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사마의가 머리를 살짝 들어 바라보니, 두 눈 가득 짜증이 담긴 승태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사마의는 누구보다도 승태를 인정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보기에 승태는 주변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인데, 그로 인해 피치 못할 혼란이 벌어지는 것뿐이었다.
사실 사마의 스스로 판단하기에 본인은 안정된 틀 위에서 계략을 짜내는 부류이다. 그러다 보니 유동적인 상황이 주어지면 대처하는 데 조금의 미흡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승태는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뜻을 펼치며 신세계를 만들어 나가니,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사방을 둘러보는 사마의의 모습에 승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자네가 독대를 청한 대로 주변인들을 모두 물리었네. 혹여 이야기가 새어 나갈 일을 없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게.”
사마의는 머리를 다시 숙이며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리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 소인의 주인은 오롯이 주군뿐이옵니다.”
“흠, 자네의 뜻이 그러한데도 내가 조비에게 보낸 간자들을 모두 밝혀내 죽게 했는가?”
뼈를 때리는 승태의 지적에 사마의는 예를 표하며 말했다.
“물론이옵니다. 그리했기에 제가 신뢰를 얻어 가장 가까운 데에서 조비를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뻔뻔할 정도로 말을 늘어놓는 사마의를 빤히 바라보았다.
“좋아, 그렇다고 치세.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마의는 승태가 어떤 이유로 묻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승태는 단순히 세 치 혀의 놀림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마의가 큰 공을 세운다면,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후의 현명한 안목에 언제나 감사할 뿐이옵니다. 현재 조비가 폭주하듯 움직이는 것은 아버지인 조조의 위명을 넘어서기 위한 발버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어떻게 전대 패공의 위업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하북을 자신의 발아래 두는 일이지요. 하여 제가 일부러 가후와 장수, 그리고 주군을 비난하는 소문을 퍼트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마의는 조비의 조급한 마음을 부추기기 위해 병주를 거의 다 집어삼킨 가후와 장수, 그리고 양주를 장악한 승태에 대해 의도적으로 소문을 낸 것이라 고백했다.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인물들의 득세에 조비는 더욱 조바심을 내며 경계하는 마음을 끌어 올릴 테니 말이다.
“그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가? 조조를 죽인 일이 혹여 밝혀진다면, 문제가 커질 것이네.”
“감히 누가 입을 열겠습니까? 우금? 장수? 그 두 사람은 절대 열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 본인뿐 아니라 가문 전체가 순식간에 목이 잘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들로서는 오히려 복수할 수 있도록 주군께서 은혜를 베푼 셈이니, 어찌 문제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차갑게 웃어 보인 사마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장비인데, 유비의 휘하인 그가 섣불리 입을 열겠습니까? 만약 그가 진실을 밝힌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주군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을 지어냈다고 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설령 몇몇 이들이 의문을 가진다 해도 적의 의견에 동조하였다며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될 일이옵니다.”
승태는 빈틈없는 사마의의 책략에 수염을 쓰다듬었다. 딴에는 맞는 말이지만,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권력으로 약자를 누르는 것은 승태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물론 피치 못할 경우에는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승태는 손에 쥔 돌을 만지작거리면서 사마의에게 말했다.
“다시 정리해 보지. 하북을 정벌하려고 한다? 이미 순 사공이 군을 움직이기로 마음먹고 우리에게까지 도움을 청하였으니, 이는 이미 확정된 일이나 다름없네. 그런데 어떻게 그 공을 조비가 모두 가로챌 수 있게 만든단 말인가? 하간에서 반기를 들어 올린 원상과 병주에서 공을 세운 집금오의 공이 제일 크지 않겠는가?”
“전혀 염려할 것이 없사옵니다. 주군께서도 원상이 다시 난을 일으키리란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원상이 원희와 고간을 내버려 둔 채 원담만을 노리고 있다는 것만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일등공신을 죽여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이미 북방의 묻 세력들을 불러들여 원희를 무너트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승태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치 원소가 동탁을 불러들인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른 조비의 행동에 새삼 골치가 아파 온 탓이었다.
‘잘못하면 오호십육국의 시대가 내가 죽고 난 뒤에 열릴 수도 있겠구나.’
무엇을 대가로 줄 것인지 적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하북 일대의 땅을 미끼로 삼았겠지. 어차피 공수표를 남발하고 모르 척하는 일이야 조비가 늘상 보이는 행태였으니 말이다.
“만약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사마의는 승태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약조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지키는 것이라 하자, 조비는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쳐 버리겠군. 그럼 대체 누가 조비의 약조를 믿겠는가?”
“욕심이 많고 어리석은 자들은 믿을 것입니다.”
“…그래, 그러하겠지. 그럼 자네는 앞으로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거기 쓰여 있는 것에 반 정도만 보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들어주라? 내 체면을 깎아내는 일인데도 말인가?”
“그것이 바로 주군께서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태가 빤히 바라보자, 사마의는 담담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이번 전투에서 배제되는 것 말입니다.”
승태는 이마를 문질렀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의의 말대로 따르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의뭉스러운 태도도 그에 한몫했지만, 도대체 사마의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꽤 많은 군량을 가져가려 하니, 얕은 술수는 아닌 듯한데…….’
이윽고 결정을 내린 승태가 단단히 못을 박 듯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뜻대로 하게. 대신 내 밑에 모든 장수들은 배제되어야 하네. 장합, 장료, 장패, 창희, 고순…….”
승태의 입에서 이름들이 주르륵 열거되자, 사마의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옵소서. 그들은 패공을 승리로 이끄는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묘한 말이었다. 그 말인즉슨, 다른 전투에는 참여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아아, 괜한 말장난으로 속이려 들지 말게. 나는 이번 하북 정벌에 내 사람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니.”
“순 사공께서 그 뜻을 들어줄 거라 여기십니까? 결국 주공께서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마의가 하는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하기야 온 힘을 뽑아낸다 해도 승부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데, 많은 물자와 인재를 보유한 승태가 발을 뺀다면 전쟁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순욱도 승태의 방관을 결코 두고 보지 않을 테고.
결국, 사마의의 논리를 받아들인 승태는 고심하듯 턱을 두드리며 물었다.
“조비가 노리는 곳이 어디인가?”
“업입니다. 수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공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원상이 먼저 노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원상보다 먼저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요. 방법이야 궁구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기야 사방을 걱정해야 하는 원상보다는 패국에서 안전하게 군을 운용하며 후방 지원도 넉넉한 조비가 유리한 점은 훨씬 많을 것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승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쪽으로 고려해 보겠네.”
긍정적인 반응에 사마의가 예를 표하고 물러 나가려 하자, 승태는 잠시 그를 불러 세웠다.
“중달.”
사마의는 낭고(狼顧)의 상이 훤히 드러나는 승태에게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옵소서, 주군.”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그대는 나와 오랜 세월 같이하며 수많은 공을 세워 주었네. 나는 그대의 머리가 필요하고, 그대는 자신을 믿어 주는 군주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는 협박이었다. 당근과 약을 모두 꺼내 보여 준 승태는 비단 서신을 쥐고 사마의에게 다가갔다. 사마의는 더욱 몸을 낮추었으나, 승태는 그의 앞에 앉아 눈을 마주했다.
“난 이제 조가의 부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네.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오면 좋겠지만, 이미 그보다 큰 것들이 수춘에 있으니 말이야.”
“주군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단순히 조가의 부와 힘만이라면, 그것은 잘못 보신 것입니다. 조가의 인맥은 넓습니다. 그들을 활용하는 것은 오롯이 조부에서만 가능하며, 암중에서 움직이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곽가가 이끄는 이들뿐 아니라 황궁 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환관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내용에 대해 승태 역시 순가병들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알고 있네. 내가 순가와 붙어 지낸 지가 몇 년이던가. 거기다가 순가의 여식과 혼사를 했는데, 어찌 조가의 내밀한 일을 모르겠는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주군께서 선물을 받으시는 날, 진정한 조가의 힘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 * *
사마의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태는 엄청난 양의 양초를 조부로 지원하였다. 그 일로 인해 수춘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혹자는 조부의 가족들을 구한 대가로 승태가 양초를 바쳤다 말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그와 동시에 다시 하북 정벌이 시작되었다. 원상과 조비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업을 향하여 진군을 해 나갔다.
반면, 병주에 있던 가후는 조정으로 소환당하여 군의 지휘를 장수가 맡게 되었다. 문제는 가후가 없어지니, 마씨 일가에서 계속 어깃장을 부린다는 점이었다. 그에 장수는 결국 움직이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순욱은 개인적인 앙금이 있는 가후를 중용할 생각이 없었다. 하여 그에게 한직이나 다름없는 태보 자리를 내주었다.
어차피 황제의 역할은 그저 순욱이 올린 장계에 인장을 찍는 것이 전부이니, 가후가 나서서 보좌하는 일 따윈 없었다. 그럼에도 가후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순욱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후에 대한 처우를 시작으로 순욱은 순가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고순이었다.
완성을 지키고 있는 고순에게서 군권을 빼앗아 만총에게 넘긴 것이다. 관직을 내려놓은 고순은 다시 수춘으로 돌아와 속관의 직에 올랐다.
승태 또한 순욱이 내린 조서에 따라 청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야 했다. 승태는 양주의 태사자를 불러들이는 것과 동시에 고순, 장합, 장패, 장료 등과 함께 군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