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승태의 저택은 모처럼 북적거리는 소리에 사람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그간 넓은 것에 비하여 사람이 적어 적막함이 가득했는데, 모처럼 찾아온 조가의 사람들로 인해 활기가 넘쳤다.
상석에 앉은 승태의 앞으로 의젓한 모습의 조창과 조식, 그리고 조충이 각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승태는 공손히 예를 취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집안의 일이니, 너무 딱딱하게 굴 것 없다.”
승태는 그들을 일으켜 자신의 앞에 앉혔다. 그러고는 먹음직스러운 귤을 하나씩 쥐어 주었다. 많이 늠름해진 모습이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그런지 놀란 표정이 보였다.
조충이 소중하다는 듯 품에 넣자, 그 모습을 본 조식은 자신의 귤을 건네주었다. 조충이 해맑게 웃음 지으며 받아 챙기자, 승태는 흐뭇한 마음에 귤이 담긴 상자를 아이들 앞에 내려놓았다.
“마음껏 먹어도 된다. 내 나중에 어른들에게는 따로 챙겨서 선물로 드릴 것이니, 참지 말고 이 자리에서 먹거라.”
예전 원술이 귀한 귤을 육적에게 퍼 주듯 건넨 기분을 새삼 느끼는 승태였다. 아무리 의젓한 듯 보이려 해도 역시 아이다운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은 조창이 자세를 가다듬고는 예를 갖추어 감사를 표했다.
“이처럼 두터운 후의를 베풀어 주신 후께 감사드리옵니다. 오랜 여정에 몸과 마음이 지쳤는데, 후께서 귀한 것들을 내주시니 그 모든 고생이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하기야 비타민 C는 피로 회복에 효능이 있기는 하지.’
물론 두 사람이 생각하는 바는 달랐다. 조창은 단순히 귀한 귤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 데 대한 감사를 표한 것이지만, 미래에서 온 승태는 귤이 가진 영양소와 효능을 떠올린 것이다.
“되었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오히려 내게 감사를 보이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 너희들에게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느냐?”
“네. 하문하시옵소서.”
“제아무리 작금의 패공이 패악한 짓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결코 무리하게 선을 넘지는 않을 사람이거늘, 어째서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구나. 더구나 가문의 사람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이리 몸을 피할 정도이니 말이다.”
승태의 물음에 조창은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종숙, 패공께서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인지, 종숙과 서신을 한 번이라도 주고받은 이들을 모두 죽이려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종숙께서 돌아가신 선공(先公)을 죽인 원흉이라며, 행여라도 옹호를 하려는 가문 내의 사람들을 매질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사태에 승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창을 바라보았다. 조앙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조를 죽인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했다는 것은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장비의 습격으로 인해 조조가 졸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벽한 비밀이란 없는 법. 누군가 변심을 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은 승태의 모신들과 장비, 장수, 우금뿐이다. 그들 중 누가 입을 놀렸을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확실한 증좌는 없으니, 만약 그런 소문이 돈다 하더라도 조조의 죽음에 가담한 이들이 모두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 승태의 범행이 드러날 우려는 적었다.
승태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에 잠기자, 이상함을 느낀 세 사람 역시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윽고 생각의 정리를 마친 승태가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찌 그런 모욕을 나에게 씌운단 말인가. 아무리 권력이 중요하고, 나를 싫어한다 해도 그건 정말 선을 넘는구나.”
한탄을 늘어놓는 승태의 모습에 조식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종숙. 가문 내에서도 그 말을 믿는 자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말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만일 패공이 하북 정벌에 큰 공을 세우고 더욱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그 권세가 어떠하겠느냐. 물론 현명하신 순 사공께서 그럴 리는 없겠다만, 혹여라도 권세로 찍어 눌러 사람을 설득한다면 어찌하겠느냐.”
목이 타는 듯 잠시 차를 한 모금 들이켠 승태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하였다.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내는데, 권세로 수많은 사람을 부리는 이가 없는 죄는 못 만들어 내겠는가. 내가 그렇게까지 미움을 샀다니, 참으로 암담하구나.”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패공이 수를 쓴다 한들 현명하신 사공께서 일을 잘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조식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한두 번은 그렇겠지. 그러나 계속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한다면 의심할 수밖에 없음이다. 의심(疑心)은 암귀(暗鬼)이다. 또한 지금은 사공께서 나를 아낀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호의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맞습니다. 순 사공이 현명하다고 하시지만, 권력을 쥔 이들은 의심이 많아지는 법입니다. 또한 폐하를 손아귀에 틀어쥔 순 사공께서 지금 많은 이들에게 공후의 자리를 내리는 것은 오히려 황실의 가치를 낮추는 일입니다. 작금에 왕작은 아무도 없고, 공후는 넘쳐 날 터이니 말입니다.”
조충이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승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되면 종내에는 어찌 되겠습니까? 관내의 후들처럼 모두 조정에 입조시켜 권력을 빼앗는 작업을 시도할 것입니다.”
조충의 예리한 지적에 조식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식으로서는 조조의 옆에서 한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순욱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조충의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 사공께서는 결코 그럴 분이 아니시다.”
결국 조식이 딴지를 걸고 나서자, 승태는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사람이란 자고로 자신의 서 있는 곳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법이다. 순 사공께서 품은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순 사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승태의 현묘한 말에 조창과 조식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엄청난 깨달음이 담긴 것 같은 이 말은 사실 승태가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일 뿐이지만, 조충은 크게 감화한 듯 선망이 어린 눈동자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그 말씀이 맞사옵니다. 순 사공께 그러한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순가의 다른 이나 측근 중에는 분명 부추기는 이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반드시 삶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 맛을 본 개가 주인을 잡아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조창이 나서 그에 반박했다.
“충아,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냥이 끝난 사냥개가 주인을 지키는 호위가 될 수도 있음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승태가 정리하듯 손을 내저었다.
“충아의 말도 맞고, 창아의 말도 맞다. 모든 것은 주인의 성향과 개의 그릇에 따라 다르겠지.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너무나 커 버린 개일 테니, 한층 더 위협적일 것이다. 아무리 내게 그런 마음이 없다 해도 후환을 없애는 것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욱 좋은 선택이겠지.”
“그렇사옵니다. 저의 생각을 이리 꿰뚫어 보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승태를 바라보는 조충의 눈에는 존경심 깊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너무 이른 나이에 아비를 여읜 아이에게 승태의 현명하고 넓은 품은 꽤 커 보인 듯싶었다.
“충아의 걱정은 알았다. 내 너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마.”
조충은 마치 자신의 능력을 증명받았다는 듯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승태는 인자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내 직접 방을 내주고 선생을 정해주려 한다. 각기 원하는 바가 있느냐?”
그때, 조창이 예를 표하며 말했다.
“숙부, 저는 위청이나 곽거병처럼 무훈을 쌓고 싶지, 머리 아픈 글공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스승으로는 무예가 강한 이를 삼고 싶습니다.”
“흠, 글공부를 등한시하겠다는 것은, 장수가 되고자 함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전장에 나아가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가 되고자 합니다. 하여 유비에게 복수를 하고, 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장수는 어찌하여야 되는지 알고 있느냐?”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사졸들의 앞에 서야 합니다. 상은 반드시 행하고, 벌은 반드시 분명히 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조창. 만약 이 말을 조조가 들었다면 흡족한 마음에 크게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태는 달랐다.
“네가 말하는 것은 일개 무부(武夫)의 덕목이다. 위청도 곽거병도 공부를 개으르게 한 적이 없다.”
승태의 충고는 조창 스스로가 생각해 온 영웅의 그림을 흐트러트리는 것이었다. 그에 조창의 가슴속에서 반발심이 피어올라 따져 묻듯 말했다.
“그들이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무장이란 지금 쓸 전략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면 되며, 옛 병법을 체득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곽거병이 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내려면 얼마나 많은 전략과 전술을 알고 있어야 하겠느냐? 단지 무용이 뛰어난 이는 그저 바둑판 위에 놓인 큰 바둑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찌 생각하느냐?”
조창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승태의 말이 이어졌다.
“지도를 볼 줄 알아야 군이 움직일 수 있으며, 적의 계략을 알아야 이를 역이용할 수 있다. 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배워야 합니다.”
“바로 그러하다. 무예를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지지 않을 장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예 위에 대군을 이끌 수 있는 지모가 필요하다. 또한 신상필벌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아야 한다. 이는 고작 일천을 이끌 때도 어려운 일인데, 대장군이 된다면 어찌 되겠느냐?”
그제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조창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종숙의 말이 옳습니다!”
“알았으면 글공부를 같이하거라. 그리하면 내 군을 어찌 움직여야 할지,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 줄 인물을 붙여 주겠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물러나고 얼마지 않아 사마의가 승태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정말 그렇긴 한데, 자네가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궁금하군. 패공의 전언을 가져온 것인가?”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비싼 비단 위에 쓰여진 글을 승태에게 전해 주었다.
“대단하군. 이 정도 비단을 사려면 돈깨나 들었을 텐데 말이네.”
승태는 내용을 쭉 읽어보고는 고심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 내려놓고는 물었다.
“패공께서는 나와 진짜 싸우자는 것인가? 자네가 한번 말해 보는 것은 어떤가? 내 도저히 이해가 아니 되어서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