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답돈은 비장함이 풍기는 위월의 말과 달리 어설프게 창을 잡은 자세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창을 잡는 것이 꽤 서툴러 보이는군.”
위월은 순간 투석기를 만들겠답시고 수련을 너무 등한시한 것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잡는 것도 꽤 어색해져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 다른 방법이 없으니, 결국 남은 것은 창뿐이었다.
“네놈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 같은데?”
‘제기랄, 조가 놈 흉내나 내야겠다.’
위월이 조운을 떠올리며 창을 잡고 자세를 취하자, 답돈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놈, 상산 놈들과 무슨 관계더냐?”
조금 전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긴장한 답돈의 모습에 위월은 웃음 지으며 말했다.
“왜? 상산 조가 애들에게 쓴맛을 본 적이 있나 보지?”
기회를 잡았다는 듯 깐족이는 말에 답돈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바로 달려가 창을 내지를 뿐이었다.
위월은 자신의 주 무기가 창이 아닌 것을 감안하여 일단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사이, 순식간의 목을 노린 참격과 연환 공격이 이어졌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창의 놀림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위월은 침착하게 막아냈다.
답돈은 당장에라도 목을 벨 것처럼 강렬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정작 위월은 그리 위기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슬쩍 답돈의 형세를 살폈다. 허벅지로 계속 재촉하고 있지만, 말이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껏 너무 혹사한 탓에 민감한 반응 따위는 물 건너간 상황인 듯 보였다. 척 보아도 말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 말인즉, 기마술의 이능이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위월에게는 유리한 점이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거기다 지금 답돈이 사용 가능한 무기는 손에 들고 있는 창 한 자루가 전부였다.
이래저래 비슷한 처지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위월은 새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신은 등자를 활용할 수 있으니, 오히려 유리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주변으로 흩어진 답돈의 수하들이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월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진정한 전사라고 자부하는 답돈이 다른 이들의 개입을 허락하지는 않을 테니까.
한동안 말없이 공격을 쏟아붓던 답돈이 잠시 물러나서는 입을 열었다.
“네놈이 감히 입을 놀린 만큼 실력은 갖췄구나. 하지만 되지도 않는 소리를 늘어놓았으니, 그 벌로 네놈의 혀를 뽑아 주마. 그래야 저승에 가서도 헛소리를 못 할 터이니 말이야.”
위월은 한껏 위협적인 발언을 해 대는 답돈의 태도에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왠지 그 모습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 대형의 입을 닮았군. 일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과격한 말을 뱉어 내는 모습이 말이야. 물론 실력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야.’
위월이 한껏 여유를 되찾자, 답돈 역시 태도를 달리했다. 이대로는 쉽게 상대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답돈은 조금 전과 달리 천천히 기회를 노리듯 위월을 살피며 기회를 노렸다.
“당장에라도 내 목을 딸 것처럼 달려들더니, 왜 이리 뜸을 들이느냐? 설마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위월의 도발에도 답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약을 올려 보았자 의미가 없다 여긴 위월도 표정을 수습하고는 신중하게 창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두 사람 사이를 한 줄기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며 먼지를 일으켰다. 하지만 답돈과 위월 모두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더는 버틸 수 없겠는지, 답둔을 태운 말이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탁!
이 순간이 기회임을 직감한 위월이 빠르게 말을 몰아 나가며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답돈 역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창을 휘둘러 튕겨 내었다.
답돈은 자신을 태운 말이 이미 한계임을 깨닫고는 그대로 내처 위월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월이 기다리던 바였다.
‘드디어 끝났다! 답돈, 네놈의 목을 들고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위월은 좀 더 의심을 해야 했다. 답돈이 어째서 득달같이 달려들었는가를 말이다.
답돈은 힘껏 내지른 위월의 창을 향해 왼팔을 내밀었다. 그야말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려는 독심. 뒤늦게 답돈의 의도를 깨달은 위월이 창을 회수하려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잔인한 미소를 지은 답돈은 왼손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오른손으로 짧게 잡은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위월은 피하기 위해 한껏 허리를 뒤로 젖혔으나, 답돈이 노린 것은 그가 아니었다.
위월을 태운 말의 정수리가 창에 찔려 피 분수를 뿜어냈다. 덩달아 바닥을 뒹군 위월이 급히 몸을 일으켰는데, 다행히 창은 멀쩡했다.
“빌어멀을, 이게 네놈이 말한 전사의 싸움이더냐?”
위월이 창을 들어 답둔을 견제하려는데, 순간 하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살피자, 바지 위를 시뻘건 피가 적시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창에 찔리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답돈은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아서인지, 아니면 그 자신 또한 왼팔이 베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 위로 기이한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이젠 도망가지 못하겠지!”
“어차피 그럴 생각 따윈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잡놈아!”
위월이 소리 높여 의기를 드러냈지만, 답돈은 이미 끝난 싸움이라 여겼는지 웃음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창을 길게 잡고 위월의 앞에 섰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네놈이 그걸 알아서 무엇하느냐.”
“수춘후에게 네놈 머리를 고이 잘라 보내려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위월은 여전히 거만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답돈의 태도에 클클, 웃음을 흘리며 맞받아 주었다.
“그런 거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죽을 것은 내가 아닌, 네놈일 테니까. 그래도 내 이름은 알려 주마. 그래야 염왕에게 가서 누가 네놈을 보냈는지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답돈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창을 들어 위월의 골반을 가리켰다. 이미 너무 많은 피가 흘러나온 탓에 위월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굳이 내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네놈은 곧 죽을 것 같군.”
“그래서 그냥 도망가겠다는 말이냐?”
위월의 말에 답돈은 짜증이 치솟았다. 곧 죽을 놈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을 도발하려는 것인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지 않겠다는 듯 위월은 창을 다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답돈은 비웃음을 내뱉었다. 다리가 성치 않으니 제대로 균형을 잡지도 못할 텐데, 그런 주제에 익숙하지도 않은 창으로 자신을 상대하려 하는 게 웃기지도 않은 탓이었다.
“정녕 편히 죽기는 어렵겠구나.”
답돈은 대충 창을 다잡고 위월에게 다가갔다. 얼핏 상산병을 따라 하는 자세이지만, 위월은 조운이 아니었다.
사실 조운이라 할지라도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는 답둔 자신을 어쩌지 못할 터인데, 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위월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답돈은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전장에서 그런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답돈은 어떻게 해야 위월을 무너트릴지 생각했다.
“바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네놈은 감히 우리 위대한 오환의 신과 조상을 욕했으니. 고통에 처절히 몸부림치다가 네놈 스스로 죽음을 빌도록 만들어 주마.”
그야말로 답돈의 잔인한 성정이 드러나는 말. 괜한 협박이 아닌 듯 답돈은 가볍게 창을 휘둘러 위월이 상처를 가격했다.
“큭!”
부지불식간에 일격을 허용한 위월은 답답한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장난치듯 창을 휘두르는 답돈의 공격에 위월의 몸 이곳저곳에는 곧 많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이윽고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자, 답돈이 비웃음을 보이며 말을 내뱉었다.
“이제 포기한 것이냐? 하지만 내가 말했지, 네놈은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아, 혹시 네놈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뭐? 그게 무슨 말이냐?”
“나도 바보는 아니라는 말이다.”
“…….”
“어차피 죽을 놈이 알아봐야 소용없겠지만, 내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마.”
위월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즐기듯 답돈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조비가 그랬지, 원담과 손을 잡아 수춘후에게 큰 피해를 주라고. 만약 죽일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나? 어쨌든 그렇게만 해 주면 유주와 병주 일대를 나에게 주겠다더군. 아울러 내게 오환의 선우 자리를 인정해 주겠다고도 했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위월은 뱀같이 야비한 짓을 벌인 조비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침을 뱉었다.
‘부모도 팔아먹을 놈이라 생각했는데, 과연 이적(夷狄)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데 주저함이 없군.’
답돈은 위월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쁘지 않겠더군. 물론 그 말을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겠으나, 나야 아무래도 좋지. 승리하면 원담과 조비에게서 비옥한 땅을 얻게 되고, 만약 패배하더라도 어차피 누반이 모든 책임을 덮어쓰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러면 나는 그 아이를 대신하여 선우 자리에 오르겠지. 어때?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답돈은 피식 웃었다. 좌우현왕에게 휘둘리는 조카 누반의 모습이 눈앞으로 선히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라진 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누반을 보며 뭇 세력들은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찾을 것이었다.
그런 조카를 보며 자신이 없는 군에서 각 부족들은 발을 뺄 것이고, 누반은 이를 타개하고자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 자네 덕분에 내가 전장에서 이탈할 합당한 명분도 얻지 않았겠는가. 이 정도면 내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정도이지.”
위월은 답돈의 계산적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이러한 점을 보면, 여포와는 다른 인물임은 분명했다.
여포는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전장에 나서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계산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 우직한 모습이 수하 장수나 병사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이지만, 답돈에게서 여포를 떠올린 것이 황송할 지경이었다. 답돈 따위는 여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저 머리 좀 굴릴 줄 아는 여우에 불과할 뿐이었다.
“네놈이 지금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위월은 마치 몽둥이마냥 창을 잡고는 말했다.
“헛된 꿈을 꾸며 개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좀 많이 맞아야겠다.”
답돈은 그 모습에 크게 웃음을 지었다.
“푸하하하! 피를 많이 흘려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어차피 네놈이 모시는 수춘후는 죽을 것이다. 그 간교한 조비가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수춘후를 결코 내버려 둘 리 없지. 모르긴 해도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 무슨 수든 썼을 것이다. 이 난전 속에서 수춘후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위월의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세 치 혀 그만 놀리고 네 걱정이나 해라, 오랑캐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