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저수가 물러난 자리를 가후와 유엽, 노숙이 들어와 채웠다. 승태는 그때까지도 계속 붓을 놀리고 있었는데, 가후가 나서며 서신 한 장을 건네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승태의 물음에도 가후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승태가 궁금하다는 듯 서신을 살펴보려 하자, 가후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웬만하면 보지 마시지요. 나중에 자제분께 전해 듣게 된다면 더욱 즐거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호기심이 동하는군요. 대체 무슨 내용을 적으신 것입니까?”
“좋은 말을 썼지요. 아마 평생토록 가슴에 담아 둘 것입니다.”
승태는 웃음을 짓다 문득 아련한 표정을 띠었다. 단이를 떠올리니 수춘에 남은 가족들과 집이 생각나고, 이내 따뜻하고 안온한 기후가 그리워진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바람은 참으로 차갑기 그지없네요. 절로 가슴이 시린 것 같습니다.”
승태의 말에 량주 출신인 가후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맞습니다. 그에 비하면 수춘은 참으로 따뜻하겠지요.”
승태는 자신을 다독여 주는 가후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찬바람이 문제이겠는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주 열불이 치솟을 지경이었다.
순욱이나 조비는 아주 그냥 자신이 가져온 모든 것을 제 것인 양 집어삼키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피를 흘리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넋두리를 늘어놓아 본들 나아질 것은 없기에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감군이 왔다 간 이유는 아시겠지요?”
“원상을 버리라는 말을 하였겠지요. 원상이 죽어야 더는 하북에서 원가를 내세워 난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본래 저 감군는 하북의 뿌리 깊은 호족이니, 당연히 하북의 평안을 바랄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군은 어떻게 해서든 안정적인 하북이 만들어지기를 바랐습니다. 하북에 남을 저 감군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쳐도 저로서는 하북이 안정화된다고 해서 얻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은 순욱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솔직히 승태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상관없었다.
도리어 지금껏 계속해서 희생만 강요당하는 셈이니, 조금이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승태의 솔직한 푸념에 유엽이나 노숙은 말이 없었다. 둘 역시도 그 말에 완전히 찬동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멀리서 전장을 관망하거나 조력할 줄만 알았지, 지금과 같이 직접 나서 이족들을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이득은 모조리 조비와 순욱이 챙겨 가니,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를 않네. 그나마 곰에게는 고기라도 챙겨 줄 텐데 말이야. 빌어먹을.’
속으로 푸념을 쏟아 낸 승태는 이내 서주와 양주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 순욱에게서 받은 목록을 보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사람은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결국 보다 못한 가후가 한마디를 꺼냈다.
그러나 승태는 이번만큼은 가후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제가 머물지도 못할 땅인데, 이곳에서 얻은 사람이 저를 따라가겠습니까? 차라리…….”
말을 끊은 승태는 자리에서 내려와 자그마한 목패를 가후에게 건네었다. 그곳에는 이번 전투에서 죽은 병사의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여기 있는 병사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얻을 것도 없는 전장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스러진 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쥐어 주어야 합니까?”
가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승태는 자리로 돌아가 커다란 목함을 꺼내 보여 주었다.
“얼마나 더 병사들의 희생이 필요합니까? 물론 저야 편안히 여기 앉아 병사들이 죽는 것을 바라볼 뿐입니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아닌, 그저 숫자에 불과한 보고만 받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자조 섞인 승태의 담담한 고백에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승태가 선을 그었으니, 그것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었다.
순욱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승태를 따르게 하였으니, 그 바람을 충실히 따를 생각이었다.
가후는 목패를 다시 승태에게 건네고는 말했다.
“후께서 원하시는 바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아무리 후의 마음이 그렇다 한들 한 번의 결전은 필요합니다.”
승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해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전투의 승패 또한 어찌 흘러갈지 알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해도 우리가 승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마땅히 그리할 것입니다.”
가후가 예를 표하고 물러나자, 승태는 그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노숙이 승태에게 말했다.
“주군, 가 공은 주군께서 상책을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말했지만, 천하에 명성을 떨칠 기회임도 사실이지요.”
그에 유엽이 가후를 옹호하듯 말을 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하북에서 사람을 얻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작금의 하북은 학문의 중심일 뿐 아니라 북방과 맞서 언제나 뛰어난 무인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한 이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후일 충분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주군을 지킬 것이고, 더욱 높은 곳에 이르도록 거름이 되어 줄 것입니다.”
승태는 유엽의 말에 의자에 몸을 뉘며 말했다.
“그 높은 곳에 오르려면 치러야 할 대가가 많지 않겠습니까? 그저 명성만 높아서야 죽을 위기만 많아지겠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승상께서 마땅히 내게 줄 것을 주었다면, 고개를 숙이고 명을 따랐을 것입니다.”
조금 흥분한 듯 승태는 서도를 들어 상을 내려치면서 말했다.
쾅!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를 내놓아도 만족과 감사를 모르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좀 더! 좀 더 내놓으라 합니다.”
서도로 내리쳐질 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의 가운데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승태가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초촉과 장남, 전예에게 전하여 원희와 원상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수의 원래 목적은 그들을 위험 상황에 방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저곡에게 전한 서신에 적힌 내용도 그와 다르지 않아 그저 저곡의 안위를 묻는 것이 전부였었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은 장합에게 다 일러둔 상황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장에 임해야 하니, 단순히 서신에 적힌 것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그 일이 엉뚱하게 꼬여 내막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저곡이 아버지를 완전히 척을 질 일은 사라진 것이었다.
* * *
가후와 유엽은 승태와의 대담을 끝내고 저수의 처소로 들었다. 두 사람을 맞이한 저수는 차를 한입 마시고 나서 가후에게 물었다.
“내 들었습니다. 그대의 책략이 이번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지요?”
얼핏 보면 비웃음 같기도 한 저수의 독설에 가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음 지었다.
“내 책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주인에게 맞는 옷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저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겁쟁이에다 백성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돈만 좇는 그런 자를 어찌 따르는 것이오? 정말 그자에게 미래가 있다고 보시오? 참으로 하남의 인재들은 주인의 복이 없는 듯싶소.”
가후는 빈 찻잔을 아예 뒤집어 버리고는 담담한 눈빛으로 저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겁쟁이라… 천하의 반을 삼키고도 수하들을 믿지 못하여 그 옛날 범증과도 같은 이를 죽였소. 그뿐 아니라 친우를 만족하게 하지 못하여 모든 것을 내놓은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것은…….”
“사람이란 모르는 법이외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지면 성정이 바뀐다는 말 같은 건 그냥 접어 두시오. 그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승패에 따라 주인을 바꾸었음이오.”
정곡을 찔린 저수는 순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후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나 다름없는 하북의 현실을 그저 멈춰 세울 뿐이지요. 기주의 호족들조차 하지 못한 것을 어찌 타지에서 온 수춘후에게 매달린단 말입니까? 또한, 죽음에서 그대를 구하고 지금 다시 기회를 주었는데, 무슨 낯짝으로 그리 말을 합니까?”
“…나는 기주인이오. 그리고 기나긴 전투가 끝난 뒤 하북이 어찌 될지 빤히 보이는데, 어찌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겠소? 이다음이 그대로 그려지는데 말이오.”
“그러하다면 작금 위공이 될 조비를 찾아가시는 것은 어떠하시오?”
저수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저수도 알고는 있었다. 조비는 자신의 말을 결코 듣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비단 조비뿐 아니라 순욱 역시도 주변에 영천파의 인물들이 많으니 굳이 기주에서 그를 중용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조조가 살아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만, 조조는 이미 죽고 없지 않은가.
“그럼 나더러 대체 어찌하라는 말입니까?”
“본인이 스스로 그것을 해내야겠지요.”
“무슨 뜻이오?”
가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저수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기주는 이미 조비의 손에 들어갔고, 승태는 얻을 것이 없는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하니 말이다.
“이 가 모는 그저 수춘후께서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보고자 할 뿐입니다.”
저수는 가후가 던진, 수수께끼와도 같은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종이를 펼쳐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결국, 승태는 전장에 직접 서게 되었다. 답돈이 호주천 군세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계획이 들켰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답돈은 원담과 함께 군을 돌려 승태가 있는 남피로 향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승태 또한 주변에 흩어진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장합이 가장 먼저 합류하였으며, 그 뒤를 따라 장료와 조운 등이 움직였다.
답돈은 이대로 싸우면 피해가 커져 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그저 승태의 후방으로 병사를 보내 보급을 흔들고 사기를 떨어트려 유주로 손을 뻗지 못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거기다 기회만 된다면 승태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윽고 서전이 시작되고, 조진이 자신의 대도를 높이 들어 올리며 명하였다.
“보급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보군들은 남아 마차를 지키고, 기마들은 모두 나를 따라라!”
오환 기병 삼백과 조진의 기병 백이 격돌 하였다. 물론 기마술이 뛰어난 오환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았다.
조진은 이대로라면 전멸은 면치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는 급히 퇴각을 명하였다. 하지만 아직 불운은 끝난 게 아니었다.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기병들이 우회하여 달려드는 것을 본 조진은 급히 보급을 버릴 것을 명하였다.
“마차를 버리고 달아나라!”
서전부터 보급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