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조운과 장료는 다시 병사들을 이끌고 원희가 패퇴를 겪은 역수의 전장까지 도착했다.
참담한 패전의 현실을 보여 주듯 전장은 그야말로 피와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치 메뚜기가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병사들의 옷가지들은 제대로 남아난 게 없었다.
“정말 감탄이 나올 지경이군. 전투가 끝나고 이렇게 꼼꼼히 챙길 정도라면, 정말 보통 강심장이 아니겠어.”
장료는 말에서 내려 죽은 이들의 몸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마치 부검의라도 된 것처럼 시신의 상태를 살핀 그는 곧 인상을 찌푸렸다.
“시체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다. 부패한 곳도 보이지 않으니, 정말 조금 전까지 이곳에 남아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장료는 말끝을 흐리고 주변을 살폈다. 매복이라고 느껴질 분위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으나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일이었다.
혹여 상대가 자신들의 예봉을 꺾기 위해 기습을 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술을 가장 즐겨 쓰던 인물이 바로 여포였기 때문에 장료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때, 조운이 주변의 상황을 훑으며 다가오더니, 말에서 내려 입을 열었다.
“생각보단 멀리 갔을 것입니다. 땅의 상태가 말을 달리기에는 나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을 남겨 감시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조운은 자신이 잘 아는 지역이다 보니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답돈이 어디로 향했을지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장료는 확신하듯 말하는 조운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집처럼 누빈 그대의 말을 듣는 편이 좋겠지.”
결정이 내려지자, 조운은 탁군 근방의 몇 군데를 주둔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짚었다. 때마침 곽원이 다가오자, 장료는 슬쩍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기병이 머물기에는 역경이 적당할 것입니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탓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답돈도 선우보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보급도 제대로 안 되는 탁군 안까지 들어가기는 불안할 것입니다.”
“흐음,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장료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어찌할지는 일단 첨병을 보내 상황을 살핀 후에 결정해야겠지.”
한편, 조운은 역경이 언급되자 새삼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역경은 공손찬이 몰락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은 그전에 공손찬을 떠나기는 했으나, 옛 주인이 최후를 맞이한 장소로 향한다는 것은 꽤 묘한 감정을 일으키기 충분하였다.
잠시 감회에 젖은 조운의 표정을 살핀 장료는 달래듯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가? 혹 과거의 일이라도 떠오른 것인가?”
“…그러합니다. 사실 저는 주인을 두 번이나 바꾼 몸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주인이 마지막으로 거하던 땅에 가게 될 것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군요.”
장료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주를 지나 흉노의 땅에 들렀을 때, 자신 또한 그러하지 않았는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쯤에서 접어 두게. 지금은 우리의 손에 위 장군의 안위가 달려 있으니 말이야.”
새삼 분노가 치민 듯 장료는 이를 갈며 화극을 부여잡았다. 솔직히 그의 머릿속에서 위월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성대하게 복수를 이루어 주는 것이었다.
‘수춘후께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두신다고 하셨지만,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도 괜한 협박에 굴복하여 군을 물리지 않은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곽원의 말대로 오환의 군세가 역경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장료는 곧바로 병사들을 움직여 그들의 지척에 이르렀다.
답돈은 이미 그들의 추격을 감안한 듯 수레를 이용해 간이로 방벽을 세우며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흠, 그냥 밀고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장료의 말에 곽원이 툭 하니 말을 던졌다.
“조비가 보낸 사신처럼 꾸며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저들이 장 장군이나 조 장군의 얼굴을 알 리 없으니, 안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밖에서 들이친다면, 저런 방벽 따위는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장료나 조운, 염행 등은 곽원의 책안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곽원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의 무예가 뛰어나니 가능한 계책이겠지만, 혹여나 위 장군께서 무사하시다면 차라리 그 방법이 구하기에도 더 용이할 수 있습니다.”
장료는 곽원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대단해. 이것이 과연 양책의 곽씨라 불리는 이들의 진면목인가?”
“그저 같은 성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 불길한 집안의 사람들과는 엮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장료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곽원이 말한 인물들은 모두 원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조정에 남아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은 곽원이 유일했다.
과거, 무의 길을 선택한 곽원은 집안에서도 경원시 되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곽원을 찾아 연을 맺으려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양책의 곽씨 집안이라 하면 머리는 알아주지 않는가. 그 명성을 이용하면 꽤 잘 먹힐 텐데?”
거듭된 장료의 말에 곽원은 고개를 저었다.
“장수로서 전장에 선 자가 비겁하게 뒤에서 모략으로 적을 상대하면, 병사들이 따르지 못하는 법입니다. 병사들은 비록 어리석은 결정이라 하여도 가장 앞으로 나서는 장수를 따르고, 뒤에서 모략을 꾸미는 모사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등을 지켜주는 장수를 존경하며, 가장 먼저 자리를 떠나는 모사들을 경멸하기도 하지요.”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권위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 그리고 오히려 어리석은 행동으로 사기와 의기가 세워지는 법이었다. 곽원은 지금 그런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장료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전장으로 나아갈 때 가장 앞서 나서며, 가장 늦게까지 남아 병사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장수인 것이다.
그러나 장료는 단순히 그런 자만 전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곽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틀리지 않네. 하지만 모사들 또한 필요한 법이네. 자네가 이렇게 주군의 곁에서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점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곽원은 장료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괜한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으니, 어찌 인정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 맞습니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를 해 보세.”
장료는 곽원의 제안을 기반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 * *
요동부의 넓은 대청에 앉아 연신 콧수염을 매만지던 공손강은 앞에 놓인 서신을 보며 혀를 찼다.
“이것 참, 한낱 장사치라 여긴 인물 뒤에 꽤 커다란 거물이 서 있었구만. 하기야 그러니 그 정도의 거래를 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겠지.”
공손강의 표정은 어딘가 살짝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그의 반응에 허탐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록 예를 갖추고는 있지만, 조정에서 향후의 자리를 받은 자신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에 공손강은 새삼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오는 말도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후께서 제시하신 조건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닐 줄로 아옵니다.”
허탐의 말대로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히려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손해 볼 게 전혀 없으니 말이다.
“답돈과 원담이 요동으로 오면 그자들을 사로잡거나 목을 베어 조정에 보내 달라는 것 아닌가. 오지 않으면 상관없고 말이야.”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요서를 살짝 압박만 해 주신다면, 조정에서 공의 자치를 인정하고 양평후의 자리에 오르실 수 있도록 상신할 것입니다.”
공손강은 허탐의 말에 작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수춘후에게 과연 그 정도의 능력이 있는가? 내게 후의 자리를 약속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만약 가능성이 없다면 이리 서신을 보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미 논의가 된 내용입니다. 단지 그 조건이 향후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옵니다.”
어차피 이러한 제안은 줄을 잡지 않는 사람이 바보일 뿐이었다. 단순히 후의 자리가 욕심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조건이 공손강에게 좋은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이번 기회에 요서의 답돈까지 사라진다면, 공손강이 원하는 대로 진짜 요동에서 왕처럼 권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었다.
“받아들이겠네. 그런데 말이야, 혹여 이러한 제의를 나에게만 주는 것인가?”
그것은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주군께서 거래하는 모든 지역을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공손강은 그 말에 눈초리가 약간 가늘어졌다. 요서의 답돈이 사라진 후에는 고구려가 문제될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고구려에도 들르겠군?”
“그러합니다. 주군과 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니, 당연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공손강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허탐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를 베어 버리고 고구려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꼼꼼한 일 처리를 보았을 때, 그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마 요동의 관내에 그와 내통한 자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벌어가는 만큼 요동에서 돈을 뿌려 대니, 그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없을 것이었다.
“그렇군. 한데 이것을 아는가? 선대에서 한조의 군현을 벗어나려는 조선 일족들을 규합한 고구려가 우리와 크게 다투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다시 말해 한조와 대적하는 고구려를 지원하려는 것이냐는 말을 던진 것이었다. 그에 허탐은 오히려 더 대담하게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렇사옵니까? 하면 조정에 이러한 상황을 올려 하북 평정 후, 요하 일대에 원정군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허탐이 운을 떼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자, 공손강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허탐의 손을 붙잡았다.
그저 요동에서 왕 노릇이나 하고 싶은 그로서는 중앙에서 군을 보내게 되면 원하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아니네! 아니네! 어찌 이 먼 거리로 군을 보내 조정에 어려움을 고하겠는가. 그저 지원을 조금 더 해 주기를 바랄 뿐이네. 북방의 추위도 참으로 힘드니, 그저 알아 달라, 이 말일세.”
허탐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자, 공손강은 마치 잘 봐달라는 것처럼 그의 손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