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조홍은 순심의 놀란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 구하기 어려운 석청(石淸)을 직접 타 주며 부드럽게 응시했다.
그런 조홍의 눈 속에는 순가의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하는 기색이 짙게 묻어 있었다.
이윽고 조홍이 입을 열어 물었다.
“순가에서 혹 우리 조가를 어찌해 볼 요량으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소.”
그에 순심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조홍을 바라보았다. 조홍은 자신이 너무 나간 것 같아 겸연쩍은 듯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장난입니다, 장난. 순가에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지요. 돌아가신 종형을 패공의 자리에 올려놓은 분이 순 사공이 아닙니까. 그럴 분이 아니지요. 암요.”
그 과장된 말투에 약간 거북함을 느꼈지만, 본시 조홍의 성격이 이러하니 순심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후, 실은 부탁이 있어 찾아온 것입니다.”
조홍은 잠시 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설마… 국정을 운영하는 데 돈이 부족합니까? 아니지. 순가에 돈이 모자랄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 승태가 상납한 금액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고 말입니다.”
직설적인 조홍의 화법에 순심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정후, 그것은 상납이 아니라 공물이라 칭해야 옳습니다. 그리고 말을 그렇게 하시면 괜한 오해를 삽니다. 저희 순가가 치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같은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새삼 골치가 아파 오는 듯 순심은 이마를 문질렀다. 어차피 그 말의 진의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조홍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값을 높이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물론 순심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하니, 조홍의 태도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정후, 비록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조가와 순가는 같이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한풀 꺾인 순심의 기세에 조홍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협력이라… 뭐,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그럼 요구를 들어 볼까요?”
그 말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순심이 서신을 조홍에게 내밀며 말했다.
“정후께서 수춘후를 설득해 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조홍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승태를 설득할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홍은 앞에 놓인 서신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게 사공께서 주시는 대가 같은 것이오? 여간해서는 수춘후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울 터인데 말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공께서는 이르길, 다만 훼방만 두지 말아 달라 하셨습니다. 이미 수춘후께서 반쯤은 그러겠다고 수락했으니 말입니다.”
조홍은 수염을 매만지며 곰곰이 고민했다. 이러한 말이 나올 만한 일은 딱 두 가지 정도였다.
“흠, 그렇다면 혼사(婚事), 아니면 전사(戰事)이겠구려?”
“둘 다입니다. 사실 그 한 가지 이유만이라면 굳이 사공께서 직접 서신을 보낼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조홍이 순심이 내민 서신을 뜯어 보기 위해 손을 뻗자 순심이 이를 막으면서 물었다.
“사공께 답변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뭐, 그런 사소한 일로 걱정을 하시오? 내 승태에게 잘 말해 보겠습니다. 순가와 조가가 더 끈끈해지면 좋은 일이지요. 작금의 상황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지가 있으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똑똑하고 신뢰가 높은 순가의 사람들이면 더할 나위 없고.”
조홍의 긍정적인 반응에 순심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홍은 부랴부랴 서신을 펼쳐 보았다.
잠시 후, 조홍은 눈을 크게 뜨며 순심을 바라보았다.
“아니, 만총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문제 많은 빈객들을 꺼내 주겠다는 것이오?”
“그냥 그렇게 해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선과 가까운 둔전에서 일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으니,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조홍은 손을 뻗어 내저었다.
“아니, 그 정도만 하여도 순 사공께서 크게 양보를 해 주신 것이지요. 깔끔하신 그분의 성정에 이 정도면 거의 모든 것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거기다 만총, 그놈이 버티고 있는 감옥이니, 과하면 과했지,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조홍은 혹여 마음이 바뀔세라 서신을 품에 담고는 물었다.
“그럼 내가 수춘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뭐 어찌해야 할지 알려 주시오. 내 순 사공께 받은 선물만큼은 일해야 하지 않겠소.”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 듯 말투마저 변한 조홍의 모습에 순심은 약간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래도 내 직접 내려가면…….”
“뭐든 과하면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조홍은 살짝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맞지 않을는지.”
“수춘후보다는 조가 내에서 반대할 사람들만 잘 설득해 주십쇼.”
“그거야 뭐 문제될 게 있겠소? 어차피 패현에 갈 일도 있으니, 그 참에 설득해 두겠네. 그것으로 끝인가?”
“사공께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니 부탁드리건대…….”
조홍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미 아들놈과 빈객들과 따끔히 말해 두었소. 종형께서 살아서 비호를 해 준다고 하여도 선을 넘으면 목이 잘릴 판인데, 다리가 박살 날 각오로 일을 치르라고 말이야.”
순심은 예상보다 과한 조홍의 태도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숨통을 틔워 주면 반성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다시 수를 쓰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조홍은 달랐다. 비록 태도가 건방지고 가벼워 보이긴 하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조홍은 순심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부와 권세는 한순간이니, 그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오. 그게 바로 눈치와 신의 아니겠소?”
* * *
노숙은 위사의 도움을 받아 주유가 있는 옥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외로 깔끔해 보이는 옥사 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주유가 볕을 보고 앉아 있었다.
“이보게, 볕은 따뜻한가? 어째 옥사에 갇힌 주제에 편안해 보이는군.”
“음, 자경인가?”
“맞네. 내 자네가 빌려 간 곡식을 받으러 왔는데, 영 상황이 아닌 것 같군.”
“그런가?”
“아무렴 그렇지. 아니면 자네 집안에 대신할 것들이라도 있는가?”
“대신할 것이라. 글쎄, 잘 모르겠군.”
“자네의 능력이라면 어떠한가?”
은근한 노숙의 주문에 주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 능력? 내 능력을 사기에는 부족한 감이 너무 크군.”
“이보게, 마음 작은 손권의 밑에서 얼마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일 년, 이 년? 기껏 해 봐야 자네의 목숨만 깎아 먹는 일일세.”
“그렇다고 내 친우를 죽인 이의 사위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것인가?”
“손책을 죽인 것은 도사 우길이라 들었네만?”
그제야 주유는 조용히 몸을 돌려 노숙을 바라보았다.
“우길의 암살이 진정 수춘후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노숙은 한 차례 수염을 쓸어내리고는 진중하게 물었다.
“나의 주공께서 그런 것을 지시했을 것 같은가?”
그 말에 주유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쉬운 길을 앞에 두고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은 없네. 자네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노숙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주유를 바라보았다.
“쉬운 길을 가려는 것은 위협되었을 때에나 생각할 문제라네. 온후의 손에 의해 팔다리가 모두 잘린 손책이 과연 주공에게 위협적이었을까? 강 위에서라면 모를까, 강을 건너면 어떨 것 같은가?”
주유는 창으로 다가가 노숙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질 것 같은가?”
“졌을 것이네.”
“내가 있는데도 말인가?”
“수춘후 휘하에 자네와 같은 군사가 없을 것 같은가?”
그 말을 들은 주유는 씨익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영문 모를 그의 행동에 노숙이 옥사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그 빚은 반드시 갚아 주기를 바라네. 어떤 식으로든 말이야.”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는 주유를 두고 노숙은 그 길로 옥사를 나섰다. 그러자 손권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주 도독을 찾은 것입니까?”
“주 도독이 제게 빚진 것이 있어서 어찌 갚을 것인지 문의하러 왔습니다.”
순간, 손권은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노숙을 바라보았다. 주유를 옥에 가둔 자신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빚이 얼마 정도 됩니까?”
노숙은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자를 쳐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원금만 말하면 되겠습니까?”
손권은 콧김을 뿜어내며 노숙의 멱을 잡으려 했으나, 옆에 있는 장소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흠, 둘은 친우라 들었는데, 어찌하여 부를 나눈 것에 대하여 빚이라 하는가?”
노숙은 장소의 물음에 흔쾌히 답을 주었다.
“노가의 창고 반을 내주었습니다. 그것이 작을 것 같습니까? 손가의 처지가 가장 어려울 때, 어디에서 물자가 나온 것 같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금 손가가 누리는 권좌에 제 지분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흠, 그것이 모두 자네의 공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 최소한 주 도독이 구한 물자는 노가장에서 나온 것이란 말입니다.”
그 순간, 손권이 노숙의 앞에 섰다.
“손가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오로지 손가의 능력 덕분이다. 그러니 감히 나를 분노하게 하려 하지 말라. 내 지금도 충분히 참고 있는 것이니.”
그 사나운 기세에 노숙은 잠시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는다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숙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주공근의 능력은 출중하니, 풀어만 주시면 금세 갚을 것입니다. 손가의 무인들보다는 주유가 훨씬 뛰어나죠. 부디 이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순간, 울컥한 손권은 허리춤에 묶인 칼을 쥐었다가 이내 인상을 찌푸리더니 뒤를 돌아 사라졌다.
장소는 노숙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 정말 전쟁을 원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요. 수춘후께서는 오부인의 귀천에 애도의 마음을 품고 저희를 보낸 것입니다.”
“흥, 애도가 아니라 분탕질처럼 보이는군.”
노숙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은근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이 그 정도 분탕질로 사이가 갈라질 만큼 약한 곳입니까?”
폐부를 찌르는 지적에 장소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노숙이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제갈근과 제갈균이 나타나 물었다.
“주유는 만나셨습니까?”
“만났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기는 한데, 딱히 뭐라 말하기가 어렵더군. 마치 세상 모든 걸 비웃는 듯한 표정임은 분명한데…….”
“오랫동안 갇혀 있어 머리가 확 미친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는 이지(理智)가 너무 멀쩡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