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고순은 쾌의 묘를 행하라는 진궁의 말을 전달받으며 웃음을 지었다.
양양과 번성의 방호는 무척이나 두텁기 때문에 신야를 지나쳐 가는 순간 자칫 허리가 끊겨 보급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고순은 걱정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허리를 남겨 둘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신야에서 멀리 떨어진 당양에서 유비가 보급 부대를 습격하는 일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한 병력이었다.
그에 반해 고순은 현재 일만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있으니,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다만, 여전히 걱정하며 발목을 잡는 이가 있었다.
“양양까지 곧장 진격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되면 후방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자칫 고립되어 그대로 자멸할 수도 있습니다!”
나몽은 고순의 전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군기가 엄정하지 못한 징집병들은 분명 행군 중에 이리저리 흩어져 사라질 것이 빤한 일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병사가 남아나지 않을 텐데, 어찌 이런 것을 작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몽이 극구 반대를 하자, 고순은 느긋하게 수염을 어루만지며 품에서 서신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나몽에게 건넸다.
서신에는 고순이 앞으로 해야 할 지시 사항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예상대로 유비가 신야에서 나와 미끼를 물었으니, 도양과 신야까지의 가도를 장악하면 관우와 장비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네. 이들을 격파하고 채모를 만날 장소를 알려 줄 것이니, 이를 숙지하고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움직이게.]서신에는 각 지형과 그에 따른 세부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고순이 신경 쓸 것은 그저 관우와 장비를 어찌 상대해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뿐이었다.
놀랍게도 서신 말미에는 이번에 받아들인 농민병들을 어찌 처결할지도 나와 있었는데, 그것을 본 나몽은 머리에 세게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무지했습니다.”
고순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나몽을 바라보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게. 나 또한 진 노사의 계책에 반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야. 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았을 때는 그르침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하온데 제가 미끼가 될 것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북과 중원이 이렇게 대치하고 있음에도 감히 유비가 군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고순의 물음에 나몽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고순을 보니, 우직한 곰과 같은 모습이 마치 산과 같은 기운을 풍기는 듯했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이기는 것과 동시에 아무도 넘지 못할 듯 철벽같은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인물.
아마도 그것은 지난번 전투에서의 경험이 이런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것이리라. 나몽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징집병이라 하여도 고작 한 줌의 병력만으로 방진을 갖춘 병력을 상대하기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고순은 하나하나 방진을 무너뜨렸고, 그에 따른 병사들의 공포감은 전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심지어 나몽 자신 또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형국에 그 어떤 방도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이 현실인지 인정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날, 나몽은 어째서 고순이라는 무장이 남양을 지키고 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함진영이란 이름을 뇌리에 깊이 새겨 넣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몽은 자연 대답이 떠올랐다.
“장군의 능력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나몽은 마치 아부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순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웃음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그보다는 유표와 유비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네. 유표는 유비에게 군을 맡겼음에도 출병을 할 때면 언제나 허락을 받고 움직이게 했네. 그렇게 필요할 때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방해를 받는 셈이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합니다. 한데 그것과 제가 미끼가 되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유비는 족쇄가 채워진 상태나 다름없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제약이 사라졌다는 의미일세. 이제부터 유비는 자신의 마음대로 군을 움직이며 세력을 넓힐 수 있게 되었지. 자네의 말대로 내가 남양을 지키고 있으니 감히 활개는 치지 못하겠지만, 만약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빈틈을 노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네.”
나몽은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차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언제든 목숨이 달아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 저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고순은 나몽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지. 자네는 어찌하고 싶은가? 원한다면 병사들을 해산시킨 후에 자네만 따라와도 되네.”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나몽의 안위뿐 아니라 징집병들도 애꿎은 생명을 잃지 않을 테니.
그러나 전쟁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유비에게 다시 징집되어 우리에게 칼을 겨누게 되겠지.’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자, 나몽을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미끼가 되어 적을 유인하겠습니다.”
고순은 단호한 표정을 짓는 나몽의 눈에서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흠,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해 주겠나?”
“저들은 저희 징집병을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겁을 주든, 아니면 회유를 하든 하여 자신의 병력을 늘리려 할 것입니다. 지금껏 유비는 그렇게 해서 군세를 늘려 왔으니까요.”
“흠, 틀리지 않은 말이군.”
“그렇다면 버텨 보겠습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고 도독은 행군에 방해가 될 저희를 두고 가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유비는 분명 이곳을 노려 주의를 끌려 할 것입니다.”
나몽의 담담한 말에 고순은 내심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제가 적의 발목을 잡아 두겠습니다. 육양 일대는 늪지이니 목책을 세워 농성한다면, 저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항복을 종용할 것입니다. 그때, 시간을 끌면 장군께서 저들의 뒤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나몽의 태도에 고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유비는 최대한 병력 손실을 줄이며 형주를 집어삼켜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병력을 잃게 되면 형주의 유지들이 유비를 바라보는 시각이 회의적으로 변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유비로서는 어떻게든 고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주변 지역을 장악하여 세력을 키워야만 형주를 장악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형주의 세족 중 하나이던 나몽이 형주의 흐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형주를 떠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힘을 합쳐 무엇인가를 이루어도 모자랄 판국에 형주의 세족은 자신들의 안위만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그 결과, 형주의 패권을 노리는 채씨, 괴씨 일가와 유비를 지지하는 파벌로 나뉘어 서로 견제만 하게 되었으니,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였다.
차라리 어느 한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패권을 잡았으면 상관이 없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수라장과 다를 게 없었다.
나몽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역모를 일으킨 누규의 휘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향후 나몽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천하를 뒤흔들 정도의 능력을 보여 주니 아니하고서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고순이 인정해 준다 하더라도 주변의 다른 이들은 나몽을 비난하며 공격할 것이 빤하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여기서 죽음을 각오한 싸움을 통하여 신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물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몽은 여기서 자신이 물러선다면 그저 그런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목숨을 걸고 공을 세워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짐에 찬물을 끼얹듯이 고순이 말을 꺼내었다.
“자네의 각오는 잘 알겠으나, 유비의 휘하에는 관우와 장비 같은 인물들이 있네. 그들의 높은 명성에 병사들이 겁을 먹고 창을 거꾸로 들면 어찌하려 그러는가?”
나몽은 순간 흠칫하며 고순을 바라보았다. 직접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관우와 장비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명성을 들어 왔다.
만약 소문의 반만 사실이더라도 그들을 상대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도저히 그들을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나몽은 앞이 깜깜한 기분을 느꼈다.
* * *
장비는 지금 육양의 징집병들을 정벌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함진영이 유비를 쫓는다고 판단되자, 관우 역시 신야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고순이 자리를 비우자, 제갈량은 무주공산이 된 남양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병사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데 그러던 중 고순에게 항복한 누규의 본대가 육양에서 기존의 요새를 개조하여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장비는 자신이 받은 보고가 맞는지 다시 한번 살폈다. 제아무리 누규가 협박을 받아 난을 일으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끊게 만든 것은 고순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며 농성을 준비 중이라는 말에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야기 좀 해 보라고.”
거듭된 장비의 물음에 척후병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서신에 적힌 대로 저들이 결사 항전을 준비하는 듯 보였습니다.”
“결사 항전? 한낱 징집병들이? 그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남양의 병사들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척후병은 고개를 약간 갸웃하다가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적이 비록 훈련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으나, 강압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장비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골치가 아파질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흠, 누규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사정을 알 터인데, 어째서 목숨을 거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장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순을 떠올려 보았다.
무지막지하게 도끼를 휘두르며 병사들을 도륙 내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그것을 목도한 징집병들 사이로는 감염되듯 공포가 번져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고순이 떠났다 해도 감히 딴생각을 먹기가 어려우리라.
“고순, 그 인간에게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일단 회유를 시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