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환계로부터 형남의 사군이 유기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남군의 제장들은 혼란에 빠졌다.
내심 채모가 낸 소문으로 인하여 여론이 움직였으니, 형남 사군의 태수들은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유종을 다시 형주목으로 올리겠다는 채모의 다짐은 결국 허언이 되었고,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채모는 다시금 진궁에게 서신을 보내는 한편, 병사와 선박들을 박박 긁어모았다. 방통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유기에게 항복하는 것이 방가의 안위를 위해서는 더욱 나은 판단일 것 같사옵니다. 숙부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네가 그리 판단하니 맞을 것이다. 하나 우리가 채가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유종이 옳기 때문이 아니지 않으냐.”
“하지만 형주에 근거를 둔 우리가 뿌리를 잃어버리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 있사옵니다.”
“제갈씨들도 형주에게 와서 둥지를 틀었다. 우리라고 못 할 일은 아니지.”
방통은 방덕의 말에 입을 닫았다. 방씨 가문의 가주인 동시에 자신을 인정해 준 숙부이기도 하니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방덕의 말이 이어졌다.
“유비는 폐하께 황숙이라는 과분한 칭호와 함께 관직을 제수하였다. 그런데도 폐하의 부름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그를 믿고 의를 같이하겠느냐? 분명 유기 또한 사특한 유비의 감언에 넘어간 것이리라.”
방통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방씨나 괴씨, 채와 같이 형주에서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 온 가문들은 유비에 대한 거부감이 꽤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가 거쳐 간 지역마다 전장으로 바뀌어 참화를 겪은데다, 유표에게 근황군을 조직하라고 부추기는 모습에서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덕은 그 모습을 보며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썩은 고기를 탐하는 승냥이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고 오직 말로만 충의를 부르짖는 이를 어찌 믿겠는가. 내 그가 신야를 떠나 장안이나 낙양으로 진군했으면 방가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지원했을 테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형남 사군을 얻는 방법도 참으로 비열하였고.”
방통도 그 점에서는 방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에서 고결한 모습을 보이던 유비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게다가 황조와 유비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형주의 세족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진 이야기였다. 물론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거기다 환계의 입을 통해 황조가 형남 사군의 태수들을 처리한 일들이 밝혀졌다.
“뛰어난 인물이 많은 제갈가도 가문의 여식들을 이리저리 보내 형주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방가 역시 치욕을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 번 손에 쥔 권력을 내려놓기는 더더욱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어찌 삿된 것을 쫓는 행태를 눈감고 받아들인단 말이냐. 인간이라면 그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방덕의 말처럼 형남 사군의 정세를 지켜본 세족들의 반응은 꽤나 다양했다. 두려움에 떨며 항복하자는 이들과 분개하며 지금 당장 사군을 구원해야 한다는 이들까지.
게다가 병사를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 내에서도 다시 근간을 지키며 싸울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 나서야 한다는 등의 의견으로 갈라졌다.
채모는 끝까지 유비와 싸우겠다는 쪽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방씨와 괴씨, 그 외에 일부 개개인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다수의 호족은 자신들의 근간을 버리면서까지 유비에게 대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숙부, 어차피 떠나기로 한 마당에 그들을 비난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부곡이 거의 없는 우리가 어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방통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품에서 숫자로 이루어진 루스빅 큐브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마구잡이로 섞은 뒤, 딸각거리면서 맞추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방덕은 괜히 저것을 방통에게 주었다는 자책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밖에 없지 않으냐. 육로를 맡을 인물이 말이다. 이미 교육을 위해 영천까지 몇 번 왔다 갔다 하였으니, 제법 길도 알고 말이다.”
“맞는 말씀이긴 하오나 그래도 너무 쉽게 결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양민들을 데리고 움직이다 보면 자연 걸음이 느려질 터인데, 고려해야 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방통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는 말을 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유 사군의 군세와 부딪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정말 천운이 따라 주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유비의 휘하에는 범과 같은 장수와 날랜 기병들이 한가득이니, 괜히 눈에 띄기라도 하면…….”
채모의 판단에 방씨 가문은 제갈가와 인연이 깊으니 잡히더라도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과 혹여 다른 마음을 먹지는 않았는지 시험해 볼 요량도 있었을 것이다.
제갈량과 방통은 사마휘에게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보니, 만약의 경우에라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방덕 또한 그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 채모의 선택이 최선인 것도 맞는 말이었다.
“현재 유비는 고순과 대치 중인데, 설마 병사들을 따로 내어 우리를 쫓으려 하겠느냐? 그보다는 오히려 황조의 군세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숙부, 어차피 유비에게 신야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유기가 양번을 차지했으며, 형남 사군 또한 집어삼켰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이처럼 도망치듯 길을 떠나게 된 게 아니겠습니까.”
말을 할수록 속이 타는지 방통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유비가 신야를 버리고 남하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황조가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남군을 정벌한다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미 한번 모반을 결성한 호족들을 회유하든, 아니면 징치(懲治)를 하든. 즉, 유비는 움직이는 군이고, 황조는 주둔할 병력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정연한 방통의 주장에 방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음, 실로 그렇구나. 그래도 유비의 군세가 우리를 쫓을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 솔직히 말해 우리가 뭐 대단하다고 사로잡으려 하겠느냐.”
“그렇긴 하나, 역시 평판을 위해 양민들의 이탈을 막으려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 와 편을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채가에서도 중업(仲業) 장군을 보내 준 것일 테고.”
방덕의 말에 방통도 그 부분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살림에 뛰어난 장수를 옆에 붙여 주었으니 채모로서는 도리는 다한 셈이었다.
“사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주어야지요. 만약 그런 조치가 없었더라면, 저는 숙부께 그냥 유비에게 귀부하라 청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잡혀서 끌려갈 바에야 기반을 지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방덕은 방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말을 좀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겠다. 맞는 말도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빠 하면, 전장에서는 계책은 어찌 수용하겠느냐?”
방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제 역량이 거기뿐이라는 것이겠지요. 입신양명의 꿈은 있으나, 고개를 숙이며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제 본성과 맞지 않습니다.”
방통의 말에 방덕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알았다.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 * *
유비군은 안개가 짙게 깔리자, 허수아비와 깃들만 세워 두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에 고순은 군을 움직여 신야까지 진군하려 했지만, 장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장비는 뿔뿔이 흩어진 병력을 규합하며 인근 고을의 양민들까지 강제로 끌어다 고순의 보급부대를 계속 괴롭혔다. 결국, 고순은 보급을 지키기 위해 직접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
이후, 하후연과 장료가 도착하자마자 촉이 좋은 장비는 일대를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신야와 완성 사이에 민가들이 불타며 애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가자, 고순은 확실하게 장비를 죽이지 못한 것에 굉장한 후회가 들었다.
고순이 하후연, 장료와 함께 마침내 신야에 도달하자, 성에는 유비의 깃발과 병사로 위장한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하후연과 장료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겁에 질린 노인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물었다.
“유비는 어디로 갔는가?”
“유 사군께서는 군을 이끌고 양번으로 갔습니다.”
그에 고순은 또 한 번 이마를 짚었다. 장비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는 자책이 든 탓이었다.
“얼마나 되었는가?”
고순의 물음에 노인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설마 늙고 힘없는 자신들을 어찌하겠냐는 강짜가 섞인 태도였다.
그 대책 없는 태도에 하후연이 칼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노인 한 명이 벌벌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것이… 신야에서 성민들이 이주한 것은 달포가 넘었지만, 유 사군이 신야를 거쳐 간 것은 며칠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은 법. 노인들의 뻔뻔한 태도에 일말의 자비심마저 사라진 하후연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노인들이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난 뒤, 하후연이 말을 꺼냈다.
“어떻게든 빨리 움직여서 유비를 잡아야겠군. 달포가 지났으면 신야의 양민들은 이미 양번에 닿았을 테니 말이야.”
고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장료가 몸을 일으켰다.
“우리를 괴롭힌 장비 놈도 아마 거기 있지 않겠소? 고 형님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그놈 대가리는 좀 깨 버려야겠소.”
하후연은 장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끙, 네 녀석은 선고(宣高, 장패의 자)와 어울려 다니더니, 산적이 다 되었군.”
장료의 말이 좀 더 가벼워진 것은 아마도 장패와 오래 어울려 다닌 탓에 생긴 버릇인 듯했다.
하지만 고순은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보기 좋은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주(여포)의 군중에서 문원(文遠)이 그나마 조리 있게 말하는 이였으니, 하후 장군께서는 이해하시지요. 그래도 실력 하나만큼은 손에 꼽히지 않습니까.”
“흥, 그러니 이렇게 가만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내 이미 진즉 순 공께 일러 사람을 바꾸어 달라고 했을 것이네. 게다가 자네는 선주라 하나, 내 그자와 좋았던 일이 없으니, 웃고 떠들 계제는 아니지 않은가.”
하후연의 날카로운 말에 장료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칼을 맞대 본 사이이니 서로를 더욱 잘 알지 않겠습니까. 또한, 더 냉철하게 판단할 수도 있을 테고요. 설마 같은 진중에 있는데 제게 창을 겨누시지는 않겠지요?”
장료의 너스레에 하후연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