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이전의 예상대로 동습은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끌어모아 후퇴하기 위해 혼란 중에도 사방을 돌아다녔다. 혼란의 빠진 병사들을 직접 수습한 동습은 허망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린 군영을 바라보았다.
“으음, 내 잘못이다. 설마 적이 저런 병기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사실 이는 동습의 잘못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로서는 마땅히 대응하였으나, 상대가 워낙 좋지 못한 탓이었다.
군을 이끄는 능력으로는 인정받는 이전과 손책을 꺾어 본 적 있는 조랑, 커다란 믿음으로 그들을 후원하는 고람, 큰판을 짜 놓은 노숙의 능력이 한데 모여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마 차노 같은 병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동습에게 별다른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어떤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거기에 맞춰 찍어 눌렀을 테니. 그러한 사실을 동습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변명을 대지 않으면 스스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패배를 인정한 동습은 전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조랑은 슬쩍 웃음 지었다.
“도위, 빨리 쫓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부관이 다급하게 재촉하였으나, 동습은 그저 가볍게 부관의 머리를 한 번 툭, 치고는 말했다.
“사냥할 때도 도망갈 길은 열어 주고 쫓으라 했다. 특히 사냥감이 사나울수록 더욱 조심해야 다치지 않는 법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함정과 미끼를 쓰는 방법이지만 말이야.”
조랑은 한차례 턱을 쓰다듬더니, 때가 되었다는 듯 참마도를 쥐고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부관에게 물었다.
“그 노병들 머리는 아직 효수 안 되었지?”
“네, 그렇습니다. 예사 병사들은 아닌 듯 보여 직접 상신하기 위해 아직 함에 넣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부관의 말에 조랑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이리 가져와.”
부관은 그 즉시 명령을 내리자, 잠시 후 병사들이 커다란 함을 가져왔다. 조랑이 함을 열어 보니 자신의 추격을 막기 위해 나선 여덟 노인의 머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흠, 좋은 미끼란 감정을 흔들어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지.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조랑의 물음에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랑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렸으나, 너무 잔혹하게 느껴져 본능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랑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의 머리를 끈으로 묶어 창에 걸었다. 그런 후, 훌쩍 말에 올라탄 조랑은 병사들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먼저 가겠다.”
“도위, 그들을 쫓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자 덫이 되겠다는 것이다. 놈들이 걸음을 멈추고 내게 달려들려 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포위해라. 다시 말해 내가 함뢰(檻牢, 호랑이나 표범 등의 짐승을 덮어 잡는 나무 우리)가 될 터이니.”
조랑은 그 말을 끝내자마자 빠르게 말을 달려나갔다.
* * *
한편, 동습은 뒤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급히 발자국을 지우고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추격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병사들 역시도 동습을 따라 서둘러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들이 숨을 죽인 채 바라보는 사이, 창에 효시된 머리를 흔들며 털레털레 다가오는 조랑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도주를 막기 위해 나선 노병들의 수급임을 알아차린 동습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죽어서까지 이렇게 모욕을 주는 것은 천인공노할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랑은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 휘파람마저 불어 대고 있었다.
극한의 인내력을 발휘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겨우 참아 낸 동습은 손바닥이 붉게 물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으드드득!
그와 동시에 동습의 입에서 이가 부러져 나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동습은 뒤따라오는 월족 병사들이 없는 것을 보고 조랑의 뒤를 쫓으려 했으나, 병사들이 그를 막아섰다.
“장군, 자칫 잘못하다가는 적에게 잡힐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저들은 전주(前主)이신 오후를 따르던 수하들이었다. 절대 저런 치욕을 당해서는 안 되는 이들이란 말이다.”
병사들은 동습의 안타까운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기서 괜히 나섰다가는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동습의 의지는 굳건했다.
“내가 저들의 이목을 끌 테니, 너희들은 주군께 돌아가 확실하게 상황을 보고해라.”
“장군! 어찌 그런…….”
“됐다.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말고, 가랄 때 가란 말이다.”
“…….”
속내를 들킨 병사들은 부끄러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멀리서 조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의 병사들은 들어라! 우리에게 잡힌 포로들은 모두 살아 있다. 어차피 강동의 백성들 또한 같은 한의 백성이니, 너희가 끝까지 저항하지만 않는다면 기꺼이 받아 주기로 하셨다. 아, 물론 동습을 잡거나 목을 가져오는 이에게는 커다란 포상도 약속한다!”
동습은 조랑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말에 혹한 이들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내 인내심이 없어지기 전에 말이다.”
동습의 경고에 몇몇 병사들은 당황하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뒷걸음질로 물러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남은 병사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으나, 동습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물론 동습이라고 해서 그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괜히 손을 썼다가는 조랑에게 들킬 것은 빤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적에게 붙잡히는 꼴이 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자신 혼자뿐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이 자리에는 남은 병사들이 있었다.
“너희도 얼른 움직여라. 그래야 주군께 이 상황을 전할 것 아니냐.”
“장군, 하오나…….”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병사들을 향해 동습은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어허! 비록 나는 패전지장(敗戰之將)이 되었으나, 손가에는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니 걱정 말고 어서들 가라.”
“…장군.”
“그리고 공근에게 전하거라. 저들을 육전에서 이기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야전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말이다.”
“크흑! 알겠습니다, 장군. 반드시 명을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 것이며, 반드시 벽과 성을 가까이하고 싸워야 할 것임을 전해 주어라.”
“…네.”
병사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동습은 마치 유언인 것마냥 자신이 느낀 바를 계속 늘어놓았다.
“적은 멀리서 활을 쏘아 진형을 무너트리고, 그 틈을 통해 사납게 닥쳐드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 후, 마침내 할 말을 다 쏟아 낸 동습이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가거라.”
“장군!”
“나는 이미 소용을 다 했으니, 저자의 만행에 한바탕 꾸짖음을 내려주기라도 해야겠구나.”
말을 마친 동습은 자신의 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병사들을 흩어지게 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적에게 잡힐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병사들도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사들이 모두 사라지자, 동습은 큰 소리로 조랑을 불렀다.
“빌어먹을 월족 대장 놈아! 동습이 여기 있다!”
동습의 외침을 들은 조랑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돌려 모습을 드러낸 동습을 바라보았다.
동습은 이미 달아날 생각을 버렸는지, 한 자루 패도를 굳게 움켜쥔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조랑은 여덟 개의 머리가 매달린 창을 바닥에 꽂고는 찬찬히 동습의 모습을 살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하나, 손책이나 태사자에 견주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조랑은 이내 말에서 내려 동습에게 물었다.
“그대가 대장이오?”
“그래. 내가 바로 이번에 단양을 가져가려 했지. 네놈들 덕에 모든 것이 실패한 것 같지만 말이야.”
조랑은 죽을 것이 분명한 자리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는 동습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동습은 조랑이 누구인지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손견과 손책을 모욕한 인물이었다. 새삼 노화가 끓어오른 동습은 어느새 패도를 움켜쥐고 조랑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네놈이었군. 그렇다면 더는 말이 필요 없지. 이놈, 내 칼을 받아라!”
창을 바닥에 꽂아 놓은 뒤, 아직 빈손인 조랑은 갑작스러운 동습의 공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 창을 뽑아낸 뒤, 휘둘러 오는 칼을 막아 낼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동습에 대한 판단이 바뀌지는 않았다. 전장에서 비겁함이니 뭐니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니까.
조랑이 힘을 주어 창을 밀어내자, 매달려있던 머리통 몇 개가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동습은 재빠르게 바닥을 구르며 떨어진 수급을 챙겼다.
“흠, 빤히 들여다보이는 기습은 이것을 위해서였나? 그렇다면 말을 하지 그랬소?”
“흥, 우습게 보지 마라. 겸사겸사 네놈의 목도 떼어내려 한 것이니.”
“뭐? 우하하하! 그 용기가 가상하군. 좋아, 어디 한번 실력을 보지.”
조랑은 여전히 투지를 드러내는 동습의 말에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실력은 못 미치지만, 배포 하나만큼은 알아줄 만하다 여긴 것이다.
그 순간, 동습이 다시 달려들자, 조랑은 효수된 병사들이 머리가 묶인 창을 그대로 던졌다.
“그래. 그대가 원하던 것이니, 미련 없이 주지. 그러고 나서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고!”
조랑은 자신이 타고 온 말에게 다가가 참마도를 꺼내 들었다.
한편, 동습은 날아든 창을 피하고는 노병들의 수급을 챙기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조랑이 아니었다.
어차피 비겁을 논하기에는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셈이니, 조랑은 동습에게 달려들어 참마도를 휘둘렀다. 동습은 체면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닥을 굴러 겨우 몸을 피했다.
그 탓에 흙먼지가 풀풀 피어오르자, 조랑은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차피 도망가지도 못할 것인데, 그들의 수급을 챙겨 무엇 하려는 것이냐?”
하지만 비웃는 말과 달리, 조랑은 내심 동습의 의지에 감탄했다.
물론 동습도 이 자리에서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어차피 처음 목적이던 노병들의 수급을 챙겼으니, 이제 몸을 빼기만 하면 될 일.
동습이 주춤주춤 뒤를 살피는 모습에 조랑은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얻고 싶은 것을 얻으러 왔으면, 각오는 했어야지. 그러니 여기서 목을 내놔야 할 것이야.”
판단을 마친 조랑이 품에서 나팔을 꺼내 불자, 이내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동습은 눈을 부라리며 다시 조랑을 노려보았다.
“네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