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사실 저곡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것은 조가의 손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간에 원상을 따르기로 한 순간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다. 아버지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인을 바꾸시겠지만, 나는 끝까지 충을 지킬 것이다. 그것이 나의 길이니까.’
저곡은 커다란 강노를 들어 올려 태연히 살육을 자행하는 기병들을 노렸다.
이미 목책은 흔적도 없이 무너진 터라 오환 기병들의 잔인한 손속을 막을 만한 것은 전무한 상황.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은 기병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여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방패병들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 버린 방패로 다급히 몸을 가려 보지만, 그래 봐야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환의 기병들은 창을 쓸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몰아 그대로 짓밟았고, 거기에 치인 병사들은 곤죽이 되었다.
창병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방패병이 원호해 주지 못하는 창병은 잔뜩 겁을 먹고 창을 내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결국 하나둘 병사들이 쓰러져 가는 가운데, 저곡이 혼심을 다해 강노의 시위를 당겨 쏘아 냈다.
휘잉― 퍽!
강노의 장력이 꽤나 대단했는지, 오환 기마병의 머리를 정확히 맞춘 화살은 여전히 힘이 남은 듯 관통하여 하늘 위로 날아갔다.
“이놈들, 내가 바로 저곡이다!”
저곡은 비장하게 외쳤지만, 오환의 기병들은 그리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전장은 죽어 가는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에 아비규환인 탓이었다.
게다가 비록 한 명의 동료가 죽긴 했으나, 오환의 기병들은 그저 사람을 죽이는 흥분에 취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전장에서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이자 잘못이었다.
마치 짐승같이 살육을 벌여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더욱 분노한 저곡이 다시금 소리 높여 외쳤다.
“오환의 호로 잡놈들아! 나를 무시하지 마라!”
피를 토하는 듯한 저곡의 외침에 몇몇 기병들이 호기심을 보였으나, 그냥 정신이 나간 미친놈으로 여길 뿐이었다.
옷은 거적때기나 다를 바 없는데다 주변에는 호위라 부를 만한 인원도 없으니, 그저 이름 없는 병사가 공포에 질려 악을 쓰는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나마 꽤 탐나는 칼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곧 목이 잘릴 테니, 굳이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커다란 나팔 소리가 울려 왔다. 그것은 과거에 저곡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 중 한 명이 한 줄기 구원의 끈을 발견한 듯 소리쳤다.
“기주갑병(冀州甲兵)이다! 원군이 도착했다!”
장합이 이끄는 기주갑병의 등장. 그 말인즉슨, 드디어 살길이 생겨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춘후를 의미하는 ‘춘(春)’ 자가 적힌 깃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장합은 멀리 보이는 오환돌기를 바라보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오환 놈들이 감히 기주민을 해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장합이 손을 내밀어 휘젓자 깃발이 올라가며 연노병들이 선두로 나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놀라 달려오는 오환 기병들을 향해 침착하게 연노를 쏘아 날렸다.
그들은 적의 돌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거리를 따져 가며 연신 화살을 날려 댔다.
마치 범위 공격을 쏟아붓는 듯한 연노병들의 공격에 무식하리만치 돌격을 감행하던 오환 기병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나갔다.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오환의 기병들은 학살을 멈추고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장합이 이끄는 기주갑병을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기마를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적이 물러난다! 뒤를 쫓아라!”
오환 기병들은 다 죽다 살아난 패잔병 주제에 감히 추격 운운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굉장히 거슬렸다. 그저 한 줌도 안 되는 놈들이 기고만장해진 꼴이 우습지도 않은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원군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죄다 목을 잘라 버리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그러던 중 기병 중 한 명이 십장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십장, 이놈들을 먼저 처리하고 나서 새로 나타난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십장은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감히 겁도 없이 자신들을 쫓아오는 병사들의 행색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말 머리를 돌려 한 번에 들이치면 산산이 흩뿌려질 불나방 떼.
하지만 십장은 애써 마음을 접었다.
“저런 놈들에게는 화살도 아깝다. 지금은 새로 나타난 병력을 먼저 해결한다.”
다른 오환 기병들 또한 뒤에서 쫓아오는 거렁뱅이 같은 행색의 병사들을 무시하고 달려갔다.
한편, 장합은 전열을 정비해 자신에게 달려오는 오환돌기를 보며 옆의 고운에게 물었다.
“화살은 아직 남아 있겠지?”
“그럴 것입니다.”
“귀갑진 사이에 창병을 섞고 적을 상대하는 게 좋겠군.”
“하지만 적도 머저리가 아니니, 우회를 시도할 것입니다.”
그 말에 장합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욱 좋지.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적을 너무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공손찬을 상대할 때도 다들 그리 말하더군.”
“기병의 숫자가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래 봐야 그냥 오환 잡놈들일 뿐이다. 저 중에 답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형님은 이미 강남에서 큰 공을 세우지 않았는가. 나도 기주 출신으로서 그만큼은 해야 면목이 서지 않겠는가.”
고람의 아들인 고운은 장합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면 저는 이곳을 굳건히 지키겠습니다.”
“그래. 자고로 곰 같은 아버지 밑에서 비슷한 아들이 나오는 법이지.”
사납게 달려들던 오환돌기들은 귀갑진을 마주하며 전과 마찬가지로 단숨에 깔아뭉개려 했다.
그러나 단단히 진을 감싼 가운데 연노병들이 나타나 활을 쏘아 대자 결국 우회하기 위해 말 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눈을 빛낸 장합이 우렁차게 외쳤다.
“바로 지금이다! 저들을 모두 박살 내 버려라!”
장합이 이끄는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나 돌격을 해 오자 놀란 오환기병들은 급히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어느새 귀갑진이 그들을 둘러쌌다.
비명과 함께 기마들이 서로 엉켜 넘어지는 일이 속출하자, 오환 기병들은 한순가에 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오랜 시간 전장을 전전한 역전의 용사들이라 곧 냉정을 되찾고는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빠르게 말을 몰아 나갔다.
“뒤처진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벗어나라!”
장합이 그들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적을 뒤쫓지 말고 창병들은 귀갑진 뒤로 물러난다!”
장합의 명에 뒤를 따르던 병사들이 급히 다시 진형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낙오된 오환 기병들은 착실하게 하나씩 숨을 끊어 놓았다.
오환돌기를 이끌던 지휘관은 적이 자신들의 뒤를 쫓을 줄 알고 거리를 벌려 활을 쏘려 했지만, 이미 상대는 방패병들을 전면에 배치한 후였다.
그 빈틈없는 전술 운용에 지휘관은 퇴각을 결심하였다. 이미 적지 않은 병력을 잃은데다 상대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실 구원병이 등장한 순간에 퇴각을 결심했어야 했는데, 괜한 욕심 탓에 무리를 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기주갑병의 지휘부를 노렸다.
오환의 기병들이 마치 화풀이를 하듯 활을 꺼내 들고 달려들자, 지휘부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우리에게 달려들다니!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라!”
“우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장합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주변의 기병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도대체가 말이야, 왜 사람은 꼭 찍어 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지 모르겠다니까. 고운, 저놈을 딱 봐도 감히 달려들 생각을 못 할 텐데 말이야. 저게 어디 사람이야? 영락없는 곰이지.”
장합의 말대로 고운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기다란 극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전신 같아 보였다.
고운은 단단한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는 크게 소리쳤다.
“투창을 던져라!”
오환 기병들은 갑작스러운 투창 공격에 놀라 흩어지자, 고운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원소 휘하에서 최정예 중 하나였던 대극사(大戟士)는 점점 효용 가치가 떨어지며 소외받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무력이 무시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가장 크게 날뛸 수 있는 장소에서 대극병의 대장이 된 고운은 크게 포효했다.
고운의 얼굴은 사람과 말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입만은 숨길 수 없는, 만족스런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 옛날, 아버지인 고람에게 들어 온 대극사의 위용을 다시 한번 떨칠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하면서.
커다란 극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말 위에 있는 병사들은 여지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니, 그냥 한 명뿐만이 아니었다. 극에 걸려 떨어지는 병사가 주변 병사들까지 함께 잡고 쓰러지니, 그야말로 한 번의 돌팔매질로 여러 마리의 새를 잡는 격이었다.
오환의 기병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무용을 뽐내는 고운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과거,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크게 당한 기억을 떠올렸다.
“고람이다! 대극병이다! 미친 늑대가 나타났다!”
오환 기병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심어 준 대극병. 이미 사라진 줄로만 여긴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오직 말을 돌려 도망치는 것뿐. 어차피 무거운 중무장을 한 상대는 자신들을 쫓아올 수 없을 테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적에게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좌우로 흩어져 빠르게 물러난다! 어차피 저들은 우릴 쫓아오지 못하니,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라!”
오환 기병을 이끌던 대장이 크게 외치자, 돌기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자 한창 적을 쓰러트리던 고운이 바닥에 극을 바닥에 꽂고는 외쳤다.
“원형진!”
“원형진!”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병사들이 고운의 곁으로 달려가 빙 둘러서며 방패를 세웠다.
“착노!”
“착노!”
방패의 홈 위에 노를 설치한 병사들은 사방으로 노를 조준하였다. 그때, 오환 기병들이 등을 돌려 활을 쏘았지만, 그저 방패만 두들길 뿐이었다.
워낙 경황없이 쏘아 낸 터라 제대로 된 위력이 전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쏴라!”
그런 후, 고운의 명에 화살들이 뿜어지듯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