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최염의 담담한 목소리가 순욱의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순욱은 여전한 태도로 찻잔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수춘후가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음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 정도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그리해야 합니다. 무릇 공후에 자리에 오른다면, 위치에 맞는 의무를 다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또한, 휘하의 장수들이 수춘후를 보좌할 것이니,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과거, 여포를 따르던 장수들뿐 아니라 하북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던 이들도 현재 수춘후의 휘하에 있지 않습니까.”
최염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상(相)께서는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순욱이 여전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최염은 말을 이어 갔다.
“수춘후는 평시에는 인후하고 따뜻한 신하이지만, 난적(難賊)들을 만나면 간웅이 될 재목입니다.”
순간, 순욱은 조금 놀란 듯 최염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간웅이라는 소리를 듣던 인물이 바로 조조인데, 순욱은 바로 조조를 따르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최염의 저의가 궁금할 수밖에.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수춘후가 세를 모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무릇 수춘후가 세를 넓히는 것은 전장에서였습니다. 마치 고조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수춘후는 뭇 유자들과는 야망 자체가 다릅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지 않고, 천하를 쥐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손이 닿는 사람들을 안온하게 만들고자 할 뿐이니, 정주한다면 명신이 될 인물입니다. 상께서 북방을 토벌하실 때 청주에서 정주하게 한다면, 청주는 얼마지 않아 조정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최염은 승태가 가진 바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서주와 양주 일대를 손아래 두어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조의 유지를 바라는 최염은 최대한 승태가 그저 한자리에 눌러앉아 한조를 받드는 권신 정도로 남기를 바랐다. 사실 승태도 한조를 뒤엎어 버리고자 하는 마음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다만, 주변이 승태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개혁적인 승태의 치적들이 젊은 유자들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최염은 그런 풍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일례로 승태에게서 나온 개혁안을 다듬어 낡은 제도를 손보고 한조가 다시 부흥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이유로 양주에서 펼쳐지는 많은 변화들을 지켜보며 승태가 그 자리에 머물도록 조정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수춘후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일개 권신으로 남을 것이다. 이는 진군과 모개도 인정한 바이다. 한데 만일 그 울타리가 무너진다면,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물론 최염 스스로가 다른 이들의 눈에 어찌 보일지 모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조정에서 수춘후를 성토하는 노신(老臣)들이 늘어나고, 최염은 어느새 그들의 대척점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랬기에 순욱에게 최염의 말은 그리 와닿지 못했다. 사실 승태가 세를 얻어 반기를 들어 올린다고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승태를 옴짝달싹못하게 옭아맬 방법이야 빤하니.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수춘후가 아닌가. 그들이 내 손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수춘후는 결코 딴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조정으로 불러 봉지에서 떨어지게 만든다면, 수춘후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순욱이 최염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불허합니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는 순욱의 말에 최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최염이 순욱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상께서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그 누구도 자신과 견줄 수 없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순욱은 최염의 말에 순간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전풍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뜻을 의심할 것이라는 저주가 다시금 가슴을 헤집으며 깊은 내면에서부터 억울함과 분노가 꿈틀거렸다.
“나가십시오. 내 결정의 번복은 없습니다. 수춘후는 북방 전투에 가장 앞에 설 것이고, 하북이 모두 무릎 꿇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승상, 재고해 주십시오. 황실도 작금 상의 독선을…….”
“나가!”
언제나 고아하게만 보이던 순욱에게서 나올 수 없는,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십 년간 억누르고 감춰 온 모습이었다.
순욱에게 분노란 사치스러운 감정에 불과할 뿐,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었다. 한데 지금 최염이 역린을 건드리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었다.
최염은 순간 당혹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순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자리에서 내려온 순욱이 최염의 앞에 서서 사납게 노려보며 물었다.
“상서, 내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나는 더 할 말이 없으니 그만 나가십시오. 상서가 걱정하는 일 따윈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며 물러났다. 순욱은 그 자리에 홀로 서서 조조와 황실의 균형을 지키며 전전긍긍하던 때를 떠올렸다.
‘명공, 그때의 고민이 이것이었습니까? 소인, 이제야 명공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누구도 믿기 어려웠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것 같고, 겨우 마음을 터놓을 인물이라 해 보아야 형제들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조조였다면 자신의 성질대로 했겠지만, 자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에 하북을 얻고, 손가의 칼로 형주를 제압하면, 남은 것은 익주 하나뿐이다. 익주의 유장은 대세가 정해지면 스스로 입조할 테니, 그 뒤로는 한조가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리를 내려놓고 죄를 청하리라.’
순욱의 지금 심정은 그러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그저 한조를 부흥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결코, 전풍의 말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 * *
군을 정비한 승태는 태사자에게 청주의 일을 일임하였다. 그런 후, 무너져 버린 극현이 아닌, 평수현으로 본진을 옮기도록 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청주성으로 옮기는 것이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하북의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승태는 청주를 안정화시키는 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그로 인해 조정에 사자가 오기 전까지는 태사자가 청주목 대리가 되었다.
평수현은 태사자의 고향인 동래와 가까울 뿐 아니라 태사자를 보좌하는 정소동의 근거지인 고밀과 좀 더 가깝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대응할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저수의 의견에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저수가 말하길, 제수 일대는 원담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에 왕수가 수작을 부리면 언제든 난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사자는 떠나려는 승태의 뒤를 따르며 아쉽다는 듯 말을 꺼내었다.
“소신, 참으로 아쉽습니다. 주공과 함께 하북에서 공을 세울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또다시 이리 남아 일주를 안정시켜야 하니 말입니다.”
승태는 미련이 잔뜩 묻어 나오는 태사자의 말에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내 어찌 장군과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장군을 믿기에 뒤에 두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계시다면 북방을 위태로워질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주공의 명을 따라 반드시 청주를 지켜 낼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정소동 또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인도 태사 장군을 도와 청주를 지키겠습니다.”
승태는 정소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사 장군은 공을 세우느라 오랜 시간 청주에서 멀리 떨어져 계셨습니다. 그런 연유로 청주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으니, 공자께서 적극 도와주시오.”
그에 정소동은 고개를 숙였고, 승태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나 역시 청주에 남아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으나, 조정에서 부르니 어찌하겠소? 응당 신하로서 따라야 함이니.”
“아니옵니다. 부디 청주를 어지럽힌 원담에게 어려움을 알려 주소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태사자는 육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언은 비록 어리긴 하나 주공께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그간 강남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를 중히 쓰소서.”
‘흠, 육손의 능력이 강북에서도 통할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기대할 만하지.’
* * *
며칠 후, 승태는 제남에서 장패 및 창희의 군세와 합류하였고, 태산을 거쳐 동군에 도착하였다. 승태는 오랜만에 순욱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황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후와 소유가 순욱의 명령서를 들이밀며 승태의 발을 붙잡은 것이었다. 승태는 벙찐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가후가 앞으로 나서 조서를 펼치며 말했다.
“서주양주목 정남장군은 승상의 조서에 예를 표하라!”
그에 승태가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자, 뒤따르던 수많은 장졸 역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 모습은 가히 대단한 장관이었다.
“신, 조승태 승상의 명을 받듭니다.”
유려한 필체로 쓰인 조서를 읽어 내려가는 가후는 승태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조서의 내용을 축약하자면, 백마진을 차지한 원담 세력을 격파하고, 창정에 주둔 중인 본대를 공격하여 조비를 도우라는 명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막강한 물량을 자랑하는 승태의 보급품을 순욱이 분배할 것이란 사실과 함께 원상과 조비를 도와 업성을 다시 공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 후, 명을 다시 내릴 때까지 대기하라는 것을 끝으로 가후의 입이 다물어졌다.
‘아니, 보급을 가져간다는 것이야 사정이 워낙 열악하니 그렇다고 치겠지만, 원담에게 패배한 패잔병들까지 도우라니, 이 무슨 빌어먹을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원상이나 조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놈을 구원해야 하는데, 재수가 없으면 조비의 말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거기다 원상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간 왕부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다 보니, 자신 마음대로 하겠다고 설쳐 대면 마땅한 답이 없었다.
‘그래도 차라리 원상이 낫긴 하겠네. 적어도 이유 없이 날 싫어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미친 명령을 진짜 순욱이 내린 게 맞긴 한 거야? 이건 완전히 나더러 역모하라고 떠미니 짓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안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오랜 시간 동안 생이별을 하게 만드는, 이 빌어먹을 명을 내린 순욱에게 따지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