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왕수는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죽간을 바라보며 저수를 떠올렸다. 저수는 명망 깊은 집안의 인물로,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원소의 휘하에 들어갔다.
그런 후, 원소에게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네 개 주(州)를 평정한 뒤, 장안에 황제를 맞이하여 낙양의 종묘를 부활시킨다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원소에게 썩 마음에 드는 전략은 아니지만, 저가의 힘을 얻어 내기 위한 속셈으로 저수의 전략을 극찬하고 분무장군의 자리를 내렸다.
반면, 왕수는 공융에게 등용되어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 쓰임은 그저 청주의 호족들을 짓누르는 데 이용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명문가 출신도 아닌 왕수이다 보니, 여차할 경우에 버리기도 편하니 말이다.
물론 왕수도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공을 세우면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원소가 남하를 시작하자 공융은 그 즉시 도망을 쳐 버렸고, 홀로 남은 왕수는 공융을 대신 하여 원담을 맞이하였다.
청주 호족의 구심점인 유헌이 주인을 배신하였다며 욕함에도 원담은 왕수를 보호하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군법을 어긴 유헌의 판결을 왕수에게 맡겨 둘이 화해할 기회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에 감복한 왕수는 원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리라 맹세하였다.
“저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대국을 보는 능력은 분명 뛰어난데, 사람이 너무 인간미가 없으니 말입니다. 병사 몇을 데리고 우리를 몰아내면 뭐 합니까, 많은 병사들 중 우리의 입김이 닿지 않는 인물이 없는데 말입니다.”
관통은 왕수가 곰곰이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저수가 자신들의 계책에 빠져 곤란을 겪으리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품에서 꺼낸 육포를 질겅거리던 관통은 몇 번 씹어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고로 선비는 자신을 알아준 이에게 목숨을 바치고, 백성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에게 목숨을 바치는 법이지요.”
이는 어찌 보면 원담을 따르는 왕수와 자신에 대한 변명 같은 말이었다. 관통은 손을 펼쳐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제 스스로 자멸해 버린 전풍은 이미 죽고 없으며, 저수는 수춘후와 드잡이질을 벌이다가 무너질 테니. 이제 원상과 조비를 한 번에 보내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왕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통의 말마따나 원담에게 골치 아픈 방해물을 둘이나 해결한 셈이었다. 가만히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관통이 따라붙었다.
왕수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관통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간질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차피 수춘후도 우리의 적이 될 인물이니, 둘이 서로 싸우며 세력을 갉아먹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상의 결과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수춘후 휘하 장수들의 능력이 범상치 않습니다. 반드시 목숨을 노린 것은 아니나 그래도 누구 하나 다친 이가 없으니, 저수로서는 감당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이들이 원래 원하던 바는 일부 병사들의 습격으로 승태를 부상 입혀 진군을 늦추고, 저수와는 완전히 척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승태가 죽기라도 하면 군을 완전히 물릴 수도 있으니, 그저 약간의 부상만을 원하였다. 그렇게 되면 분노한 승태가 저수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승태를 호위한 무장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하였으니, 저수와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이었다.
“어차피 여포 휘하 무장들의 능력이야 기주에서도 유명할 만큼 뛰어나니 어찌할 수가 없지요. 특히 고순이나 위월과 같은 인물은 일당백을 넘어서는 무력을 지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데, 수춘후를 건드리는 게 쉽지는 않겠지요.”
“흠, 그렇다면 혹여 청주가 순식간에 넘어가지는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저수는 방패 역할도 하지 못할 텐데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수춘후는 본시 겁이 많은 인물이니, 저수를 죽이기 위해 만전을 구할 것입니다. 혹여나 우리를 의심한다고 하여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북해는 곧 불바다가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수춘후와 원상은 대립할 테니 말입니다.”
“그럼 병사들에게 어떻게 지시를 내릴까요?”
“성이 넘어갈 듯하면 저수도 같이 분사(焚死)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수도 기꺼워할 것입니다. 충신이라는 명예는 지켜 준 셈이니까요. 물론 저희에게 한 짓은 용서하기 힘들지만 말입니다.”
* * *
승태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런 화살 공격에 기분이 나쁜데, 곰곰이 따져 보니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시도가 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그 표정을 본 이들은 승태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당장 투석기들을 가져와 성을 부수고 모조리 밀어버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기주의 명사라는 인물이 이런 비열한 수를 쓰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사다리를 타고 직접 성을 넘겠습니다!”
“저는 충차를 몰겠습니다!”
승태는 흥분해 소리 지르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승태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였다. 그러한 모습에 고순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언가 걱정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번 일은 저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와 저수를 이간질해 이익을 보려는 게 누구인지는 확실한데,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승태는 마지막 순간에 저수가 병사들에게 맞아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유엽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사옵니다. 이미 원상과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청주를 공격한 것에 대해 조정에서 제재가 들어올 것입니다. 또한 끌려가 저수가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우리가 덮어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흠, 누가 이런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어려운 과제를 던져 놓았군.”
그러자 조운이 승태에게 물었다.
“북해의 사정은 태사 도독이 잘 알 테니, 그를 불러 한 번 논의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운의 제안에 승태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태사자가 온다고 해 봐야 뭐가 바뀔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태사자라 할지라도 현재의 청주 내부 사정을 확실히 아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뭐,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니, 일단 전령이나 보내 볼까?’
“그리하지요. 여기서 며칠 더 기다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물론 비용이 엄청 들어가는 하겠지만, 승태로서는 별로 타격이라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병사들에게 제공되는 보급품들은 자신의 공방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대다수였으니. 어찌 보면 정부의 창고를 털어서 승태 개인의 재산을 쌓는 격이었다.
거기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신병들에게 조금 더 훈련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사이, 고순이 나서서 승태에게 말했다.
“우선 장 태수께 말해 이 짓을 벌인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게 하겠습니다.”
장패는 창희와 함께 보급을 끊기 위해 창국현으로 향하였는데, 그들에게 연락하여 잔당들을 먼저 공격하게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들을 뒤쫓아 모조리 섬멸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십시오. 하여간 청주에 와서는 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니 말입니다.”
그러자 유엽이 승태를 달래려는 듯이 말하였다.
“어차피 이번 전투의 주인공은 다른 곳에 있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 * *
순심은 순욱과 함께 차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비와 원상 말입니까? 하기야 업성을 중심으로 서로가 가능한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으니, 어찌 될지 궁금하긴 합니다.”
순욱은 순심의 애매모호한 말에 웃으며 답하였다.
“뭐, 짧게 보면 둘이 동패구상하는 꼴로 보이겠지요.”
“그럼 길게 보면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그러합니다. 그 결과로 큰 이득을 얻게 될 이들을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이득을 많이 보는 이들이라… 그렇다면 형주인들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순욱은 고개를 저었다.
“중원의 호족들이지요. 이번 기회에 기주계 세력을 밀어내고, 중원의 호족들이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승태와 달리 조비는 전쟁에서 필요한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서 충당하기 어려우니 호족들로부터 많은 부분을 각출할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당연히 호족들의 이권을 챙겨 줘야 할 테니, 하북의 세력을 몰아내고 중원의 호족들에게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순욱의 위치에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조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순욱은 비단 중원의 호족뿐 아니라 하북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욱은 딱히 조비를 말리지 않았기에 더욱 묘하였다.
순심은 순욱의 답변에 머리를 긁었다. 조비가 돈을 빌려 달라는 요구를 자신 또한 겪은 바이기 때문이다.
순욱은 차를 마시고 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뿐만 아니라 학문의 힘 또한 그러하지요. 원소가 영천계를 많이 밀어 주었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순심은 순욱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깨달았다. 순욱은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기주계 세력의 힘을 줄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조비가 사방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막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소개시켜 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사공, 걱정되지 않습니까? 혹여 원상이 업성을 얻게 되면, 분명 다른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순욱은 차를 옆으로 치우더니 올라온 죽간들을 다시 펼쳐 들고 말했다.
“원담은 그리 쉽게 무너질 인물이 아닙니다. 어떠한 수를 써서든 업성에서 버티려 할 것입니다.”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저수도 이미 원상을 따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하북의 세력은 한 번에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기울어진 세력이 업을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이것이겠지요. 물론 우리가 하북을 차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순욱은 지도에서 청주로 진군하는 승태의 깃발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물었다.
“청주에서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수춘후가 지나가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일이 생기던데 말입니다.”
그때, 전령이 급박한 표정으로 달려 들어오며 외쳤다.
“사공, 원상과 조비가 대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