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태사자의 무예는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딱 보아도 잘 싸울 것 같기 때문이다.
만두 귀를 보고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듯, 당대에는 팔이 긴 자들이 그러했다. 비장이라 불리는 전한의 명장 이광도 팔이 원숭이처럼 길어 활을 잘 쏘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는 당연한 사실처럼 여겨졌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신체의 변화가 생길 정도라 이는 높은 수준의 활 솜씨와 무술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태사자 또한 그런 기준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태사자가 힘차게 창을 내지르자,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려오던 인물이 그대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분명 둘 다 비슷한 간격의 거리였지만, 태사자의 창이 먼저 적의 가슴을 관통했다. 적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태사자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 전방을 주시했다.
“이제야 대장이 나오나 보군.”
적의 진영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장을 뒤덮는 북소리와 함께 한 인물이 주변 병사들에게 명령하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 태사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태사자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수많은 황건적이 몰려오는 가운데, 당당하게 일기필마로 가르며 길을 열어 나가던 자신의 모습을.
당시 태사자는 북해 태수 공융의 휘하에서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을 상대했는데,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적을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서에 기록되기로는 며칠 동안 활을 쏘아 황건적을 쓰러트리자 결국 더 이상 달려드는 이가 없게 되었고, 그 틈을 타 태사자가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빠져나갔다고 되어 있다.
그 와중에 관해의 투구를 날려 버린 일은 무척이나 유명한 일화인데, 이후 유비로부터 3천의 병사를 받아 관해의 황건적을 완전히 격파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야말로 일도 아니지.”
태사자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부관이 물었다.
“월도를 드릴까요?”
그에 태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어차피 말을 타고 나아가려면 차라리 창이 편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화살은요?”
태사자는 멀리 보이는 적의 대장, 능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관이 꽤 특이한 모양의 화살을 건네주었다. 넓적한 모양의 부형촉이 묘한 각도로 비틀려 있었다.
“일단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어야 저 곰 같은 인사가 달려오겠지.”
태사자는 오랜만에 느끼는 전장의 열기에 웃음을 띠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자신을 압박해 온 모든 부담이 씻은 듯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태사자가 활을 잡고 화살을 메기자, 옆에 있던 부관은 주변을 달려드는 적병들을 정리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태사자의 팔이 뒤로 당겨지며, 근육과 힘줄들이 마치 터질 듯 튀어 올랐다. 마치 강철로 고정시키기라도 한 듯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깊은 호흡이 뱉어지는 순간, 화살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물론 능조 또한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하였으나, 태사자가 쏘아 낸 화살은 너무나도 빠르게 능조를 향해 닥쳐들었다.
화들짝 놀란 능조는 황급히 몸을 꺾었다. 그로 인해 겨우 화살은 피할 수 있었으나, 워낙 급하게 움직인 탓에 허리가 삐끗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능조는 태사자가 다시금 활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자마자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태사자로구나!”
자신을 향해 대노하여 달려오는 능조의 모습에 태사자는 웃음을 흘리며 이번에는 유엽전을 날렸다.
능조는 마치 동물과도 같은 반사신경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대도로 막아 내었다.
순간, 능조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미 태사자와의 거리는 지척에 이른 상황.
태사자가 득달같이 달려나와 창을 내지르자, 능조는 크게 대도를 휘둘러 이를 튕겨 냈다.
하지만 조금 전 화살을 쳐 내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탓인지, 온전히 힘을 싣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태사자의 창은 아주 약간만 밀려날 뿐이었다.
태사자는 급히 창을 회수하며 곧장 방향을 틀어 능조의 옆구리를 노렸다. 이를 시작으로 능조와 태사자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엄청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그 살벌한 기세에 일반 병사들은 감히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양측의 기병들이 두 사람을 둘러싼 채 치열한 공방을 벌여 나갔다.
그렇게 몇 합이나 겨루었을까.
태사자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 몇 차례 무기를 부딪치면서 능조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러자 태사자의 공격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변칙적으로 쏟아지는 태사자의 공격을 능조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아마 몸이 멀쩡했다면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밀어내며 기회를 만들겠지만, 허리 부근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힘을 줄 때마다 머리를 울려 댔다.
결국 태사자에게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며 능조의 몸에 하나둘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결정적인 한 방을 허벅지에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로 중한 상처는 아니지만,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기에는 어려웠다.
능조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아차린 부곡들이 목숨을 내던지듯 싸움에 끼어들었고, 태사자는 굳이 무리해 가며 능조를 쫓으려 하지 않았다.
부곡들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추스른 능조는 태사자를 경계하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황급히 말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태사자는 전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태사자가 옆으로 손을 뻗자, 부관이 다시 화살을 건네주었다.
그런 줄도 모른 채 태사자에게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능조는 그제야 다시 통증이 느껴진 듯 허리를 짚었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태사자를 확인하려는 순간, 그의 목에 한 대의 화살이 틀어박혔다.
곁에 있던 기병들이 놀라 능조를 둘러싸려 했으나, 그 순간 다시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와 목의 대동맥을 갈랐다.
마치 분수가 터지듯 피가 솟구치고, 균형을 잃은 능조가 말에서 떨어지려 하자, 기병들은 급히 달려들어 빠르게 붙잡았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본 태사자는 부관에게 활을 건네고는 바닥에 꽂은 창을 다시금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침착한 어조로 부관에게 말했다.
“난 이대로 적진까지 뚫고 들어갈 거다. 너는 어찌할 셈이냐?”
활을 받아 챙긴 부관은 일순 어이가 없다는 듯 태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도독.”
“그래, 말하게.”
“혹시 제가 안 간다고 하면 받아 주실 것입니까?”
“…….”
“그리고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제가 도독을 내버려 두고 여기 남아 있다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어떻게 되는데?”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입니까? 만일 도독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났다가는 제 부인이 저를 죽이려 들 것입니다. 제가 암만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별말 안 하는 집사람이 말입니다!”
“…….”
순간, 태사자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부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창을 휘휘 저으며 몸을 풀었다.
“그래서 대답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뭘 들으셨습니까? 도독이 가시는데, 제가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태사자는 힘껏 말고삐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미 대장이 죽었으니, 적들은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대처할 겨를도 없을 것이네. 아니, 어쩌면 더욱 흥분해서 달려들지도 모르지만, 어떤 상황이든 간에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
말을 마친 태사자는 빠르게 말을 몰아 도망치는 적의 뒤를 쫓아갔다.
* * *
사실 태사자의 말처럼 능조가 아직 숨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거의 이르러 있었다. 본진에 도착한 기병들은 급히 능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의원을 찾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능통도 급히 능조에게 달려왔다. 능조는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능통의 모습에 가만히 손을 잡았다.
피가 워낙 많이 빠져나온 탓에 정신이 몽롱한 지경이지만, 어디서 힘이 났는지 능통의 손을 잡고서는 겨우 입을 열었다.
거의 절반은 새어 나가는 공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능통은 능조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고자 하려는 말을 유추해 냈다.
― 미안하다. 네가 옳았구나.
이 순간, 능통은 능조의 마지막 유언임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의원이 능조의 목을 누르고 있는데도 전혀 지혈이 되지 않고 붉은 피가 흥건히 새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능통이 안타깝게 부르짖었으나, 능조는 끝까지 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군을 물리고, 여 중랑장과 같이 석성에서 전투를 준비하여라.]그때, 밖에서 다급한 징소리가 들려오고, 나서려는 능통을 능조가 힘겹게 잡아끌었다.
[네가 상대할 인물이 아니다.]능통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한 듯 능조는 힘겨운 숨을 한 번 토해 내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능통이 창을 쥐고 말했다.
“퇴각 나팔을 불어라. 진 내의 모든 병사들을 모아 적의 대장과 기병을 막는다.”
능통은 아버지가 죽음에도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에 부곡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움직였다.
* * *
태사자는 적을 쓰러트리는 와중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적의 움직임이 여전히 체계가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대장의 죽음으로 겁에 질리거나 복수에 미쳐 날뛰어야 하는데, 너무나 침착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병사들을 장악해 지시를 내리는 인물이 있다. 역시 세상에 인재는 많군.’
태사자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그 인물을 죽여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놈들의 대장을 죽인 이가 여기 있다! 복수를 할 자는 없느냐!”
몇몇 부곡이 태사자의 말에 튀어나가려 하자, 능통이 얼른 어깨를 내려치며 제지했다. 부곡은 뒤를 돌아보며 항변하려 하였으나, 능통의 붉게 물든 눈동자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가장 비통한 사람은 능통일 테니,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자신의 도발에도 적이 달려들지 않자, 태사자는 다시 한번 소리 높여 외쳤다.
“역시 역적의 도당이라 할 만하구나! 의(義)도 없고, 충(忠)도 없으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 그야말로 금수나 다름없는 작자들이로다. 하긴 네놈들의 대장도 마치 싸움에 진 개마냥 꼬리를 말고 도망치다가 뒈졌으니, 그 장수에 그 부하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