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조인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장수라고 불릴 만한 무예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서황이 힘껏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뛰어들어 주변을 헤집으며 도리어 적을 공포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질린 적병들이 다가오지 못하자, 잠시 여유가 생긴 조인은 서황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말은 어디에다 두었는가?”
서황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패공께 내드렸습니다.”
정말 대책 없는 서황의 대답에 조인은 쯧쯧, 혀를 찼다. 조비가 원담을 얕보고 무작정 달려들 때부터 일이 이 지경이 될 줄 알아본 것이었다.
“사마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군.”
“사마 별가는 패공께서 보급으로 빼셨습니다.”
조비의 곁에서 그나마 진짜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마의 정도인데, 그런 그에게 보급 부대를 맡겨 후방으로 보내다니, 조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로?”
“저 또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만, 몇몇 병사들이 두 사람의 다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합니다.”
“미치겠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신머리가 없어지는 것 같군. 그렇다면 지금 그놈 옆에는 오질과 주삭만 남아 있는 것인가?”
긍정의 의미로 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비와 친하다고 알려진 패공삼우(三友)는 오질, 주삭, 사마의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중 사마의만이 사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선구안을 갖췄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야말로 개차반이나 다름없는 족속들이었다.
“흥, 이번 기회에 모조리 뒈졌으면 좋겠군.”
가차 없는 조인의 혹평에 서황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놈들일수록 더 명줄이 긴 법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그런 놈들이 꼭 끝까지 살아남더군. 그냥 이참에 확 모가지가 떨어지면 좋을 텐데 말이야.”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서황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병사들이 사뭇 많아졌습니다.”
“후후, 그래서 두려운가?”
서황은 자신감 넘치는 조인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새삼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조 휘하에 있을 당시, 무장들은 언제나 거침이 없었다.
“다시 한번 몸 좀 풀어야겠군. 나와 내 부하들이 길을 열 테니, 뒤처지지 말고 따라오게.”
“예, 알겠습니다.”
조인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자, 모여들던 적병들이 다시금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조인은 그런 병사들에게 대도를 겨누며 말했다.
“괜히 죽기 싫으면 길을 열어라.”
조인의 경고에 몇몇 병사가 슬금슬금 물러나려 하자, 독전관들이 뒤에서 칼질하며 외쳤다.
“물러나지 마라! 적은 고작 수십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미 패퇴하여 지리멸렬한 놈들인데, 뭐가 두렵단 말이냐!”
그 말에 조인은 독전관을 돌아보았다.
“지리멸렬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네 말대로 자신이 있다면, 어서 덤벼 보아라.”
조인이 대도를 치켜들고 말을 몰아 나가자, 독전관은 더더욱 악을 써 대며 병사들을 닦달했다.
하지만 막상 조인이 다가들자,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그와 동시에 조인을 따르는 기마들이 들이닥쳤다.
“나는 그저 나아가고 길을 만들 뿐. 방해되는 것은 벨 뿐이다.”
조인의 활약에 서황도 질 수 없다는 듯 병사들을 이끌었다. 비록 조인이 이끄는 기병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이미 사기가 충전하여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조인은 번쩍 주먹을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조가의 기병들이여, 우리가 누구인가!”
“조가의 적을 물리치는 창!”
“그래, 맞다. 또한, 조가의 창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조인은 대도를 들어 앞으로 겨누더니, 거칠 것 없다는 듯 달려나갔다.
“조가의 창이여, 길을 열어라! 앞을 막는 이들을 모두 쓰러트려라!”
조인의 대도가 한 번 휘둘러지자, 사람이며 무기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전장을 휘젓는 조인의 무예에 기병들도 더욱 사기를 끌어 올리며 뒤를 받쳐 주었다.
원담 측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서황은 보병을 이끌고 재빨리 기병기병들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간 뒤, 적의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에 이르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서황은 조인에게 다시금 예를 표하며 말했다.
“목숨 빚을 지었습니다.”
가만히 서황을 내려다본 조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서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멀뚱멀뚱 서 있자, 조인을 입을 열었다.
“내 손을 잡으시게.”
여저히 영문을 모르는 서황이 손을 맞잡자, 조인은 아래위로 손을 흔들었다.
“먼 서방에서는 이렇게 감사를 주고받는다 하더군.”
“네? 그게 무슨…….”
조인은 평소 조가의 인물 중에서도 무식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여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처럼 잘난 척을 할 기회가 생기자 승태에게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은 것이었다.
“자네도 이참에 알아 두게. 이게 바로 서방의 인사라는 것을. 하하하.”
마치 대단한 사실을 알려 준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조인의 모습에 그제야 서황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짐짓 감탄한 듯 말을 꺼냈다.
“과연 학식이 대단하십니다. 무식한 저로서는 전혀 알지 못한 내용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술을 마시며 서방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제가 거나하게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도적 출신임에도 높은 자리까지 오를 만큼 눈치가 빠른 서황다운 처세였다. 조인은 서황의 말에 크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 그 말, 꼭 새겨 두겠네.”
* * *
순욱은 자신 앞에 놓인 서신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승태가 올린 것인데, 한참 동안 고민하던 순욱은 자신 앞에 엎드려 있는 그것을 건네었다.
서신을 조심스레 펼친 가후가 내용을 살피는 사이, 순욱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수춘후는 말이네, 휘하에 참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은 것 같군.”
가후 또한 순욱의 말에 동의하였다. 서신에 담긴 정교한 계책들은 가후가 생각한 바가 그리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하북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이처럼 제안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 말인즉, 수춘후의 곁에 하북을 잘 아는 인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수를 사로잡았다고 하니, 아마도 그의 도움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항장을 끌어들이는 것도 능력이 아니겠는가?”
가후는 순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춘후가 군을 이끌고 오면, 여양을 점령하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하네.”
가후는 순욱의 말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후, 순욱이 손짓을 하자, 뒷걸음질로 조심스레 물러 나갔다.
가후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묵묵히 바라보던 순욱이 일순 표정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 가후는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충을 좇는 것도 아니고, 의를 따르지도 않으며, 오롯이 자신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이니, 참으로 골치가 아프군.”
순욱은 새삼 골치가 아파 오는지, 앞에 놓인 죽간들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는 천천히 차를 우려내었다.
부드러운 차향이 순욱의 집무실을 가득 채울 무렵, 내관이 최염의 방문 소식을 전해 왔다. 순욱이 고개를 끄덕여 허하자, 최염은 공손히 예를 표하며 앞에 앉았다.
“상서께서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상(相)께서 친정을 하신다고 하는데, 이 최 모가 예를 표하지 못하여 이리 달려왔습니다.”
순욱은 최염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강직한 최염이 고작 그런 이유로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이유야 빤했다.
“수춘후 때문입니까?”
“역시나 상을 속일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합니다. 북방의 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수춘후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이다. 이는 폐하께서 인가하신 내용이고, 삼사(三師)에서도 승인한 일이니 문제될 것이 없는 듯싶은데, 어찌하여 황도의 일이 바쁜 상서께서 이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바쁜 것은 맞지만,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응당 달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욱은 최염의 쓴소리에 굉장히 기분이 거슬렸다.
“무엇이 옳지 않습니까? 내 수춘후를 북방을 정벌하는 데 부른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수춘후를 하북을 정벌하는 데 불러들인 일은 후환이 될 것입니다.”
순욱은 최염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승태를 비호하려고 온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순욱은 최염의 말에 흥미가 들었다.
“무슨 이유로 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첫째로, 수춘후를 부름으로써 양주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흠, 그 부분은 손가가 이미 장사로 가는 것으로 해결된 일입니다. 손권을 장사 태수로 세우고 남정을 명하였으니, 양주에서 무슨 분란이 일어나겠습니까?”
사실 이는 거짓이었다. 솔직히 순욱의 입장에서는 양주의 혼란이 일어나면 그보다 좋을 게 없었다.
그런 점을 간파하였는지, 최염이 바로 지적하고 나섰다.
“오후에는 손소가 있습니다.”
그 말대로 손소의 존재는 양주의 분쟁을 만들기 위해 순욱이 남겨 둔 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손가의 힘이 손권과 주유와 함께 모조리 형주 정벌에 쓰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손가를 추종하는 이들이 아직 양주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니 벌써부터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최염은 멍하니 순욱을 바라보았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순욱의 모습이 꽤 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욱이 그러하다고 하는데 어찌하겠는가. 최염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하였다.
“둘째로는 서주입니다. 서주는 전날 패공의 악행으로 큰 수모를 겪은 곳입니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수춘후가 직접 재사들을 초청하고 진가를 설득하여 다시 예전의 성세를 되찾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조가를 욕하면서도 수춘후만큼은 가슴으로 승복하여 따르고 있으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면 서주의 묻 재사들이 다른 감정을 품을 수도 있사옵니다. 거기다 다른 이가 서주를 통치하려 한다면 분명 반발할 것입니다.”
“사실을 바로잡자면, 패공께서는 도겸의 악행에 대응했을 뿐입니다. 더욱이 조정의 명을 어기는데 어찌 한조의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수춘후가 그곳을 사유화한다면 그 또한 역적의 행위나 다름없는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최염은 눈을 감았다. 어차피 자신을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만은 반드시 해야만 했다.
“마지막은 수춘후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수춘후가 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잠자고 있던 용을 깨우는 짓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