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제갈량의 생각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그누도 아닌 바로 진규였다. 진규는 서주에 관한 일에서 손을 떼고 진궁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지금 가장 먼저 할 행동이 황조를 만나는 일이라는 것입니까?”
진궁의 물음에 진규는 가만히 차를 따라 주고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형주의 수군을 깔끔하게 두 쪽 내는 방법인데, 그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궁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물었다.
“알고는 있습니다. 하나 그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리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유비 곁에 있어야 할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그에 진규가 진등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주공께서 지금 걱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한 기재들이 형주에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일례로 사마휘라는 인물에게서 수학한 서 율령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요. 만약 서 율령보다 뛰어난 인물이 있다면 후일 분명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진궁은 차향을 맡다가 진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대리께서 준비한 인재는 어떤 인물들입니까? 유비에게 원한을 가진 자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유비 본인은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인물을 찾기는 어렵지. 대신 그의 곁에 있는 이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있어. 특히 관우가 협행을 하는 와중에 은원을 많이 쌓아 그를 노리는 이들이 많네.”
진규의 말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하기야 그 삼 형제는 오래전부터 유협의 길을 걸어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장비는 무능한 인물들을 극히 혐오하니,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장비나 유비는 딱히 원한을 깊이 가진 일을 한 적은 없네. 그저 이해할 만한 일을 한 것이지. 도리어 마을에서는 그들의 일을 높게 칭하니 누가 감히 원한을 말하겠나.”
“그럼 관우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저는 잘 믿기지 않는데요.”
“그러했지. 위협을 무릅쓰고 하동까지 들어간 상인들을 일부 유자(儒者)들의 이야기만 듣고 모조리 참살하였으니, 원한이 없을 수가 없지.”
관우의 옛이야기를 들은 진궁은 꽤 놀랐다는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진궁이 생각하는 관우는 용맹하고 공명정대한 인물인데, 그런 흉악한 일을 저질렀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관우가 유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런 까닭에 하동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니 말이네. 흐으음, 지난 이야기는 그 정도만 하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만 해도 산더미와 같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진궁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규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진궁은 예를 표하며 말했다.
“일이 진행되는 것도 확인되었고, 저는 이만 일어나 움직여 볼까 합니다.”
“흐음, 그런 것보다야 내가 서신 한 장을 쓰는 게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진규의 약한 도발에 진궁은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은 대리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다른 인물을 만날 것이라서 말입니다.”
“호오, 그게 누구인가?”
과거, 우길을 찾아 정치에 이용한 것이 서주의 진씨 일가이다. 아마 서주와 양주에서만큼은 진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진규가 가지지 못한 인맥이 진궁에게는 있는 것이었다.
“고 도독을 보고 올 것입니다.”
진궁의 말에 진규는 눈썹을 들썩이며 웃음을 지었다.
“흠, 과연 그 무서운 장수라면 서신 따위로 이야기하기에는 어렵긴 하겠군. 조심해서 다녀오게.”
진궁이 물러나자, 진규는 허연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동란의 영웅들이 모두 죽어야 새로운 천하를 열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는 이들이 모조리 사라져야지.”
진궁이 승태의 걸림돌로 유비를 떠올린 것과 달리 진규는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진규가 보기에 승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는 공자와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자로와 같은 이가 되어 승태의 길을 열어 주려 했다.
비록 자로는 폭력과 칼로서 공자에게 오는 비난을 막았으나, 진규의 생각은 달랐다.
“자로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돌만을 치웠을 뿐이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길을 만들지 못하지.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막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려야지.”
진규는 승태가 펼쳐 나갈 새 세상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될 세력으로 서주 진가를 떠올렸다. 그러자 순간 주체 못 할 희열이 피어올랐다.
순자(荀子)를 배출한 순가에 이어 자신의 가문에서 그러한 인물이 나온다면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진규는 희미하게 미소를 옆에 놓인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균형을 잃고 벌러덩 쓰러졌다.
“이런… 역시 나는 여기까지인가.”
진규는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앙상해져 뼈만 남은 것 같은 다리. 뿐만 아니라 의복 밖으로 튀어나온 팔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자신보다 몇 살 어린 진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며 건재를 보이고 있지만, 진규는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진규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낄수록 점점 과격하고 잔혹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 갔다.
* * *
완성에 도착한 진궁은 고순을 만나기 전에 이통을 먼저 마주했다. 진궁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가 직접 걸음을 한 것이었다
진궁의 앞에 머리를 조아린 이통이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진 노사, 그간 도독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궁은 다짜고짜 찾아와 말을 꺼내는 이통의 행동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흐음, 이야기를 들었다라……. 고 도독이 내 이야기를 많이 했소?”
“그렇사옵니다. 이전에 온후께서 진 노사의 이야기를 새겨들었더라면, 천하의 향방이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 하셨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이통의 아부에 진궁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통의 옆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데 옆에 있는 그것은 무엇이오?”
“이것은 소인이 노사께 드리는 자그마한 선물이옵니다.”
진궁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열어 보니, 꽤 괜찮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옥과 약재들이 가득 담긴 상자들을 다시 닫으며 물었다.
“뇌물인가?”
“어이쿠,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제가 노사께 청할 것이 무엇이 있다고 뇌물을 올리겠습니까? 그저 노사께 자그마한 전술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진궁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이통의 말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순의 휘하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새삼 고순도 크게 변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이통과 진궁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마침내 고순이 당도하였다.
고순은 진궁의 생각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욱 꼿꼿하고 강렬한 위세가 풍겨 그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병사들의 바짝 긴장해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고순은 진궁 앞에서 예를 표하며 말했다.
“노사,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 어찌 일군의 도독께서 일개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시는가.”
“일개 노인이라니요. 노사께서는 주공의 머리와 같은 이가 아니겠습니까. 그간에 쌓아 오신 공이 산과도 같은데, 어찌 일개 장수가 예의를 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궁은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고순의 태도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이통을 바라보았다.
“차를 좀 가져다주겠는가?”
“알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편히 말씀 나누십시오.”
이통은 진궁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진궁은 바로 물음을 던졌다.
“지금 신야는 어떠한가?”
“조용합니다. 그쪽에서 군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군의 움직임에만 대응할 뿐이었습니다.”
진궁은 고순의 말에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반응만 한다? 역시 유비의 목적은 근황이 아니라 형주를 집어삼키는 데 있는 거로군.’
만약 근황군을 준비하려고 했다면, 고순이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병사의 이동이나 징집 등의 행위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유비의 칼이 안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궁은 새삼 진규의 말을 상기하며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꽤나 거슬리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고순은 그저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진궁이 말을 꺼냈다.
“고 도독은 어찌 생각하는가?”
“소장은 오직 전장에서만 생각합니다. 주공께서 제게 이곳을 지키라 하였고,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 그저 완성을 지킬 뿐입니다.”
진궁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순은 어차피 이런 자였다.
“주공께서는 유비가 위험한 인물이라 생각하셨네. 그렇기에 유비를 몰락시킬 생각인데, 진 대리는 유비가 형주를 분열시킬 것이라 하더군.”
“그렇다면 형주를 공격하면 되겠습니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비록 어려운 전투가 되겠으나, 주공의 명이라면 마땅히 받들 것입니다.”
“그렇지. 자네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야. 하나 그랬다가는 도리어 유비의 지위를 공공히 만드는 셈이니. 주공께서 그런 명을 내리시지눈 않을 것이네.”
“그렇군요.”
고순의 무덤덤한 반응에 진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거참, 자네도 이제는 좀 농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리가 높아지면 가벼움도 필요한 법이네.”
고순은 잠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하여 그런 인물을 찾아서 휘하에 두었습니다.”
진궁은 조금 전의 이통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진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그런데 유비가 군략에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일 정도로 무너트린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
순간, 고순은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가 싶은 표정으로 진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궁이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는가, 내가 치매라도 걸린 것 같아 보이는가? 그럴 것 없어. 그저 한번 달리 생각해 본 것이니. 만약 우리가 채모와 손을 잡고 유비를 친다면, 과연 어찌 될지 말이야.”
“흠, 채모가 아무리 유비를 싫어한다고 하여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진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유비가 자신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 그렇겠지. 그러나 유비의 세력이 대등할 정도가 되어 버리면, 아니, 혹시 다리라도 물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면, 채모라 해도 달리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말과 함께 더없이 차가운 미소를 짓는 진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