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순심이 꺼낸 말은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순채와 곽혁의 혼사를 통하여 두 집안이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곽가가 조조에게 출사한 이후, 영천 곽씨는 조씨 일족에게 가장 가까운 가문이 되었다. 조가의 눈과 귀가 되어 시의적절하게 힘을 행사한 것이다.
바로 그 조영대(鳥影隊)의 수장은 곽가의 아들인 곽혁이 맡고 있었다. 물론 조조가 죽으면서 그 힘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지위였다.
“한데 순가와 곽가의 화합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승태는 어렴풋이 순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곽혁이 순가와 친밀해지는 것은 순욱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 주는 행위였다.
승태로서는 어차피 순욱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여겼기에 그리 나쁜 일이라고는 판단되지 않았다.
하지만 순심은 전혀 뚱딴지같은 말을 꺼냈다.
“순 사공은 지금도 낙양을 포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승태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만약 승태가 엉뚱한 곳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낌새만 보여도 영천 곽가와 함께 창을 겨눌 것.
‘낙양의 헌제를 압박하는 데 힘을 다 쏟는 줄 알았는데, 아직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나 보네. 그 와중에 사방의 인재들을 엮어내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법도하고.’
승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순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의 순 사공은 생각이 한쪽에 몰려 있습니다. 예전의 전풍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순 사공에게 힘이 더 실리게 되면 무슨 일을 일으킬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왕 사도(왕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순심이 왕윤의 예를 든 것은 다름 아닌 승태가 여포의 사위이기 때문이었다. 뭐,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숙까지도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말씀은… 설마 순 사공이 주군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
“유씨(劉氏)가 아닌 인물이 왕의 자리를 노리는 것 자체가 황조를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노숙은 순간 한숨을 내뱉었다. 차라리 손권이나 유비, 유표, 원씨 가문과 같은 적이라면 어찌 상대할지 생각해 보겠지만, 그것이 내부의 적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지금은 황제에 관한 문제로 약간의 논란이 있으나, 그간 쌓아 온 순욱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지 않았다. 도리어 낙양을 함락시킬 수 있음에도 포위만 하고 황제에게 다시 허도로 돌아올 것을 권하는 모습에 더욱 강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조조가 반동탁 연합군에서 의인임을 표방한 것처럼 순욱 또한 충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
물론 승태의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미친 짓이었다. 낙양의 백성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상황에서 황제의 결단을 종용하기 위해 포위를 풀지 않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었다.
‘미친 거지. 백성들이 어찌 되든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우는 것이니 말이야. 그나마 서주와 양주의 소출이 커서 지금껏 버티는 것이지.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중앙으로 바쳐지는 소출 대부분이 지금 낙양을 포위하는 데에 쓰이고, 나머지는 연주에서 원가 세력과 싸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족들은 순욱의 행동을 마치 충의에 의한 것처럼 여겼다.
‘정말 순 사공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승태는 의자에 몸을 묻고는 입을 열었다.
“휴우, 지금 말하는 바가 순 공의 말대로 흘러간다고 해도 제가 혼사를 함으로써 순 사공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순채가 순채를 포섭하여 이중간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간(死間)과 생간(生間)으로 거짓된 사실을 알리며, 한편으로는 순가를 염탐하여 후께 알릴 것입니다.”
승태는 순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부부 사이만 가까우면 능히 가능한 일이겠군요. 더욱이 지아비인 나를 따르며 영광을 함께하게 될 터이니, 본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테고. 본후와 순 공, 노 종사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니, 비밀이 새어 나갈 일도 없겠군요.”
손자병법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읊자, 순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순채는 향간이자 내간이요, 반간이며 사간이고, 생간이니 후의 숨겨진 한 수로서 보구가 될 것입니다. 능히 뛰어난 지혜로 간첩을 이용하여 필히 후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순심의 말에 승태는 좀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여식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겠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복심을 털어놓으니, 일단 믿어 볼 필요는 있었다.
“알겠소이다. 말씀대로 내 순가의 여식을 만나 보겠습니다.”
그제야 흡족한 듯 순심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숙과 둘만 남게 된 상황에서 승태는 차 한 모금을 들이켠 후,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형님이 보시기엔 어떤 것 같습니까?”
노숙은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천하의 판세를 크게 바라보는 노숙으로서도 지금의 상황은 영 판단이 서질 않았다.
현재 손가에 관한 문제는 손권의 항복과 이주 계획을 통하여 어느 정도 일단락될 것이다. 물론 개중에 반기를 들어 올리는 인물도 있겠지만 그런 자잘한 일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손권이 백기를 든 상황에서 원하던 대가를 얻어 냈으니 손가를 지지하는 이들은 군소리 없이 따를 테고, 반대하는 이들 또한 당장은 명분이 없는 이상 무슨 일을 저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조정의 일은 너무나 복잡했다. 만약 승태가 반기를 들어 올리면 고순은 분명 이쪽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려 허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 뒤는 어찌 되겠는가.
승태는 제2의 왕망이나 동탁이 될 것이다. 불안한 지지 기반은 사면초가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같은 집안인 조가에서도 승태의 뒤를 노릴 수 있었다.
노숙의 생각에는 승태가 역적이 되어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노숙의 머릿속에서 승태는 천명을 받아 한 걸음씩 올라가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자리에 올라야 했다.
물론 그 길을 막는 이들을 물리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신하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어렵구나. 단번에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 것 같다. 조정과 깊이 연관된 것이 이번에는 문제가 되었구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가에서도 순 사공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듯하니, 어찌 수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노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노사(진규, 진궁)께서 모두 당신들의 일에 몰두하고 계시니… 참으로 어렵다, 어려워.”
“그래서 아무런 책안이 없겠습니까?”
“네 생각은 어떠하냐? 혼사를 거부할 생각이냐?”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혼사를 거부하면 분명 사달이 날 것인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비록 상전을 모시는 일과 같겠지만, 모두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받아들여야지요. 어찌하겠습니까, 후처로라도 들이겠다는데 말입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어떤 호족들도 쉬이 너에게 여식을 내밀지 못하겠구나. 천하의 대세가 순가의 손에 있는 상황에서 순가의 여식이 후처로 들어오는데, 누가 감히 말을 꺼내겠느냐.”
노숙의 이야기를 들은 승태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면 순가는 꽤 거래를 잘한 셈이었다. 남편 잃은 과부를 승태에게 보내 다른 집안과 혼맹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니 말이다.
“순 사공은 역시 대단하시네요. 하나의 수로 협박과 차단, 그리고 경고까지 담아냈으니. 정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승태는 과거 순욱이나 다른 이들에게 매달리기만 하던 어리숙한 아이가 아니었다. 이제는 하나의 세력을 이끄는 당주(黨主)이자, 두 주를 차지한 군주(君主)였다.
“우선 순가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뭐, 지금 딱히 할 수 있는 바도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진짜 막 나가면 겨우 마음을 돌린 손가가 다시 양주로 쳐들어올 수도 있음입니다.”
“설마 그럴 일이야 있겠느냐. 우리와 결이 다른 인물을 보내면 모를까, 이미 한번 순가에 칼을 들이민 인물이다.”
“못 해도 골치 아픈 인물이 이곳으로 부임해 올 것입니다. 자사 자리가 비어 있으니, 그 자리에 순가에 충성하는 인물이 자리에 앉으면 사사건건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노숙은 수염을 쓰다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낙양의 일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니, 황제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나올 때가 된 것이다.
그 후에는 빤한 상황이었다. 혼란해진 하북을 집어삼키는 일만 남은 것이다.
“서북의 마씨도 자연스레 정리되었으니, 하북을 집어삼키면 남은 건 남진밖에 없을 테니…….”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의 모든 것이 순가의 손아래 통제될 것입니다. 형님께서 만든 제도들 역시도 순 사공을 설득하지 못하면 한꺼번에 쓸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필시 그렇게 되겠지요.”
노숙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간 죽을 둥 살 둥 만들어 낸 제도가 백지화된다는 것은 절대 겪고 싶은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넌 어찌하고 싶으냐?”
다시금 난제를 넘겨받은 승태는 머리를 두드렸다. 솔직히 말해 상황이 불리하거나 유리한 것은 아닌 상황이었다.
순욱이 높은 곳에 서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목숨에 위협이 되거나 가문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따를 뿐.
“당장 순 사공이 저를 견제하고 있으니, 다른 일이 벌어져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더 어려운 일들을 순 사공께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노숙은 승태의 말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진 도독과 이야기해 보마.”
“진 도독보다는 친우분인 자양(유엽) 공과 함께하시지요. 단이도 같이 데려가시고요.”
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등도 모략에는 나름 뛰어나긴 하나 대부분이 군사와 관련된 쪽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에는 유엽이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달라졌구나.”
승태는 노숙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지킬 것이 많지 않습니까.”
“알았다. 먼저 일어나 보마.”
노숙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승태는 다과를 씹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 머리가 너무 아프네. 차라리 그때 조조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