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감녕은 물과 같이 부드럽게 흐르던 상대의 흐름이 무너진 것을 알아차렸다. 손가병은 더 이상 주태를 보조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손발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두 명의 손가병이 저마다 방위를 장악하여 감녕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를 못했다. 그랬기에 주태는 그저 빠르고 강한 공격을 할 줄 아는 인물에 불과해졌다.
감녕은 주태의 공격을 피한 후에 손가병의 손에 들린 방패를 걷어차 넘어트렸다. 하지만 주태는 손가병을 구할 생각도 못 하고 제 살기에 급급했다.
그 틈을 타 감녕은 쓰러진 손가병의 목을 짧은 도로 그어 버렸다. 순간, 시뻘건 피 분수가 솟구치며 손가병은 감녕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놔라. 곱게 죽고 싶다면 말이다.”
그러나 손가병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비록 기력이 다해 말은 못 하지만, 이것으로 자신의 몫은 해냈다는 의미가 담긴 웃음이었다.
그 순간, 주태가 살벌하게 칼을 휘둘러 왔다.
“이런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그런다고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감녕은 가볍게 허리를 틀어 주태의 공격을 피해 냈고, 목표를 잃어버린 칼은 오히려 감녕의 발목을 잡고 있던 팔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손가병은 어깨가 떨어져 나가며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 모습을 감녕이 살짝 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고맙군. 내 수고를 덜어 줘서 말이야.”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태는 더는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러 대더니, 눈이 더욱 붉어졌다. 그 모습을 감녕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음, 굳이 더 놀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태는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대상은 감녕이 아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손가병의 등 위로 새빨간 한 줄기 혈선이 그어진 것이다.
“결국 이리될 줄 알았다. 네놈은 후유증이 그저 금단 현상 정도로 생각했나 본데, 그 약을 판 놈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을 정도야. 어떻게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도 안 해 준 것인지.”
감녕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와중에도 주태는 여전히 피에 취한 것처럼 마구잡이로 대도를 휘둘러 댔다. 이번에도 그 상대는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손가병들이었다.
도를 도갑에 집어넣은 감녕은 잠시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깨달은 듯 말을 꺼냈다.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감녕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 * *
잠시 후, 감녕이 떠나고 없는 이곳에 도착한 장흠은 주태의 모습에 당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유평! 지금 뭘 하는 겐가!”
장흠이 다가가려 하자, 손가병 중 하나가 급히 만류했다.
“장군, 다가가면 안 됩니다. 이미 이지를 상실했습니다.”
“어째서…….”
장흠은 문득 주태가 보여 주던 이상 행동들이 떠올랐다. 분명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감정조차 제대로 주체하지 못한 모습들. 이제 와서 그것들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유평, 어찌해서 자네가…….”
장흠이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을 쏟아 내는 사이, 손가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태를 죽이려는 듯한데, 장흠으로서는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유평을 죽여서는 아니 되네.”
그 말에 손가병들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장흠을 바라보았다.
“일단 유평을 이리 만든 인물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죄는 그 뒤에 내려도 될 일이야.”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주워섬기는 장흠의 모습에 손가병 중 부장이 인상을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개인 무력이 뛰어난 주태인데, 지금은 약에 취해 사리분별도 못하고 무작정 도를 휘둘러 대는 상황이다. 그런 이를 상대로 목숨을 빼앗지 말고 사로잡으라 하니 어찌 불만이 없겠는가.
하나 명백히 명령이 내려졌으니,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부상까지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장흠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손가병 한 명이 주태의 공격으로 방패째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해… 주게.”
* * *
한편, 주태를 내버려 두고 발길을 돌린 감녕은 손가병에 둘러싸인 누발을 조우했다. 비록 손도끼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손가병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점차 목줄이 조여드는 형국이었다.
감녕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비도를 날리며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갑작스런 감녕의 난입에 손가병들은 당황하였으나, 눈앞에 누발을 두고 등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하여 감녕은 종횡무진 사방을 누비며 거침없이 손가병들을 베어 나갔다. 짧은 시간 만에 몇 명의 동료가 쓰러지자, 손가병들은 결국 포위를 풀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만족한 듯 감녕이 누발에게 다가갔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원망 섞인 비난뿐이었다.
“대형, 분명 허명뿐인 놈들이라 하지 않았소?”
“큼, 그게…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살았으니 된 것 아니냐.”
“지금 그게 내게 할 말이오? 대형이 안 왔으면 꼼짝 없이 죽을 뻔했소.”
“거, 엄살은.”
“됐고, 다른 놈들은 괜찮겠소?”
“뭐, 심미나 청은 괜찮을 것이다. 네놈과 달리 둘은 꽤 실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대형은 왜 이리 늦었소? 애병인 청사까지 꺼내 들었으면, 진즉 승부를 냈을 것 같은데 말이오.”
그에 감녕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놈이 귀신에게 혼을 팔았더라고. 게다가 같이 있는 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지금 여기 있는 놈들보다는 한 단계는 더 윗줄이었어. 만약 네가 그놈들을 만났다면, 살아 있지 못했을 거다.”
“형님, 뭔 말을 해도…….”
“됐고, 얼른 다른 놈들이나 찾아가자.”
“이놈들을 어떻게 하고요?”
“어떡하긴? 이미 몇 놈 보내 놨으니, 더는 달려들지 못할 거다. 그게 아니면 네가 처리하든가.”
감녕의 말에 누발은 손가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부상당한 동료를 돌보느라 이미 전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래? 시간 없으니 빨리 결정해.”
“뭐, 됐소. 어차피 저놈들을 꼭 죽여야 하는 것도 아니니, 다른 이들이나 구하러 갑시다.”
“그래. 그럼 따라와라.”
* * *
감녕의 예상대로 금범적의 피해는 적지 않았다. 손가병들의 무위가 예상보다 뛰어난 탓에 고작 서른 명 정도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만 보면 감녕의 습격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주유에게 꽤 큰 피해를 줬다.
손가병의 대장인 조평을 죽였을 뿐 아니라 주태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서 순찰병들을 대거 제거했기에 결국 누선의 이동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에 승태는 감녕의 공을 크게 치하하였다. 감녕은 다시 신임을 얻었다는 생각에 기뻐하였으나, 승태의 포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습격에 동원된 금범적들에게도 많은 금전을 내리고, 안타깝게 죽은 이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평생 돌보아 주도록 명하였다.
이에 금범적들 또한 승태에게 충성심을 품게 되었다.
* * *
한편, 주유와 승태가 지지부진한 전투를 이어 갈 때, 여남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누규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드디어 고순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누규는 멀리 보이는 검은 물결에 두려움을 느꼈다.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이 빠르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이야…….”
방진이 하나씩 뚫릴 때마다 전령이 달려와 급박한 상황을 알렸는데, 어느새 전령보다 먼저 고순의 모습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미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음을 깨달은 누규는 힘없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막사 앞을 지키던 병사의 탁한 단말마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곧 고순이 거칠게 안으로 들어섰다.
호위가 달려들려 하자, 누규는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그러고는 웃음 띤 얼굴로 고순을 보고 물었다.
“좀 쉬실 텐가?”
잠시 주변을 훑어본 고순이 고개를 끄덕이자, 누규는 손수 의자를 내어주었다. 이내 두 사람이 마주 앉자, 고순의 입이 열렸다.
“어찌 주공의 당부를 어기고 반기를 들어 올렸소?”
“할 수 있다고 여겼네. 또 그럴 만한 능력도 있었고.”
“주공께서 공의 능력을 인정하여 형주 북부를 개발하고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였지 않소.”
“그것이 기반이 되었네. 그리고 그것이 내 야망을 건드렸지.”
고순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요? 대체 누가 그대를 지켜 준다 말하며 바람을 넣었소?”
고순은 누규 홀로 반기를 들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록 누규가 능력은 있지만, 그런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과 이통이 군을 이끌고 있는데 말이다.
“하아, 그냥 나 혼자 한 것으로 해 주면 아니 되겠는가? 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미 제 눈에는 배신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더 초라해질 것이 있겠습니까?”
누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고순의 모습에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런가? 그럼 내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는가?”
고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누규에게 질문을 허락하였다.
“진 노사, 아무래도 내가 그 노인의 손 위에서 놀아난 것 같아서 말이야. 내 생각이 맞나?”
고순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말을 꺼내었다.
“그에 대한 계획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께서 배반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누규는 고순의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것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마음이 드는군. 그래, 자네가 솔직히 말해 주었으니, 나도 사실을 밝혀야겠지.”
누규가 손짓하자, 호위가 죽간들을 챙겨 고순에게 건넸다.
“그들의 세작을 잡아낼 증좌일세. 서신이나 수결 같은 것을 담아 두었지. 수춘후께는 은혜에 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 주시게. 뭐, 어차피 진 노사도 누가 이런 짓을 벌일 줄 알고 있었을 테니, 얼마나 소용이 될지는 모르겠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지요.”
“그럼 이제 더 나눌 이야기도 없으니, 조용히 갈 수 있도록 해 주겠는가?”
누규의 말뜻을 알아들은 고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문제될 것 없습니다. 단지 애꿎은 병사들이 더 이상 희생하지 않도록 공께서 항복을 종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순의 제안에 누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고… 고맙네.”
“아닙니다.”
누규는 바로 붓을 들어 죽간에 글을 적어 내려가며 양옆에 서 있는 호위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마라. 일이 이미 이만큼 기울어졌으니, 고 도독의 휘하에서 이름을 빛내는 것이 더욱 값질 것이다.”
호위가 뭐라 반발하려 하였으나, 누규는 추상같은 모습으로 찍어 눌렀다.
“어서!”
결국 호위병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누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순에게 머리를 숙였다. 누규는 쓰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들을 부탁함세.”
그 말을 끝으로 누규는 자신의 침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