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승태의 막사로 들어선 저수의 몰골과 행동에 노숙과 유엽은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점잖은 유자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마치 시정잡배와도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향이 좋군. 무슨 차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저수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노숙의 앞에 놓인 찻주전자를 집어 들어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거칠게 내려놓았다.
마치 지금까지 보여 온 그의 행동이 모두 가식이기라도 한 듯 거침없는 모습. 마치 순욱이 곽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순욱은 그 속에 숨겨진 능력을 꿰뚫어 보고 그를 조조에게 추천하였는데, 과연 저수 또한 그러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저 공, 일단 앉으시지요. 마시기 편하도록 차를 내드리겠습니다.”
저수는 승태와 노숙, 유엽을 한 번 둘러보고는 곧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표정들이 어찌하여 그러는가? 청주를 얻어 기쁜 날이 아닌가? 이제 하북으로 진군할 일만 남았으니, 근심할 일이 무에 있을까.”
승태는 저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 이런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배신을 당해 충격을 받았다 해도 너무 지나친걸. 왠지 이 모든 게 연기 같기도 하고 말이야.’
순욱이 평한 저수는 딱히 문제가 되는 행동을 일삼는 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런 비평도 받지 않았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모두 돌려 까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순욱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니까.
그뿐만 아니라 저수를 직접 대면한 이들의 평가도 절대 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저수의 성품이 고고하고 청렴하며, 마치 한 마리의 학과 같다고들 했다.
물론 결벽증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주변 이들에게까지 청렴한 태도를 고수하다 보니, 자연 많은 이들이 견디다 못해 거리를 두고는 했지만.
결국 저수 곁에 남은 이는 전풍이나 경무와 민순 정도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전풍이 경무와 민순을 죽인 이후에는 원소의 세력에서 고군분투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승태가 이채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저수는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어찌 그리 보시는가?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는가?”
그 순간, 승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수와 예전에 만난 예형의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이다.
예의라고는 어디로 날려 버린 듯 거침없는 말과 태도는 그야말로 판박이와도 같았다.
“흠, 지난번에 뵈었을 때는 무척이나 치욕스러워하셨는데, 지금은 영 딴판이라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과연 두 분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지경입니다.”
저수는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승태의 말에 잠시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그 치욕이라는 것은 말이야,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지킬 것이 남아 있을 때나 느끼는 것일세. 예의 또한 그러하지. 예(禮)란 곧 형(型)이며 모범이 되어야 할 규범이네. 한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저수는 비루해진 자신을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듯 절규하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무리 공자의 말씀을 좇아 봐야 결국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승냥이 같은 놈들뿐인 것을. 나를 보게. 예(禮)를 지켜 사람을 대하고, 의(義)를 지켜 주군을 따랐으며, 염(廉)을 지켜 스스로를 다듬고, 치(恥)를 몸에 새겨 옳지 않은 일은 감히 꿈꾸지도 않았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떠한가?”
승태는 자아비판을 하듯 푸념을 늘어놓는 저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승태의 입장에서는 저수가 어찌 살아왔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저수가 악행을 저지르며 패악질을 부리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정치를 하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승태의 마음이 읽었는지, 저수는 조소를 날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승태 또한 저수의 변모한 모습에 실망이 가득했다. 무릇 모사라면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밝히며 설득을 해야 하는데, 지금 저수가 보여 주는 모습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탓이었다.
‘고작 왕수 따위에게 뒤통수를 맞아 지금의 상황에 이른 저수가 과연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 굳이 이렇게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마음을 굳힌 승태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약간 고압적인 표정으로 저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공, 그런 말을 제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지금도 충분히 대우를 해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연민이 생기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후회스럽든 그것은 제가 판단할 바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저 공께서 막사 밖에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번에 원담이 조비와 원상에게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렇기에 하북을 잘 아는 저 공의 도움이 필요할 뿐입니다.”
저수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왠지 조금은 기쁜 듯한 기색이었다.
“나의 주인들은 모두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적이라 생각한 인물이 나의 말을 듣는군. 이거,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야.”
여전히 대답을 내놓지 않고 질질 끄는 저수의 모습에 승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저수는 표정을 가다듬고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하북에는 유우의 세력이 아직 많이 남아 있네.”
승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유우의 세력은 이미 모두 지리멸렬했다고 생각했는데, 저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 탓이었다.
승태가 고민하듯 승태는 상을 톡톡 두드리자, 저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 생각하는지는 잘 아네. 하지만 전주가 서무산에 숨어서 유우의 잔당을 이끌고 있지. 아, 어쩌면 유화가 거기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겠군. 이후에 업성을 들른 적이 없으니 말이야.”
“그 전주가 지금 원담을 돕고 있단 말입니까? 어찌하여서요?”
“정확히 말해야겠지. 원담을 돕는 것이 아니라 답돈을 죽이기 위해 군을 일으킨 것이네. 삼군오환과 친분이 있는 원상이 만일 화북의 권력을 잡으면 복수는 더욱 요원해질 테니 말이야.”
“그래서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응당 답돈과 적이 되어야겠지.”
마땅찮다는 듯 승태가 눈을 가늘게 흘기자, 저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와 다식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않은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 먹을 필요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답돈은 오환의 선우이지 않습니까. 그리되면 오환과는 적이 되고 말 텐데, 어찌 하북을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건 고사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야 있겠습니까?”
“오환의 답돈을 알다니 대단하군. 그 정도면 이미 하북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람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야.”
날카롭게 지적하는 저수였지만, 승태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것이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오환이라는 커다란 집단도 하나의 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네. 이는, 가 집금오가 잘 알겠군. 그러하니 병주에서 고간을 그렇게 박살 낸 것 아니겠는가. 오환의 내부를 뒤흔들어서 말이야.”
승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저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쓸모는 넘치는 인물이었다. 기존의 무례하던 행동들이 모두 용서될 만큼 말이다.
그런데 이리저리 주인을 옮긴 인물을 믿고 과연 하북으로 나갈 수 있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뭐, 그래 봐야 군을 이끌 수 있는 권한만 내리지 않으면 될 것 아니겠는가. 그의 옆에 사람도 심어 두고 말이야.’
이윽고 결정을 내린 승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공, 그들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저순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선 선우보를 설득해보게. 조조가 관도에서 대승을 거두었을 때, 그의 곁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니 말이야. 그를 시작으로 견초와 같은 이들을 북방에 사절로서 직위를 인정해 주면, 저희끼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툴 것이네.”
저수는 승태와의 문답을 통하여 하북을 점령할 수 있는 계획을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 * *
원담이 집요하게 추격하자 조비는 반전하여 싸울 것을 명하였다. 오랜 시간 추격을 해 오며 강까지 건넜으니, 원담의 군세는 많이 지쳤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판단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강을 건넌 원담은 하후연의 공격을 받아 창정진까지 물러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왕수의 계략이었다. 조비가 기세를 피워 올리며 물러나는 원담을 뒤쫓자 후방에서 왕수가 이끄는 병사들이 나타났다.
“조가의 개들을 모조리 섬멸하라!”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 조비가 이끄는 군세는 진형이 무너졌다. 다행히 조비 휘하에 뛰어난 무장들이 있었기에 겨우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병사들 사이로 서황이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돌파를 시도하였다.
“패공,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하후 장군의 호위를 받아 이곳을 벗어나소서!”
하후연은 경기병을 이끌고 조비를 호위하며 서황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서황이 공간을 만들자 그곳으로 달려나갔다.
“길을 열어라!”
하후연은 마치 귀신과도 같은 기마술을 뽐내며 사방에서 찔러 오는 창들을 튕겨냈다. 그뿐만 아니라 달려드는 적병의 목을 노려 창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병사들이 쓰러지며 공간이 만들어지자, 하후연은 일점돌파를 통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서황은 멀어져 가는 조비와 하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다! 이제 우리가 시선을 끌어야 한다! 주변의 적을 모조리 도륙하라!”
“우와아아!”
서황의 우렁찬 명령에 그의 휘하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분투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서황을 따르던 병사들도 하나둘 쓰러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두르던 서황도 지쳐 갔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서황은 대부를 바닥에 짚으며 한탄 섞인 푸념을 쏟아 냈다.
“제길, 이게 내 최후라니, 너무나 허무하군.”
최후를 직감했는지, 서황의 주변으로 오랫동안 그를 따르던 이들이 모여들어 원형진을 형성했다.
“장군,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저희가 쐐기진을 만들겠습니다.”
서황은 말을 건넨 병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그래. 이대로 죽는 것은 나답지 않지. 다들 쐐기진을 구성하라!”
“하!”
용맹한 외침과 함께 병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때 마침 뒤에서 원담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이 자리에서 서황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의도가 절절히 느껴졌다.
하지만 운명은 서황의 손을 들어 주었다. 조인이 수십 기의 기병을 이끌고 들이닥친 것이다. 고작 수십에 불과한 숫자이지만, 결코 허투루 볼 수 없었다.
“모조리 부숴 버리고 서황을 구해 낸다!”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