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말이라는 것은 신기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 잘못 내뱉어 언제나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현실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가끔 ‘손님이 없네’라든가, ‘끝났나’ 같은 말을 하면 여지없이 그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고는 하니까.
그랬기에 지금 내뱉은 감녕의 한마디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어. 엉?”
태연스런 그런 말을 꺼내는 감녕을 바라보는 심미와 누발, 청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형, 그런 말을 꺼내면 꼭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굳이 그래야 하오?”
“뭐, 어때서 그러느냐. 주유가 제아무리 용맹한 손가병을 데리고 있다고 한들 우리 금범적만 하겠느냐.”
여전히 태평스러운 감녕의 반응에 누발은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고 턱을 긁으며 말했다.
“형남사군에서나 동탁 토벌할 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손가병의 무예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 같은데, 대형은 그리 생각하지 않소? 아무리 우리가 손가병과 맞붙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대충 이야기만 들어 보면 견적이 나오지 않소.”
걱정 가득한 누발의 말에 심미도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대형, 그건 맞소. 솔직히 강남 사람이 말을 탄 서북 놈들 상대로 연전연승했다고 알려진 건 손가의 병사들뿐이었소. 그런 놈들이 혹여나 우리를 노린다? 어휴, 말도 마시오.”
손가병에 대한 이야기는 강남에서는 거의 전설이나 다름없을 정도이기에 금범적 중에도 대한 묘한 두려움을 가진 자가 많았다. 물론 직접 붙어 본 적이 없어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소문만으로 몸을 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부하들의 모습에 감녕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두려움을 품으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몸이 굳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녕은 더욱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했다.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손견이 손가병을 이끌었을 때야 네놈들 말대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온후(여포)께서 단신으로 손가병을 상대한 적도 있지 않으냐. 당시 손가병들이 손도 못 쓰고 족족 죽어 나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감녕의 호언장담에 금범적들은 다시금 태세를 정비하였다.
“그리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 자리에는 손가병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손가의 무장들에다 손책까지도 나섰는데 쓸려 나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뭐가 그리도 두려워?”
“그건 그렇소만, 상대가 온후이지 않소. 수춘후의 장인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온후는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사람이오. 몇 기의 기마만으로 흑산적을 쓸어버리셨으니, 가히 무신이라 할 만하지 않소.”
그러자 감녕이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라고. 물론 우리도 온후는 아니지만, 손견과 손책을 따르던 부곡들이 이제 얼마나 남아 있겠느냐? 새로운 인원을 뽑았다고 해 봐야, 어? 매번 실전에서 살아온 우리보다 대단하겠느냐?”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려. 하긴 그런 손가병이 있다 해도 주유 곁에 딱 붙어서 호위나 하고 있겠지, 설마 우리와 싸울 일은 없겠소.”
“그래. 싸워도 엉 과거와 다를 거고, 싸울 가능성도 적고, 우리는 그저 고만고만한 애들이나 상대하면 될 일이라는 거다. 알겠냐?”
감녕의 설탕 발린 말에 금범적들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순찰 나올 주유의 병사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금범적들 앞에는 시체들이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감녕은 복귀하는 순찰병들까지 모조리 찾아내 죽였다. 물론 고문을 하여 내부의 정보까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쉽게 순찰 둔영 안까지 들어섰지만, 이러한 둔영이 몇 개는 더 있다는 이야기와 내부에는 손가병들이 항시 움직일 수 있게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고심을 하는 중이었다.
“대형, 이 정도면 충분히 면피할 정도는 하였소. 어차피 우리가 저들의 누선을 모조리 불태우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고, 적의 시선을 끌고 훼방을 놓으려는 것 아니었소.”
그러나 감녕의 생각은 달랐다. 적의 시선을 끌어 누선이 진입하는 것을 늦추거나 멈추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바닥에 귀를 대어 진동을 느껴 보면 누선이 옮기는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차라리 밝은 날에 움직일 걸 그랬다.”
감녕의 말에 심미는 그 뜻을 이해하고는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이곳에 불을 지르면 어떻겠소? 그럼 어느 정도 시선을 끌 수 있을 터인데.”
감녕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심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좋은 방법이다. 역시 내 부하다워!”
난데없는 칭찬에 심미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감녕은 썩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 *
서쪽에 위치한 순찰 둔영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주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직 아무런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습격해 온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거기다 안개까지 짙게 깔렸으니, 함정일 가능성이 컸다.
“음, 소수의 병력만으로 적진을 흔들 수 있다면 이러한 방법도 나쁘진 않지.”
주유의 눈에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이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적병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니, 혹시나 누선을 옮기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만약 누선에 문제가 발생하면 단순히 요새를 공격하는 데 지장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다. 퇴로가 막히는 셈이라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장흠이 나서 말했다.
“도독, 제가 손가병들을 이끌고 나가 적을 물리치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주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서쪽의 순찰 둔영들을 확인한 후에 보고를 올리세요. 습격한 자들을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그다음에 그들을 처리하든 돌아오든 하십시오.”
“당연한 이야기이옵니다. 어찌 제가 경솔히 움직이겠습니까.”
장흠이 깊이 새기듯 고개를 숙여 보이자, 주유가 덧붙여 말하였다.
“이제 손가병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겨우 일백 남짓이 전부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손가병들이 양성되어 명맥을 이어 나가겠지만, 당장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손가병의 대를 끊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을 받은 장흠이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보니, 주태가 붕대를 감은 채 서 있었다. 장흠은 약간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겠는가?”
“월족과 싸우던 때는 이보다 더하였네. 걱정하지 말게. 충분히 싸울 만하니 말이야.”
장흠은 주태의 온몸을 감은 붕대들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정상적이 몰골이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는가? 내 아무리 보아도 아직 싸울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리고 그곳에 정말 그놈이 있을지 어떻게 알고 말이야.”
주태는 거듭 만류하는 장흠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이내 장흠의 어깨를 꾹 움켜쥐며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피가 차 붉게 보이는 주태의 눈동자를 확인한 장흠은 침통한 심정을 애써 속으로 삼켰다.
‘마치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구나.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내가 말린다고 한들 분명 듣지 않을 것인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뒤를 지켜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겠지’
장흠이 고심하던 그때, 주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게. 충분하지 않는가?”
“그래, 충분하군, 충분해. 적병들이 보면 자네의 힘에 덜덜 떨 것이야.”
그제야 주태의 입에 웃음이 지어지며 말했다.
“놈이 왜 그곳에 있을 것인지 물었지? 내 느껴지네. 그놈은 나랑 똑같은 족속이거든.”
확신이 담긴 주태의 말에 장흠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주유와 여몽.
머리를 비우고 가슴으로만 생각하는 주태.
모두가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장흠은 복수에 불타는 주태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자들이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친 것인가? 어찌 이토록 인간적인 면모를 보기 어렵단 말인가.’
장흠의 푸념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였다. 사실 인간미가 있는 이들은 버티기 어려운 난세이니 말이다.
* * *
감녕이 이끄는 금범적들은 세 개의 감시 초소에 시체의 산을 만들고 주변 모든 것을 불태웠다. 개중 몇몇은 약간 꺼리며 싫어하였지만, 감녕의 단호한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불타는 초소를 바라보며 감녕이 읊조리듯 말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저들이 분노해서 쫓아올 것 아니냐.”
그 말에 심미는 눈을 감고 합장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분노… 당연히 많이 할 거요.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우리 업보도 많이 쌓여 두려울 지경이오.”
감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심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심미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미 우리가 도적질하면서 그 업보인가 뭔가 하는 것은 엄청 쌓였을 것이다. 나쁜 짓 하면 그, 되돌아온다는 것 아니냐. 이놈이 이상한 책을 어디서 얻더니, 사람이 이상해졌구나. 그게 아니면 네놈 옆에 붙어 다니는 그 빡빡머리 놈 때문에 그런 것이냐?”
심미는 손을 내저으며 감녕의 말에 반대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오. 하담이라는 자를 만나고 나서 내 느끼는 것이 많아져 공부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감녕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다 사기꾼들이 하는 이야기이지. 대체 무슨 놈의 내세(來世)를 위해 불공을 드린답시고 돈을 가져다 바쳐? 그 누구냐, 착융 놈도 그것을 믿었다고 하던데, 우리보다 더한 악행을 그렇게 많이 저지른 놈인데, 네놈은 느끼는 바도 없느냐?”
하지만 심미가 아무 대꾸 없이 고개 숙인 채 불경을 읊자, 감녕을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흥,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그리하느냐?”
“대형은 업보가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하여 두렵지도 않소?”
“내 그 업보라는 말 한 번만 더 쓰면 주둥아리만 잘라서 묻어 버리려니까, 조용히 하여라. 꼭 안 좋은 소리를 이런 데다가 붙여서 마치 일어날 것처럼 말하느냐? 그리고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있느냐? 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 빼고는 말이야.”
감녕은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 귀를 댔다. 바닥에서 꽤 큰 울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이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의 불질을 보았나 보군. 다들 준비해라. 놈들의 병사들이 오는구나! 잘하면 우리가 손가병을 꺾을 기회가 올 수도 있음이다!”
감녕의 호탕한 외침에 금범적들은 몸을 풀며 무기를 다잡았다.
“누발에게 전해라. 적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내가 땅의 진동을 느끼기로는 분명 말 같았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병사가 빠르게 누발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자, 감녕은 극이 아닌 도를 꺼내었다.
“분명 내가 생각하기에는 손가병들이 올 거 같단 말이야. 아니, 이 정도까지 했는데 손가병들이 안 오면 섭섭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