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결국 저곡을 노리던 오환 기병들은 패퇴하여 물러났다. 그러자 장합은 재빠르게 군을 정비하여 유민들에게 다시 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오환의 병력이 흩어져 다시 뭉치면 언제 다시 습격해 올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유민들은 장합의 명에 따라 완전히 무너져 버린 목책을 손보기 시작하였다.
저곡은 자신을 구해 준 장합의 부대를 직접 나아가 맞이하였다. 비록 장합에 대해 경멸스러운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됐든 목숨을 구원해 준 은인이 아닌가.
하지만 장합은 그런 저곡의 내심을 잘 안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자네의 아버님이 보낸 서신이네.”
“제 아버지 말씀입니까? 설마… 그분께서 수춘후의 휘하에 드셨습니까?”
“서신을 보면 알 일이네.”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은 채 장합은 그저 서신을 내밀 뿐이었다. 그 모습에 저곡의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러운 장합의 등장과 저수의 서신은 저곡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머리를 채웠다. 살고 싶다는 욕망과 충을 지켜 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대의가 서로 충돌한 것이다.
결국 마음을 정한 저곡은 서신을 보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벅벅 찢어 버렸다. 그것도 장합이 보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이다.
그 무례한 태도에 장합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아무리 저곡이 자신을 경멸한다 해도 이건 경우가 아니었다.
한편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고운은 아무 말 없이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흩어진 서신을 주워 모았다.
“이것 참, 보지도 않고 서신을 찢으면 어떻게 합니까? 감군께서 굉장히 신경 쓰며 쓴 건데. 그리고 이 종이가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알기나 합니까?”
고운이 사람 좋게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장합 또한 화를 내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이내 정색하고는 저곡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앞으로 같이 움직여야 할 터이니, 알고만 있게. 저 감군은 지금 주군의 밑에서 일하고 있고, 하북에서 역적들을 모두 몰아낼 때까지는 함께할 것이네. 승상께서도 지금 업을 향하고 있고 말이야.”
그러나 저곡은 여전히 마땅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오직 삼공자만을 따를 뿐이오. 지금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했으니, 이제 유주로 갈 생각이오.”
장합은 막무가내인 저곡을 빤히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끌고 가고 싶지만, 저수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부공께서 무슨 생각으로 자네를 불렀는지는 아는가?”
“흥, 배신으로서 점철된 부공의 인생에 다시금 주인을 바꾸어 인질을 잡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비록 말은 좀 거칠긴 하지만, 사태를 꿰뚫어 보는 정확한 판단에 장합은 꽤 신기하다는 듯 저곡을 바라보았다.
배신이라 단정 짓기는 어려운 면이 있긴 하지만, 하여튼 저수가 주인을 바꾼 것도 맞고 인질을 잡고자 한 것도 맞으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저곡의 말이 이어졌다.
“충을 버린 인간이 어찌 자식의 효를 강요한단 말입니까?”
장합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조차 독설을 쏟아 내는 저곡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었다.
“자네의 생각은 알겠으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야.”
“무슨 뜻입니까?”
“오환의 답돈이 배신한 것은 알고 있겠지?”
저곡은 사방에 죽어 있는 오환 기병들을 훑으며 그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럼 답돈이 누구와 손잡으려는지도 알고 있겠지?”
“원담이겠지요.”
“맞아. 하지만 유주의 선우보도 원담의 손을 잡으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
저곡은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선우보가 원담의 손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소의 적자는 원상이고, 전주가 원담을 지지한 것은 삼군 오환 때문이라 여겼다. 그런데 삼군 오환이 원상에게서 떠났음에도 선우보가 원담의 손을 든다니, 순간 몸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그럼 어찌 되는 것입니까?”
“어찌 되긴. 유주는 아직 손도 뻗지 못하는 상황인데, 아무런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사실 자네가 답돈을 도와 오환이 유주로 힘을 뻗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덕분에 자네가 주인으로 모시는 삼 공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징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하는 저곡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든 것이 이 공자인 원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야. 내가 이 공자였으면 아마…….”
저곡은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었으나, 이리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장합에게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군, 말씀해 주십시오. 뭔가 방도가 있기에 이리 나를 도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합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고운이 주워 모은 저수의 서신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어 제대로 읽기는 그른 듯싶었다.
“저 서신이 답이었네. 감군께서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비책을 적어두었지.”
저곡은 뒤늦게 후회가 들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장 장군은 내용을 모르십니까?”
“나 말인가? 나야 뭐, 전장에 나아가는 사람이지, 모사가 아니네. 내가 삼 공자가 어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저 감군께 들어서 말한 것뿐이지.”
저곡은 고운이 모은 서신을 덜덜 떨면서 받아 들었다. 서신에 묻은 피를 털어 보려 했지만, 그래 봐야 이미 글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찌… 제가 어찌해야겠습니까?”
저곡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하여 원상이 죽게 될 위기가 닥치자, 다급하게 매달렸다. 그러나 장합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감군께 직접 듣게. 나는 모르는 일이니 말이야.”
말을 마친 장합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고, 황망하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은 저곡은 그저 멍하니 찢어진 서신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장합을 향하여 고운이 물었다.
“어찌하여 초촉과 장남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내가 보기에 그 말을 하는 순간, 저곡은 원상에게 뛰어갈 것이다. 그럴 바에야 지금처럼 계책을 듣는다는 핑계로 후방에 보내는 것이 안전할 것이네.”
고운은 장합의 심계가 담긴 말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대단하십니다. 그 상황에서 어찌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나친 칭찬에 장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운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너도 장수로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그런 통찰은 필요하다. 언제까지 그 자리에만 있을 것은 아니지 않으냐.”
그러자 고운은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그런 건 어려워서 못 해요. 부공께서도 굳이 가지지 못할 것은 넘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자신의 무능과 무지에 대하여 인지하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일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것에 언제나 장군과 같은 분들과 논하면 충분하다고요.”
장합은 고운의 말에 새삼 고람의 대단함과 아들을 생각하는 자애를 느꼈다.
“넌 어떠냐? 욕심은 나지 않고?”
“무엇이 말입니까?”
순진무구한 고운의 눈동자를 본 장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내 너를 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으니, 매일이 새로운 기분입니다.”
장합과 고운은 절망에 빠져있는 저곡과 달리 밝은 웃음을 지었다.
* * *
편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저수가 들어오자, 승태는 고개를 들어 흘낏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다시 신경을 끄고는 글을 적어 나갔다.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수가 말을 꺼냈다.
“수춘후께선 원상을 살리고자 하십니까?”
승태는 저수의 말에 묘한 거부감이 들어 대꾸했다.
“그럼 원상을 버리라는 말입니까?”
“원상이 살아 있으면 하북은 또 한 차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승태는 턱을 긁으며 저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가에 충성하던 저수의 입에서 직접 원상을 죽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꽤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흉노를 이용해 답돈을 치는 수도 있겠으나, 원상을 처리하는 일은 경우가 달랐다.
“원상을 살려서 하북을 얻어내는 것과 원상을 죽여서 하북을 얻어내는 것이 얼마나 차이 나겠습니까?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하북의 안정화가 아니라 승상의 휘하에 들게 만드는 것인데.”
“원상은 언젠가는 반기를 들어 올릴 인물입니다. 원가의 유산이 거대하니, 하북이 안정화되면 승상과 다른 생각을 할 것이란 말입니다.”
승태는 저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북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 감군이야 하북 출신이니 큰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그냥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저수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남의 성자라 불리는 수춘후가 이런 말을 꺼내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 그리도 냉정하게 말을 할 수 있으십니까?”
저수가 답답함을 토로하자, 승태는 가만히 서신을 하나 건네었다. 그것은 순욱이 보내온 서신으로, 이미 업성을 함락시켰고, 조비를 위공으로 삼아 기주와 유주목을 겸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살핀 저수도 승태와 조비 간의 알력을 알기에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못하였다.
“이곳에 있어 보았자 나는 아무런 얻을 게 없소이다. 솔직히 따지자면, 그대의 경멸과 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피와 땀을 흘렸지. 나는 위에 서 있는 자로서 그들의 피와 땀에 보답해야 하오.”
“그런 아량을 하북에도…….”
승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저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되지 못하오. 그저 내 울타리 안의 것들만 품을 뿐.”
저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승태의 바람도 이해 못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승태의 입장에서는 원상이 살아 있어야 잠정적인 위협 세력이 사라지며, 순욱도 쉽사리 수작을 부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유엽이 말한 일들을 벌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상이 살아 있어야 하고 말이야.’
승태가 다시금 붓을 들며 말했다.
“그리고 이미 장 장군이 감군의 아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에 저수는 약간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승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하실 것은 없습니다. 장 장군 앞에서 서신을 찢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저수는 그 말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충을 저버린 부공에 대한 반발이라 하더군요. 그러더니 이제는 다시 원상을 구할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하네요.”
어찌 보면 염치가 없어 보이는 저곡의 행동에 저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승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승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려 서신을 다시 적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