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진등은 눈앞에 놓인 서신을 보며 한차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신중한 모습을 지켜보던 장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언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허허, 기다리던 기령에게서 서신이 왔으니 좋을 수밖에.”
순간, 장제는 곤혼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긁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기령이라는 자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본시 원가의 사람임에도 배신을 하여 내쳐졌고, 무엇보다 주공을 협박한 무리 중 한 사람 아닙니까?”
“그 말이 맞네. 그런데 자네는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야 수춘에서의 난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릴 정도입니다. 진 노사나 수춘의 어른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장제의 원망 섞인 한탄에 진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떠올려 봐야 무엇 하겠는가. 그보다는 지금의 일을 우선해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수춘에서 주공의 가솔들을 대상으로 협박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주공께서 그 사실을 아신다면 기령을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제의 지적에 진등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령이 필요한데, 그를 내친다는 것은 작전을 망쳐버리자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주공께서도 기령의 일을 알게 되면 이해하실 것이네. 게다가 지금 당장 그를 내쳐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주공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건 자네 뜻대로 하게. 만약 주공께서 이야기를 듣고 기령을 버리시겠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어차피 그 역시 지금은 일군을 이끄는 장수의 신분도 아니고, 그저 복수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싶어라 하는 무부(武夫)에 불과할 뿐인데.”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모든 일이 끝난 후 주공께 상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아마 주공께서도 기령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네.”
현재 기령은 수춘후가 아닌, 손가와 원가를 향해 원한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진등과 함께 손을 잡은 것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이용하는 셈이었다.
아무리 원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남양과 양주 일대에서만큼은 아직 원가의 영향력이 지대하였다.
그렇기에 진등은 원가의 세력을 조금이나마 견제하기 위해 원한이 있거나 적대적인 인물들을 하나둘 모으고 있었다.
물론 그들 또한 진등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다만, 원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진등의 진가가 유일하기에 손을 잡은 것이었다.
물론 서로 뜻이 맞았다고 해서 아무나 간자를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위세가 있지 않고서는 고급 정보를 얻는다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다 여일같이 적진 깊숙이 집어넣어 운용하는 능력은 하루 이틀 만에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장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등이 허술한 성격도 아니고,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이는 인물인데, 만약의 경우 또한 대비해놓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진등은 기령이 보낸 서신 내용에 대해 잠시 숙고하고는 장제에게 말했다.
“그런데 손권 말이야,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장제는 깜짝 놀라 진등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 어째서 말입니까?”
“아니, 뭐, 일부러 풀어주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죽지 않고 붙잡히면 이래저래 이용하기가 편할 것 같아서 말이야.”
장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진등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진등이 범한 실수는 손권과 주유의 거짓 연기로 인하여 손가와 강동에서 결전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정도였다.
그것 외에는 손가 내부 깊숙이 간자를 넣어 손권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러니 이번엔 또 어떤 수로 손권을 농락할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준비를 더 해 두자고. 손권이 이곳에 와서 눈치를 채면 안 되지 않겠는가. 이참에 기령도 불러들여 단단히 준비해야겠네. 어차피 물고기의 마음을 돌렸으니 말이야.”
* * *
이후, 진등의 계획대로 손권은 직접 군을 이끌고 투석기가 설치된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병사로 위장한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참살했다.
진등과 장제는 언덕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로 나팔을 불며 기습에 나섰다.
하지만 손권은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는 저항은 충분히 예상한 범위 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색이 손가의 인물이 이 정도 기습에 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방패를 들어 적의 활을 막아라! 어차피 원하는 바는 모두 이루어졌으니, 천천히 진형을 유지하며 물러난다!”
그 말과 동시에 손권의 주변으로 부곡들이 달려와 날아드는 화살을 모조리 막아 냈다. 개중에 몇몇 병사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살에 맞아 쓰러졌지만, 이내 다른 병사들이 빈틈을 메웠다.
일사불란한 병사들의 움직임에 손권은 약간 뿌듯함을 느꼈다.
‘이 정도라면 형님이 주 도독에게 남긴 손가병에 못지않다. 전장에서 능히 일백 명을 상대할 강병들이로다!’
손권이 병사들과 함께 물러나려 하자, 진등은 차노를 이용하여 방진을 박살 내려 했다. 그러나 습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시위의 탄력이 떨어졌다.
결국, 힘없이 날아간 노는 치명상을 입히기는커녕 적에게 닿지도 못하고 중간에 떨어져 버렸다.
“하하하! 보았느냐! 하늘이 나를 도우시는구나! 병사들은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여일이 함선을 근방에 대 놓았을 것이다!”
손권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노의 사정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즈음, 십여 명의 병사들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선두에는 삼첨도를 들고 있는 기령이 자리해 있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한 손권의 호위 송겸이 외쳤다.
“길을 비켜라! 네놈들이 감히 길을 막을 분이 아니시다!”
송겸의 눈에 비친 무리는 그저 용병이나 도적 집단에 불과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령을 비롯한 모두가 제대로 된 갑주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누구인가. 범과 같은 무용을 바탕으로 손권의 호위가 된 자신이 저런 거렁뱅이 같은 이들에게 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송겸은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대장으로 보이는 이를 베어 저들을 물러가게 할 마음을 품었다. 혹시라도 저들로 인하여 발목이 잡힌다면, 다시금 화살 세례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놈, 나를 원망치는 말거라! 나는 분명 경고를 했음이다!”
송겸은 기령의 가슴을 노리며 힘껏 창을 내질렀다. 그러는 동안 기령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송겸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거적이 살짝 들추어지며 기령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니, 기령이 아닌가! 이자가 어찌 이곳에? 수춘의 난이 벌어졌을 때 죽은 것이 아니었나?’
일순 당황한 송겸이지만, 그래도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이내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송겸의 창이 심장을 뚫으려는 찰나, 기령이 몸을 낮췄다. 그러자 창은 허무하게 허공을 찔렀고, 당황한 송겸이 급히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기령의 삼첨도가 사납게 휘둘러졌다.
위기를 느낀 송겸은 급히 몸을 돌려 창을 빼내려 했으나, 삼첨도에 걸린 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기령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크헉!”
갑주가 보호하지 못하는 목을 얻어맞은 송겸은 거친 비명성을 토해 내며 연심 가쁜 숨을 쏟아 냈다.
하지만 기령은 전혀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금 삼첨도를 휘둘러 왔다.
‘큭, 이러다 죽고 말겠다. 제발 누가 좀…….’
송겸이 몸을 제대로 추스르기도 전에 날아든 삼첨도는 반드시 목숨을 끊어 놓겠다는 듯 보였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판단한 송겸이 질끈 눈을 감은 순간, 등당이 끼어들어 기령의 삼첨도를 막아 냈다.
물론 등당의 실력으로 기령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송겸을 구해 낼 수는 있었다.
그렇게 겨우 목숨을 구한 송겸은 급히 뒤로 물러나 등당과 함께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령도 달려들지 않았다.
통증이 느껴지는 목을 한 차례 문지른 송겸은 인상을 쓰며 말을 꺼냈다.
“기령, 그대가 어째서 수춘후를 위해서 일하는가!”
그러나 기령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기령이 다시 달려들자, 송겸은 급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한 병사가 월아극을 던져 주었다. 비로소 자신의 애병을 손에 든 송겸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을 띠었다.
그러고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말을 뱉어냈다.
“흥,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이번에도 기령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송겸에 앞서 날아든 등당의 공격을 가볍게 쳐 내고는 삼첨도를 휘둘러 등당의 목을 노렸다.
그러자 바로 송겸이 달려들어 삼첨도를 막아 내고, 그사이 다시 등당이 검을 찔러 넣었다.
기령은 손목과 팔에 두른 금속 아대를 이용해 검을 가볍게 비껴 냈다. 그러고는 등당의 명치를 걷어찼다.
등당이 뒤로 나동그라지며 물러나자, 기령은 기세를 타고 송겸의 머리를 향해 삼첨도를 휘두르려 했으나, 이미 송겸은 뒤로 물러난 뒤였다.
“흥! 네놈들이 합격한다고 해서 나를 당해 낼 성싶더냐! 유비의 의형제나 여포 휘하의 맹장이 아니고서야 나를 어쩌지는 못한다. 즉, 어찌 되든 네놈들은 여기서 죽을 거라는 말이지.”
광오하기 짝이 없는 기령의 말에 송겸과 등당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냥 흘러 넘길 수도 없는 것이, 등 뒤로 진등의 병력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혹 적 사이에서 기병이라도 튀어나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송겸이 어떻게든 말을 꺼내려 할 때, 기령의 입이 먼저 열렸다.
“흥, 주공을 버린 손가의 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닥치고 있어라! 내 직접 손가를 절단 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때, 멀리서 손권이 패검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자신의 호위인 송겸과 등당이 쉬이 기령을 쓰러트리지 못하자 매우 어려운 상대임을 눈치챘다.
하여 자신이 손을 보태 얼른 쓰러트리고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전투에 끼어든 것이었다.
손권 본인도 무예에 나름대로 소질이 있으므로 딱히 나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단견(短見)이었다.
손권이 싸움에 개입한 순간, 양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송겸과 등당은 기령을 공격하는 것보다 손권의 안위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동시에 복수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느낀 기령의 눈은 그야말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