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0
삼국지 : 미완의 군주 19화
장비의 큰소리에 승태가 예를 취했다. 이에 장비는 일어나려고 행동하려는 순
간, 관우가 먼저 큰소리를 내며 말했다.
“갈! 예를 갖추라 하지 않았느냐? 태수께서 비싼 차까지 내왔는데, 너는 무슨
말을 하려느냐!”
장비가 입을 벌렸다가, 이내 어휴 한숨만 내뱉었다. 그 후, 장비는 승태를 바
라보며 예를 취하고 굉장히 위협적인 웃음을 지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태. 수. 나. 리, 반. 갑. 습. 니. 다. 별. 부. 사. 마 장. 익. 덕. 이. 오.”
관우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예를 취하며 말했다.
“병부사마 관운장이오.”
“소인 소패 태수 조승태입니다. 높으신 명성을 가지신 장군님들에게 무례를
했습니다. 제가 바로 일어나 예를 표해야 했는데, 오랜 수성으로 많이 피곤하
여 예를 표하지 못했습니다.”
관우는 손사래를 저으며 말했다.
“되었소. 그대의 이야기는 병사들에게 들으니 그럴 만하더구려.”
“혜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비는 둘의 이야기에 두드러기가 나는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툭 하
니 던졌다.
“태수, 우리가 이리 도와주었는데, 뭐 없소?”
장비의 말에 관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승태는 유들거리는 표정으로 말
했다.
“죄송합니다. 이미 제 곳간도 털어서 수성에 쓴지라 태수부에 남은 곡식이라
고는 닷새 정도 분량이고, 금은도 딱히 없습니다. 혹 필요하시면 제가 한번
구해 보겠습니다.”
장비가 부루퉁한 표정을 짓자, 관우가 웃으며 답했다.
“태수, 되었소. 그저 의제가 심통이 나서 그런 것이니, 앉아 수성 이야기나
합시다.”
승태는 관우의 말에 쪼르르 달려가 마련된 상에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비도 전투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었는지, 투덜거리다가 이따금 귀를 쫑긋거
렸다. 그러더니 반기를 든 이들의 처분을 내리는 것을 듣자, 장비는 감탄하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자, 승태가 조심히 물었다.
“제가 성내에서 난을 일으킨 이들의 집에서 좋은 술을 좀 챙겼는데, 드시겠습
니까?”
술 이야기에 장비가 입맛을 다시자, 관우가 나섰다.
“아니네. 압류된 물건인데 쉬이 뺄 수 없지 않은가?”
“아닙니다. 이런 영웅들을 뵙는데 어찌 술이 빠지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재
산 중 중요한 것만 적었으니, 술 정도는 괜찮습니다.”
장비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관우를 말리며 말했다.
“형님, 태수가 부탁하지 않습니까?”
관우는 그를 바라봤지만, 이미 술에 대한 생각에 이전의 말은 잊은 지 오래였
다. 거기다 패국에 있을 때는 금전적인 여유가 좋지 않아 싼 술만 먹다 보니
아예 눈이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장비는 승태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무슨 술인가?”
“제가 술을 잘 몰라서··· 한 번 드시고 알려 주시죠.”
그는 방긋 웃으며 승태의 등을 쳤다.
“이거 샌님이구먼, 샌님. 잠자······.”
“익덕아.”
관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자, 장비는 ‘흡’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막았
다. 그 모습에 승태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나가 술을 가져오겠습니다.”
장비는 갑자기 관우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태수, 내 같이 가지. 혹시 아는가? 원술의 자객이 있을 수도 있음이야. 같이
가지.”
“아닙니다. 저를 지킬 만큼의 무예는 하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리고 여긴
제 저택인데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승태는 후다닥 문을 향해 움직여 조심스레 문을 닫으려 하자, 장비는 마치 애
인이 떠나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승태는 무슨 상황인지 알기 어려우니, 그
저 술이 급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빨리 움직였다.
그 자리에 남은 장비는 승태가 돌아오기까지 관우에게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
장비와 관우가 출발한 지 하루 뒤에 출발한 하후돈은 승태가 술판을 벌일 때
소패성에 도착했다. 꽤 멀쩡한 소패성을 본 하후돈은 수염을 쓸어 넘기며 한
호에게 물었다.
“원사(元嗣, 한호의 자),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하후돈의 부장인 한호는 주변을 쓱 쓸어 보며 답했다.
“태수의 수완이 대단해 보입니다. 전쟁 상황에서도 큰 혼란이 없는 것 같으
니, 둘 중 하나이겠지요.”
한호의 말에 하후돈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호에게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재미있나? 아만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많이 때렸
는데, 자네도 좀 맞아 볼 텐가? 내 옆에서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 왜 그래?
아니면 둔전 일로 좀 떨어져서 감이 떨어졌나?”
한호는 껄껄 웃으며 손가락을 두 개 펴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수도의 선비들을 아리송한 말들을 좋아하니 말입니다. 제
가 하고자 하는 말은 태수가 두렵거나, 모두가 깊이 따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잉? 그 애가? 둘 다 아닌 거 같은데? 무서운 건 좀 불가능할 것 같고, 머리
로 제압하는 것도··· 의뭉스러운 놈이긴 한데, 그것도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놈이고··· 깊이 따르는 것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겠는가?”
“뭐, 명공과 여장군의 후광을 입고 있으니, 두려울 만하지 않겠습니까?”
한호의 말에 하후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서주 사람들에게는 아만이 좀 그래. 중강(仲康, 허저의 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 그냥 뭐··· 딱히 걱정 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하후돈은 허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사람을 좀 끌어 본 놈이 답이 그게 무언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답하는 허저를 본 하후돈은 포기했다는 손짓을 지으
며 걸었다.
현청 근처에 도착하자 진군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승태는 어디 가고, 바쁜 진공조가 나오는가?”
진군의 표정이 약간 떨떠름해 보였지만, 하후돈은 애써 무시했다.
“태수는 자택에서 유 예주가 보내신 장군들과 연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후돈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진군을 바라보았다.
“전후처리도 안 하고 연회? 승태의 집이 어딘가?”
“현청에 접객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여독을 좀 푸시지요. 내일 등청할 것이
니, 그때 만나시면 될 겁니다.”
진군이 지난번 일로 앙금이 남아 약간 기어오르는 듯한 말을 꺼내자, 하후돈
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원래 호인이던 표정은 사라지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뀐 채로 물었다.
“공조, 일 잘하는 것은 아는데, 그렇게 해서야 어디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좋게 좋게 가지. 승태와 관공과 장공이 어디 있는가?”
진군은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그들을 안내했다.
저택에 도착한 하후돈은 안에서 담장을 넘어서까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인상
을 찡그리며 물었다.
“악사들도 부른 건가? 허, 돈은 어디서 나서 저러는 거지? 여포가 지참금을
많이 준 것도 아니던데.”
진군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하후돈은 진군을 보지도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용이 알아보고 예를 표했으나, 하후돈은 신경을 쓰지도 않
고 성큼성큼 승태가 연회를 벌인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땅히 스스로 강해지는 사나이 대장부(我是男兒當自強). 늠름한 걸음
으로 가슴을 펴고 모두의 기둥으로서 멋진 사나이가 되리라(昻步挺胸大家作棟
樑 做好漢).”
승태가 춤을 추며 남아당자강을 부르고 있었고, 장비는 그의 곁에서 마치 대
단하다는 듯이 술을 마시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건전한 술자리였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에 하후돈는 멍하니 주
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여인을 그린 여인도와 소박한 음식들이 보였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
진군은 초조한 상태로 하후돈이 들어간 객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동안 하후돈이 나오지 않자 진군이 오용에게 물었다.
“혹시 안에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오용은 턱을 긁었다.
“딱히 큰소리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한 소리는 들리긴 했지만요.”
진군은 하후돈이 데려온 허저를 보았다. 그는 시비들이 내온 음식들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결국, 진군은 몰래 객실로 향했다. 그는 잠시 진군을 바라보았
다가 이내 자신의 앞의 찬을 집었다.
진군이 객실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뭔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었
다. 때리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렸고 말이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듯한데, 시운이 불리하여 오
추마조차 달리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해야겠는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장비는 손가락을 뻗고 승태를 가리키며 스읍 하며 말했다.
“어쩌긴! 달려가서 다 박살 내야지! 엉!”
하후돈과 관우가 잠시 시끄러운 장비를 보았으나, 승태의 담화에 다시 집중했
다. 잠시 후, 우희의 자결 장면을 연출하려다가 밖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진군
을 보며 말했다.
“이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요, 태수! 이제 마지막인데!”
“밖에 공조가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듯싶습니다. 나중에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니다, 조카야! 공조는 나를 따라온 것이지, 일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전후처리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어야 할 텐데, 여기서 내일 중무(重務)
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오늘 잠시 들어 두어야죠. 진 공조가 이런 일에는 앞뒤
를 안 가리는 인물이라 죄송합니다.”
장비가 으아 소리를 지르며 드러누워 버렸고, 관우와 하후돈도 문에 빼꼼 머
리를 내밀고 있는 진군을 바라보았다. 진군은 어리둥절했지만, 승태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승태는 진군을 붙잡고 객실에서 멀리 나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숨에 붙
어 있는 술 냄새 때문에 진군은 코를 잡으며 한발 물러났다. 승태는 머리를
흔들거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공조. 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말이 둔해진 것을 보니, 많이도 드신 것 같습니다. 온후(溫候)와 드실 때는
그리 잘 드시더니, 이번에는 약한 것 같고··· 종을 잡을 수 없습니다.”
“저분들 술을 마시는 순번이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어휴.”
진군은 승태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고 승태를 부축했다. 그가 자주 진군을 볼
때 이용하는 서재로 들어갔고,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 그는 제 자리에 누워
말했다.
“도저히 일어나 있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려울 것이 있습니까? 이해합니다.”
“저분들에게 소패의 군량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해두었습니다. 해 봐야 닷새?
그 정도라 했습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술이 들어가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네요.”
“아직 여기 와 있는 군을 모두 먹이면서 달포는 버틸 것 같은데, 어찌하여 그
리하셨습니까?”
“바로 원술을 공격하는 데 사용될 것이니 그렇습니다.”
진군은 약간 의문을 가진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사용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원술을 멸하고 한조(漢朝)의 기치를.”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아프네요. 한조의 기치, 중요하지요. 그 후에 우리가 놓일 상황이 문
제입니다.”
“예?”
“대충은 짐작 가지 않습니까? 아니, 짐작이 아니라 광릉 태수께서 보낸 인물
이시니 알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군요. 온후라 불리시는 장인어른을 어떻게
할지 정하고자 함이 아닙니까?”
진군은 이마를 긁으며 승태를 쳐다보았다.
“뭐,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천하의 안정입니다. 온후건, 사공이건, 대장군(원소)이건 간에 말입니다.”
승태는 처연히 웃으며 말했다.
“공조께서는 그중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백부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군요.”
“예, 폐하를······.”
“협천자(挾天子)하고 제후를 호령하여 다시 평화를 이룰 것이다, 라는 말이겠
지요. 맞는 말일 겁니다, 맞는 말. 푸우우··· 하지만 제 상황도 생각해 주세요.”
승태는 그대로 고꾸라지듯 잠이 들었고, 진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
진군은 시비를 불러 승태를 침실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그러고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채로 마당에 나왔다. 마당에
는 장비와 관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비가 붉어진 얼굴로 나와 진군에게 친한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진 공조, 잠시 우리와 이야기 좀 합시다. 내가 태수를 잘못 생각하여 이리저
리 사고 친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싶고 말이요.”
그 말에 진군은 예를 표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태수께서 시킨 일이 있어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비가 뭐라 하려는 순간, 관우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시오, 공조. 내, 빨리 움직이지 못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장군. 그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진군이 그 자리를 떠나가자, 장비는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술을 좀 더 먹이면 태수도 뭔가 털어놨을 것 같은데, 맹하후도 그렇고, 진
공조도 그렇고. 아후.”
그러자 관우는 장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다. 그만하면 되었어. 아마 술을 더 먹였어도 딱히 뭔가를 내놓지는 않
았을 것 같구나. 태수가 취한 척을 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취한 척을 했다고요? 영 아니던데.”
“우리와 어울려 놀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그의 눈이 우리의 표
정 하나하나 집중하며 그때마다 노는 것을 바꾸지 않았느냐.”
장비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관우는 그의 저 모습이 진
짜 모르겠다는 것보다는 약간 다른 것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소패 태수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알지 않았
느냐. 그 정도면 충분하다.”
“형님이 저를 칭찬하다니, 이거 다시 볼 일입니다.”
관우는 들뜬 장비를 두고 먼저 현청 밖으로 향했다. 장비는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