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저수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기록한 내용들은 정말 대단하였다. 유엽은 잘 와닿지 않는 듯하였으나, 직접 군을 이끌어 본 경험이 있는 노숙은 감탄을 자아내었다.
“어떻게 이리도 자세히도 알고 있는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소요소의 길들이 너무나도 잘 적혀 있지 않습니까?”
노숙의 칭찬에 저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일축했다.
“고작 기주, 유주, 병주의 길일 뿐이네.”
“고작 이라니요. 거기다가 각 현의 산량(産量)까지 적혀 있지 않습니까?”
“뭐,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나마 도움은 될 것이네.”
승태는 노숙이 언급한 내용이 적힌 죽간들을 살펴보고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저수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던 것입니까?”
“별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원가의 백만이 넘는 대군을 수족과 같이 움직이려면 이런 것 정도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하니까요. 시기에 맞게 움직이지 못하면 군은 위태로워집니다.”
맞는 말이었다. 행군로를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군대를 운용할 수 없고, 자연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처음 보는 길로 병사들을 이끌다가는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이 죽간들을 이용해 적이 쳐들어올 만한 길을 예측할 수도 있겠군요.”
승태의 말에 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상대방이 미치지 않고서야 멀쩡히 있는 길을 두고 산을 넘어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뭐, 적이 누구처럼 생각하지만 않으면 말이야.’
등애야 어쩔 수 없이 산을 넘은 것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병주의 경우, 지형이 험난하긴 하지만 엄청 중요한 곳도 아닌 데다 양초의 산출도 거의 바닥인 지역이다. 그러니 적에게 뇌가 있다면 향도할 인물을 찾아 군을 이동시킬 것이었다.
“아마 적들 역시도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이를 뽑아 이미 닦여진 길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적힌 범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겠지요.”
확신이 담긴 저수의 말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태는 코를 긁으며 저수에게 허락을 구하듯 물었다.
“정말 고마운 정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을 종이에 옮겨 적고, 장수들에게 알려 주어도 되겠습니까?”
승태의 정중한 요청에 저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히 모두 사용해도 됩니다. 하북을 정벌하기 위해 준비할 일 중에서 하나일 뿐이니, 마땅히 장수들과 이를 공유해야겠지요.”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승태와 저수, 두 사람이 원하는 바는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너무나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이에 대한 보답을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해 드려야 할까요?”
승태가 마치 동의을 구하듯 돌아보자, 가후는 그저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노숙과 유엽은 죽간의 내용을 살피느라 승태의 말 따위는 들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결국, 당사자에게 답을 구하듯 바라보자, 저수는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제가 올리는 첫 번째 선물이 마음에 드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런 것으로 무엇을 바라는 것은 크게 없으나, 혹 가능하다면 화공을 붙여 주셨으면 합니다. 후께서 만드시는 전사(戰事)를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저 역시 제가 군을 이끄는 방법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저수가 군을 이끄는 요령을 다른 이들도 익힐 수 있으니, 더욱 좋지 않겠는가.
‘나야 당연히 좋지. 내가 먼저 부탁하고 싶은 일을 이리 청하니 말이야.’
“물론이지요.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저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그 정도야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높이에 대해서는 표기한 것을 보면, 꽤 많은 구상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뭐, 현대의 지도 표기법을 가르쳐서 한 거니까.’
“자, 그럼 이제 이 내용들을 종이에 옮기고 장수들을 불러들이지요.”
승태의 말에 가후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것은 너무 시기상조인 듯합니다. 일단 이해할 수 있는 인물에게만 공개하시지요. 물론 행군을 하는 방향 정도야 알겠지만, 결국 뭐가 뭔지 알아보지 못할 이들이 태반일 것입니다.”
‘음, 하기야 무예만 쌓아 온 무인들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한 번에 이해하기란 무리일 테지. 그냥 내 눈치를 보며 다 이해했다고 우길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야.’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선 감군 역할을 맡은 이전을 불러들여 함께 논해 보도록 하지요. 다른 장수들에게는 천천히 알리고 말입니다.”
승태의 지시에 노숙은 급히 밖으로 빠져나가 이전을 불러왔다.
승태의 명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이전은 현청 안의 광경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승태의 곁에서 화공들이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는 탓이었다.
한 장, 한 장 완성되어 한데 모인 것을 보니, 그것은 하북의 지리를 기록한 지도였다. 이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나름 군략과 병법에 밝은 이전인지라 지도의 중요성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승태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그리 놀라면 어떻게 하는가. 앞으로 자네가 이 지도의 중요성을 장수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야 할 텐데 말이야.”
이전은 조금 전보다 더욱 놀란 눈으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경이롭다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혹과 불안의 기운이 이전의 동공에 가득 들어찼다.
“네? 하오나 제가 그 일을 하기에는 부족…….”
그러나 승태는 이전의 손을 꼬옥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장수들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니, 이 일 또한 잘 해결할 것이라 믿고 있네. 이전에는 강동과 여남의 병사들도 잘 화합시켰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 큰 중책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감히 감당키 어렵습니다. 또한, 일군의 대장들을 어찌 제가 말한다고 하여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그저 제 말을 흘려 넘길 것입니다.”
이전의 눈초리는 마치 살려 달라는 의미가 다분했다. 물론 승태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장수들이 글을 모르지는 않지만, 지도를 보고 나름을 전략을 세우 전투를 벌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개중에는 그냥 무시하거나 휘하의 모사들에게 모든 결정을 떠넘겨 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하겠지. 그러면 장수들에게 말하게. ‘장기 말이 될 것인지, 스스로 장기를 두는 사람이 될 것인지’라고 말이야.”
이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가 없었다.
* * *
선우보는 자신에게 날아온 서신을 살피고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유주 일대에서 봉기한 이들이 자신의 결정을 종용하고, 반대로 여양을 점거한 수춘후 또한 손을 잡자고 하니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결국 눈앞에 쌓인 서신들을 주르륵 치워 버린 선우보는 그의 앞에서 희희낙락해하는 족제(族弟) 선우은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보내온 선물들을 만져 보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하하,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언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 봤습니까. 솔직히 선주(유우)의 밑에서 일했을 때도 이런 대우는 못 받았지 않습니까?”
사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과거, 유우의 종사 신분이던 선우보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수만을 이끌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물론 오환사마 염유와의 친분으로 인한 결과이지만, 그렇다 해도 선우보를 끌어들이기 위해 주변에서 혈안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우보만 설득하면 염유를 통해 선비족의 힘과 오환의 세력 모두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자고로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특히 이런 귀한 물건들을 받으며 내려야 할 결정이라면…….”
선우보는 보석들은 한 줌 움켜쥐고는 선우은의 앞에 주르르 떨구었다. 그러고는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그어 보이며 말했다.
“가장 위험한 곳에 설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에 선우은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보석들을 주워 들며 말했다.
“종형, 뭘 그렇게까지 걱정합니까? 굳이 목숨을 다 걸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조조를 도왔음에도 원가의 자식들이 이런 보물들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구슬려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 주면 얻어 낼 것들이 더욱 많지 않겠습니까? 전 선생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맞지만, 우리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나쁠 것이 없잖습니까.”
그때, 전예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선우보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전 장사가 왔군. 그래, 염유는 무엇이라 하던가?”
“선우 어양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우은이 한숨을 내쉬며 패물들을 바닥에 내던졌다.
“아니, 그놈은 아직도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를 모르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아직도 그놈 뒤치다꺼리를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제주, 그 인간은 대체 무엇을 하는데 결정을 우리에게 미룬답니까? 아니면 전 장사, 자네가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선우은의 목소리가 커지자, 보다 못한 선우보가 제지하고 나섰다.
“넌 좀 조용히 해라. 지금 전 장사가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냐.”
선우보의 질책에 선우은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전예를 빤히 쳐다보고는 냉큼 나가 버렸다. 선우보는 미안하다는 듯이 전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 족제가 무예와 머리는 어느 정도 되는데, 성격은 저리도 개차반이네. 부디 자네가 이해해 주게나.”
전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고, 선우보는 여전히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자리를 권했다. 그런 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며 물었다.
“자네는 어찌하였으면 좋겠는가?”
그러자 전예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승상의 손을 잡으십시오. 그것이 저희가 살아남을 방법이며, 세력을 얻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원상은 답돈과 손을 잡은 인물이네. 그런데도 그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리 자네가 선주에 대한 원한을 갚도록 도와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니네. 그리고 조비는 이미 패퇴하여 하남으로 도망갔으니, 우리를 어찌 돕겠는가?”
“그럼 남는 것은 한 명뿐입니다.”
전예가 한 장의 서신을 내밀자, 선우보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