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
삼국지 : 미완의 군주 1화
조승태가 죽음을 맞이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눈앞에는 이상한 광
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호위병들과 함께 길을 터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성문에 다다랐을 때, 그 뒤로 추격대가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거구의 인물이 말에서 내려 자신의 말을 들어 추격병들을 향
해 던져 버렸다. 날아온 말로 인해 쓰러지거나 서로 뒤엉켜 낙마했다.
그 탓에 다른 추격병들이 잠시 주춤거리자, 거구의 인물이 성문으로 달려왔다.
“명공, 제가 성문을 열겠습니다!”
성문을 밀어내는 동안 승태는 호위병들과 함께 그가 화살에 맞지 않도록 방패
로 감쌌다.
투두두두두둑!
방패에 빼곡할 정도로 화살이 틀어박혔지만, 전부 다 막지는 못했는지 화살
몇몇이 거구의 등에 꽂혔다.
“전위!”
거구의 인물, 전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곧바로 명공이
라 불린 이가 타고 있는 말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 탓에 말은 화들짝
놀라며 빠른 속도로 문을 빠져나갔고, 그 뒤를 따라 호위병들이 따라 나갔다.
전위는 승태를 말 위에 태우며 말했다.
“명공을 꼭 지켜 주십시오, 공자. 스승으로서 참으로 즐거웠소이다.”
그 순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장면이 변했다. 승태는 어느새 명공을 멀리 보내면서
외치고 있었다.
“명공,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어깨에 박혔지만, 고통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아무리 삼국지를 좋아하고, 난양이 완 근처라고는 해도··· 이건 좀 무리수
아닌가?’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엄청난 충격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아악!”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큰 통증에 승태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고통
이 느껴진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푸드덕.
그의 손짓에 배를 쪼아 먹으려던 까마귀들이 날아갔다. 아직 멍한 기분의 승
태는 바닥에 손을 더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를 울리는 이명과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 탓에
승태는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며 정신을 차렸다. 이내 이명이 사라지고
초점이 돌아오자, 주변의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뭐지? 지옥인가? 으윽······.”
문득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손을 짚었다. 그런데 복부를 쓰다듬던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그 물건을 꺼내 유심히 바라보았다. ‘조치(曹治) 안민(安民)’이라고 적
힌, 꽤 두꺼운 옥패에 흠이 나 있었다.
“조안민······.”
그 이름을 중얼거리자, 흐릿하던 머릿속이 갑자기 말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 주변의 장소가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저 울긋불긋한 색깔로만 보이던 주변
이 뚜렷하게 구분되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시체.
시체로 산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그가 올라서 있었다.
“으아아아!”
시체들이 멀쩡하면 그래도 공포가 덜했겠지만, 대다수가 어디 한 부분이 덜렁
거리며 무엇인가 흘러나오거나 잘린 단면들이 보였다. 그의 눈에 그 모든 참
상이 들어오는 순간, 턱밑까지 무엇인가 올라왔다.
“으으으으······.”
입을 꾹 막은 승태가 버둥거리면서 시체의 산에서 벗어나 근처에 나무가 보이
는 곳으로 향했다. 넘어져 굴러가는 것인지, 아니면 기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허겁지겁 시체의 산에서 내려온 승태는 나무에 기대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그는 자리를 일어나기 위해 바닥에 팔을 짚은 순간,
시체를 뜯어먹는,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것과 눈을 마주쳤다.
승태는 그 눈을 보자마자 두려움을 느끼며 빠르게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
다. 그의 시야에 시체에 꽂힌 창이 들어왔다. 승태는 조금 전에 두려워 굴러
떨어지듯 도망친 시체의 산에 다시 달려가 끙끙거리며 창을 뽑으려 했다.
“제발! 제발 좀 뽑혀라!”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에 박혀 있던 창이 갑자기 뽑혀 나왔고, 그걸 잡고 있
던 승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급하게 창을 겨누었지만, 늑대는 그
저 고개를 들어 그를 쓱 보고 나서는 다시금 시체에 고개를 박았다.
승태는 늑대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리를 벗어나기 위
해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뭐야? 진짜 삼국지 시대로 온 거야? 아니··· 아니지. 내가 조안민이면 죽어
야 했는데,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럼 도대체 이 미친
상황은 뭐야?’
한참을 뛰어가자 멀리서 진흙과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강변이 보이기 시작했
다. 그와 동시에 웬 병사들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승태는 재빨리 갈대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분명히 중국어이지만, 승태에는
마치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다.
“다른 놈들은 술 먹고 있을 텐데······.”
병사 두 명이 투덜거리면서 다가왔다. 한 명은 확인 사살을 위해 시체에다 창
을 대충 쿡쿡 찔러 보고, 또 다른 한 명은 떨어진 화살촉이나 화살들을 주웠다.
“그러니까 빨리 화살이나 주워서 가자.”
“아니, 무슨 이 나이에 화살 수거냐.”
“젊은 놈들은 다 조조 놈 추격하러 갔는데, 어쩌겠냐.”
“어휴, 내가 젊어서 동상국 밑에 있을 때는··· 워! 저저! 느, 늑대!”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병사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들개 같은데, 뭘 그리 놀라나?”
“야! 넌 그래도 옹 땅 근처에 살아서 한 번도 늑대한테 습격당한 적 없지? 어
휴, 늑대는 말이야······.”
괜히 말이 길어지자 보다 못한 옆에 병사가 쇠뇌로 늑대를 조준한 뒤에 쏴 버
렸다. 늑대는 단번에 쓰러졌고, 병사가 다가와 칼로 찔러 확인 사살까지 했다.
그러고는 화살을 들개의 몸에서 빼내 통에 담았다. 그의 행동에 약간 겁먹은
병사는 말없이 바닥에 있는 화살들을 줍기 시작했다.
승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숨을 꾹 참으며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는 듯하자, 승태는 머리와 몸을 진흙 바닥에 박고 죽은
척을 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른 상황은 살필 겨를도 없
었다.
철퍽.
진흙 바닥에 급하게 몸을 숨기느라 소리가 나 버린 것이었다. 석궁을 들고 있
는 병사가 그 소리를 듣고 승태가 누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젠장! 젠장! 제발, 제발··· 제발 돌아가라, 돌아가!’
승태의 기도가 먹힌 것일까.
“어이, 석 씨! 장군께서 돌아오셨대! 십장(什長)이 그 정도만 하고 돌아오라
고 하네!”
그런데도 병사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여전히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
을 보고 말만 많던 다른 병사가 소리를 질렀다.
“화살을 주워 오랬더니, 왜 쇠뇌를 강에 겨누나? 멀쩡한 화살을 이상한 데다
낭비하면 분명 경을 치르게 될 거야!”
“쯧, 알았네!”
인상을 찌푸린 병사는 그제야 몸을 돌려 수풀에서 나갔다.
잠시 후, 승태는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강 근처로 향했다.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다란 장대로 대충 물의 깊이와 거리, 유속을 파악한 그는 몸을 강에 담그며
천천히 나아갔다. 핏물들이 씻겨 내려가자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수영장에서와 달리 헤엄을 쳐 강을 건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
었다. 몸이 차가워지고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 낚시하는 이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그쪽을 향해 천
천히 나아갔다.
승태가 낚시꾼들의 찌 근처로 다가갔을 때,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다행히 승태가 들킨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張)’ 자 깃을 높이 든 기마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친······.’
승태는 괜한 일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물속
에 몸을 담근 채 지나갔다.
***
성이 대충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승태는 안심하고 발을 땅에 디딜 수 있
었다. 그는 갈대숲에서 기어 나와 눈앞에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았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마음을 다잡은 승태는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떠올렸다.
‘기억. 조안민의 기억이 필요해.’
승태는 머리를 나무에 두들기며 기억들을 되짚었다.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지금 처한 상황이 대충 인지되었다. 사실 인지라기보다
는 그저 3인칭 게임을 하듯 자각몽과 비슷하게 느낌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거지같은 상황이네······.”
저 멀리 관도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어떻게든 장수군과 부딪치지 않고 우금이 있을 무음까지 가야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무음의 위치를 알지도 못하는데, 괜히 관도
로 다니다가 장수군이라도 만나면 말짱 꽝인 상황이었다.
“노답이네······.”
승태는 볼을 긁으면서 관도 끝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장수군이 처음 나타난 게 저쪽이었으니까··· 반대쪽으로 관도를 따라
가면 될 것 같긴 한데······.”
승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폈다.
“일단 가 보자. 기억이야 가면서 정리하면 될 거고······.”
승태는 애꿎은 나무뿌리에 창을 꽂으면서 말했다.
“어떤 소설에서는 뭐··· 쉽게, 쉽게 집 안에서 일어나고 그러는데, 나는 이게
뭐야?”
승태는 숲에 숨어 대로를 바라보며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다르게 장수군의 추격이나 그 외의 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수군이라고 해 봐야 가끔 다니는 파발들의 움직임이 전부고, 그들은 숲속에
서 몰래 움직이는 승태를 볼 겨를도 없었으니 말이다. 아마 봤다고 하더라도
그저 전장에서 도망친 패잔병 정도라 여기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병사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소식을 빨리 전달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금방 무음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아무런 방해 없이 계속 관도를 바라보며 움직이던 승태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되어서야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아··· 엄마가 끓여 준 백숙 칼국수 먹고 싶다······.”
승태에게 갑자기 슬픔이 몰아닥쳤다. 역사 동아리 내에서도 냉혹한 비평과 피
말리는 불평 던지기 때문에 고든 램지 등으로 불리며 유명하던 승태인데, 그
런 그가 불평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걸은 이유는 하나였다.
말을 꺼내는 순간, 무너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겨우 백숙이라는 그 말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엇인가 속에서 부
서지는 것만 같았다. 승태는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그는 너무도 무서웠다.
“······차라리 죽을까?”
몇 분을 소리 없이 울던 승태의 눈에 문득 손에 들린 창이 들어왔다.
홀로 세상에 버려졌다는 슬픔과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자살이
라는 극단적인 충동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창끝이 목젖에 닿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손이 부들거리면서 떨렸다. 숨은 가쁘게 차오르고, 머릿속에서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아픔이나 여러 고통보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직은 더 컸다. 승태
는 마치 두려움을 숨기려 변명하듯 자신을 타이르듯이 혼잣말을 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절대로 끝까지 살아남을 거야.”
승태가 꼭 끌어안은 창은 모든 위협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처럼 느껴
졌다. 그렇게 마음이 놓이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승태는 주변의 마른 나뭇잎을 모아 덮은 채 수마의 한가운데로 조심스럽게 발
을 내디뎠다.
***
“으으으······.”
승태의 손이 핸드폰을 찾듯 주변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손에 잡힌 것은 따듯
한 이불이 아닌, 가볍기 짝이 없는 나뭇잎이었다.
그 생소한 느낌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흐려지고, 입에서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와··· 진짜였네! 흐흐흐, 진짜였어.”
솔직히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란 승태로서는 사방에 펼쳐진 푸른 숲이 혐오감
을 불러일으켰다.
고층 빌딩들과 별이 안 보일 만큼 밝은 밤하늘이 이렇게 그리운 적은 처음이
었다. 주변의 숲을 온통 태워 버리고 싶은 충동에 승태는 피식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랬다간 나도 타 죽겠지.”
엉뚱한 생각을 접고 걸음을 옮기던 승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주저앉았다.
꼬르륵.
이런저런 일로 경황이 없던 승태의 위장도 일을 시작한 듯 큰 소리로 그에게
밥을 내놓으라 외치고 있었다.
승태는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인상을 썼다. 기운이 빠진 몸은 한 번에 일어나
지 못하고 두 번 정도 다리를 헛짚고 나서야 겨우 운신할 수 있었다.
“배고파서 그런가··· 힘이 하나도 없네.”
허기를 깨닫자 이내 다른 것들에도 하나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지독한 땀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범벅이 되어 버린 옷.
한시라도 빨리 몸을 씻어 그 불쾌한 기분을 떨쳐 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던 승태는 문득 잔치국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자 잠시 잊은 허기가 다시 미친 듯이 몰려왔다.
“이런 상황에도 잘도 배가 고프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잡는 와중에 승태는 눈앞으로 토끼 몇 마리가 뛰어가
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팡이 삼던 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멀리 떨어진 관도와 토끼가 달
려간 숲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하지만 배고픔에 눈이 먼 승태는 아주 짧은 고
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설마 길을 잃어버리겠어?”
사냥을 만만하게 여긴 승태는 주저 없이 숲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