전하였다.
진도는 그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할 뿐. 결국 할 게 없는 유비는 칼로 애먼 땅을 긁으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이럴 거면 차라리 장비나 데리고 올 걸 그랬군. 그랬으면 둘이서 입이라도 털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동을 불러 생선이 담긴 망을 건넨 뒤에 휘적휘적 유비에게 다가왔다.
유비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자, 사마휘가 입을 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그런데 수경 선생께서는 여전히 자유로우신 것 같습니다.”
비꼼이 담긴 유비의 말에 사마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편한 옷을 마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관복은 어떠십니까?”
“어이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관모도 무거운데, 관복을 어찌 입겠습니까? 저는 소일거리나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사마휘가 말로 이길 상대는 아니기에 유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게다가 어차피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니던가.
“사실 제가 선생을 찾아뵌 것은······.”
유비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마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 제자들 중에 쓸 만한 놈들을 데려가고 싶어 하신다는 걸. 그러니 저와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요.”
유비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사마휘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휘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물었다.
“유 사군께서는 이제 어찌하실 요량입니까?”
순간, 유비는 뭐라 말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전풍에게서 낙양으로 와 폐하를 지키라는 서신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했습니다.”
사마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순욱이나 전풍도 폐하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둘 다 조조나 원소와 달리 한조를 유지하는 것이 천하의 안정에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고민하던 답 중 하나가 선생의 입에서 나오니, 참으로 안심이 됩니다.”
“하면 유 사군께서는 이곳에 남아 형주를 얻어 내고자 하시겠군요.”
유비는 사마휘의 말에 찬동도, 반대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자니 면목이 안 서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가슴이 찔린 탓이었다.
“우선 제 생각은 장자인 유기를 형주의 주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 보았자 우유부단한 유기는 사군의 의견에 의존할 테니, 결국은 유 사군께서 형주를 갖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비는 잠시 고민하다가 사마휘를 바라보았다. 사마휘의 눈은 마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사마휘는 유비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라고 했다면 실망했을 뻔했습니다. 사실 채모와 유 형주의 극심한 견제 속에서도 신야에서 버티고 계신 것을 보면, 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저도 수경 선생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천하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면 이렇게 제자들을 훌륭히 키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소인은 겁이 많은 인물이라 그저 저를 대신할 인물들을 키워서 내보내는 것일 뿐입니다. 제자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천하를 움직인다면, 멀리서나마 만족할 수 있겠지요.”
“스스로 관모를 쓰고 나아가 능력을 빛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내가 나서지 않은들 뭐 어떻겠습니까. 제자들이 뜻을 펼치며 나라를 안정시킨다면, 살아서는 존중받고, 죽어서도 그 이름이 기억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딱 그 정도가 좋습니다.”
자신의 거듭된 권유에도 뜻을 꺾지 않는 사마휘의 모습에 유비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뛰어난 머리뿐만 아니라 인맥도 굉장히 넓고, 색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재주 또한 뛰어난 사마휘였다.
‘그의 재능이 일주를 넘어 천하를 넘보고 있음에도 무엇이 두려운지 나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는구나. 대체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에 잠긴 유비에게 사마휘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만약 유 사군께서 와룡과 봉추를 얻으신다면, 다른 인재들도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양양으로 가서 유 형주께 순욱을 치기 위한 북상군을 조직해 달라고 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조금 전에는 가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하지 않았소?”
“어차피 채모나 유 형주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 사군은 명성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책임을 넘기는 방법이지요.”
유비는 순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를 돕지 않은 책임을 유표에게 넘길 수 있다는 말이구나. 겸사겸사 나는 황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보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절묘한 수이더냐.’
유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자들을 추천해 주신 일만 하여도 충분히 감읍할 일인데, 골치 아픈 일도 해결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그러자 사마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걸어가며 말했다.
“그저 제자들을 잘 봐 달라는 자그마한 선물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유비는 멀어져 가는 사마휘의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경 선생께서는 진정 관모를 쓰지 않고 후인들의 손에만 맡길 요량이십니까?”
“현재 천하가 이 모양인 것은 저와 같은 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만과 욕망으로 인해서입니다. 하온대 어떻게 제가 나서겠습니까.”
사마휘는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곧 시동이 추천서와 제자들의 위치가 적힌 죽간들을 넘겨주었다. 유비는 그 죽간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구나. 보통 학식이 높은 문인들은 글도 잘 쓰지 않나?’
노식의 문하에서 학문을 사사한 유비로서는 사마휘의 악필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진도에게 말했다.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할 일이 많으니 말이다.”
“예, 사군.”
그렇게 유비가 떠나간 후, 사마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지었다.
“나를 버린 가문이 결국 당고의 화를 잊고 다시 환관 놈들과 손을 잡는군. 내 그 꼴은 결코 보지 못하겠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두고 보자고.”
***
얼마 후, 사마휘의 말대로 유비가 움직이자 양양의 조정이 크게 흔들렸다.
근황군을 조직하여 한조를 다시 일으키자는 유비의 주장은 과거 동탁의 물리치기 위해 각지에서 의기만으로 떨쳐 일어난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때도 의기 넘치던 이들은 스러지고 욕심에 충실한 자들만 살아남았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채모는 절대 유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근황군의 중심이 될 유표는 병상에 누워 있으니 결국 중심이 될 사람은 유비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권을 넘겼다가 칼을 뒤집어 잡는다면 도저히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문제였다. 근황군이 순욱을 물리쳐 여남을 얻게 된다 해도 그것은 유비의 공이지, 자신들에게 도움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에 채모는 형남의 반군과 이족들이 온전히 잡히지 않았고 강하가 불안하니 우선 형주를 지키는 데에 바빠 여력이 없다고 답하였다.
다만, 군량과 군자금을 더 보태 줄 테니 스스로 해결해 보라 권하자, 유비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이 유 모의 능력이 부족하여 남양의 고순과 이통을 당해 내기 어려우며, 여남에서는 조제에게 패하였으니 참으로 황망합니다. 소인이 최선을 다하였지만 겨우 신야 일대를 지키는 것밖에 못 하니, 부디 소인을 대신할 인물을 대장으로 삼아 근황군을 이끌어 주소서. 소인은 일개 마궁병으로나마 나아가 싸우겠습니다.]유비의 절절한 애원에 한조에 충심이 깊은 유자(儒子)들은 같이 훌쩍이며 고개를 바닥에 찧었다.
그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에 어이가 없었지만, 채부인은 유표의 말을 전하며 단호히 그들을 뜻을 잘라 내었다.
결국, 황제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있는 표문이 전달된다면, 그때 군을 움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일로 근황에서 벗어나려는 채씨 일가와 황실을 지키려는 유비의 대립점이 드러나며 많은 유자가 유비를 찾게 되었다.
유비는 이를 기회 삼아 사마휘가 추천한 인재들을 찾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서서는 이미 허도를 떠나 수춘에 머물러 있고, 방통은 이미 남군으로 떠나 볼 수 없었지만, 이선과 윤묵, 상랑, 한숭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조에 대한 유비의 충정에 감명을 받았으며, 유표 사후, 적장자인 유기를 지지할 것이라는 말에 유비를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유비는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수경 선생이 말한 와룡을 얻기 위해 제갈량을 찾아간 것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방문을 꺼리는 듯 두 번이나 바람을 놓았으나, 유비는 꿋꿋하게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유비는 결국 제갈량과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유비는 훤칠한 키와 헌헌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제갈량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자가 어찌 천하의 고난을 알고 대업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는가.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이내 제갈량의 손을 보고는 마음이 달라졌다. 고운 얼굴과 달리 직접 농사를 지어본 손이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유 모가 제갈 공을 의심했소이다. 사과드리오.”
제갈량은 유비의 겸양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옵니다. 보잘것없는 소생을 위해 세 번이나 찾아 주신 사군께 감사와 죄송을 전하고자 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그제야 유비는 집 안을 둘러보고는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쪽 벽에 걸린 수많은 지도에는 그간 치러진 전투에 대해 세세히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탁상 위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 죽간에는 농사를 어찌 지어야 할지라 든지, 물이 흐르는 곳과 그곳의 치수에 관한 업무 등 생활에 필요한 자료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유비는 순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신인(神人)이로구나. 내가 신인을 보고 있음이야. 이 사람을 거둘 수 있다면, 능히 천하를 노려 봄 직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유비는 물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