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인물평이라는 기행으로 인하여 노숙은 꽤 유명해졌다. 특히 기대하지도 않은 거족들의 자제들이 온 것은 또 다른 화제가 되었다.
이제 막 관모를 틀어 올린 주씨 집안의 주거, 그의 친우 장온, 장소의 아들 장승이 찾아온 것이다.
노숙은 그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는 승태가 자주 하는 버릇 중 하나로, 뭔가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그렇게 빤히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하도 많이 봐오다 보니 노숙 또한 저도 모르게 그 행동을 따라 하곤 했다.
“그래서… 나더러 자네들을 평해 달라, 이 말인가?”
“맞습니다. 솔직히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간 노 공께서 많이 해 온 일이니까요.”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것 같은 그들의 건방진 태도에 노숙은 어이가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자네들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와서 평을 내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네. 자네들 같은 고관의 자제들이야 이런 것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 노숙을 바라보며 장승이 말했다.
“그간 우리 내부를 가르기 위해서 사인들을 그렇게 불러 모아 좋은 평을 내려주지 않았습니까? 마치 능력이 아닌, 가문의 힘이 없어서 올라가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장승의 예리한 지적에 노숙은 눈을 가늘게 흘기며 이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이미 자신을 적이라 설정하고 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하긴 고관의 자식들이 이렇게 대놓고 무례를 저지르는 것 자체가 격장지계(激將之計)를 이용하려는 것이리라.
톡톡톡.
노숙은 자신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이내 미간을 엄지와 검지로 짓눌렀다. 노숙이 집중할 때 하는 습관 같은 것인데, 이들을 어찌 처리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확 솔직한 마음을 말해 버릴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분명 자신에 대해 시험하려는 속셈이 빤하니까.
‘분명 내가 내리는 평가는 모조리 엉터리라는 소문을 퍼트리겠지.’
그런 모욕쯤이야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승태와 같이 다니다 보니 이런 일쯤이야 그저 일상과도 같았으니. 그러나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모조리 수포가 돌아간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기발한 발상과 저들의 지식을 꿰뚫을 재지(才智)가 없다면 난관을 타파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하지만 노숙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승태를 따르며 수없이 겪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탓이다.
그것들이 어찌 저들이 책으로 배운 것보다 가볍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노숙은 승부수를 던졌다.
“그래, 그토록 원한다니 평해 주지. 이 노가의 자경이 높은 명성을 날리지는 않지만, 수춘후가 하신 일들을 가장 옆에서 보좌해 왔으니 능히 자네들을 평할 정도는 될 것이네.”
노숙의 자신만만한 말에 그들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 후, 가장 연장자인 장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본시 옳은 치(治)라 함은 폐하의 곁에서 현명한 신하들이 마음을 기울여 돕도록 하며, 각지의 사람들로 하여금 위안과 신뢰를 느끼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데 폐하께서는 순 사공이 예전 조 사공과 같이 겁박하여 천하를 어지럽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순 사공을 수춘후께서 따르고 있으니, 이는 모두가 역모를 꿈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숙은 장승의 도발적인 언사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모라? 그리 말하고 싶다면 먼저 황실의 법도를 참칭한 이들 먼저 죄를 따져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선대 패공과 순 사공이 역모를 꾸몄다면, 어찌 의대조의 사건 때 폐하를 가만히 두었겠소? 그저 조정을 어지럽힌 이들만 처리했을 뿐이네. 폐하를 받들고 감히 황실의 법도을 어긴 이들을 벌하는데, 그것을 역모라 속이고 거짓으로 덮는 이들이 더욱 죄가 크지 않겠소? 이는 위나라의 방총이 위왕을 받들어 태자를 구했음에도 거짓 모함에 당해 돌아오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지금도 순 사공께선 폐하의 안위로 인하여 낙양을 공격하지 않고 항복을 종용하고 있소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리오? 그대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오.”
장승이 순간 대답을 하지 못하자 노숙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천하는 이전 신하들의 매관매직으로 인한 부정부패(不正腐敗)와 깨어 있는 자들의 의기가 없음을 먼저 말해야 하오. 그다음 백성들이 살고자 일어난 동란 또한 그렇소.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를 고치고자 노력해야 함이 맞소. 그런데 혼란한 이때를 기다려 감히 법도를 어기는 자들을 속출하였소. 오정후께서도 이를 알고 칼을 들고일어난 것이 아니겠소?”
결국, 손견까지 들먹이며 반박하자, 장승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장온이 나서 입을 나불댔다.
“좋소, 수춘후와 순 사공의 충은 이제 이해했소이다. 하지만 진정 백성을 위하는지는 모르겠소이다. 수춘후는 비싼 돈을 들여 사치를 즐기고 검약하지 않으니, 아랫사람들 또한 검약하지 않으며 탐욕을 추구한다고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까 말한 동란의 백성들을 이해한다는 것이오?”
노숙은 순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심의를 벗어 앞에 내려놓고 말했다.
“이 옷은 무엇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가?”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놓인 심의를 만져보았다. 그러고는 새삼 고급 재질의 비단임을 알아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노숙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고혈를 빨아야 이 정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따져 보자, 그들은 노숙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 노숙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관들이라면 모두 이 정도 옷쯤은 입을 것이네.”
노숙의 말에 장온이 일어나 분기를 터트렸다.
“아니, 수춘의 백성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소이까! 어찌 고관들이 먼저 나아가 모범을 보일 생각을 하지 않고 백성들의 피와 살을 빨며 사치를 부릴 수 있소이까? 베풀고 긍휼히 여겨야 하는 이들조차 그러하다면, 어찌 백성이 편안하겠습니까?”
노숙은 장온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피와 살을 빨아먹는다? 그래, 딴에는 맞는 말이겠지. 우리도 소작을 놓으니 말이야. 그러나 오의 호족들보다는 덜 빨아먹을 것이네.”
노숙의 냉정한 평가에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항의하듯 눈을 치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숙은 그들을 향하여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수춘후께서는 삼 할을 초과한 세율을 금지하고, 호족들이 땅을 구매할 때는 사용 목적을 밝혀야 하네. 특히 농지를 구매하는 것이면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꺼려 구매치 않는 이들이 많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좋은 물건을 고관들이…….”
“충분히 남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땅을 사지 못하고 상업에 나선 이들은 합자(合資)를 통해 대리를… 아, 이건 자네들이 나중에 수춘에 오면 알려 주도록 하지. 하여튼 돈을 굴리는 것은 꽤나 복잡한 일이니까 말일세.”
노숙의 태연한 대꾸에 장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성을 내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어찌 이런 옷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쌓았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아, 그것은 그대들이 경계한 욕망 덕분이 아니겠는가.”
“뭐라고요?”
“주공께서 이르시길, 욕심이란 게 나쁜 것은 아니라 하였네. 내가 할 수 있다면 더 넓은 땅을 경작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아니지.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이루고 불모지를 국가에서 개간하면 자연히 재산이 쌓이게 되어 있네. 또한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 땅을 가지면 아니 되니 절로 분가를 하고, 그리하니 국가와 경자(耕者)가 농지를 얻게 되는 선순환을 열었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숙은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제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간의 욕심을 얕보지 말게. 인간의 욕심은 말이야, 비싼 것을 먹고 걸치는 것, 높은 곳에 서서 남을 부리고자 하는 부분도 있지만, 알고자 하고 탐구하고 번창하고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측면도 있네. 그것은 사인(士人)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자[有子]의 공통된 마음이네. 그들은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해 수로를 파고 길을 내네.”
폐부를 찌르는 노숙의 말에 세 사람은 충격을 받아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특히나 장온은 스스로 장점인 검박함을 내세우지도 못하였다. 도리어 자신이 입고 있는 것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저 베푸는 것이 옳다고 여긴 짧은 지식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자, 이번에는 자네 차례인가?”
노숙은 마지막으로 남은 주거를 바라보았다. 그는 주환과 같은 종가 사람으로, 손권이 손책의 암살자들을 척살할 당시 수춘으로 도망간 주환과 달리 오에 남아 무고를 주장하였다.
이후, 진실이 밝혀져 혐의를 벗을 수 있었는데, 손권은 주환의 가문은 배주(背朱), 주거의 가문을 정주(正朱)라 칭하며 대우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주거는 대충 되는대로 말을 꺼냈다.
“종형께서는 잘 계십니까?”
“잘 있네. 도위의 자리에 올라 수춘의 군을 책임지고 있네.”
“높은 자리에 올랐군요.”
“수군을 이해하는 인물이 우리 쪽에는 별로 없으니 말이야.”
주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감녕이나 손 가의 두 형제분이 투신하고 오군의 많은 호족들이 수춘후의 밑에 들어갔으니, 능히 장강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다?”
주거의 물음에 노숙은 그 속셈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은근히 띄워 주는 듯한 말속에 수춘후를 장강을 차지하려는 인물로 만들고 있었다.
이는 황조나 손권 휘하의 호족들에게 큰 경각심을 심어 줄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주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언이 될 수도 있었다.
노숙은 주거의 의도를 한눈에 간파하고는 말했다.
“수춘후께서 어찌 장강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장강 또한 폐하의 강역인데 말이야. 그저 장강에 출몰하는 수적들을 다시 선량한 백성들로 되돌리고, 분쟁을 조절하여 피가 흐르지 않게 만들고자 함일 뿐이네. 그것이 누구의 손을 잡아서 이루어진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노숙의 의미심장한 말에 세 사람은 멍하니 눈을 껌벅거렸다. 자칫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면 오해의 소지를 만들기 충분한 탓이었다.
특히 배신에 예민한 손권의 귀에 들어간다면… 끔찍한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결국 세 사람은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를 보고, 그 모습을 지켜본 노숙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의심이란 뚜렷할수록 사라지는 법. 가장 큰 두려움은 어렴풋이 보이는 그림자에 상상이 덧씌워지는 것이니, 두려워 쓰지 못하는 인재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