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순심이 돌아가고 난 후, 노숙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둘로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노숙은 유엽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유엽은 오랜만에 만난 노숙을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작금의 수춘에서 유엽과 가까운 사람은 노숙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유엽은 직접 대문까지 달려 나와 노숙을 안내하며 노복들을 닦달하여 주안상을 차리게 했다. 그에 노숙은 좋은 차와 약재를 꺼내 유엽에게 건넸다.
“이건 또 웬 약재인가? 딱 보니 후께서 하사한 물건인 것 같은데 말이야. 대체 뭘 부탁하려고 이런 귀한 것들을 꺼내는지 불안하군.”
차를 싼 종이 위에 새겨진 낙관을 바라보던 유엽은 수염을 꼬며 묘한 표정으로 노숙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주군께서 부탁하시는 일인가?”
그렇다는 듯 노숙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엽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노숙에게 얼른 움직이자며 재촉하였다.
그에 노숙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가 그리도 급한가. 우선 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등청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네.”
“그게 무슨 말인가. 주군께서 부르면 당장 달려가야지.”
“그게 그렇지가 않대도. 워낙 복잡한 일이기도 하고, 후계자로 내정된 공자를 불러서 설명해야 하기도 하네. 그러니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지.”
노숙의 제지에 유엽은 주춤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입술에 침을 발랐다. 지금 들은 내용대로라면 상당히 심각한 일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대공자께서 같이 오시는 것인가?”
“그래. 아무래도 주공께서는 원소나 유표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는 듯하시네.”
노숙의 말을 들은 유엽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으로서 조단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인 탓이었다.
“뭐, 그런 우려를 모르는 건 아니네만, 괜한 걱정일세. 대공자는 적장자일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뛰어나니, 주군께서 만드실 새로운 세상에 가장 알맞은 성군이 될 것이네.”
노숙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유엽을 바라보았다. 비록 방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유씨인데, 새로운 세상이니 성군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니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누가 누구를 교육하고 세뇌하는지 모르겠군.’
세간의 말로는 유엽이 조단의 곁에서 붙어 높은 자리를 노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노숙이 바라보는 유엽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되레 조단에게 홀려 가장 높은 곳에 올리고 말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모습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노숙에게나 보이는 것이지만.
“그건 뭐, 그렇다고 치지. 하지만 행여라도 그런 말은 주군 앞에서 하지 말게. 주군의 춘추가 이제 겨우 이립 중반을 지나고 계시니, 아직 창창한 시절이 아닌가.”
“물론이지. 내가 그런 것도 분간 못 하는 머저리인 줄 아는가.”
“…….”
조단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팔불출이 되어 버리는 유엽이지만, 노숙은 애써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유엽은 노복을 불러 노숙에게 받은 차와 약재를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정색하며 물었다.
“자, 이제 이야기해 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정에서 사람이 온 것은 알고 있는가?”
“듣긴 하였네. 순가의 인물이라 했으니, 혼사 문제였겠군.”
“맞아, 잘 아는군. 그럼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알겠는가?”
“뭐, 별것이야 있었겠는가. 주군에게 좀 자중하라는 것이겠지. 순 사공으로서는 새로운 제도를 세우는 일이 영 달갑지 않을 테니 말이야. 비록 양주 땅과 서주 일부라고는 해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다른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테고. 거기다가 민가에 도는 소문으로는 주군이 토덕의 성은을 받았다고 하니, 역적으로 몰리기 딱 좋지.”
“허, 그런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는 이들이 있단 말인가. 유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차라리 저들이 직접 나서 밭이나 한번 갈아 보면 알 터인데.”
노숙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말하자, 유엽은 껄껄껄 웃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수춘의 관리들뿐이네. 아직도 서책이나 붙잡고 글귀 하나에 온갖 해석을 늘어놓는 게 유자라는 족속 아니던가. 그들이 보면 도리어 우리더러 비루하다고 욕을 할 것이네. 유자로서의 본분도 잊은 채 직접 자와 말뚝을 들고 다니며 측량을 하고 농기구를 들어 밭을 갈며 망치를 들어 올린다고 말이야.”
“유자라면 마땅히 백성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리고… 아니네. 그 이야기는 이쯤 하지. 그래, 뭐, 그런 이유로 주군을 몰아가는 인간들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마땅히 순 사공에게 어려운 숙제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승태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 유엽의 태도에 노숙은 답답하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신으로서는 도대체가 감이 오지 않은 탓이었다.
원상이 난을 일으킨 지금이라면 하북을 손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둘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어 보였다. 그러다 언뜻 한 가지 생각이 노숙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원상으로 하여금 순 사공의 뒤통수를 치게 할 생각인가? 하지만 순 사공도 그에 대해 충분히 대비해 두었을 것이네.”
“자네 말대로 원상이 순 사공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야 간단하지. 하북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 일어날 것이네.”
“그러니 말일세. 내가 말한 대로 순 사공께서도 모르지 않을 텐데, 어찌 그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그걸 어렵게 꼬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겠는가?”
“끙, 나로서는 도무지 모르겠군. 어차피 나는 그런 쪽 능력은 떨어지니, 자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그럼 나 먼저 일어날 테니, 준비하고 등청하게.”
“그래, 알았네.”
* * *
승태는 유엽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엽은 모처럼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다는 기쁨에 열성적으로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하여 그런 이유로 순 사공은 주군을 조련하려 드는 것입니다.”
조련이라는 말이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승태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해법이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소?”
“주군께서 생각하신 것이 모두 옳습니다. 순가의 여식을 받아들이고, 순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렇군. 그다음은 어찌해야겠소? 순가의 여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지 않겠소. 분명 하북 정벌이 끝나면 문제가 생길 텐데.”
유엽은 승태의 물음에 전국의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낙양에 머물러 있던 황(皇)이라는 말을 쓰러트리고, 하내에 놓인 말을 움직였다.
“낙양이 떨어지면 순 사공은 분열된 하북을 차지하기 위해 남은 힘을 집중할 것입니다.”
병주 일대에는 ‘가(賈)’의 말이 놓여 있고, 하간에는 원상, 기주의 원담, 유주의 원희, 그리고 청주는 저수의 말이 놓여 있었다. 승태는 그 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거, 원소가 하북을 지배할 때와 지금은 굉장히 다르다. 이렇듯 어지러이 나눠진 상태에서 유능한 장수들이 풍족한 물자로 밀어붙인다면, 하북이 얼마나 버티겠는가.’
“순 사공이 전력을 집중시킨다면, 하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순 사공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것입니다. 사실 주군께서 원하는 것은 양주를 온전히 자신의 권역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 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인즉, 순가와 선을 그을 시간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마치 선심 쓰듯 승태의 행동을 묵인해 왔는데, 이제 그런 시간은 끝이 났다.
이미 살을 찌울 만큼 찌운 서주와 양주를 날름 집어삼키기 위해 순욱은 칼을 들이밀 것이다.
승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엽은 말을 이어나갔다.
“사공연속(순심)이 말한 대로라면 전풍이 없는 원담은 기주 호족들에게도 버림받을 것이고, 전풍과 친한 저수는 청주의 군세를 이끌고 원담을 구하려 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원희와 고간 모두 원담과 원한이 있으니, 결국 하북의 정세는 원담과 원상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게 되어서는 별로 시간을 벌 수 없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그 둘의 승부로 하북의 대세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원소의 적자인 원상은 어떻게든 하북을 차지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복수를 하려 할 테니까요.”
“순 사공이 이미 대비를 하지 않겠는가? 분명 원상의 측근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 두었을 것이네.”
“그러니 저희가 그 간자를 치워 주어야 하겠지요.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받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 * *
낙양 둔영에서 갑주를 입고 있는 순욱은 과거와 달리 이제 제법 군주와 같은 풍모를 드러냈다.
과거에는 그저 학자와 같은 느낌만 존재했다면, 지금은 꽤나 노련한 권력자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순욱이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수결을 하고 있을 때, 병사와 함께 순심이 들어왔다.
“형님, 오셨습니까.”
순욱이 밝은 얼굴로 맞이하자 순심은 예를 표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순욱이 다가가 몸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찌 동생에게 그런 대례를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형제라 한들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분이 아니십니까. 마땅히 예를 갖추어야지요.”
순심의 고지식한 답에 순욱은 쓰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저 가신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쉽게 해결하였습니다.”
“그것참, 능구렁이 같은 수춘후를 상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순욱이 순심의 손을 토닥이며 치하하는 순간, 급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막사 안으로 전령이 부랴부랴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다. 그러고는 기쁜 듯한 목소리로 순욱에게 말했다.
“사공, 낙양에서! 낙양에서 항복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더니 품에서 비단으로 작성된 조서를 꺼내 공손히 올렸다. 이를 순심이 받아 확인해 보고는 순욱에게 전하였다.
순욱은 황제에 대한 예를 표하며 조서를 받아 들고는 무릎 꿇고 읽으며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폐하께서 스스로 깨우쳤구나. 전풍과 폐하를 부추긴 역적들을 포박하고 지금 행차하시고 계시다 하니, 내 나아가 폐하를 맞이할 것이다. 준비하여라!”
전령이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나자, 순심은 조금 우려 섞인 말로 순욱에게 주의를 주었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가셔야 합니다.”
“폐하를 맞이하는 자리입니다. 한데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선 예전에 패공을 죽이려고 일을 꾸미신 분입니다. 당시 패공은 무예가 뛰어난데다 미리 사태를 알아차려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사공께서는 일이 일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