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노숙이 떠난 후, 옥사는 이전보다 더욱 조용해졌다. 주유는 환히 비쳐 드는 볕을 바라보다가 위병에게 물었다.
“조용하군. 다 나갔는가?”
“예, 도독 어르신.”
“좋군. 다시금 방해 없이 사색을 즐길 수 있겠어.”
그 말을 끝으로 주유는 다시 벽을 바라보며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자리를 비운 위병이 익숙한 듯 바구니를 들고 왔다.
“도독,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위병의 말에 주유는 조용히 일어나 열린 문을 통해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그 안에는 무척 귀해 보이는 찬합과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꽤 신경을 썼군.”
“오후께서 보내신 것인데, 어찌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까.”
주유는 대꾸 없이 천천히 음식들을 음미하고는 그 아래 적힌 글자를 보았다.
우제어(愚制漁)..
순간, 주유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어리석어 보일수록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겠지만, 그 또한 커다란 계획 중의 의도일 뿐이지. 마치 강태공의 낚시처럼 말이다.”
* * *
그날, 주유의 유폐가 결정되었다.
비록 증좌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주유가 검을 거꾸로 든다면 막을 수 있겠냐는 손권의 말에 아무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결국, 억지나 다름없는 손권의 악다구니에 노신들도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편, 조문단으로부터 손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등은 웃음을 지으며 감녕에게 말했다.
“주유가 떨어져 나갔으니, 이제 손가는 머리 없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두려울 것이 없다는 얘기이지요.”
진등의 흡족해하는 모습에 감녕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손가를 정벌하겠다는 말입니까?”
진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감 장군께서 일군을 이끌어 장강 일대를 휩쓸고, 태사 장군이 단양과 시상을 교두보 삼아 진군한다면, 양주는 순식간에 주공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감녕은 전쟁이라는 말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침 몸이 근질거렸는데,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수하 놈들이 피를 못 봐 미쳐 버릴 것 같다며 날뛰려는 것을 겨우 막았습니다.”
진등은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감녕을 보며 약간 당황하여 말했다.
“감 장군, 주공께서 겉보기에는 한없이 유해 보이시지만, 마냥 순한 분은 아니십니다. 하여 법을 어기는 자는 고하를 막론하고 처결하시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하, 알고 있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흥패가 유수 일대에서 조용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런 모습을 황조가 보았다면,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화통한 감녕의 말에 진등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나저나, 언제 군을 움직이면 되겠소?”
“태 사공과 같이 움직여야 하니, 아직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흐음?”
감녕은 또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약간 짜증을 드러냈다. 그러자 진등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장군 홀로 손가의 군을 상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형주의 강한 군선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쪽 역시 오랜…….”
“그 말인즉슨, 이 흥패가 손가 찌끄래기들을 상대로 질 것이라는 말이오?”
진등은 억지를 부리는 감녕의 태도에 약간 분노가 올라왔다.
“그것이 아니라 군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필요 없소! 내 직접 군을 이끌어 공을 세우면 진 도독은 어찌할 것이오?”
순간, 진등은 기어코 머리끝까지 열이 차올랐다. 하지만 괜히 성을 내 봤자 감녕을 자극할 뿐이기에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타이르듯 말을 꺼냈다.
“감 장군 혼자 운신하는 것보다는 태사 장군과 같이 움직여야 더욱 큰 공을 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장군이 강하다고 하여도 열 손을 상대하려면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공세를 가하는 이쪽의 수가 많아질수록 상대도 중요한 인물들을 내세우려 할 것입니다.”
감녕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등은 기회라는 듯 급히 말을 덧붙였다.
“적의 수군은 분명 단양을 고립시키기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진등은 지도 위에 붉은 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릉 일대에 적의 수군이 모여 있으니, 분명 도수를 건너 뒤를 노리려 할 것입니다.”
“흠, 그것은 어찌 막을 생각이오? 아무리 우리가 날고 기는 금범적이라고 하지만, 일이 그리된다면 결국 뒤를 잡히고 말 것이오.”
“물론 도수의 하류에서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여 수군이 들어오기 어렵게 장해물을 설치해 둘 요량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번 상태로 적을 격파하고 말릉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저들은 자연스럽게 고립될 것입니다.”
감녕은 진등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소. 그럼 아군의 손가 형제들은 어찌 쓸 생각이오?”
“선전용이나 항복을 권고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니, 아마도 배보다는 말을 더욱 많이 타게 될 것입니다.”
진등의 말에 감녕은 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물 위에서의 공을 모두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군, 좋아. 내 진 도독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겠네. 이번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다면, 내 분명 장강의 신으로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도 있겠어.”
“네? 장강의 신이라니,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진등의 제동에 감녕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직 진등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어찌 장군과 같은 사람이 장강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야 하겠습니까. 무릇 중원의 모든 강과 바다의 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전투를 통해 장강의 늙은 황조를 처리하고 바다로 나아가 이름을 떨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도 허무맹랑한 아부성 발언에 감녕은 감탄하며 진등을 껴안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내 참으로 부끄럽소. 도독께서 이리도 훌륭한 생각을 하고 계신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앞으로 도독의 말이라면 천 리 밖에서도 배를 타고 날아오겠소. 하하하하하!”
진등은 감녕의 너스레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감녕은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연회를 열겠다며 난리를 부려 댔다.
진등은 수춘후께 보고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겨우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 *
승태의 집무실은 여느 때와 같이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진등과 노숙, 제갈근, 제갈균, 서서, 화흠, 원유, 원환, 손분, 손보, 창희, 위월 등 가신이라 부를 만한 이들이 모두 모인 탓이었다.
그런 가운데 진등과 노숙이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유가 없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움직인단 말이오?”
“하지만 유폐를 당했을 뿐, 아직 완전히 배제된 것도 아니지 않소.”
진등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는 노숙의 주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리도 말리는 것이오?”
“난 옥에 갇혀 있는 주유의 눈을 보았소. 그럼에도 그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소.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작금의 상황은 분명 함정임이 틀림없소.”
“그건 그자가 일부러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겠소? 그래야 노 공 같은 분들이 겁을 집어먹고 아무것도 못 할 테니 말입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진등의 말에 노숙은 순간 욱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진등의 멱살을 틀어쥐려는 찰나, 두 사람 사이로 창희가 끼어들었다.
“주공께서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드잡이를 벌이려 하면 어떡합니까? 싸우시려면 주공이 오신 뒤에 하시지요. 그래야 저희도 욕을 안 먹지 않겠습니까.”
사실 두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면, 진등은 노숙에게 작신 얻어터졌을 것이다. 노숙은 장수라 해도 믿을 정도로 굳건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말 위에서 활을 쏴 표적을 맞힐 정도이니, 웬만한 병사보다 더 뛰어난 무력을 갖췄다 할 수 있었다.
시의적절한 개입에 노숙이 바라보자 창희는 티 없이 밝게 웃어 보였다. 그제야 자신이 지나쳤음을 깨달은 노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물러났다.
이어 창희가 고개를 돌려 진등을 바라보자, 진등 역시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마냥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수춘후께서 드십니다!”
문이 열리자 조운을 대동한 승태가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곧장 자신의 자리에 앉은 승태는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을 얼른 제지하고는 말을 꺼냈다.
“쓸데없는 격식은 빼고 빨리 이야기나 나누지. 이번 사절단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이 바로 손가를 칠 적기라 하던데,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승태의 말에 진등이 나서서 작전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내관이 이를 받아 전달하자, 승태는 대충 훑듯이 읽고는 물었다.
“흠, 예장을 굳이 얻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는가?”
승태의 물음에 노숙이 대신 나서서 입을 열었다.
“예장의 백성들은 이미 태사 장군이 여강 일대로 이주시킨 상태입니다. 하여 현재 그곳에 남은 것은 월족(越族)의 갈래거나 그들과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어차피 다스리기도 어렵고 세금도 내려 하지 않으니, 점령한다 하여도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주유의 군세도 아직 주둔하고 있으니, 괜히 시간과 병력만 낭비하는 꼴입니다.”
“하나 월족을 끌어들여 군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등이 끼어들며 의견을 내자, 노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해 주었다.
“월족은 단순히 뭉뚱그려서 판단할 수 없음을 잘 알아야 하네. 월족 내에서 수많은 부족과 그들 간의 은원이 존재하는데, 어찌 한데 묶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군의 특성상 그런 위험요소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논리정연한 노숙의 지적에 진등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월족에 대하여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 실책이 전략적인 구멍을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태사 장군에게 단양을 지키도록 하고, 감 장군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공격을 이끌도록 한다면 쉽게 강동을 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도 노숙이 나서 반대하였다.
“작금에 이르러 손권의 무도함으로 인해 많은 노신들이 분노하고 있으나, 아직은 칼을 거꾸로 쥘 정도는 아닙니다. 소신이 바라건대, 시간을 더 들이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승태는 타협의 여지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진등과 노숙의 주장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외정을 이끌어 가야 할 두 사람이 벌써부터 반목하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닌 탓이었다.
‘후우, 시작부터 골치가 아프네. 이걸 과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벌써 시름이 깊어지는 승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