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참을 수 없는 모욕에 능통뿐 아니라 병사들 전체의 사기가 흔들릴 정도였다.
의(義)와 충(忠), 효(孝)는 당대에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였다. 그런 품격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은 무식한 야만인과 다른 바 없다는 의미와 일통하는 바.
게다가 야만인이라는 인식은 평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강동인에게 꽤 잘 먹히는 도발이었다.
“하긴 손가의 놈들 모두가 배운 것 없는 야만인이나 다름없지. 그러니 전국옥새에 혼이 팔려 역모를 꿈꾼 것이 아니더냐? 결국 비참하게 죽은 손견뿐 아니라 역적의 씨앗인 손책도 마찬가지. 간교한 원술 밑에서 뒤통수를 친 것도 모자라 작금에 이르러서까지 황상을 외면하니, 그런 놈의 수하라면 당연히 금수 같은 족속일 뿐이겠지. 아니 그런가?”
인간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모욕에도 병사들은 얼굴만 붉힐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려 움직이는 법조차 잊어버렸느냐? 그야말로 짐승에 어울리는 짓이구나!”
그 순간, 더는 들어 주지 못하겠다는 듯 능통이 외쳤다.
“아버지의 유지는 최대한 병사들을 살려 퇴각하라는 것이었다! 의와 충? 그런 것은 정당한 주인에게 바쳐야 할 덕목이다! 그러니 충의를 안다면, 나를 따르라!”
“우와아!”
순간, 태사자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 능조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아비의 원수를 그냥 보내주려느냐!”
“네놈은 반드시 죽일 것이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목을 씻고 기다리거라!”
태사자는 연신 울려 대는 나팔 소리와 함께 능조의 군세가 퇴각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병사들이 워낙 단단하게 방진을 지키고 있어 기병으로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결국, 한숨을 내쉰 태사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난전이었다면 진을 뭉개 버리면서 파고들 텐데, 능통은 마치 그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 방어에 집중했다.
태사자는 능통의 실력을 인정하고 병사들을 뒤로 돌리려 하였다. 이대로 전투를 지속해 봐야 별 이득도 없고, 어차피 적의 수장을 죽였으니 쉬이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능조의 아들이 범상치는 않으나, 나중에 죽이면 되겠지.’
“퇴각한다!”
태사자의 선언에 부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적진으로 파고들어 고립되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아 올린 전공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니 말이다.
부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사자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냥 이렇게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활이라도 드릴까요?”
태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능통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부곡들이 두꺼운 방패들을 든 채 혹시 모를 화살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마치 태사자를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저걸 보게. 아비가 죽었는데도 흥분하지 않고 군을 이끌고 있으니,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야. 게다가 주변 병사들도 결사의 눈빛을 다지고 있으니, 괜한 화살만 낭비하게 될 테지.”
태사자는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저들을 처리하기는 어렵겠다. 적병이 퇴각하면 고 도독과 육손이 움직일 테니, 그때를 기다리자.”
부관은 육손이라는 말에 살짝 놀라 눈을 껌벅였다. 뿐만 아니라 기병들도 약간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간 예장에서 월족을 상대하고 파양 일대를 정리할 때 육손이 보여 준 전술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아무리 적이라고는 하지만, 피난민을 쫓는 월족을 유인하여 모조리 불에 태워버렸고, 그로 인해 화공(火工) 또는 소화공(小火工)라는 별명까지 얻은 육손이다.
그런데 그가 군을 끌고 움직인다 하니, 이번엔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몰라 불안한 것이었다.
“도독, 설마 저희가 여기 있는데 불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태사자는 태연하게 수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불이라…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군.”
순간, 부관은 눈을 크게 뜨고 태사자를 바라보았다. 소화공에게 물든 게 아니냐는 걱정이 담긴 표정이지만, 태사자는 오히려 반기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을 불태워라.”
“소용없을 것입니다. 제가 잠깐 둘러 봤는데 이곳에는 군량도 얼마 없고, 불을 붙인다 해도 금방 꺼질 것입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건 일반 병사들이 아는 바가 아니니까. 그리고 혹시 아느냐. 저 자라 같은 놈들이 등껍질을 벗고 나올지.”
태사자의 명에 기병들은 불을 질렀다. 그러자 퇴각하던 병사들은 급작스러운 화마에 놀라 공황에 빠져들었다.
“군영이 함락되었다!”
태사자의 지시를 받은 기병들이 거짓 사실까지 퍼트리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퇴각하는 병사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정돈된 후퇴가 아닌, 패닉에 빠져 이리저리 흩어지는 양과 같아 보였다.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사냥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쉬운 전투. 기병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인간 사냥을 시작하였다.
한편, 능툥은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대자 대장기를 들어 올렸다. 깃발을 보고 병사들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화가 되고 말았다. 적에게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리는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머리를 꺼냈구나, 자라야!”
병사들을 우후죽순 쓰러트리던 태사자가 깃발을 보고 곧장 말 머리를 돌려 달려나갔다. 그에 부관을 비롯한 다른 기병들도 뒤를 따랐다.
태사자가 활을 당겨 능통을 노리자 근처에 있던 이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부관이 나서 그들을 처리하였다.
이윽고 활시위가 놓아지고, 능조 때와 마찬가지로 기괴한 소리가 나는 화살이 능통을 향해 쏘았다.
그러나 능통은 제 아비와는 달랐다. 무예는 이미 능조를 뛰어넘었으며, 거기에 냉철한 두뇌까지 지닌 인물이었다.
능통은 태사자의 화살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금 연달아 유엽전이 날아왔으나, 부곡들이 능통을 둘러싸며 이를 막아 내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태사자는 아쉬운 웃음을 흘리며 창을 들어 올렸다. 마치 도발하듯 겨누었으나, 능통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군을 물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태사자는 잠시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대로 계속 나아가 능통을 노릴지, 아니면 이쯤에서 물러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놈들이 보통은 아니지만, 도독께서 힘을 쓰면 노리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왠지 못 잡을 것 같은 느낌이 크게 든단 말이야.”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도 태사자는 창을 움켜쥐고는 능통을 향하여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러자 능통의 곁을 지키고 있던 부곡 몇이 태사자를 향해 마주 뛰쳐나왔다.
하지만 달리 태사자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몇몇 부곡을 가볍게 쓰러트리자, 주변에 있던 일반 병사들까지 앞을 막기 위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그들은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능통을 지키기 위해 태사자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태사자는 자신의 몸으로 길을 막으려는 병사들을 마치 비웃듯 놀라운 기마술을 선보였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앞을 막아서는 병사들을 피한 것이다.
이윽고 대장기가 눈앞에 보일 정도로 태사자가 따라붙자, 놀란 능통이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그때, 부곡 중 누군가가 능통이 들고 있던 깃발을 빼앗아 엉뚱한 곳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름 아닌, 능조의 시신을 등에 메고 있던 이였다. 그러자 몇몇 부곡들도 얼른 그 뒤로 따라붙었다.
능통은 자신의 명도 없이 움직이는 부곡들을 말리려 하였으나, 다른 부곡들이 먼저 말했다.
“계속 달리십시오. 주인께서도 이해할 것입니다.”
능통이 뭐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뒤에서 미친 듯이 쫓아오던 태사자가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그 살벌한 모습에 잠시 망설이는 사이, 태사자는 대장기를 든 부곡을 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장기를 든 이들을 따라잡은 태사자는 가볍게 창을 휘둘러 후미에 위치한 부곡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차근차근 부곡들을 참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능조를 업고 있던 부곡까지 목을 베어 버린 태사자는 바닥에 떨어진 능조의 시신과 대장기를 살폈다.
순간, 태사자는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화살을 막아 낼 정도라면 무예가 출중할 터인데, 너무도 손쉽게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가짜인가?’
천천히 시체를 뒤집어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일 뿐이었다.
아까 능조의 아들임을 자처하며 병사들을 이끌던 이는 영웅건을 매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이자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빌어먹을, 감쪽같이 속았군.”
아쉬워하는 태사자에게 부관이 달려와 말을 건넸다.
“강을 건너기에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에 태사자는 남은 적의 무리가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혹사한 터라 말의 상태가 도저히 따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사자는 멀리 사라지는 적을 향해 소리쳤다.
“아비의 시신까지 버리는 불효, 불충, 불의한 능가의 아들은 들어라! 나 태사자가 네놈을 반드시 벌하겠다!”
그에 능통 역시 지지 않고 받아치듯 소리쳤다.
“불효, 불충, 불의한 능가의 인물은 듣고 있다! 비록 지금은 물러나지만, 네놈은 내가 반드시 목을 잘라 부공께 바칠 것이다!”
그때, 태사자를 향해 멀리서 누선 한 척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살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물론 거리가 있어 태사자에게까지 날아오지는 못했지만, 딱 보아도 경고의 의미가 여실히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태사자는 활을 꺼내고는 고개를 돌려 부관에게 말했다.
“소전(小箭)을 주게.”
부관이 기다란 대나무 통을 건네자, 태사자는 주저 없이 활에 메겼다. 이전과 달리 활을 당기는 태사자의 모습은 더없이 진지했다. 아마도 화살에 매달린 죽통 때문인 듯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태사자는 능통의 머리를 향해 활을 조준하였고, 강하게 당겨 쥔 시위를 손에서 놓았다.
씨잉.
심상치 않은 소리를 울려 대며 날아가는 화살에 놀란 부곡들이 능통의 앞에 서서 허겁지겁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에 조심스레 방패 사이로 앞을 내다보는 순간, 다시금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방패를 관통한 화살이 부곡의 목을 뚫고 그 뒤에 있는 병사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그 믿을 수 없는 관통력에 능통을 비롯한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 이 정도 위력을 가진 화살이라면 방패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능통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목이 뚫린 병사를 지혈하며 활을 쏘아 보낸 태사자를 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죽이리라!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