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2
유비가 물을 만난 그때, 승태는 경이와 단이를 안아 든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순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심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이를 듣고 있는 여혜는 눈에 불을 켰다. 그로 인해 연이는 예혜의 팔을 잡고 튀어 나가려는 것을 막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러니까, 저더러 순가의 여식 중 하나와 혼사를 치르라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네. 사공 어르신도 흔쾌히 허락한 일이고 말이네.”
“첩으로도 괜찮단 말입니까?”
승태의 태연한 반응에 순심은 잠깐 놀랐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순욱이 일반적인 생각으로 조제를 판단하려 들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여혜가 정실, 순채가 첩으로 들어서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 드러난 승태의 반응을 보면 그냥 선착순으로 정한다는 느낌이었다.
‘흠, 일부러 거절하기 위해 나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로군. 그럼 내가 화를 내고 나갈 것으로 생각한 것인가? 하지만 그야말로 오판이지. 어차피 순채도 재혼이니, 이 정도 대접은 예상했으니까.’
“그렇다네. 가문의 어른들 사이에서 말이 조금 나오겠지만, 순 사공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따지겠는가.”
순심의 확고한 태도에 이제는 도리어 승태가 당혹하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고는 눈을 껌벅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여혜를 바라보았다.
‘이거, 아주 힘들게 되었네.’
승태는 일단 눈앞에 닥친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급히 말을 꺼냈다.
“일단 저희 집안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순심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늘 모든 것을 확정 지을 생각은 없었네. 오늘은 그저 사공의 의중을 전한 것이니 말이야. 그럼 나중에 다시 보지.”
순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승태가 얼른 배웅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여혜가 다시 잡아 앉히더니, 지그시 이를 갈면서 말했다.
“후가 일어나 마중을 나가는 것은 예에 맞지 않습니다.”
승태는 여혜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순심에게 눈인사를 건네었다.
순심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지 않아 여혜가 승태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좋아요?”
“아니, 그게 무슨······. 난 그 사람을 본 적도 없소.”
“그런데 왜 단박에 거절을 못 해요?”
“아니, 순가에서 들어온 제의인데 어떻게 단박에 거절을 한단 말이오. 부인도 잘 알지 않소.”
여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승태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분명 다른 혼처가 들어올 거란 생각은 했다.
그러나 순가 같은 명문에서 첩으로 들어온다니, 전혀 예상 못 한 전개에 여혜는 골치가 아파 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 번 혼사를 치렀다는 과거가 있으니 그리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알지요, 알아요. 순 사공께서 직접 손을 써 시행한 일이니, 거부하지 못하리란 것 말입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저야 그렇다 치더라도 연이는 어쩌려고요?”
승태는 조금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연이를 바라보자, 눈에는 눈물이 약간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다가가 안아 주려 했지만, 이미 두 어깨에 매달려 있는 두 아이 때문에 그저 어색하게 웃음만 지었다.
“미안해요. 안아 주고 싶은데 내 꼴이 지금 이래서 말입니다.”
“풋.”
연이는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아, 울다가 웃으면··· 음, 아닙니다.”
“왜요? 무엇인데요?”
“아니에요. 대신 오늘은 모두 함께 자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이들은 유모에게 맡기고 말입니다.”
***
다음 날.
승태가 퀭한 눈으로 걸음을 옮기자 조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휴, 말도 마십시오. 잠은 고사하고, 기력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운은 푸념을 늘어놓는 승태를 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예. 특히··· 아, 아닙니다. 그냥 못 들은 거로 해 주십시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승태는 회의를 모두 취소하고 집무실에 멍하니 앉았다. 주변의 궁인들이 승태를 걱정하였으나, 승태가 에둘러 사정을 밝히자 이내 이해한다는 듯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눈치 없는 진궁이 무엇인가를 들고 급히 들어왔다. 승태는 멍한 표정으로 진궁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많은 일이 있었지요. 수로도 있고, 지금 오에 있는 이들의 문제도 있고······. 뭐, 좀 많으니 이리 들고 왔습니다.”
승태는 각 부에서 올라온 상소문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건 분명 그간 노숙이 담당해 온 일들이었다. 노숙이 없으니 자신에게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끙, 이런 건, 진 노사께서도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승태의 앓는 소리에 진궁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어림없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 일들이 다수인 데다, 따지고 보면 주공께서 진행하게 한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상서들을 다시 들추어 본 승태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맞네요. 알겠습니다. 이것들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죠?”
“아닙니다.”
승태가 포기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자, 진궁은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순가와의 혼사를 이른 시일 안에 가납하십쇼.”
전혀 예상치 못한 주문에 승태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그로 인해 이렇게 피곤해졌는데, 그 문제를 다시 언급하니 저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았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지금 순가에서 혼사로 주공을 묶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승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친분을 굳히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궁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폐하도 지금 허도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순 사공은 낙양을 고립시키려는 듯 바짝 조이고 있습니다. 전풍은 순 사공을 꺾어 내기 위해 낙양에 매달리는 중이고요.”
“······.”
“하지만 순 사공은 이미 가 집금오를 통하여 수 싸움에서 한수를 이겼으니, 전풍도 유효한 패를 꺼내기 전까지는 잠잠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원담은 위태로운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든 업을 다시 복구하려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순 사공께서 주공께 혼사를 요청한 것은 그 이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후라면······.”
“조조의 자리를 순 사공이 대신 하려는 것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 배치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조조의 자리를 순 사공이 노린 다라······.”
순간, 승태의 머릿속으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조조 같은 인물은 되지 않을 것 같아 순욱을 지지해 왔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내 조인이나 조홍, 하후돈이 생각났다.
“그럼 종숙들은 이제 어찌 되는 것입니까?”
“글쎄요. 두 개의 머리는 있을 수 없으니, 그들을 중재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겠지요.”
승태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만일 하후돈과 순욱의 사이가 벌어진다면, 군부에 지지자가 많은 하후돈이 아직은 좀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것이 당연한 승리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진이나 조상의 경우처럼 순식간에 벌어지는 사태에는 군대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을 테니.
“그래도 너무 지나친 생각 아닙니까? 막말로 그리고 제가 혼사를 치른다 해도 조가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일단 혼사 문제는 다른 분들과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승태가 한 발 빼자 진궁도 더는 몰아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리하시지요. 그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산더미이니 말입니다.”
진궁이 상서를 하나씩 건네자 승태는 피로가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살펴보았다. 대충 넘기기에는 금액적으로 좀 큰일들이 많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흠, 운하는 상인들도 돈을 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이용하는 권리를 내주겠다 하고요.”
따지고 보면 타산이 안 맞는 일이었다. 장강과 회수를 이어 청주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나, 관리비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영 유지가 어려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상인들도 운하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투자를 끌어내야 했다.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더더욱 잘 쓸 것 아니겠는가.
“아, 그리고 투자한 사람들의 이름을 석판에 새기고, 금액에 따라 잘 보이는 곳에 넣어 준다고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진궁은 승태가 하는 말에 웃음을 지었다. 이는 상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는 사인(士人)들에게도 매우 솔깃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승태는 계속해서 상서들을 살피다가 노숙이 보낸 글을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강동의 인재들 말입니다. 그냥 이렇게 포용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간자들이 섞여 있을 텐데요.”
“충성할 곳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손가를 지워 버리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입니다. 손책은 태평도를 탄압하여 민중의 원한을 샀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손권은 호족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일관성이 없고 법의 기율이 서지 않으니, 이미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노 종사의 생각대로라면 작은 돌 하나가 손가를 무너트릴 것입니다.”
승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장강을 넘어 손가를 치고 싶지만, 상중이니 참아야 했다.
게다가 노숙이 벌이는 수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나저나 중원과 화북 상황은 여전히 지지부진한데, 만일 유비가 형주를 얻으면 어찌 막아야 하지?’
지금 상황에서는 순욱도 그리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 유표가 죽자마자 형주를 차지하고 익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익주와 형주만으로도 중원을 모두 차지한 위를 위협할 정도였는데,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유비를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는 그렇다 치고, 형주는 어떻습니까? 강동을 빠르게 꺾고 형주를 압박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안 그래도 유비가 이번에 근황군을 주창했으나, 유표에게 반려당하여 은인자중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 승태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새삼 제갈량의 존재가 떠오른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제갈근과 제갈균이 이곳에 있다고 너무 방심하고 말았구나. 삼국지 최강의 군사인 제갈량을 잊고 있었다니. 안 되겠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가는 와룡과 봉추를 얻은 유비가 천하에 도전할 수도 있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승태는 다급해졌다.
“진 노시, 원직에게 말하여 형주에 눈을 집중하게 해 주세요.”
진궁은 달라진 승태의 태도에 약간 긴장을 하였다. 승태가 이럴 때마다 큰 사달이 벌어진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태는 계속 제 말을 이어 갔다.
“강동이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면, 형주는 영웅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