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되었네. 유비를 잡으려면 말은 쉬더라도 우리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서두르세나. 더구나 채씨 놈이 육로로 보낸 이들과 유비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진짜 답이 나오지 않아.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 말이야.”
하후연은 그간 쌓아 온 장수로서의 느낌을 말하였는데, 과연 그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얼마 전에도 장비가 뒤에서 나대는 것이 시간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보니, 고순과 장료 역시 새삼 경각심을 품었다.
“하긴 뭐, 둘의 길이 다르긴 하겠으나, 만약 유비가 독한 마음을 품으면 그들을 방패막이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에 고순과 장료는 눈을 번뜩였다. 마치 유비가 무슨 짓을 벌일지 익히 짐작된다는 표정이었다. 그에 하후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유비가 진짜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명색이 황숙이라 불리는 작자가 말이야.”
하후연은 그냥 던진 말에 고순과 장료가 정색하며 반응하자, 조금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유비가 그런 더러운 짓을 벌일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탓이었다.
거기다 허도에서 보인 유비의 행동은 백성들과 꽤나 친화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의에 벗어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고순과 장료의 표정은 마치 유비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던 시절에 부린 패악질을 익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비는 백성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사족들만 품으려 애를 썼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단양병들이 도겸의 유지를 이어받은 유비에게 반발하고 여포에게 붙었겠는가.
그뿐 아니라 장비가 유비를 대신하여 술에 취한 척 반대세력을 제거한 일도 있었다.
유비의 그런 음흉한 수작질을 잘 아는 두 사람은 더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함진영만이라도 먼저 출발하겠소이다.”
그러자 하후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함진영의 말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중갑을 입은 자네들은 내가 이끄는 경기병의 속도만 못할 것이네. 그런데 무슨 수로 유비를 따라잡겠다는 것인가?”
“그럼 장군이 이끄는 경기병을…….”
“유비가 이끄는 북방의 돌기병을 경기병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가?”
장료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후연의 말대로 경기병은 오환돌기나 궁기병을 만나는 순간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즉, 지금 당장은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같이 가야 해. 솔직히 형주의 백성들이 유비의 마수에서 어떻게든 잘 버티길 빌어야지.”
하후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장료는 분개한 듯 보였다.
“그것은 너무 무책임한 말씀 아닙니까?”
“그렇다 한들 어쩌겠는가. 아무리 말을 몰아 달려간다 한들 유비의 뒤꽁무니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이미 며칠 정도 차이가 나 버린 상태이니, 어쩔 수가 없어.”
고순이 수긍한 듯 아무 말이 없자, 장료도 결국 그저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유비, 그놈만 만나면 어째 영 재수가 없다니까.”
장료의 푸념에 하후연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래도 폐하의 인정을 받아 황숙의 자리에 앉은 인물이네. 자네가 그리 부를 정도는 아닌 것 같군.”
장료는 그 말에 뜨끔하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그냥 남들 앞에서는 조심하라는 것이지.”
하후연은 장료의 어깨를 토닥거려 준 후, 결론 내리듯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말들의 체력이 돌아오는 대로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그때까지는 병사들도 푹 쉴 수 있도록 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 * *
문빙은 많은 수의 유민을 이끌면서 계속해서 사방의 정보를 살폈다. 그러기 위해 정찰병을 운용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인 끝에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행군을 멈추고 군영을 세우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마치 기습에 대비하듯 둔덕과 해자 같은 것도 만들었다.
방통 또한 문빙의 철저한 대비에 공감한 듯 부곡들을 시켜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만들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옆에 앉은 방통에게 방덕이 물었다.
“네가 보기엔 유비가 올 것 같으냐?”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딱 봐도 문 장군의 분위기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희도 대비를 해야지요.”
방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민을 이끄는 중간에 굉장히 단단한 군영을 꾸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미 호양 일대에 들어섰는데도 안심할 수 없다니, 만약 적이 우리를 쫓아온 게 맞다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대비를 철저히 한다 해도 저들에게는 관우라는 맹장이 있으니…….”
방통은 방덕의 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문빙이 형주에서 유명하다지만, 이미 무명이 천하에 진동하는 관우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방통은 침중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농민들을 전투에 동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저들은 우리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을 과연 받아들겠느냐?”
“방가는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 왔습니다. 한데 그간의 은혜를 잊고 제 살길만 찾으려 든다면, 이참에 확실히 내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방가에서 소작을 받은 이들은 그렇다 쳐도 다른 가문의 이들은 어쩔 셈이냐?”
“다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가문에 속했다 해도 사정은 똑같으니, 만일 그저 보호받기만을 원한다면 이쯤에서 갈라서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입니다.”
방덕은 약간 걱정되는 얼굴로 방통을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 하여 병사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도리어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구나. 일단 네 말대로 하기 전에 문 장군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이 좀 모나서 그러니, 숙부께서 도움을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방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가자꾸나.”
마침 문빙은 직접 나서서 기마를 막을 나무 말뚝을 설치하고 있었다. 방통은 문빙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였다. 문빙도 이번 이동을 책임지는 방씨 가문의 두 인물에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군막에 들어가 쉬고 계시지 그러십니까. 이리저리 번잡스러운데요.”
염려 섞인 문빙의 말에 방덕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미력하긴 하나 저희도 손을 보태야지요.”
문빙은 잠시 복잡한 속내가 담긴 표정으로 방덕을 바라보았다. 방덕의 아들인 방산은 제갈가와 혼사를 맺었기에 각별히 주의를 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등을 돌려 유비에게 전향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간에 잠시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방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문 장군께 부탁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방통의 계획한 바를 부드럽게 전하자, 문빙은 약간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방덕을 바라보았다.
“음, 그들을 무장시킬 만한 무기가 있습니까? 이 주변에는 죽창을 만들 대나무 숲도 없거니와, 말뚝을 박을 재료도 부족합니다. 수레는 이미 방벽으로 세우는 데 사용하였으니, 여차할 경우 그냥 맨손으로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문빙은 우회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힌 셈이었다. 괜히 농민들이 손을 보태 봐야 도움될 일은 그리 없었다. 오히려 기강을 헤이하게 만들거나 진형을 이해하지 못하여 혼란만 초래할 공산이 컸다.
그런 속내가 은연중 드러났지만, 방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기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장군께서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혹여 전투에 걸리적거려 괜한 방해만 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크흐음.”
문빙은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그러한 요구를 하느냐는 듯한 반응을 드러냈다. 방통은 문빙의 태도에 약간 감정이 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현재 자신의 명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문빙이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방통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무기는 저들이 자주 사용하던 농기구를 이용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농기구별로 구분하고, 그걸 토대로 따로 진을 만들 것입니다.”
소작농들에게 있어 농기구는 중요한 물건인 동시에 집안에서 가장 비싼 재산이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목숨과도 같은 농기구를 두고 올 이는 없었다.
하지만 문빙은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진형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네. 아니, 과연 농민들이 달려오는 기병들을 바라보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겁을 먹고 흩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전장은 어린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니, 자네는 그저 유민들이나 잘 돌보도록 하게.”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문빙의 처사에 방통은 크게 분통을 터트리며 항의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방덕이 먼저 나섰다.
“내가 직접 그들을 이끌 것이네. 그래도 아니 되겠는가?”
“아니, 어찌 그리 위험한 일에 뛰어드신단 말입니까? 행여나 방 공께서 잘못되신다면 제가 주공과 채 장군께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게. 어차피 채 공이나 유 공자께서도 우리 가문을 의심하여 자네를 이리 보낸 것이 아닌가. 비록 내 아들놈이 공명의 누이와 혼사를 맺기는 하였으나, 나는 유비 그자가 싫다네. 공명이 무슨 이유에서 유비를 따르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네. 정 못 믿겠다면, 내 목숨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네!”
방덕이 분연히 외치며 칼을 뽑아 들자, 문빙은 놀라 만류하며 말했다.
“방 공, 제가 잘못했소이다. 형주 문인들의 존경을 받는 방 공께서 자칫 몸을 상하였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소장은 진정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문빙이 조금 유해진 모습에 흥분을 가라앉힌 방덕이 슬쩍 말을 건넸다.
“알겠네. 그렇다면 내 조카인 사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면 아니 되겠는가. 자네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직접 농민들을 이끌고 나아갈 것이네.”
문빙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 말도 되지 않는 고집을 부려 대니 절로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문빙은 최종적인 타협책을 제시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면 군을 통솔하는 장군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점은 동의하시지요?”
방덕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방통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부터 소신이 명확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