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농민병은 예비대로 사용할 것입니다.”
문빙은 방통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방어하는 입장에서 예비대는 뚫린 빈틈을 다시 메워 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 만큼 상당한 경험과 전투 감각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병사들을 이끄는 것은 분명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농민병을 예비대로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문빙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방통을 질타했다.
“내 분명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면 듣지 않을 것이라 했네. 자네도 예비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겠지?”
방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나 소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용도가 아닙니다. 저는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적을 상대할 생각입니다.”
그러자 문빙은 처음 예비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욱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통의 말이 너무도 허무맹랑하게 들린 탓이었다.
하지만 방통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미 그럴 수 있도록 병사들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문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려가 넘치는 행군에도 온갖 불평을 늘어놓던 이들이 목숨을 걸고서 싸우겠다? 그것이 대체 가능이나 한 일인가?’
문빙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방통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약간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말인가?”
“군의 기본은 기율(紀律)입니다. 앞으로 가야 할 때 나아가고, 창을 들어야 할 때 물러나지 않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훈…….”
문빙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통이 대뜸 입을 열었다.
“그것은 바로 공포와 습관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문빙은 인상을 찡그렸다.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공포는 더욱 큰 공포에 무너지기 마련이고, 습관은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결국, 문빙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려 하자, 방통은 급히 말을 꺼내었다.
“장군, 지금 우리를 따르는 유민 대다수는 예전 황건에 든 이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대다수가 유지들에게 매인 처지라 소인은 저들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방통이 대뜸 본론을 꺼내 들자 문빙은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과연 방통이 무슨 말을 할지 호기심이 든 탓이었다.
또한 방덕이 전장에 서겠다는 생떼를 피하려면 끝까지 들은 후 신랄하게 비판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문빙을 잡아 세운 방통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말은 저들에게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황건적일 때 며칠을 굶으며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기억. 만약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때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흠, 반발이 심했을 것인데?”
“모두에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들을 책임지는 이들에게 경고했을 뿐입니다.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그래, 알겠네. 하지만 고작 배를 곯는 정도로 그들이 자네의 말을 따를 거란 말인가?”
방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제갈가와 채가와 연관 있는 방씨 가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만일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진다 해도 그들의 삶을 짓뭉개 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빙은 포악하기 짝이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방통을 보며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방통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만약 이번 싸움에서 나서지 않는 자들은 그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 모두 끔찍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 말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심어 준 것은 바로 삶과 미래에 대한 공포입니다.”
솔직히 방통의 말이 허세에 불과한 거짓이라 하더라도 유민들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러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아니, 오히려 방통이 말한 것은 그동안 황건의 후예인 그들이 많은 위정자들로부터 수없이 당해 온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단순한 협박이라 여겨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가족까지 들먹이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내 형주의 선비들이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군.”
문빙의 비판적인 태도에 방통은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약자(弱者)라 해서 선자(善者)는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뒷짐 지고 있는 이들을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지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선비는 인의(仁義)로운 자를 지키며 약자를 감싸야 하지, 약자의 탈을 가장한 악인을 지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싸우다 죽게 되면 가족에게 농지를 내주기로 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답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빙은 방통의 말에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굉장히 실리적이지만, 약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빙은 방통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문빙은 유표의 밑에서 오래 있으면서 너무 많은 정치적 판단에 의해 공(工)이 무시되고 과(過)가 덮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럴수록 문빙은 회의감을 느끼며 점점 조조와 같은 지도자를 원하게 되었다. 명확하게 상벌을 내리고, 같이 미래를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지도자를 따르고 싶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사람을 찾기 위해 채모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유비는 유표와 별다를 것 없는, 표리부동한 인물이었으니.
“자네의 생각 마음에 드는군.”
문빙의 긍정적인 대답에 방통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하다면 제 책안을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기대와 달리 문빙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방통은 다음 야기를 꺼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공포를 말했으니, 이제는 습관을 이야기할 차례이지만, 문빙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 뒤의 이야기는 안 들으십니까?”
그러자 문빙은 방통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더 들을 필요도 없네. 나 또한 황건적의 난이 벌어졌을 당시, 형주를 지키는 데 한 손을 거든 사람이네. 그러니 어찌 그들의 습성을 모르겠는가. 그러니 군영의 말뚝 밖에서 자네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네.”
그 말을 끝으로 문빙이 입을 다물자, 방통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려 하였다. 하지만 문빙은 인사를 받는 대신 방통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방통은 강한 압력에 조금은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문빙이 얼음장보다 차가워 보이는 표정으로 경고를 했다.
“내 분명 말하였네, 군영에 티끌이라도 영향을 준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방 공이야 천하에 이름이 높아 쉬이 어쩌지 못하겠지만, 자네는 다르지. 아무 명성도 없는 자네 하나쯤이야 군율을 세우기 위해 목을 베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네. 내 말, 명심하도록 하게.”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농민병들을 어찌 이끌 생각인가? 자네가 만났다던 그자를 대장으로 삼을 것인가?”
“일단 머리가 좀 돌아가는 자들 위주로 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경쟁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런 후에 외부의 구덩이에 숨어 적이 오길 기다릴 것입니다.”
“실로 죽음을 잊었나 보군. 기병들이 쏟아져 들어올 텐데도 구덩이에 직접 들어가겠다니 말이야.”
“글쎄요. 그들 또한 괜한 목숨을 버리지는 않을 테니, 다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뭐, 알겠네.”
이윽고 문빙이 떠나가자, 방통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과 달리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문빙의 뒤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내 당당히 보여 주지. 그리고 나중에 보자고. 네가 고작 일만의 병졸을 다스릴 때, 나는 천하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줄 테니.”
* * *
“으아아아아아!”
듣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유비의 기마들이 군영을 돌파하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 땅에 뿌려 놓은 철질려나 작은 구덩이가 기마들을 넘어트렸고,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은 서로 엉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용케 함정을 피해 구릉까지 다다른 기마병들은 옛 황건 출신의 농민병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농민병들은 구덩이 속에 숨어 있다가 적이 잠시 멈칫거리자 주저 없이 뛰쳐나가 괭이 따위의 농기구를 내질렀다.
물론 기마병들이라 해서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농민병들과 한데 뒤섞여 개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본 유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끙, 무엇 하나 술술 풀리는 일이 없군.”
“형님, 차라리 그냥 방향을 틀어 양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요? 괜히 여기서 시간을 끄느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유비도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고순과 하후연이 바짝 뒤를 쫓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앞에 보이는 군영 또한 쉽게 돌파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무너트리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달려들어야 할 텐데, 그래 봤자 이득이랄 게 없었다.
“분명 척후의 말로는 힘없는 유민이라 했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엔 유민이 보이지 않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유민이 있든 없든 말입니다.”
관우의 말에 유비는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유민들을 병사로 동원했다면, 전장에서 눈에 띄어야 할 텐데, 자신의 눈에는 도통 보이지가 않는 탓이었다.
“네가 한번 가서 살펴보겠느냐?”
유비가 은근하게 말을 꺼내자, 관우는 언월도를 움켜잡고 물었다.
“안 될 것은 없지만, 굳이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뚫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형님? 의제가 죽기 살기로 만들어 낸 시간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유비는 멀리 보이는 방씨의 깃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갈 선생이 이르더군. 방씨 집안의 통이라는 자도 능히 천하를 논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이야.”
그 말에 관우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피해를 감수할 만하지요. 내 직접 나서 보리다.”
이미 앞서 달려 나간 기병들이 함정 따위를 모두 드러내게 했으니, 관우의 돌격에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관우가 나서자 병사들은 길을 터 주며, 앞을 가로막으려 드는 농민병들을 견제해 주었다. 덕분에 쉽게 둔덕에 오른 관우는 한껏 여유로운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으나, 관우는 가볍게 언월도를 휘둘러 무기와 함께 양단했다.
그렇게 관우의 뒤로 일단의 기병들이 따라붙으려 하자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관우는 그 소리의 근원지가 방 자가 새겨진 깃발 아래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흠, 대체 무엇을 노리려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