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순욱이 전풍을 처형하고 난 후에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관작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였다. 조조가 그리한 것처럼 황제와 친밀한 이들을 모조리 궁에서 내쫓아 버린 것이다.
이후, 인맥들을 활용하여 요소요소에 자신의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문의 여식들을 권력자에게 시집보내 끈끈한 혈연으로 결속을 다졌다.
승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채와 혼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태에게 장군의 직을 내린다는 조정의 발표가 내려왔다.
당연히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주변에서 온갖 선물들이 밀려들었고, 그 처리에 승태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사치를 부리는 성격도 아닌데다 이런 일을 처리해 주던 창희와 오 노인도 앓아누워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승태는 약재 같은 물건은 화타 선생에게 넘기고, 귀중품들은 잘 나누어 각 별채로 보내 주었다.
그렇게 한차례 난리를 치른 승태는 그간의 조정 상황과 조비가 저지르고 있는 행동에 대해 보고받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서서를 바라보았다.
“조비가 갑자기 지랄병이라도 난 것입니까? 어찌하여 세가를 이끄는 인물이 가문 사람들을 죽이려 한단 말입니까?”
노숙 또한 마찬가지 심정인 듯 승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주변의 모든 이들이 순가와 혼사를 맺고 있는데, 조비 본인만 제외된 것에 화가 난 것 아니겠습니까?”
노숙의 탄식에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서서였다. 그러나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조비가 어떤 인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비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릴 적에도 조앙의 죽음에 대해 따져 물으며 날 죽이려 했는데,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한다면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서서는 멍하니 승태를 바라보았다.
“하기야 지금 패공을 겪은 적이 없으니 자네는 잘 모르겠군.”
“정말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래도 집안의 가족이 가장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일 텐데도 그런단 말입니까?”
“바로 그 집안의 인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그리고 지금 조씨 가문의 웃어른들도 패공의 향락에 돈을 대지 않으니, 더욱 그리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승태는 사마의가 잠깐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명확한 증거는 없으니 그저 의심만 할 뿐이었다.
이내 상념을 털어낸 승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손권의 항복을 이용하여 양주를 얻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하지요. 자양이 말한, 원가를 부추겨 하북을 혼란에 빠트려 시간을 버는 일도 중요하고요. 어차피 패공의 가족사야 내부의 일이니, 우리가 손을 대어서도 안 됩니다. 그 성격 안 좋은 조비와는 마땅히 척을 질 것이고, 혹여나 하후가와도 사이가 틀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게 맞는 말이지만, 일전에 약조한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인상을 찌푸리는 노숙의 모습에 승태는 유려한 필체로 적힌 정부인의 서신을 꺼내 건넸다.
노숙은 공손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천천히 읽어 내려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서신을 다시 승태에게 돌려준 노숙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정부인의 서신으로 명분이 생긴다 한들 어쩌겠습니까, 본가(本家)에 영향을 끼칠 방법이 없는데. 이전에도 가문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중달에게 막혀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제 머리로는 도저히 무리이니, 자양(子揚)이라도 불러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승태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유엽은 원상이 순욱을 괴롭히는 일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들어가는 금액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승태는 돈이 아까워 속이 뒤집혀 버릴 테니까.
또한, 진등은 태사자와 고람을 앞세워 손권에게서 세력을 이양받고 있었다. 여기저기 머리 아픈 일들을 맡겨 두고 있기에 그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지금 모두가 바쁜 와중에 집안일까지 맡기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대로 포기하실 요량입니까?”
“물론 그리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그들 중에는 손가의 여식도 있으니, 양주를 얻기 위해서라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손분의 딸이 조창과 혼사를 하여 패국에 있으니, 혹여나 진짜 문제가 생긴다면 양주 점령이고 뭐고 모든 일이 수포가 될 수 있었다.
두 가문의 연결점인 인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손가와 조씨의 합종(合從)은 더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군. 양주에서 나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을 생각하고 말이야.’
조비의 입장에서는 승태의 세력이 더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승태와 친분이 두터운 가족들을 먼저 쳐 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조홍이 안으로 들어왔다. 승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등장에 놀라는 가운데, 노숙과 서서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홍의 뒤로는 그를 막으려는 노복들이 보였다.
“흥, 수춘후 자리에 올라서도 여전히 등청하지 않고 자택에서 일을 결정하느냐? 네놈도 역시 조가의 피가 흐르나 모양이다. 명공께서도 언제나 곽가를 끼고 자택에서 일을 결정하였으니 말이다.”
조홍은 노숙과 서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여전히 띠꺼운 표정으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종숙.”
한 박자 늦은 승태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조홍은 걸음을 옮기어 상석에 앉으려 했다. 그러자 서서가 굉장히 고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조홍이 마치 따지듯 승태를 보며 묻자, 승태는 직접 조홍을 상석으로 안내하였다. 조홍은 서서에게 그것 보라는 듯 놀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참 별난 놈이라니까. 술 한 방울 없는 상이라니, 명공이 봤으면 무덤에서 기어 나왔겠다. 그러면서 대체 어떻게 술에 관한 시는 그리도 잘 짓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하여튼 그건 그렇고, 소식은 들었겠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자, 조홍은 아미를 긁으며 말했다.
“패공의 행동 말이다. 정부인께서 너에게 가장 먼저 서신을 보냈을 것 아니냐. 앙이를 그렇게 보내시고 난 후에 너를 친아들처럼 여기셨으니 당연히 그리하시지 않았겠느냐. 솔직히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너 때문이지. 다 네놈을 공으로 올리려다가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 아니냐.”
순심뿐 아니라 조홍까지 나서서 갑자기 공(公)의 자리를 언급하니, 딱히 관심이 없던 승태조차 새삼 큰일임을 직감했다.
조조와 같은 커다란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로 공의 지위에 몇 명을 올리려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순욱 또한 있을 것이고.
“흠, 왕공(王公)의 자리를 체계화하겠다고 말씀하시는 순 사공께서 공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니, 기분이 조금 묘하군요.”
조홍은 답답하다는 듯 찻잔으로 상을 몇 번 두들기다가 말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지금 상황을 말이다. 명공과 같이 찍어 누를 힘이 없으니 군을 이뜨는 이들에게 공후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지. 그러면서 한조에 도움이 안 되는 황족들을 정리할 명분도 만들고 말이야. 하여튼 넌 어찌할 것이냐?”
“도울 것입니다.”
“돕는 것은 당연하고, 어찌 도울 것이냐, 이 말이다. 비, 아니, 패공께서는 성질이 더러우니, 분명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대비는 해 두어야지.”
“무슨 대비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설마 군을 일으키겠습니까? 사방이 적인 상황인데 말입니다.”
“하기야 그놈 옆에 원앙 형님이 계시니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그래도 혹시 모른다. 암살자 정도는 충분히 보낼 수 있는 놈이지 않으냐.”
“이 수춘으로요? 하!”
승태는 조홍의 우려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전이라면 두려움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상산병이나 함진영, 순가령, 단양병 등의 이름 높은 병사들이 득실거리는 수춘에 암살자가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는단 말인가.
하지만 조홍은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방심하다가 훅 가는 것이니, 항상 조심하거라. 여하튼 넌 품을 것이라는 소리지?”
“품는다니요? 정부인과 아이들이 수춘으로 오신다는 말입니까? 창아야 장인이 이곳에 있으니 그렇다 쳐도 식이나 다른 아이들은 허도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더 큰물에서 놀 수 있지요.”
“식이가 직접 밝힌 의사다. 어린 충아도 허도는 위험할 것이라 했고 말이야. 비 녀석이 무식해 보이긴 해도 은근히 음흉한 구석이 많아 향락을 같이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미 이곳저곳에 손을 뻗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머리 좀 쓰는 식이나 충이가 몸을 피한 것 아니겠느냐. 어째 네놈은 아이들보다 생각이 짧으냐?”
조홍의 면박에 결국 보다 못한 서서가 나서 분을 터트렸다.
“장군, 아무리 주군의 종숙이시라지만, 주군께서는 엄연한 제후이시옵니다. 서로간에 선은 지키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리는 서서의 모습에 조홍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말짱한 수하를 한 명 두었구나. 저기 능글맞은 노가 놈은 영 놀리는 맛이 없었는데 말이야.”
예상 못 한 반전에 놀란 듯 서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조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태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정 부인의 일은 내 발품을 팔아 사람들을 설득할 터이니, 너는 그들을 좀 챙겨 주어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스승을 이어 주고. 강동의 이장 같은 이가 손권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선생이 되지 않겠느냐?”
“제 말을 들어주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칩거하지 않겠습니까?”
“무시하지 못할 부를 쥐여 주면 다 하게 되어 있다.”
“강동의 이장(二張)은 청렴한 인물이니, 돈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조홍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선물을 싫어하더냐? 그게 다 제대로 포장을 하지 못해 그런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가 건네는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서 그렇겠지. 상대방의 생각하는 바의 열 배를 쥐여 주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야.”
조홍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씨 일가 중 돈으로만큼은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조홍이니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 * *
조홍이 다녀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정부인과 그를 따르는 조조의 자식들이 수춘에 도착하였다. 정 부인은 주름진 손으로 승태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조가를 지키는구나. 앙이가 참으로 고마워할 것이다. 역시 앙이의 뒤를 이어야 하는 것은 비가 아닌 너였는데 말이다.”
승태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란 조가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