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장료와 조운이 선발로 나선 가운데, 근해를 통한 보급을 원활하게 하고자 승태는 해적 토벌 명령을 내렸다.
그에 대한 주장(主將)은 태사자였으나, 승태의 부름을 받은 하기가 부관으로 종군하며 해적 관승을 상대하게 되었다.
하기는 오나라의 하제와 비견되는 인물로, 어찌 보면 도적 토벌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도 관승을 토벌한 그는 아직 명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승태로서는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노숙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승태가 쓴 추천서를 보면 조조의 밑에서 꽤 일을 한 것 같지만, 군에 대한 경력이 없다 보니 의구심이 든 것이었다.
“주군, 이자는 군에서 일한 바가 없는데 어찌 태사 장군께 보내신 것입니까? 차라리 장 태수(장패)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노숙의 물음에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노룡새와 거용관, 그리고 백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환은 장성 이북에서 끝장을 내야 감히 더는 나의 장수들을 노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험한 산지이니, 장 태수와 창 도위의 부곡들이 필요합니다. 태산병보다 산세를 더 잘 이해하는 이들은 없으니 말입니다.”
노숙은 승태의 강한 주장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유자양(유엽)의 말은 듣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그도 그럴 것이, 노숙이 보기에 유엽의 계책은 합당한 면이 있었다. 당장 답돈을 죽여 끝을 보는 것보다 그를 본래 그의 세력권인 요서로 쫓아 보내면 하북에는 큰 화근이 남게 되는 셈이다.
그 와중에 승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셈이니, 조정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이름을 빛낼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또한, 장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엽의 계책에 따르면 그리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도 않고, 주변 유지들을 잘만 포섭하면 오환의 보급을 끊어 아무런 피해 없이 답돈을 몰아낼 수도 있었다.
승태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이성은 유엽의 계책을 따라야 한다고 소리쳤다.
만약 답돈을 살려 둔다면 그는 오래도록 순욱을 괴롭힐 테니,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더없이 알맞았다. 다시 말해 원상의 역할을 그가 대신하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승태의 감정은 그러지 못하였다. 그저 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물끄러미 쓰다듬으며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깔끔하게 잘려진 위월의 손.
비록 아직 생사를 확답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사가 복잡했다. 이성은 그러지 말라고 제지하지만, 지금 이 순간, 승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답돈에 대한 잔인한 복수였다.
‘위 장군은 이런 나를 보면 걱정하겠지. 그는 무엇보다 내가 잘되는 것을 바랄 테니까. 하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노를 삭이기가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답돈을 잡아 와 온몸을 한 점, 한 점 저미며 포를 뜨고 싶었다.
비록 위월이 가족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정을 쌓으며 속에 담긴 말을 터놓을 수 있을 만큼 친분을 쌓아 왔다.
물론 그 대부분은 위월이 공성 병기를 만든답시며 승태를 쫓아다니며 의견을 묻는 것이지만, 사람의 관계란 단순히 생각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위월의 역할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포 휘하의 부곡들이 승태를 따를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공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는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이 필요한 일을 함으로써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살아갔다.
그 와중에 승태가 필요로 할 때면 언제나 득달같이 달려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마치 승태를 위한 일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말이다.
승태의 눈이 위월의 잘린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고심이 깊어지자, 결국 보다 못한 노숙이 나서며 말했다.
“주군, 주군께서 원하는 대로 하시옵소서. 자양의 계책은 그저 하나의 방도일 뿐입니다. 반드시 그걸 따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주군이 결정을 내리시면 최선을 다해 움직일 것입니다.”
“진정 그리해도 괜찮겠습니까?”
비록 노숙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주었지만, 승태는 자신이 없었다. 만약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계속 답돈을 노리다가 또 다른 이가 다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지금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어차피 전쟁 중에 누군가는 다칠 수밖에 없겠지만,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승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만약 조조였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도 않았겠지.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수하들을 얼마든지 불구덩이 속에 던져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니까.’
이윽고 깊은 고민 끝에 승태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답돈에 대한 확실한 징벌을 원합니다. 앞으로는 그 누구도 감히 내 사람을 노리지 못하게 말입니다.”
노숙은 승태의 확고한 태도에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주군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노숙이 막사를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승태는 위월의 잘린 손을 조심스레 집어 소금이 가득 담긴 함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전예는 묘한 표정으로 선우보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선우보가 선우은에게 칼을 겨누며 위협을 가하는 탓이었다.
선우은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조심스레 손을 들고 말했다.
“형님, 족제를 진정 죽이실 생각입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더냐!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하고 그들을 불러들였으니, 군법으로 당연히 처벌을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 울며불며 구원을 바라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네놈의 그 안일한 생각으로 여양은 다시 전화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한 선우보는 우는소리를 늘어놓는 선우은의 복부를 칼 손잡이로 세게 후려쳤다.
우당탕탕!
꼼짝도 못 하고 고스란히 얻어맞은 선우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컥!”
한순간 숨이 막혀 제대로 말도 못 하던 선우은이 겨우 호흡을 고르고는 핏대를 올리며 물었다. 이제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싸움을 피하고자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렇게 하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거로 생각하시는 거냔 말입니다! 이미 답돈의 병력이 코앞까지 이르러 있고, 조제의 군세까지 뒤를 따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수께서는 대체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제 유주 태수의 자리에 오르니, 조 사공을 도와 이곳에 온 것은 잊어버린 것입니까? 지금 조정을 이끄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바로 순 승상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럼 어쩌란 말이더냐! 솔직히 내가 조정을 버렸느냐? 이렇게 북방에서 버티고 있지 않으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틴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조정을 이끄는 순 승상을 도와 공을 쌓고, 나아가 폐하를 배알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수께서 그리 결정하지 못하니, 제가 충정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잘도 떠들어 대는 선우은의 모습에 선우보는 칼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진짜로 베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붉어진 선우보의 얼굴은 그가 극도로 분노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네가 뭐라고 그것을 결정하느냐? 네가 태수더냐? 아니면 네가 선우가의 가주라도 되더냐!”
선우은은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때, 전예가 예를 취하며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태수,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수습하려면 원상의 목을 베어 답돈에게 보내는 정도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예의 이야기를 들은 선우보는 칼을 내던지고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원상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받아들였다가는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선우보는 내심 원담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하여도 조정을 배신할 담량은 없었다.
그런 탓에 결국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고 관망하는 정도로 사태를 피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안정적으로 태수 자리를 유지할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유주목인 원희가 답돈을 막아 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무능한 이미 도망쳐 버린 지 오래고, 몇몇 이들만이 남아 답돈을 상대하고 있었다.
결과야 빤하였다. 답돈이 직접 군을 이끌고 역수 인근에서 그들을 격파하였으니, 선우보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염유는 어찌하겠다고 하던가?”
전예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숙여 보이자, 선우보는 실소를 토해 내며 말했다.
“오환과 관계가 깊은 염유 역시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겠지. 알고 있네. 어차피 답돈이 이곳을 휘젓는다 하여도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이니 말이야.”
전예는 선우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선우보는 선우은을 향해 말했다.
“너 이만 나가 보아라. 네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선우보의 냉정한 축객령에 선우은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불만이 가득한 심사를 드러내듯 쿵쿵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선우보는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꺼내었다.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아이처럼 행동하는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선우보는 전예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며 은근히 말을 꺼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겠는가?”
“조제의 손을 잡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도일 것입니다.”
“으음, 내 솔직히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그를 신뢰할 수가 없네.”
“그렇기에 더욱 그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지난 행적을 보면 응당 받은 도움에 후하게 대접하는 인물입니다. 전장에서 능력은 어떨지 모르나, 그의 휘하에 유능한 모사과 맹장들이 많으니, 답돈에게도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수 자리에 오르게 된 기회를 조조에게 잡은 것처럼 이번에도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염유조차 이번 싸움은 피하고 있는데 말인가?”
“오환사마 염유는 답돈이 어디까지 움직이는지에 따라 태도를 달리할 인물입니다. 답돈이 유주의 패권을 차지하면 답돈의 대변인이 될 것이고, 답돈이 패퇴하면 안면몰수하고 모른 척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오환의 이적(夷狄)과 한족 사이에 있으니, 쉬이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이 타는 듯 잠시 말을 끊은 전예는 선우보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하나 태수께서는 답돈이 승리한다 해도 족속이 다르니 결국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헤아리시면, 어디에 서야 할지 쉬이 결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늦은 밤이 되자 선우보는 전예를 시켜 원상을 그의 저택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조촐한 술상을 차려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