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완성, 진궁의 집무실.
진궁은 고순에게서 올라온 죽간을 풀어 자세히 읽어 나갔다. 그 안에는 누규가 반기를 들어 올린 사실뿐 아니라 그에 대한 다양한 견해 등이 들어 있었다.
‘확실히 주공께서 신경 쓰실 만한 인물이기는 하군. 시세를 굉장히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반란의 원인과 유비의 동향, 목적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술된 죽간은 그저 일개 무장의 견해라 보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더욱이 하북과 중원, 그리고 파촉에 관한 언급까지 되어 있으니 진궁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나저나 유비가 형주를 집어삼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진궁은 제갈량의 계책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분명 욕심을 내 볼 만은 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지.’
진궁은 또 다른 서신을 펼쳐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채모의 동향에 관한 보고였는데, 현재 남군에서 병사를 모아 주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양양의 인근이라 할 수 있는 남군에서 그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유표의 세력은 반으로 찢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진궁이 진정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유종을 형주목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대충 넘기면 될 일이고…….’
진궁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이어 갔다. 분열된 형주를 장악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었다.
‘유비만 처리한다면 한결 시름을 덜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현재 형주의 형세는 여러 호족과 유표의 두 아들, 그리고 황조와 유비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진궁이 보기에 결국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명분과 실력, 명성 모두를 갖춘 인물은 오직 한 명뿐이니 말이야.’
일단 명분만 보면 유종이 다른 이들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사지절 정남장군 벽소개부 의동삼사 독교양이주 형주목(使持節 鎮南裝軍 開府辟召 儀同三公 督交揚二州 荊州牧)이라는 지위가 단지 혈육만으로 이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는 삼보의 난 이후, 세력을 갖춘 유표가 허도를 넘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저 달래기 용도로 제수한 직책일 뿐이었으니.
비록 유표에게 후계자로 인정받기는 하였으나, 이는 황실로부터 확실하게 인증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기와 황조가 들고일어났을 때,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반면, 유비는 황숙이라는 그럴싸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세력을 일으켜 한조를 지켜 나가겠다고 선언한다면, 그에 혹하는 이들 또한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실력에 대해서는 더욱 따질 필요가 없다. 유기나 유종은 전혀 검증된 것이 없으니까. 그보다는 오히려 두 사람을 지지하는 채씨나 괴씨, 그리고 황조를 보고 줄을 선 것이었다.
그러니 유비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유비는 그 자신이 전장에 나가 가치를 입증했으며, 서주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은 경험도 존재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대부분의 호족들은 유기나 유종보다 유비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진궁은 붓을 들어 죽간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던 그때, 병사가 급히 들어와 진궁을 찾았다.
“진 감군을 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런 직책도 없을 진궁이지만, 그리하면 면목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순이 억지로 감군의 자리를 내주었다.
진궁 또한 후방을 지키며 전체적인 판을 짜기에 적당한 직책이라 여겨 별 거부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현재 진궁은 감군이라는 지위로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진궁은 급히 달려온 탓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병사를 보며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네, 감군 나리. 여남에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전서를 내미는 병사의 표정이 굉장히 우중충해 보였다. 게다가 뭔가 우물쭈물하는 기색에 진궁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내 전서를 보기 전에 자네의 입으로 간단히 말해 보게.”
“그것이… 여남의 보급품이 모조리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상황은 전서에 적혀 있으니, 확인해 보소서.”
사실 보급대의 패퇴는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형주의 유비가 고순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작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유비라는 것에 진궁은 흥미를 느꼈다.
“흠, 유비가 형주에 머물지 않고 직접 병사를 이끌고 움직였다고? 대단하군. 끝끝내 형주의 민심을 놓지 않겠다는 속셈일 테니 말이야.”
유비가 움직인 이유에 대해 대번에 간파한 진궁은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전공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형주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영웅이라는 명성을 얻겠다는 노림수가 분명했다.
“누규를 협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야. 하기야 지금과 같은 아비규환 상황에서 그런 수를 쓰는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
누군가를 협박하여 반란을 꾀하게 만드는 행위는 분명 인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긴 하나, 지금과 같은 난세에서는 그저 모략의 하나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힐수록 유비에 대한 호족과 백성들의 지지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서주의 도겸이 그랬듯 유비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었다.
이미 한번 크게 성공한 작전인데, 굳이 노선을 바꿀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진궁은 서둘러 손을 놀려 새로이 서신을 써 내려갔다. 그런 후, 전체적으로 한 번 더 내용을 확인한 후에 곱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촛농을 떨어트려 꼼꼼하게 봉인 작업까지 마친 진궁이 병사를 향해 손짓하였다.
“이것은 고 도독에게 전달하게. 그리고 여남에는 이 서신을 전달하고 말이야.”
진궁은 병사에게 단단히 언질을 주며 서신과 죽간을 건넸다.
“네, 감군.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병사가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는 순간, 진궁이 말했다.
“아, 그리고 고 도독께 이 말도 전하게. 쾌의 묘로 적을 상대하라고 말이야.”
* * *
고순은 직접 순찰을 돌며 병사들의 상황을 면밀히 살폈다. 사실 나몽의 군세야 원래 농민으로 구성되었으니 딱히 무엇을 지적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머릿수 채우는 용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몽은 계속 바쁘게 움직이며 농병들이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래 봐야 일부 인원에게 완장을 채우고 다른 이들을 통솔하도록 체계를 잡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고순의 눈에는 꽤나 효율적으로 보였다.
전문 병사들이라면 이미 기본적으로 숙지하여 몸에 밴 것이지만, 농사를 짓다 난데없이 병사가 된 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단순하긴 하지만, 핵심을 잘 짚어냈군.’
간략하게 체계를 구성한 병사들은 단순히 창을 찌르는 것과 거두어들이는 행동만 반복해서 연습했다.
완장을 찬 병사의 구령에 따라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장에서는 목숨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개중에 제대로 통솔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로 완장을 넘겨야 하니, 서로가 경쟁심까지 발동되어 훈련에 집중하는 열의도 나쁘지 않았다.
고순의 옆에서 같이 순찰을 돌던 함진영 병사 또한 이번 훈련의 진가를 알아보고는 감탄성 터트렸다.
“호오, 대단하옵니다. 농민들이 저 정도로 훈련을 하게 만들다니 말입니다. 솔직히 웬만한 징집병들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하였다.
“약간 기대가 되는군. 저 병사들로 과연 적을 어떻게 막아 낼지 말이야.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상대는 관우나 장비입니다. 그들이 설마 농민병들에게 고전하겠습니까?”
“아무리 관우나 장비가 날고 기는 맹장이라 하여도 병사들이 스스로 목적을 가지게 만든다면 두려움이 반감되는 법이지. 뛰어난 무장이 전장에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기 때문이네. 그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숫자 싸움에 불과하네.”
말을 마친 고순이 다가가자, 나몽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고 도독을 뵙습니다.”
“그래, 훈련은 잘 보았소.”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오. 훈련이 굉장히 격하여 나 역시도 마음이 끓어오르더군.”
“감사하옵니다.”
고순은 병사들을 슥, 훑으며 말했다.
“너희 중 나 도위의 추천을 받은 이는 주군께 말씀드려 주머니를 두둑이 챙겨 주고, 고향으로 돌아가 떵떵거리게 살 수 있도록 땅도 내려줄 것이다. 아니면 벼슬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지.”
갑작스런 고순의 폭탄선언에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순은 그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며 나몽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네가 추천하는 인물이라면 능히 뛰어나지 않겠는가.”
병사들이 그 말을 듣지 못할 리 없었다. 그와 동시에 새삼 의욕이 솟구친 듯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하게 창을 찌르는 것만을 했을 뿐인데, 함진영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칭찬을 하며 포상을 약속하니, 나몽에 대한 신뢰 또한 더욱 깊어졌다.
고순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기자, 나몽이 급히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다.
“감사하옵니다. 사실 이제 한계에 다다라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기가 어려웠는데, 제대로 된 동기를 부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것참, 다행이군.”
나몽은 별것 아니라는 고순의 대답에 물음을 던졌다.
“한데 어찌하여 저를 도우신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대가 우리의 뒤를 열심히 지켜 줄 것이라 여겨 그리하였을 뿐이네. 내 말이 틀렸는가?”
고순의 말에 나몽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아니옵니다. 당연히 그러하옵니다. 저는 그저 감사함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럼 되었네. 나는 할 일이 있어 이만 가 보지.”
나몽은 멀어져 가는 고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왠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고순을 뒤따르던 함진영 병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순도 약간 멋쩍은지 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커험, 네들은 어찌 그러느냐?”
그러자 함진영 병사 하나가 말했다.
“장군께서 주군의 행동을 따라 하시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킁, 옳은 일을 따르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
고순은 문득 그리운 마음이 들었는지, 승태가 있을 수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뵙지 못한 것 같군. 가끔씩 수춘에서 서신을 받기는 하지만, 역시 직접 뵙는 즐거움만은 못하니 말이야.”
“주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부인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말에 다들 우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과거, 묵직하기만 하던 함진영의 모습보다 한결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든 고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