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능조는 능통이 보는 앞에서 여범이 써서 보낸 죽간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마구잡이로 밟아 댔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사나웠는지, 마루가 부서져 능조가 기우뚱 넘어질 뻔하기까지 하였다.
“빌어먹을, 뭐? 나더러 능가라고? 제 놈이 감히 날 능멸해?”
본시 여범은 친근함의 의미로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분노한 능조에게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었다.
“하긴 그놈은 애당초 귀한 가문만 가까이했지.”
능조는 여범이 대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강동의 거족과 귀족들임을 생각해 내고는 악담을 쏟아 냈다.
“우리 같은 미천한 놈들을 본시 인정하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사실 손책을 따르던 무장들 사이에는 두 가지 집단이 존재했다. 원술의 밑에 있을 때부터 손책을 따르던 이들과 이후 강동에서부터 유입된 이들로 말이다.
전자의 경우, 그래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집안의 사람들이 대다수이나, 후자는 보통 유협이거나 지역을 휘어잡은 무부(武夫)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황조를 상대하면서 하나로 뭉쳐야 하지만 오히려 손책의 암살 사건이 불거지면서 서로 간의 갈등이 더더욱 커졌다.
얼마 전, 주유의 죄를 묻는 사건에서도 오부인의 편에 서서 극렬하게 반대한 것도 여범과 같은 이들이고, 손권의 편에 선 것은 능조나 동습 등이었다.
원래는 노숙이나 우번, 화흠 등과 같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완화시켜야 했으나, 노숙과 우번은 승태의 휘하로 들어갔고, 우번은 아예 칩거해 버린 상황.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두 세력 간의 불화는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여범, 그 인간은 원래 원세(元世)가 상장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던 놈이니, 빤한 이야기이지. 자신이 상장 지위에 오르지 못하여 앙심을 품은 것이야.”
능조의 말에 능통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여범에게 딱히 악감정을 가지지 않은 능통이 보기에 너무 과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버지, 여 중랑장의 이야기도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만약 동 장군께서 패퇴하셨다면, 적군의 숫자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순간, 능조는 벼루를 집어 능통에게 던졌다. 능통은 본능적으로 피해냈으나, 당황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
“…아버지.”
“네놈은 지금 그걸 말이냐고 하느냐! 어찌 능가인 네가 여범과 같은 이를 대변할 수 있는단 말이냐!”
능통은 능조의 눈에 핏발이 맺혀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꽤 심각한 문제인 것을 깨달았다.
‘구신 간의 알력이 내 생각보다 깊은 것 같구나.’
“아버지,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전…….”
“어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되었으니, 너는 오군으로 돌아가 수련에나 정진하거라!”
“아버지!”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너는 잠자코 따르면 될 일이다.”
“…….”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능조의 태도에 능통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 *
승태는 자신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하는 감녕의 모습에 난감하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사실 감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책임 또한 일정 부분 있으니, 크게 책하기에는 내키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감녕은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빌 뿐이었다.
“소신, 흥패. 주공의 대계를 망친 죄를 청하고자 합니다.”
승태는 아무런 말 없이 감녕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망치는 와중에도 주태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유수구의 입구를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적의 진군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이들은 감녕을 벌해야 한다고 계속 떠들어 댔다. 아마도 이번 기회에 감녕을 찍어 눌러서 기를 죽여 놓을 의도임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하긴 이쪽은 무인들의 입김보다는 문관들이 대가 세니 말이야.’
원래는 과거 여포를 따르던 이들이 중심을 잡으며 무장들의 입지를 넓혀야 했으나, 고순이나 장료는 이미 각자 자리를 잡은 데다 위월은 세력 다툼 따위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밖에 조운은 원래 말이 없는 인물이고, 장합이나 고람은 기주인들의 난으로 인해 말을 꺼낼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모사들과 당당히 맞서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오롯이 감녕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
‘흠, 결국 감녕 하나만 잡으면 책상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겠네?’
이는 당연히 승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전쟁이 숫자 놀음이라고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장수의 능력에 따라 전세가 바뀌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책사들의 입김을 통해서만 군이 움직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 압도할 정도의 병력을 갖춘 것이 아니면 그런 상황은 지양해야지.’
이윽고 마음을 정한 승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흥패.”
승태의 부름에 감녕은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이내 다시 머리를 숙였다. 자칫 문관들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감녕의 수하들은 그 모습이 마뜩지 못했다. 아무리 승태의 지위가 높다고는 하나 월등히 나이도 많고, 관직에 출사한 시간도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으로 볼 때, 감녕을 가볍게 부르는 것은 자존심을 무너트리기에는 충분하였다.
하지만 감녕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꺼냈다.
“주공, 말씀하십쇼.”
“많은 이들이 자네를 벌하라 하는군.”
그 말에 감녕은 이를 앙다물었다. 여기서도 수적이라는 출신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승태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하나 나는 그대를 크게 벌할 생각이 없네. 그대의 잘못이라면 진 도독의 말을 듣지 않은 것 정도이겠지.”
“……!”
순간, 예기치 못한 전개에 책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용! 내 황조의 함선들을 훔쳐내고 수군을 양성한 감녕의 공을 무시할 생각이 없네. 그간 어찌 상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승태의 선언에 화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나 감녕의 독단으로 인하여 유수의 방비가 무너졌습니다. 이를 벌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그것은 내가 내린 자율권 내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네. 한데 그에 대한 죄를 묻겠다면, 나를 먼저 벌해야겠군. 그래, 어떤 죄로 벌하겠는가?”
따가운 질책에 화흠은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하지만 승태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또한, 퇴각하는 도중에도 공을 세운 이에게 어찌 벌을 내리겠는가. 감녕에게 벌을 내린다면, 누가 나서서 주유를 막겠는가?”
“그것은 손가 형제가…….”
“그들은 지금 소호에서 도수과 비수를 지키고 있네. 그런데 그들을 불러들이자? 그럼 혹 도수에서 적병이 나타나면 손을 놓고 당해야겠군.”
논리정연한 승태의 말에 이제는 누구도 감녕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승태의 생각을 눈치챈 노숙이 말했다.
“주공, 승패는 병가지상사이옵니다. 일군을 다스리는 이가 몸을 가볍게 놀린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의 배를 많이 침몰시키기고 적의 진로를 막았으니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생각하옵니다.”
승태는 자신의 뜻에 따르는 노숙의 주장에 웃음 띤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는군. 다들 어찌 생각하나?”
이제는 한결 느긋해진 승태가 의자에 몸을 기대자, 이번에는 유엽이 나서 말했다.
“맞사옵니다. 비록 과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날의 공이 굉장히 크니 벌하기보다는 기회를 주어 이를 만회할 수 있게 함이 옳사옵니다.”
“하나 이미 함선들이 거의 침몰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승태는 답을 바란다는 듯이 감녕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나서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감녕이 직접 나서서 저들을 설득해야 했다.
승태의 의도를 알아차린 감녕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물 위가 아니라 뭍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그러자 문관 하나가 나서 말했다.
“그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뭍에서는 아군이 훨씬 유리하니, 저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당연한…….”
승태는 말을 꺼낸 문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딱 보아도 출사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데, 아무리 자유로운 회의라 하여도 말석의 문관이 일군을 담당하는 감녕의 말에 딴지를 거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흠, 그럼 자네가 감 장군보다 군략을 잘 알고 있는가 보군?”
승태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젊은 문관에게 향하였다. 그러자 문관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이렇듯 승태가 방해꾼을 쳐 내자, 감녕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제가 유수구에서 한 것처럼 적을 막을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호, 세 군데나? 그곳이 어디인가?”
“유수의 중류와 동흥제, 그리고 소호구입니다.”
“그렇다면 적을 어떻게 뭍으로 나오게 만들 것인가?”
“일단 유수의 중류에는 요새뿐만 아니라 적을 진입을 막을 장치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방법인지는 몰라도 감녕이 이렇게 장담할 정도면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승태가 흡족한 듯 수염을 쓰다듬자, 좌중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내 그대에게 다시 기회를 내리면, 저들의 북상을 막을 수 있겠는가?”
“네. 병력 일만과 무예가 높은 이들을 지원해 주신다면, 능히 그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유의 군세가 적지는 않을 것이네. 그런데도 일만의 지원만 되면 충분하겠는가? 이전과 같이 실책을 저지르게 되면 더는 용서는 없을 것이네.”
“소신 또한 잘 알고 있으니,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윽고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를 한 번 믿어보지. 부디 지금의 다짐을 잊지 말게.”
“충!”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노숙과 유엽이 뒤를 따랐다. 이후, 모든 신하가 회장을 빠져나가자 그때껏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감녕이 숨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휴, 역시 둥지가 탄탄하니 좋구나.”
“응? 형님, 그것이 무슨 말이오? 솔직히 어린놈이 형님을 함부로 부르고 해서 난 영 맘에 안 드는구만.”
“맞습니다, 형님. 이런 대우를 받을 바에야 그냥 다른 곳으로…….”
“닥치거라!”
감녕의 호통에 불만을 늘어놓던 두 부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수춘후께서 나를 믿어 주셨는데 믿음으로 대하지는 못할망정 뒤에서 욕을 하다니, 그것은 아니 될 말이다.”
“하지만 형님, 그런다고 하여도 주유의 군세가 수만은 족히 넘는다고 합니다. 한데 어찌 막겠다는 것입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주유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해도 이 감녕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