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유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목이 잘린 장일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유비가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니 있자 옆에 있던 진도가 말 위에서 창으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비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진도는 사방에 알리려는 듯 우렁차게 외쳤다,
“유 사군(使君)께서 적장의 목을 베었다!”
그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잠시 전장의 광기가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비는 진도가 들어 올린 장일의 목을 이내 날려버렸다. 당황한 진도가 순간 유비를 바라보았지만, 잠시 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진도를 향하여 울분을 토하며 달려드는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농민병. 진도는 대장의 죽음과 동시에 사기가 꺾일 거라 예상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유비는 마치 익숙한 것처럼 말을 몰아 달려드는 농민병을 짓밟아 버리고는 대검을 휘둘러 목을 날려버렸다.
“저들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네. 이미 극한의 상황에 몰린 터라 더는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이지. 오히려 자네가 저들의 정신적 지도자를 죽였으니, 마치 순장(殉葬)을 치르듯 목숨을 내던지며 달려들 수밖에 없지.”
유비는 그런 말을 하면서 다시금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 황건의 난에서 겪은 일이 새삼 다시 떠오른 탓이었다. 당시에도 황건적들은 마치 죽음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달려들었다.
추정의 휘하에서 처음 황건적을 상대할 때만 해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상대는 그저 무지몽매한 농민일 뿐, 사특한 교리에 속아 억지로 끌려 나왔을 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목을 날리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그로 인해 공을 쌓고 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비록 현혹된 것이라 해도 반역은 씻지 못할 대죄. 전혀 거리낌 없이 베어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저들의 광기는 유비로 하여금 절로 소름이 돋게 했다. 심지어 그로 인해 악몽을 꾸기도 했다.
새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유비는 분노가 솟구쳤다.
완전히 뿌리 뽑았으리라 여긴 황건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니. 어찌하여 저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도 들었다.
당시의 황건적은 그래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렇기에 기존의 권력을 부정하고, 민중의 편에 서서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그저 호족들의 손에 이용당해 움직일 뿐이었다. 대의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광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악한 이들이 현혹하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 저들을 품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유비가 달려드는 농민병의 가슴에 칼을 꽂고 나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지쳤다고 여긴 것인지, 한 농민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장이 지쳤다! 모두들 달려들어 죽여라!”
그러자 주변에 퍼져 있던 농민병들이 유비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유비는 다가오는 농민병을 막아 내며 뒤로 빠지려 했으나, 그 순간 창 하나가 날아와 볼을 찢었다.
유비가 급히 얼굴을 쓸어 보니,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위연은 순간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유 사군을!”
위연은 말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들었다. 그러고는 곧장 유비를 노린 병사를 향해 내던졌다. 창은 병사의 머리를 그대로 터트려 버리고는 뒤에 있던 병사까지 관통했다.
그제야 조금 분이 풀린 것인지, 위연은 다시 말에 올라 유비의 곁을 지키며 말했다.
“주공, 물러나십시오! 이곳은 이 위연이 지키겠습니다.”
유비가 힐끔 바라보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위연이 한발 빨랐다.
“주공,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신 또한 이런 곳에서 죽어 나자빠질 인물이 아니옵니다. 그러니 일단 주공께서는 뒤로 물러나 보중하시옵소서.”
말을 마친 위연은 몇몇 호위병들과 함께 농민병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유비는 그제야 뒤로 물러났다.
‘내가 경솔했구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흥분해 괜한 피해를 키웠으니.’
위연과 호위병들의 분전으로 유비는 안전하게 군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함께 나선 호위병도 어느새 둘밖에 남지 않고, 주변은 눈이 시뻘게진 농민병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위 아장, 이만 물러나시지요. 이 정도 시간이면 주공께서는 안전히 군영으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위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 그럴 것이다. 나 혼자서도 좀 힘들 것 같구나.”
위연은 차분하게 말을 하고는 창을 부러트렸다. 짧게 창을 잡은 위연은 마치 마지막 응전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저 눈이 벌게져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놈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잡힐 것이다.”
호위병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보였다. 위연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위연은 하루 내내 병사를 조련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유비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이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사군께 필요한 것은 저희 따위가 아닌, 아장입니다.”
호위병의 말에도 위연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위연이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한 농민병이 괭이를 내지르고, 그게 시작이라도 되는 것마냥 주위를 둘러싼 농민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래! 장차 대장군이 될 위연이 너희를 상대해 주마! 모조리 죽여 줄 테니 들어와 봐라! 내가 바로 의양의 위연이다!”
펑!
절체절명의 순간, 관우가 불길을 뚫고 나타났다. 위연은 긴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난 관우를 보며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애써 참으며 혼신의 힘을 짜내었다.
관우가 마치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내듯이 농민병들을 휩쓸어 버리자, 주변은 금세 텅 비고 말았다. 엄청난 무위를 보여 준 관우는 정작 호흡조차 흐트러짐이 없기에 살아남은 농민병들은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한차례 적막이 이어진 가운데, 관우가 스윽, 고개를 돌려 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문장(文長), 큰형님은 어디 계시는가?”
“군영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제가 뒤를 막고 있었습니다.”
관우는 위연의 말에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돌렸다. 그러고는 앞을 막아서고 있는 농민병들을 우후죽순 쓰러트렸다.
“따라와라!”
관우의 짧은 말에 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뚫겠다는 관우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위연은 거동이 어려운 호위병 하나를 등에 둘러업고는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위연의 말에 관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딱 버티고 서서 아무도 자신을 지나쳐 갈 수 없다는 기세를 줄기줄기 풍겨 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상실한 농민병들에게 그런 위세는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광기에 젖은 눈동자를 희번덕대며 하나둘 관우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불쏘시개가 되어 황건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황건은 결코 죽지 않으니, 숨죽이며 기다릴 뿐이다.”
관우는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이죽이듯 말했다.
“황건은 잘못된 길로 나아갔기에 무너졌을 뿐이다. 아직도 그런 혹세무민한 말에 현혹되어 있으니, 용기가 있다면 내게 덤벼 보아라. 네놈들이 자랑하던 현사와 장군들이 모조리 내 월도 아래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마.”
관우의 도발을 들은 농민병들은 눈에 핏발을 세웠다. 관우의 손에 죽어 간 황건의 용장들이 새삼 떠오른 것이었다. 분노기 치민 그들은 더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관우 정도 되는 인물이 그에 당황할 리 없었다. 오히려 맹목적인 행동은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관우의 월도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농민병은 우후죽순처럼 힘없이 쓰러질 뿐이었다.
* * *
위연이 유비의 군영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벌겋게 피 칠갑을 한 관우가 돌아왔다. 말은 완전히 힘이 빠진 것처럼 발걸음에 지친 기색이 완연히 묻어나고 있었다. 관우 또한 심정적으로 크게 지쳤는지, 월도가 추욱 늘어져 있었다.
유비가 놀라 빠르게 뛰어가자, 관우는 힘겹게 말에서 내려 예를 취하였다.
“형님, 우제가 돌아왔습니다.”
유비는 관우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다행이네, 다행이야. 혹여나 아우가 상하면 어쩌나 걱정하였다네. 그래, 괜찮은가?”
“염려해 주신 덕분에 소제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군영에 돌아온 관우가 제일 먼저 유비에게 권한 것은 퇴각이었다. 사실 이미 했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유비가 나서서 장일의 목을 벤 것이야 퇴로를 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불길 가운데를 헤집으며 농민병들을 참살한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형님, 퇴각해야 합니다. 병사들도 대다수 돌아왔으니, 지금이 적기입니다.”
농민병들이 광기에 빠져 큰 난리가 난 듯 보이지만, 실상 죽은 병사들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았다. 전장에 깔린 대다수의 시체들은 농민병의 것이었다.
유비가 약간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관우는 바다에 엎드리며 청했다.
“형님, 제갈 군사의 친우가 꾀를 부려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님의 안위와 병사들의 목숨입니다. 하니 지금 당장 군영을 정리하고 이동해야 합니다.”
유비도 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퇴각하도록 하지. 어차피 아군보다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으니, 이만 돌아가지.”
퇴각 결정이 내려지자, 병사들은 빠르게 군영을 정리하고 전장에서 물러났다.
* * *
적의 퇴각에 방통과 문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전장의 광기가 수그러들자 사람 타는 냄새가 온통 진동했다. 그제야 전장의 참상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조잡한 농기구만을 든 채 유비의 정병을 상대한 농민병 대다수가 생을 달리했다. 개중에는 사지가 찢긴 이도 있고, 온몸이 불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통은 만족했다. 어차피 농민병 따위야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유비가 물러났으니, 다행인 셈이었다.
“저들은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문빙의 물음에 방통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대다수가 죽음을 맞이하긴 하였으나 살아남은 이들은 목숨 값 받기를 원할 것이고, 그 규모는 감당이 어려울 수 있었다.
“흠, 우선은 저들의 감정을 자극해야지요. 이 모든 비극이 유비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을. 그리고 원하는 대가에 한정을 지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일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