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손자(孫子) 화공편(火攻編)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화공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을 태우는 것과 군수를 태우는 것이다. 아울러 화공을 일으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연소시킬 도구와 적당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적의 진영에서 화공이 성공하면 때를 맞춰 외부에서 공격을 하고, 바람에 따라 유려하게 전술을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감녕은 이러한 가르침을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동안 수적질을 하며 화공은 금기였다. 적의 배를 불태워 봐야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파촉의 촉군승일 당시, 감녕은 그 누구보다 병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그랬기에 숲이나 초지를 중심으로 번성한 이족들을 상대로 불이란 가장 손쉬운 공격 방법인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감녕이 전장을 물 위로 바꾸었다고 해서 화공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미와 누발의 배가 금릉의 부두로 들어가는 순간, 약속된 대로 크게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주변으로 옮겨붙더니, 이내 많은 배들이 화마에 휩싸였다.
감녕은 활활 타오르는 금릉의 부두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손가의 수군들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 순간, 감녕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형액진을 펼쳐라! 몽충은 앞으로 나아가 저들을 공격하고 누선은 엄호에 나서라!”
감녕의 명령에 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마침 손가의 군선들이 불타오르는 금릉의 항구에서 탈출하기 위해 부랴부랴 나오고 있었다.
“놈들은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모조리 부숴 버려라.”
“와!!”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큰 함성과 함께 전투에 돌입했다. 이내 수많은 화살들이 손가의 함선들을 향해 쏟아졌다.
이윽고 두 세력의 함선들이 가까워지자 갈고리가 달린 사다리가 쏘아져 손가의 누선에 틀어박혔다.
이어 몽충을 엄호하던 감녕 측 누선이 손가의 선박에 바짝 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결국 퇴로가 막혀 버린 손가의 누선들은 사다리를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수적들과 백병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대로 전장이 펼쳐지자 감녕은 사납게 웃음 지으며 수극을 한번 떨쳐 냈다. 그러자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금범적들은 빠르게 길을 터 주었고, 그 사이로 감녕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배들 사이에 걸쳐진 사다리를 가볍게 밟고 뛰어오른 감녕은 마침 자신을 노리는 병사의 머리를 걷어차며 갑판에 착지하였다.
그러고는 당황하는 병사의 목에 수극을 찔러 목숨을 끊은 뒤, 허리춤의 수극을 다시 꺼내 종횡무진 휘두르며 적진 속으로 달려 나갔다.
한발 늦게 도착한 청은 감녕의 뒤를 노리는 병사를 가볍게 해치운 뒤,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감녕을 챙기는 것은 호위인 청이 할 일이었으나, 문제는 그 대상인 감녕이 전혀 그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감녕이 제멋대로 날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청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잠시 후, 감녕의 부하들이 하나둘 배에 오르고, 요란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를 들은 손가 측 병사들은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러 댔다.
“감녕이다! 감녕이 나타났다!”
그 외침에 노련한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도망치고, 감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어리숙한 신병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 조무래기들이 배 위에서 싸우는 법에 익숙할 리 없고, 반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감녕을 상대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감녕이 마치 짚단을 베듯 병사들을 쓰러트리자, 두려움에 젖어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드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개중 몇몇은 무기를 버리고 구석에서 벌벌 떨기도 하였는데, 뒤따라 배에 오른 감녕의 부하들이 그런 병사들을 하나하나 죽여 버렸다.
잠시 후, 피 바다가 되어 버린 배 위에서 다른 누선들을 바라보며 감녕이 말했다.
“흠, 너무 쉬운데? 병사들이 너무 적기도 하고 말이야.”
그에 청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항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불길에 모조리 타 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감녕도 잠시 그런가 하며 생각을 해 보았지만, 이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강동의 지배자인 손가이다. 당연히 많은 인재가 주위에 포진해 있을 테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감녕은 풀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수극에 매달린 방울들을 톡톡, 건드렸다. 그렇게 타오르는 항구의 불길을 멍하니 쳐다보던 감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방울의 끈을 조여 매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심미와 누발을 찾아봐야겠군. 정말 이 정도로 망가진 손가라면, 우리 손만으로도 능히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홀딱 젖은 심미와 누발이 배 위로 올라왔다.
“뭐, 굳이 찾을 필요도 없겠군.”
하지만 심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감녕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대형, 도망쳐야 하오. 지금 당장!”
인상을 찌푸린 감녕은 더 묻지도 않은 채 청에게 말했다.
“들었지? 배 돌리라고 해라. 무슨 일인지는 움직이며 듣겠다.”
감녕이 자신이 타고 온 배로 향하자, 심미와 누발은 급히 그 뒤를 쫓았다. 그러는 사이, 청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에게 퇴각을 지시했다.
* * *
“무슨 일이냐?”
“죄다 허수아비였소. 놈들이 오히려 우리를 속인 것이란 말이오.”
이야기를 들은 감녕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잘 풀린다 생각했는데, 역시 얕볼 수 없는 놈들이군.”
“진 도독의 말에 따랐어야 하오.”
심미의 푸념에 누발도 동의하듯 말했다.
“수춘에서 주유가 실각당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급했소.”
감녕은 주먹을 꾸욱 쥐며 말했다.
“역시 이 모든 게 기만이었나. 어쩔 수 없지. 일단 부하들에게 손가의 배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빨리 움직이라 명해.”
“네, 대형.”
고개를 끄덕인 누발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사이, 심미는 피리를 불며 마치 곡예를 하듯 밧줄을 당기며 돛 위로 올라갔다.
혼자 남은 감녕은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아직… 그래, 아직은 괜찮다. 바람이 바뀌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전황은 감녕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무슨 일인지, 손가의 누선에 달라붙은 배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같이 침몰하고 있었다.
누발은 급히 대장선에 올라와 감녕에게 보고했다.
“선수가 기울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이 많았소. 우선은 모두 퇴각하라 명했으니, 빨리 갑시다.”
감녕은 고개를 끄덕이고 퇴각 나팔을 불었다. 그러자 이내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멀쩡한 몽충들이 누선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감녕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멀리서 손(孫) 자가 적힌 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질서정연하게 진형을 짠 가운데, 마치 성과 같이 거대한 누선이 위용을 자랑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그 배는 분명 대장선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감녕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어렵게 됐군. 다들 살아서 유수에서 보자.”
“알겠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누발은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 * *
“흠, 적병을 나에게 이르게 하려면 이익의 미끼로 유인하는 것이 병볍의 기본이다(能使敵人自至者, 利之也). 병사를 관리하지 못할 정도로 급히 나온 것이 보이는데, 어찌 아군의 허실(虛實)을 알아차리겠느냐. 자신을 숨겨 다가오니 형체가 없구나. 귀신같이 다가오니 알 수가 없구나. 고로 이런 것이 가능해야만 적의 생명을 주관할 수 있으리라(微乎微乎, 至於無形, 神乎神乎, 至於無聲, 故能爲敵之司命).”
“도독, 그것은 손자병법의 한 구절이구려.”
주유의 중얼거림을 마치 음미하듯 들은 손권이 감탄했다. 손무의 자손임을 주창하는 손가가 손자병법의 구절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에 고개를 돌린 주유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금의 상황에 참으로 잘 맞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렇지요.”
그 순간, 적의 진영에서 나팔 소리와 북 소리가 울리며 함선들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손권은 다급한 표정을 지었으나, 주유는 여전히 느긋한 움직임으로 부채를 살랑살랑 저으며 여유를 부렸다.
결국 보다 못한 손권이 물음을 던졌다.
“이곳에서 저들을 모조리 다 수장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주 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주유는 멀찍이 보이는 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들을 이끄는 이는 병법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입니다. 아마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는 살아 돌아가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흠, 그래 봐야 도독의 손바닥 위가 아니겠소? 이번 기회에 수춘후의 정예 수군들이 모조리 수장되었으니 말이오.”
주유는 손권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기실 주유가 바란 것은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승태의 모든 수군을 괴멸시키려 했는데, 태사자나 진등, 손가 두 형제의 병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감녕을 미끼로 쓴 것처럼 말이다.
‘진정 감녕을 미끼로 쓴 것이라면… 수춘후는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이란 말인가.’
감녕과 금범적이 겨우 미끼 정도라면, 승태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해야지.’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주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녕을 잡거나 죽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간의 죄를 물어 직접 처벌을 내려야 호족들이 분을 풀 테니 말입니다.”
손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아군의 가장 뛰어난 무인들을 모두 불러왔으니, 분명 감녕은 잡고도 남음이네. 그들은 이미 감녕의 대장선을 노려 움직이고 있을 것이네.”
주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권이 누구를 불러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권은 주태를 예상하고 있겠지만, 주유는 다른 인물을 떠올렸다.
그는 바로 하제였다. 그간 어떠한 도움도 없이 홀로 회계의 치안을 책임지고 수적들을 토벌한 인물. 도적 토벌의 스페셜리스트가 지금 출동한 것이었다.
* * *
하제는 감녕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명을 내렸다.
“동과 서를 걱정하지 말고, 집중할 것은 오로지 감녕이다. 나머지는 어차피 후방의 병사들이 맡아 줄 테니.”
하제의 설명에 주태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금범적 놈들의 대가리를 볼 수 있겠군.”
그 모습에 장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전황을 무시한 채 혼자 달려 나가지는 마라. 그러다가 애꿎은 병사들이 또 죽어 나가고 말 거라고. 저번에도 기병 다수가 쓸데없이 죽지 않았느냐.”
그러나 주태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흥, 어차피 감녕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다. 약한 놈들이 죽는 건 내 알 바 아니야.”
언제나와 같은 둘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