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백마진의 전투에서 현격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 승태는 곧바로 여양으로 진군하였다. 그에 반해 백마에서 패퇴한 원담의 군세에는 조운이나 고순을 상대할 만한 인물이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붉은 기마를 탄 병사들과 이전이 이끄는 단양병들이 현을 포위하여 무시무시한 투석을 날려 대자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결국 여양 현령 저종은 무릎을 꿇고 항복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종의 형인 저수가 상대 진영에 있었기 때문이다.
승태는 망루에 내려와 저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기세가 기운 상황에서 항복한 것이라 승태 휘하의 장수들은 저종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종이 앞으로 나서며 저수에게 말을 건네었다.
“형님, 결국 조씨에게 고개를 숙인 것입니까?”
그에 저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분명 3대가 지나기 전까지 누구도 돕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과거, 저수는 원가를 떠나며 분명히 당부의 말을 남겼다. 원소의 패배를 예측하며 그대로 가문을 봉하라 한 것이었다.
“형님, 하지만 조카인 곡아가…….”
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삼공자의 곁에 남은 것을 말하는 것이냐? 그것은 가문의 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나선 것이다. 전 별가를 구하지 않는 대공자를 벌하기 위하여 말이다.”
“하나 형님이 원상의 손을 들어 주는데, 어찌 원담이 모른 척하겠습니까? 제가 나서서 대공자를 돕지 않았다면, 가문은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종의 말을 들은 저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담의 성정을 고려해 보면, 저종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원담은 자신을 따르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포악하게 보복을 가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그때 죽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가문만큼은 평온했을 테니 말이야.”
저수의 한탄에 저종은 고개를 내저었다.
“형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미 대공자가 업성을 차지하면서부터 모든 상황은 끝난 것이었습니다. 업성의 대다수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 재화를 바쳤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 위험한 전장에 나서며 그 칼을 피한 것입니다.”
저씨 형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승태는 멋쩍다는 듯이 턱을 긁적였다. 분명 저종을 무릎을 꿇린 상대는 자신인데,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느껴진 탓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승태가 저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선생, 앞으로 어찌할지 생각은 해 두었습니까?”
저수는 뜬금없는 물음에 승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승태의 얼굴 위로 굉장히 간사해 보이는 표정이 어려 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제가 어리석어 수춘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지 않지 않습니까. 동생분의 생사여탈이 제 손에 있는데, 제가 바라던 것을 얻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지요.”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에 저수는 굉장히 묘하다는 눈빛으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그간 겪은 바로는 이런 비열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가족을 볼모로 자신을 따르라 한다는 게 얼핏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의 진정한 충성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오? 무릇 일주의 주인이며 후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그러나 승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어차피 오랫동안 충성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북에서만이라도 도움을 달라는 이야기이지요. 게다가 저 선생께서는 분명 제게 원담을 꺾고 하북을 점령할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물론 제가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임지로 돌아갈 것이라 여겼기에 그런 제안을 한 것임은 잘 압니다.”
저수는 아무 말 없이 승태를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 또한 원하는 바이기도 하니까.
다만, 자신은 이미 한 번 실패를 겪은 패전지장이었다. 과연 누가 있어 자신의 말을 듣고 따라 줄 것인가.
‘이미 주인을 몇 번이나 바꾼 나에게 역사는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줄곧 이용만 당해 왔음에도 저수는 충(忠)이라는 이름을 놓지 못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원소를 비롯해 원가의 자식들과, 심지어 한복까지… 그들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을 압박하는 승태가 눈에 들어왔다.
‘수춘후를 따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충이란 말인가. 우습구나, 저수야. 이미 버림받은 개 신세인데, 뭘 더 고민한단 말이냐.’
사실 저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자존심을 세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홀로 고고하다 여긴 자신은 그저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을 뿐이라는 것을.
그 결과, 지금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되었으나, 여전히 자존심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박차가 나가 초야에 묻히고 싶지만, 눈앞에서 저종이 죽는 일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고민이 길어지시는군요.”
승태가 손을 내밀자, 보즐이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얼마나 더 기다려 드려야 하겠습니까? 충분히 생각하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병사들도 정비가 필요하고, 승상께 보고를 올릴 때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말입니다.”
저수는 계속해서 도발을 걸어오는 승태의 수작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이내 저종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일 외에 말이다.
하북의 지낭이라 불리며 높은 명성을 쌓아 온 저수는 자신도 모르게 자존심이라는 괴물에 의해 눈이 가려졌다.
그래서 지금 고개를 숙인 채 무릎 꿇고 있는 저종을 보고도 쉽게 승낙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자신이 승태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든 것이다. 저종이 비록 자신의 동생이고 가문의 주인이긴 하나, 자신은 승리자의 입장이었다.
예전 원소에게 고개 숙인 한복과 눈앞의 저종이 겹쳐 보이자, 왠지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훔, 원 본초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러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은 것이겠지.’
그때, 가후가 어깨를 짚자, 저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가후 또한 주인을 몇 번이나 바꾼 인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기는커녕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명성을 쌓아 가고 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가후는 옆에 서서 마치 유혹하는 뱀처럼 속삭였다.
[자네는 보고 싶지 않은가, 자신의 계책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말이야. 그 잘난 전풍도 주인을 잘못 만나 그 꼴이 되고 말았는데, 자네는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네.]저수는 가후의 사탕발린 유혹에 과거 공손찬을 궁지에 몰아넣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의 손 위에서 원소의 모든 군이 움직이던 그때 말이다.
가후는 계속해서 저수의 욕망을 자극하였다.
[기주, 유주, 병주, 하북의 세 주만 가지도고 천하를 휘어잡을 수 있다고 한 인물이 바로 자네이지 않은가. 자네도 알다시피 수춘후는 군림하는 자이네. 능력만 증명한다면, 하북에서 자네 맘대로 군을 움직일 수 있겠지.]저수는 조운의 상산병과 고순의 함진영, 그리고 단양병들이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하북을 휘젓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조가의 병력과 중앙군마저 자신의 손에 놓인다는 생각을 하자, 순간 몸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을 마친 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어쩌겠는가. 원소에게 고개를 숙일 때처럼, 한복을 버릴 때처럼 저수의 머릿속에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복을 보내고 나서 더는 주인을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이 자신의 손으로 천하를 휘젓고 싶다는 욕망에 꺾였다.
“이제 저씨 가문은 봉문을 할 것입니다. 가문의 도움은 일체 없을 것이고, 오롯이 저 혼자만입니다.”
저수로서는 최선의 합의점이었다. 개인의 욕심으로 가문을 끌어들여 역사에 오점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모든 불명예는 자신이 짊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그 정도였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종을 일으켜 주었다. 그러고는 저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원가가 아니라 제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아드님도 수춘으로 보내면 더욱 좋을 것 같고 말입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는 좋은 스승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저수는 승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과거, 완성에서 조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저수도 그 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들에게 먼저 호의를 보여 드려야겠지요.”
승태는 옆으로 다가온 가후에게 슬쩍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저 선생이 저렇게 바뀐 것입니까?”
가후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별거 없습니다. 그저 저 선생이 이루지 못한 무엇인가를 일깨워 드린 것뿐입니다.”
승태는 대단하다는 눈으로 가후를 바라보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대체 뭔 짓이냐는 가후의 표정에 승태는 뻘쭘하여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대단하시다는 뜻입니다.”
* * *
승태는 원담이 돌린 격문을 들여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은 없을 텐데.”
물론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우의 세력이 원상과 함께하는 오환을 적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러한 방법은 진짜 머리가 없는 인물이나 사용할 방법이었다. 전주의 죽음이 가져올 후폭풍을 안다면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원상도 이미 유우를 죽인 공손찬의 예를 보았으니, 그런 멍청한 일을 할 리는 없었다.
전주의 죽음으로 인하여 유우의 잔당들이 그대로 원담에게 흡수되었는데, 원담은 이 일의 뒷배를 원상이라 지목하며 격문을 돌렸다.
유우의 치세를 기억하는 이들이 원상을 비난하며 유주 일대가 원담을 지지하는 세력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물론 원상은 격문으로 반격을 나서 보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제이의 공손찬이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을 어찌 바꿀 도리가 없었다.
저수는 수많은 죽간을 가져와 승태의 앞에 쏟아 내었다. 그 뒤로 노숙과 유엽이 따라 들어와 그 죽간들을 확인하였다.
군사들의 진군할 위치를 빼곡히 써 놓은 것들이었다. 숫자와 도보의 상태, 그리고 매복이 가능한 위치들이 적혀 있었다.
‘역시 능력은 난세의 인물들이 더 대단하긴 하네. 이걸 죄다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는 거야?’
새삼 저수의 능력에 감탄하는 승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