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선우보는 원상과 마주한 자리에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술을 건네었다. 그에 원상은 약간 의심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혹시 내가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을까 그러는 것인가?”
정곡을 찌르는 선우보의 발언에 원상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말했다.
“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선우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목을 자르고 싶은 건 여전하지. 그런데 술에 이상한 짓을 할 정도로 경우가 없지는 않네.”
그렇게 말을 꺼낸 선우보는 술을 병째로 마셔 보였다.
“이제 되었는가?”
원상은 술병이 텅 빈 것을 보고는 그제야 안심한 듯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태수가 마시는 술이라 하기에는 술맛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왜 무언가 잘못되었는가? 이것은 말의 젖으로 만든 술이네. 뭐, 지체 높은 원가의 자손인 자네는 못 먹어 봤겠지만 말이야.”
원상은 영 맞지 않는지 입만 살짝 대고는 술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선우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형님들과는 다릅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담이나 원희는 굉장히 방탕하며 인생을 낭비하듯 하였으나, 원상만큼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다. 물론 그들과는 어느 정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둘보다는 됨됨이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뭘 바라는 것인가?”
순간, 원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술잔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것인지, 원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를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선우보는 가만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원상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원상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바짝 타들어 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쓰자, 이윽고 선우보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그대를 살려 주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분한 마음에 원상은 주먹을 꾸욱 쥐고 이를 앙다물었다. 솔직히 선우보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 줄 수도 없는 노릇.
“제가 살아있어야 조정에 뭐라도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둘째 형님이 패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수춘후가 북상하고 있습니다.”
“흠, 자네를 살리는 것이 공을 세우는 것이라…….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로군. 자네의 목숨이 공의 주체가 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반대로 내 그대를 죽인다 하여도 공을 세운 것이 아니겠는가?”
선우보의 비웃음은 원상의 자존심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을 넘어 아예 짓밟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원상이 누구던가. 천하를 다투던 원소의 적자이다. 그런데 북방의 일개 태수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니, 원상으로서는 속에서 열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원상은 애써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선우보에게 마치 따져 묻듯이 말을 던졌다.
“북방을 책임지는 장수가 이적(夷狄)인 답돈을 따르겠다는 말씀입니까? 이는 명백한 반역 행위이며, 그대는 청사에서 역적으로 남을 것이오. 그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유 유주(유우)가 지금 당신의 행태를 보시면 뭐라 하겠소!”
선우보는 목의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해 내는 원상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원상의 머리채를 부여잡고는 흠씬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런 구타에 원상이 당황하며 팔을 휘젓는 가운데, 선우보는 손에 잡히는 대로 원상을 후려쳤다.
챙그랑!
술병이 머리를 후려치자, 원상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선우보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대로라면 맞아 죽겠다는 공포가 원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다.
사실 원상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이런 폭력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말로는 당당하게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원초적인 폭력 앞에서 원상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머리채를 놓아준 선우보가 술상을 들어 내려칠 듯 노려보자, 원상은 기듯이 뒤로 물러나며 애원했다.
“그, 그만! 제발…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선우보는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엎드려 비굴하게 비는 원상의 등을 꾸욱 밟았다. 그러고는 원상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목숨이 위험한데도 청사에 쓰일 내 이름을 걱정하다니, 참으로 고맙군. 그에 대해 보답을 해 줬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군. 왜? 이런 감사 표현은 처음인가 보지?”
원상은 부들부들 떨면서 슬쩍 고개를 들어 선우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지금껏 네놈이 어떤 놈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살아왔는지는 알겠으나, 나를 그런 놈들과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되지.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북방에서 홀로 버텼다. 오롯이 유 유주께서 나를 보듬어 주었을 뿐이지.”
거기까지 말한 선우보는 눈을 빛내며 분노를 토해 냈다.
“그런데 원가의 개자식들은! 선주를 모욕되게 만들었다! 공손찬을 부추겨 봉지를 침탈하게 하고, 그분의 자손들까지 이용했지. 그런데 네가 감히 선주를 입에 담고 청사를 이야기하느냐? 어!”
선우보의 노기가 폭발하려는 그때, 전예가 등장했다. 원상은 마치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이 나타난 것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나, 전예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선우보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춘후께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원상은 마치 자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전예의 태도에 진짜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음을 느꼈다.
이런 식의 모욕을 주고도 전혀 개의치 않게 여기는 것을 보면, 뒷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조정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분명 다시 권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데, 이들은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좋군. 그 서신을 읽어 주겠는가?”
선우보의 지시에 전예는 잠시 시선을 돌려 피를 흘리고 있는 원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대로 내용을 듣게 하실 요량입니까?”
선우보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전혀 문젯거리가 될 게 없다는 듯 답했다.
“같이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전예는 승태가 전한 서신을 침착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서신의 내용은 단순히 승태의 전언뿐 아니라 조정에서 보낸 선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초촉을 비롯한 유주 여섯 개 군을 다스리게 해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던 것이다.
현재 유주는 열 개의 군 중 요동, 현도, 낙랑이 공손도의 손에 있는데,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개의 군현을 그대로 선우보에게 내주겠다는 말이었다.
승태가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선우보의 말과 달리 꽤 큰 거래였다. 그러자 원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악을 썼다.
“그럴 리가 없다! 유주는 원가가 오랫동안 거한 땅이거늘, 어찌 이런 협잡으로 빼앗아간단 말이냐?”
그에 선우보는 가소롭다는 듯 원상의 머리를 틀어쥐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 유주가 어찌하여 원가의 땅이더냐? 유주는 유 유주께서 일으킨 땅이다. 그런 땅을 조정의 인정을 받아 다스리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커거거걱!”
원상은 사납게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선우보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기실 선우보의 말이 맞으니, 뭐라 반박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게다가 이미 원희 또한 용도폐기나 다름없는 상황이니,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원상이 죽도록 머리를 굴리는 사이, 선우보의 말이 이어졌다.
“네놈의 행동에 따라서 답돈을 잡을 미끼로 쓸 것인지, 아니면 조정의 손님으로 대할지 판단할 것이다. 알겠느냐?”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처지가 되어 버린 원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숨은 이제 선우보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데리고 나가게.”
선우보의 말에 전예는 원상을 일으켜 세우며 부축해 주었다. 원상은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전예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도대체 나를 왜 부른 것이오? 이런 꼴을 당하게 하려고?”
전예는 억울함을 쏟아내는 원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혹 군을 모아 답돈과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셨습니까? 공자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태수께서는 원담의 손을 잡고 싶어라 하시다는 것을요.”
원상은 이내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지만, 전예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시지요.”
* * *
승태는 서신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원상을 어양성에 들여 식솔들을 돌보고 있다는 내용은 그것만으로도 원담에게 반기를 들어 올리는 행동이니, 답돈과도 척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선우보가 우리의 손을 잡을 생각인가 보군.”
“네,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손가에서도 답돈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승태는 노숙이 건넨 말에 크게 웃음을 지으며 무릎을 쳤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건곤일척의 대결뿐이니, 답돈의 목을 베어 천하에 알릴 것입니다. 감히 나의 사람을 건드리는 인물을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장수들은 승태의 말에 크게 호응하며 자신들이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장합은 이번 기회에 많은 공을 세우고자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전의 실책을 이번 기회에 모두 만회하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승태는 장수들의 열의 넘치는 모습에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장수들은 저마다 열의에 찬 모습으로 답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때, 막사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인물이 이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보즐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주변을 연신 살폈는데, 왠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승태는 그런 보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답돈이 군을 움직이기라도 하였는가?”
“그게 아니옵니다. 기주의 패고… 아니, 위공이 지금 답돈에게 사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갑자기 회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뭐라?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사옵니다. 위공의 사신이 현재 중산을 넘어 역수를 지나고 있다 합니다.”
그 말에 승태는 도저히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앞에 놓인 물건들을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조비, 이 개자식이 나를 대체 무엇으로 알고 그런 행동을 한단 말이던가!”
분노를 드러내는 승태의 모습에 보즐은 바짝 긴장하며 품에서 서신을 꺼내 올렸다.
“위공이 후께 내리는 서신이라고…….”
승태는 그 서신을 받자마자 보지도 않고 박박 찢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앞서 출발한 장군들에게 서둘러 답돈의 목을 베어 오라고 하세요. 사신이 먼저 도착한다면, 답돈의 목을 벨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