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주유는 유수의 요새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승태를 직접 대면하고 보니, 요새에서 적을 몰아낼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녕처럼 공적이나 명성을 탐하는 인물이 아니기에 어설픈 도발이나 수작 따위는 먹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뿐인가.
비록 병력의 질에는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문제는 이를 유지할 보급이다. 만약 적이 말릉을 격파하고 금릉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추가적인 보급이 이루어지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즉, 유수구 일대에 마련한 물품만 가지고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민호(民戶)를 장강 이남으로 이주시켜 세수를 확보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 후, 강동을 넘어 형주, 양주를 집어삼키면, 천하의 패자들과도 능히 자웅을 겨루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하남과 하북이 자중지란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우리의 힘으로도 천하를 노려 볼 만하다.
그랬기에 주유는 손권의 참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자신의 안위를 챙기고 이득을 따질 줄 아는 인물이라면 괜한 짓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손권이 솔선수범해서 전장에 나서게 함으로써 손책이 바란 대업을 이어 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손권 또한 그 뜻을 이해하고 따르려 했다. 무언가 다른 기색이 언뜻 보이기는 하였으나, 주유는 별것 아니라 치부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실책이었다.
현재 벌어진 상황은 최악의 결과로, 주유가 구상한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손가의 업보로 인하여 이 모든 것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유로서는 그저 수춘후의 지략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손가가 지닌 인재와 저력을 감안하면, 강동을 휘어잡는 정도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여겼다. 아니, 오히려 음흉한 속내를 가진 손권이라면 손책보다 더 안정적으로 강동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손권은 자신의 영욕을 채우기 위해 경솔하게 움직였고, 그 결과가 작금에 펼쳐진 상황이었다.
결국 손권의 공백으로 인해 강동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곳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아 분란이 발생할 것은 자명했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주유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어떻게 해서든 수춘후를 사로잡거나 막심한 피해를 입혀 거래를 끌어내야만 했다.
그랬기에 지금 주유의 머릿속에서는 무수한 방법들이 떠올랐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하였다. 별동대를 이용하여 수춘후를 포획하는 경우도 떠올려 보았으나,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인재가 없다니, 이 모든 게 나의 불찰이로다.’
물론 성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단지 성문만 넘는 일이라면 내부의 숨은 사간(死間)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 수춘후의 막사까지 적의 저지를 뚫고 나아갈 맹장이 필요한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그럴 수 있는 맹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 여포를 상대한, 내로라하는 맹장들은 이미 모두 죽음의 강을 건넜으며, 남은 소수의 이들 역시 손권을 호위하기 위해 이곳에는 남아 있지 못했다.
결국 그나마 주유가 운용할 수 있는 맹장은 주태가 유일했으나, 주태 역시 감녕에게 큰 부상을 입어 운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삼 냉혹한 현실을 자각한 주유가 곁에 있는 장흠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부관으로서 충분한 역할은 하고 있지만, 홀로 나아가 전황을 바꿀 무예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손가의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구나. 그 많던 무장들이 이제는 찾아보기도 어렵다니.’
물론 손가의 후예들 중 무예가 뛰어난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들은 혹여나 있을 일을 대비하여 오와 회계 등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엇이 되든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 * *
요새 위에 오른 승태는 멀리 보이는 주유의 군막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누선들이 뭍 위로 올라오는 모습에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 누선이 크니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군.”
승태의 뒤에 서 있던 감녕은 누선들의 움직임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불편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승태가 내뱉는 말이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주유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면, 지금 보이는 모습처럼 느긋하게 상륙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감녕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주공, 제가 저들을 습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쇼. 적이 쉬이 이곳에 닿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녕의 요구에 승태는 유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유엽은 승태가 이전에 한 이야기를 곱씹는 중이라 미처 감녕의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랬기에 승태가 갑자기 자신에게 묻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유엽은 황급히 예를 표하며 말했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알 테니, 충분히 득이 클 것이옵니다.”
유엽이 찬동하자,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녕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괴롭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말입니다.”
승태의 말에 감녕은 예를 표하고 빠르게 요새 아래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운이 승태에게 물었다.
“그냥 저렇게 보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보아도 과한 욕심을 부리려 하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턱을 쓰다듬으며 조운을 돌아보았다.
“글쎄요. 만약 이번에도 심각한 실책을 보인다면…… 흐으음, 글쎄요. 스스로 알아서 책임을 질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말입니다.”
냉정함이 느껴지는 승태의 말에 조운과 유엽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유엽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동안 조단을 가르치며 승태와도 자주 봐 왔지만, 이런 모습은 생경했다. 그저 호인(好人)처럼만 느껴지던 승태가 냉혹한 권력자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사실 승태가 드러낸 감정은 분노와는 전혀 달랐다. 단지 감녕에 대한 무심함이지만, 그조차도 유엽에게는 다르게 느껴진 것이었다.
‘하긴, 저러한 강철과 같은 심장이 없었다면 어찌 여기까지 왔겠는가.’
유엽이 자신만의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승태가 멀리 보이는 누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방책을 좀 더 높여야겠습니다. 누선의 선고가 생각보다 높군요. 저 정도면 바로 사다리만 놓아도 넘어올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 말에 유엽은 바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한편, 요새 아래로 뛰어 내려간 감녕은 서둘러 자신의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일백 정도의 인원이 몰려들었다.
감녕 곁에 있던 심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 보아도 금범적 중에서도 힘깨나 쓰는 놈들이라 눈을 흘기며 감녕에게 물었다.
“형님, 어디를 기습할 예정이오? 얘네들 정도면 적진 한가운데 던져 놔도 어렵지 않게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오?”
감녕은 묵묵히 심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적의 본진을 칠 거다. 주유의 빌어먹을 누선들이 저렇게 서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잘못 때문이 아니겠냐. 사내라면 응당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러자 누발이 한숨을 내쉬며 감녕에게 물었다.
“대형, 진짜요? 주유 놈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리는 없고, 분명 엄청나게 대비를 하고 있을 텐데, 고작 이 정도 숫자로만 간다는 것은 진짜 반쯤은 죽자는 것 아니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놈들이 요새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방해하면 되니까. 뭐, 기회를 봐서 누선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전히 대책 없는 감녕의 말에 심미와 누발, 청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떻게든 누선을 박살 내겠다는 생각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형님, 이번에 무리하다 실패하면 진짜 수춘후가 우리를 버릴 수도 있음이오. 그러니 제발 자중 좀 합시다.”
순간, 싸늘하기 그지없던 승태의 얼굴을 떠올린 감녕은 순식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받은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이내 수긍한 감녕은 병사들을 가볍게 무장하도록 지시하고는 군마들을 챙겼다. 그런 후, 야음을 틈타 요새 밖으로 나왔다.
* * *
감녕을 비롯한 금범적들은 며칠 동안 그저 주변을 빙빙 돌며 기회를 엿보았다. 주유가 세운 둔진의 경비가 굉장히 삼엄한데다 외부에 정찰대를 돌리기에 쉽게 기습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주유의 병사들도 설마 적이 공격해 올 거로 생각지 못하고 누선을 뭍으로 끌어 올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방심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감녕은 쏟아지는 비로 인해 시야가 제한된 틈을 타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긴장해라! 순식간에 원하는 바를 얻고 돌아간다!”
감녕은 그대로 말을 내달려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 와중에 보여 주는 감녕의 무예는 가히 일품이었다.
팔뚝만 한 극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며 병사들의 머리를 베고 찌르기를 거듭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뿌려 대는 수극은 순식간에 주변 병사들을 쓰러트렸다.
그로 인해 감녕이 지나간 길에는 그저 시체와 피만 가득했다.
모처럼 자신의 무위를 뽐낸 감녕은 마치 흉신(凶神)이 된 것마냥 한껏 웃음을 지었다. 시뻘건 피가 가득한 그의 얼굴은 차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였다.
감녕 휘하의 금범적 역시도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고작 일백여 명에 불과한 숫자이지만, 이들 역시 고르고 고른 정예. 무엇보다도 이런 전투에 너무도 익숙했다.
감녕을 비롯한 금범적들의 사나운 기세에 주유의 병사들은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무력하게 쓰러져 갔다. 그럴수록 금범적들은 기세가 올라 마치 곡예를 부리듯 살육을 펼쳐 나갔다.
그들의 짧은 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핏빛의 선이 그어지며 병사들이 쓰러졌다.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 줄 수 있는지 잘 아는 금범적들은 더욱 잔인하게 살육을 자행해 나갔다.
그에 죽음을 맞이하는 병사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이들마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위축되었다. 심지어 무기를 던지고 도망가는 이들 또한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병사의 허벅지에 극을 꽂아 넣은 감녕은 눈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기 위해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러자 피가 번지며 마치 흉신악살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감녕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한층 가까워진 누선을 바라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어. 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