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동습은 이미 포위망을 만들어 낸 월족의 움직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사방을 장악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랑은 참마도를 바닥에 꽂으며 당황하는 동습에게 말했다.
“설마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오.”
동습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질질 끌려 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동습의 유언과도 같은 정보를 말릉에 전달하려던 이들이었다.
반면, 동습의 목을 노린 이들은 얻어터진 병사들의 뒤에서 쭈삣쭈삣 서 있었다.
동습은 잠시 고개를 내려 자신이 챙긴 여덟 노병의 머리를 보았다. 그러고는 쓰게 웃으며 조랑에게 말했다.
“나와 저들이 살아날 방도는 있겠는가?”
조랑은 동습의 물음이 단순히 목숨을 구걸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들었기에 예의를 갖춰 운을 띄웠다.
“여기서 나를 쓰러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월족은 무투의 예를 숭상하니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양주의 진정한 주인께 머리만 숙이면 될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후의 자손들을 이끌고 수춘에 뿌리를 내린다면, 수춘후께서는 분명 공을 크게 쓸 것입니다.”
동습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조랑을 바라보았다. 손소는 이제 겨우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인데다 아무런 작위도 없는 상황이었다.
“진정 그러하겠는가?”
“이미 수춘에는 손가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조랑의 말에 동습은 손분과 손보를 떠올렸다.
“그렇군. 손가가 수춘후의 밑에 들어가 광영을 누릴 수도 있겠어.”
“그렇습니다. 수춘후께서 양주와 서주를 차지하고 원가를 무너트린다면, 그를 도운 이들은 모두 고귀한 이름을 청사에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해야겠어.”
동습은 양손에 쥔 노병들의 수급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빠르게 검을 들고 조랑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전주의 의지를 따를 뿐이다!”
이미 한 번 써먹은 방법이 두 번이나 먹히겠는가.
어느 정도 동습의 반응을 예상한 조랑은 빠르게 도끼를 꺼내 동습의 칼을 막아냈다. 하지만 워낙 필사의 각오가 담긴 일격이라 살짝 어깨를 베이며 옆으로 슬쩍 몸을 피했다.
동습이 다시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으나, 조랑 역시 이번에는 쉽게 당해 주지 않았다. 어느새 양손에 하나씩 도끼를 쥔 채 칼을 막아 냈다. 하지만 어깨의 상처 때문인지, 온전히 힘을 싣지 못해 결국 뒤로 나동그라졌다.
‘흠, 경시하는 생각은 버려야겠군. 더는 지킬 게 없다는 마음이 도리어 기존의 실력을 뛰어넘게 한 것인가.’
동습은 커다란 신체를 바탕으로 강력한 기세를 피워냈다. 이는 변화무쌍한 공격으로 휘몰아치는 조랑과는 상극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지만 말이야.’
한편, 잠시 득세한 동습은 친근하게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은가?”
그 모습은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달려들던 것과는 전혀 달랐지만, 조랑은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흠, 이 정도는 상처라 할 것도 없지요. 거듭 말하지만, 저는 소패왕도 물러나게 만든 사람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가 아니라 공의 무기가 실력을 따라 주지 못하는 것 같군요.”
그 말에 동습은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흠, 무장이 어찌 무기로 실력의 고하를 나누겠는가. 나로서는 이 도에 충분히 만족하네.”
그에 조랑은 도끼 하나를 역수로 쥐며 말했다.
“그럴까요? 뭐, 몇 번 더 합을 나눠 보면 아실 것입니다.”
마치 자신을 놀리는 듯한 조랑의 말투에 동습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조랑은 자신의 말을 마치 검증하기라도 하듯 집요하게 동습의 검을 노렸다.
“네놈이…….”
그러다 기어이 동습의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졸지에 무기를 잃어버린 동습은 주춤 멈춰 섰다.
하지만 조랑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도끼를 내려찍으며 동습의 오른팔을 날려 버렸다.
“크윽!”
동습은 짧게 신음성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무인이 무기와 팔을 잃었으니, 이제 그 효용 가치는 사라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동습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조금은 처연한 표정을 조랑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여기까지로군.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말씀해 보십시오.”
“내 목숨을 끝으로 병사들은 살려 줄 수 없겠는가? 그리고 저들도 예우를 갖춰 장사 지내주었으면 하고 말이야.”
“제가 그 말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이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 목에 비하면 저들의 가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네.”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는군요. 당신의 목도 그냥 베어 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동습은 너무도 당연한 조랑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렇게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자신의 목을 바치고 병사들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얼굴에 철판을 깔 각오가 있었다.
“내 목 하나면 자네의 목적은 충분히 이룰 텐데, 굳이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죽고 나면 오후를 따르던 장수는 몇 남지 않을 테니… 으음, 이젠 정말 끝인가 보군. 더 말하기 힘들어.”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동습은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랑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당신은 존중받을 만한 이임은 분명하지요. 좋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 드리지요.”
조랑의 말은 이미 의식을 잃은 동습에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동습의 얼굴에는 얕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동습은 마치 꿈을 꾸듯 입을 열었다.
“오주(吳主)께서 부르시니, 나 원세(元世, 동습의 자)는 군을 이끌고 나가기에 두려움이 없도다. 자, 어디 있느냐, 악적들이여. 나 원세가 왔음이다.”
하지만 곧 동습의 어조가 바뀌었다.
“아아아, 나의 주인이시여. 이 습이 주인의 명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도 어이하여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손책의 환상이 그의 눈에 어른거리는 듯싶었다. 동습은 갑자기 머리를 바닥에 처박더니,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런 동습의 귀로 마치 환청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끝까지 잘해 주었다. 역시 회계에서 얻은 나의 첫 번째 칼답구나. 내 등을 끝까지 지켜 주게.]“아아아아… 주인이시여! 이 습, 어디든 따르겠습니다!”
동습이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자 조랑은 놀라 도끼를 들어 올렸으나, 그게 끝이었다. 동습은 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조랑은 죽으면서까지 자신을 놀라게 만든 동습을 보며 감탄을 섞어 말했다.
“약속대로 병사들의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하나 말릉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잡힌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월족 병사 하나가 동습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자는 어떻게 합니까? 목만 베어 갑니까?”
조랑은 서서 죽음을 맞이한 동습을 잠시 바라보다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제법 괜찮은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목을 자른다면, 후일 저승에서 그를 무슨 염치로 보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무기는 어찌할까요?”
조랑은 수염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저자의 의기에 어울리는 칼을 구해 그와 함께 묻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 *
삼만이라는 숫자의 병사가 전멸한 것도 큰일이지만, 동습의 사망은 손가 지휘부에 큰 충격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 동습의 사망 소식을 듣지 못한 능조는 그를 구원하기 위해 병력을 조직하고 있었다.
원래는 손권이나 주유에게 먼저 고하고 군을 움직여야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적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 공묘(公苗 하제의 자)는 무엇이라 하더냐?”
“동습 장군을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주공께서 도수로 진군을 한 상황에서 자신마저 군을 움직이면 적의 도강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능통의 말에 능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제의 대답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무어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말에는 한 점 어긋남이 없구나. 허어, 그럼 이번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로구나. 의논할 자가 없으니, 참으로 어렵다.”
능통 역시도 가슴이 답답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기발한 책안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능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차라리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다. 원세(元世)였다면 꾀를 내 말릉을 구원할 방법을 찾았을 테니.”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이마를 치며 말했다.
“아! 아직 자형(子衡)이 석성에 있을 테니, 그에게 계책을 받아야겠다. 이전에 단양의 도적을 토벌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통아, 내 여 중랑장에게 보낼 죽간을 써 줄 터이니, 부디 우리를 도울 꾀를 내어 달라고 하여라.”
“예, 아버지.”
능조는 여범이 말릉을 구원하는 데 손을 보태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급히 서신을 써서 보냈다.
그러나 능통이 여범에게 들은 내용은 완전히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불허하오.”
“정로 중랑장, 어찌 그렇게 단호하게 말한단 말씀입니까?”
큰소리로 따지고 드는 능통의 모습에 여범은 바둑돌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 후, 옆에서 기보를 적고 있던 서관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윽고 둘만 남게 되자 여범은 한숨을 내쉬고는 지도의 말릉을 가리켰다.
“지금 말릉을 구원하러 가는 것보다는 석자강을 기준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네. 그런데 살아있을지도 모를 동 장군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자는 말인가?”
“하지만 동 장군은 손가를 위해 평생을…….”
여범은 손을 들어 능통의 말을 끊고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 그 손가를 다 없애 버리려는 생각인가 묻는 것이네.”
“네? 그것이 무슨…….”
“이미 동 장군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네. 그러니 말릉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보름? 한 달? 두 달? 아니, 저들이 먼저 문을 열고 항복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니 그런가?”
“중랑장…….”
“적이 북상하면 본인은 석자강에 진을 세워 막고, 거기서 다시 밀리면 석성과 금릉을 틀어막을 것을 건의할 생각이네. 그리되면 예장에서 단양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네. 즉,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이네.”
정확하게 핵심을 짚는 여범의 분석에 능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분명 작은 체구인데도 갑자기 자신보다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군을 모아 달려가고 싶네. 그러나 내게는 전주께서 맡긴 손가의 땅이 더욱 중요하네. 동 장군도 그리 생각할 것이고 말이야. 그러니 괜한 생각 말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라고 능가에게 돌아가 똑똑히 전하게.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