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고순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호위를 빤히 바라보았다. 호위병은 고개를 숙인 채 누규가 나간 입구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누규는 곧 자결을 할 터였다.
사실 고순의 입장에서는 누규가 도망을 치든 죽음을 맞이하든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그의 계책이 뛰어나다고 한들 누가 누규를 받아들이겠는가. 이미 두 번이나 주인을 배신한 인물인데.
그렇기에 진궁도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지 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혹, 걱정이 된다면 병사 한 명만 붙여도 아무런 일을 못 할 것이라고 말이다.
고순은 누규가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더는 자신의 야망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건 마치 과거 장안에서 동탁의 부하들이 들이닥치기 전, 왕윤의 눈빛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와 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울러 머릿속에 진궁을 떠올렸다.
‘진 노사는 참 대단하군.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불태워 무엇인가를 이루고, 그런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있다니 말이야.’
고순은 애써 고개를 떨쳐 잡생각을 털어내고는 이내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규의 호위를 바라보았다.
누규가 거두어 달라 말을 할 정도이니, 범상한 인물은 아닐 터였다. 그러자 약간 궁금증이 돋아 호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자네는 이제 어찌할 터인가? 누규가 죽게 되면 누군가는 병사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어찌해서 제게 묻는 것입니까?”
“자네가 누규의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해 왔을 테니까. 내가 그걸 묻는 것이 이상한가?”
호위병은 잠시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걱정하실 일은 아니옵니다. 여기에 주둔한 병사들은 겪어 보신 대로 그렇게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요. 대다수가 급히 징집되어 모인 병사들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병사라 해 봐야 독전관 수백에 지나지 않으니, 그들을 설득하면 충분히 해산이 가능할 것입니다.”
고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위를 바라보았다. 판단력이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 병사들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제 그의 솔직한 속내를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하나 묻지. 애당초 그런 병사들로 우리와 척을 지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호위는 대답 없이 자신이 건넨 서신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안에 해답이 들어 있다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고순은 서신들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수춘후와 진 노사에게 바치면 그에 대한 처리가 내려올 테니, 자신이 굳이 읽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판단은 주군이나 진 노사가 내릴 터. 나는 그저 명을 받고 행하면 될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고순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저 서신에 손도 대지 않을 것이네. 저것은 주공께서 보아야 할 것이지, 내가 손을 댈 물건이 아니니 말이네.”
어찌 보면 우직하기까지 한 고순의 대답에 호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고순은 내심 감탄하였다. 이 정도의 말만으로 추후에 벌어질 일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저 한낱 호위가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에 앉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말이야.”
고순의 말에 함진영 둘이 의자를 내주자, 호위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이윽고 정리가 된 듯 호위병이 말을 꺼내었다.
“저의 주인께서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도독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사태를 바라보기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응? 어찌하여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리 내가 생각이 없기로서니, 반기를 들어 올린 인물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니.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나로서는 납득이 되질 않는군. 아니면 원래는 다른 내용이 있던 것인가?”
“정확한 내용은 잘 알지 못하지만, 저의 주인과 거래한 인물이 군세를 이끌고 와 이곳 근처에 주둔하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했습니다. 하여 이곳이 완전히 넘어갔다고 여겨진다면, 완성에서는 특별히 군을 내지 않으리라고 판단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호위병의 말에 고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양양의 유표 세력과 관계된 일이라면 호위의 말처럼 무력이 아닌 말로서 해결하려고 했을 테니까.
‘흠,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 나가며 그로 인해 소요될 시간 자체가 목적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야기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군. 단순히 그 정도 이유로 반기를 들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고순은 고민된다는 듯 턱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왠지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떨쳐지질 않았다. 결국 고심 끝에 고순이 다시 물었다.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군. 자네가 그토록 따르던 이가 고작 그 정도 이유로 안정된 기반을 포기하고 움직일 인물인가?”
“아니옵니다. 단지 제가 들은 바로는 낙양에서 다시 불길이 타오르면, 중원과 하북은 이곳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북쪽에서 바람이 불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고순에게 대국을 바라볼 안목은 없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고순도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기에 섣부른 추측은 삼가 하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듣기에도 이번 일은 꽤 심각하게 느껴졌다.
누가 세운 구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낙양이 전화에 휩싸인 것이야 현재 순욱이 항복을 종용하며 각 관을 점거하고 있으니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그 와중에 낙양에 있는 황족들이 참화를 당한다면, 비난의 화살은 당연히 순욱이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또한, 하북 역시 북방을 지키는 군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민족들이 날뛰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가후의 명을 받은 마등이 봉합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종요에게 반란을 종용한 이들이 모두 처리된 것은 아니니 서북 역시 아직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면, 아직 이번 사건의 불씨가 남아 있는 셈이었다.
“그렇군. 나는 지금 바로 군을 이끌고 신야로 내려갈 것이네.”
그 말에 호위는 눈을 크게 뜨고 고순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을 해산시키지 않을 겁니까?”
고순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호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병력이 비록 징집병이라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적의 시선을 끌어들일 수는 있겠지.”
고순의 말에 호위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어찌하여 제게 그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혹시…….”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솔직히 누규는 일군을 이끌 능력이 되지 않네. 일을 꾸미는 계책과 부를 축적하는 수완이 좋을 수는 있겠으나, 군을 직접 이끌며 군세를 훈련시키는 것은 그가 하지 못하는 부분일세. 그럼 다시 묻지. 군을 이끌 수 있겠는가?”
고순은 호위의 손에 잡힌 굳은살이 무위를 쌓은 무인의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군사로서의 역량을 드러내는 인물이라 확신했다.
“나는 그대가 누규의 곁에서 군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고 판단하네. 내 말이 틀렸는가?”
날카로운 고순의 지적에 호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맞사옵니다. 제가 주인을 대신하여 병사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래. 그럼 내 다시 묻지. 그대가 군을 이끌고 적의 시선을 끌 수 있겠는가? 만약의 경우, 적의 공격에 버티는 것까지 말이야.”
호위는 눈을 멍하니 뜨고 고순을 바라보았다. 어찌하여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자네에게 병사들을 맡기는 이유가 궁금한가 보군?”
“그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저를 믿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궁금하여 그렇습니다.”
고순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떠난 후에 자네가 반기를 든다고 하여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뭐,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군.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자네가 위험해졌을 때, 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 같은가? 아니, 분명 그렇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이미 소용을 다 했거든. 게다가 나는 배신자는 반드시 처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지. 그렇다면 답이 나온 게 아니겠는가?”
호위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을 짓씹자, 고순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충분히 생각한 후에 결정을 내리게. 만약 그대가 포기한다 해도 탓하지는 않겠네. 다만, 그리되면 이들은 그냥 화살받이로 목숨을 잃고 말겠지.”
고순의 협박 같은 말에 호위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어찌 그렇게 악독한 짓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그대가 이들을 살리라는 말이네. 나는 숫자를 불릴 무엇인가 필요한데,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호위는 이를 갈며 노려보았지만, 고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미 누규의 말이 있는 후로 그대는 나에게 속한 사람이네. 그러니 이번 남정의 일군을 담당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아직 자네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호위는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친한 척 이름을 묻는 태도가 굉장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되돌리기는 늦은 것을.
사실 그는 누규를 마음 깊이 따르지는 않았다. 그저 형주에서 난리가 벌어지자 서주로 넘어갈 생각에 이곳까지 왔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누규의 눈에 띄어 등용된 것이고.
호위는 안타까운 마음을 잠시 접어 두고 예를 표하며 말했다.
“소인은 양양 나씨 집안의 몽입니다.”
“나몽이라… 알았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고개를 끄덕인 고순은 그 길로 바로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병사가 누규의 자결 사실을 알려 오자, 고순은 직접 누규의 시신을 수습했다.
병사들은 대장기에 감싸인 누규의 시신을 보고 저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으나, 감히 고순에게 달려들지는 못하였다.
‘흠, 그러고 보면, 나에게 검을 겨누려 한 나몽의 용기가 대단했군. 역시 일군을 맡기기에는 손색이 없는 인물이로다.’
아마 승태에게 나몽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좋은 인재를 얻었다며 크게 기뻐했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몽의 아들이 바로 손오의 침공을 막고 서진의 대신 자리에까지 오른 나헌이기 때문이다.
나헌의 군재는 수성뿐만 아니라 야전에서도 큰 효용을 발휘하기에 삼국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명장이 아들인데 아버지인 나몽은 못해도 양장 이상은 되지 않겠는가.
* * *
한편, 신야성 제갈량의 집무실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제갈량은 갑작스러운 방해에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전령이 건넨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내용을 살피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너무 빠르다, 너무 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