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답돈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위 조비의 사신이라 주장하는 작자들의 거들먹거림이 꽤나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원래의 계획과 달리 현재 자신은 수춘후의 군세를 피해 움직이는 중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참고 넘어갈 답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유주를 넘겨주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압박하듯 몰아치는 답돈의 추궁에 장료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그리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시지요.”
순간, 답돈은 오른편에 놓인 칼을 뽑아 장료의 목을 베어 버릴 뻔하였다. 제아무리 한족에게 오랑캐를 깔보는 습성이 있다고 하지만, 이건 한참이나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지금 자네들이 하는 말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겠는가?”
장료는 눈을 잠시 감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정의 순 승상과 위 공 저하께 그 말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분명 이번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답돈이 아무 말 없이 칼을 흔들어 보이자, 마찬가지로 험악한 표정을 지은 병사들이 장료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장료는 전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다잡듯 답돈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 조정과 위공께서 뜻하는 바는 잘 알겠네. 하지만 나 홀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사항이니, 잠시 기다리게.”
그에 장료는 무슨 말을 덧붙이려 하자, 조운이 얼른 나서며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장료는 이내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러났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나간 자리는 성토의 장이 되어 있었다. 장료가 보인 행동들을 가지고 온갖 트집을 잡으며 조비와 순욱까지 싸잡아 욕하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답돈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도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좌중의 침묵을 깨고 답돈이 말을 꺼냈다.
“원담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막사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원담이 저들을 만나 보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답돈의 말에 순간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그야 너무나도 빤한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저들의 칼이 자신들에게도 겨누어질 수 있으니. 하지만 감히 나서서 답돈에게 직언하는 이는 없었다.
그 모습에 답돈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내가 진정 그리하겠는가. 원담은 유주를 평정하기에 필요한 인물임을 잘 알고 있으니, 그렇게 똥 씹은 표정 지을 필요 없네. 원상에게 많은 것을 뜯어내었으니, 원담에게도 마땅히 그리해야지.”
“하지만 원담은 이미 역적의 낙인이 찍힌 처지인데, 이용할 만한 게 있겠습니까?”
답돈이 말을 꺼낸 이를 빤히 바라보자, 그는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흠,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마지막까지 써먹을 수 있는 법이지. 그건 그렇고… 저 사신이라는 이들 말이야, 좀 특이하지 않던가?”
“맞습니다. 감히 사신 주제에 겁이 없는 듯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두 놈 중 한 명의 목을 잘라 본을 보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다시금 좌중이 웅성거리면서 온갖 욕이 터져 나왔다. 답돈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회의를 파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홀로 앉아 이마를 문지르던 답돈은 이내 술잔을 기울이며 읊조렸다.
“그놈들… 딱 보아도 무인이었다. 내 기세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문관 나부랭이가 보일 만한 태도가 아니지.”
답돈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 무인들을 사신으로 보냈냐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내 장료가 언급한 내용을 떠올리며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조비, 이 개자식이 약조를 파기하려 하는구나.”
비록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하였으나, 설마 그들이 조비가 보낸 사신이 아니라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 한 답돈이었다.
하여 결국 그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자신이 분을 못 참고 사신들에게 해를 입히면, 조비는 그것을 빌미 삼아 약조를 아예 파기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흥, 수춘후와 붙을 수 없다고 판단이 되니 이렇게 나를 버리려 하는구나. 조비, 이 자라 같은 놈. 어디, 네놈 뜻대로 되게 놔둘 성싶으냐.”
답돈은 이제 더는 장성 이남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번 기회에 정적이라 할 만한 이들은 모두 제거하였고, 이득 또한 두둑이 챙겼으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설령 수춘후가 따라붙는다 하여도 문제 될 건 없다. 놈이 천년만년 나를 쫓을 수도 없을 테니.”
사실이 그러했다. 자신이 장성 이북으로 몸을 피하면 그 뒤를 쫓는 수춘후의 보급은 길어질 수밖에 없을 테고, 익숙하지 않은 추위와 지형들에 의해 토벌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 테니 말이다.
사실 광무제가 장성 밖 흉노를 토벌할 수 있던 것도 거대한 부와 함께 역사에 남을 명장인 곽거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고 없었다면, 광무제 역시 그러한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결론을 내린 답돈은 커다란 잔에 채워진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뭐, 전쟁이 길어지면 언제고 다시 기회는 찾아올 테니 말이야.”
* * *
한편, 원담과 왕수는 막사 안에 연금되어 있었다. 원담은 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운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에 반하여 왕수는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숙치(淑治, 왕수의 자), 오환 놈들이 우리를 이곳에 가둔 것을 보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자네는 이리도 여유로운가? 지금의 상황이 걱정되지도 않는 것인가?”
왕수는 조용히 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
“주공.”
“그래그래. 숙치, 말해 보게.”
원담은 마치 떼쓰는 아이라도 된 것마냥 왕수의 앞에 앉아 답을 요구했다.
“해결책은 이미 말씀해 드렸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제가 분명 전 별가(전풍)를 따르라 했지요. 비록 그가 권위적이기는 하나 주공을 위험에 빠트릴 인물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한데 그 말을 듣고 주공께서 어찌하셨습니까? 원가의 수장은 반드시 원씨여야 한다며 내치지 않았습니까?”
왕수는 아예 작정한 듯 말을 쏟아 냈다. 마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그 모습에 원상은 순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차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악에 받친 듯 말을 내뱉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왕수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그다음은 어떠했습니까? 업성을 버리면 안 된다는 조언과 오환은 믿으면 안 된다 하였지요. 그런데도 주공은 어찌하셨습니까? 유주가 아닌, 병주로 향하여야 한다는 고언은요? 하지만 주공께서는 그저 원하는 바대로 하셨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에 원담은 차마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내 미안하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 오지 않았는가. 비록 수춘후에게 쫓기기는 하나 유주를 얻을 기회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지. 그 보잘것없는 병주보다는 유주를 얻어 권토중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왕수는 여전히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원담에게서 시선을 뗀 후, 찻물을 가지고 몇 자를 적어 내렸다.
[차시환혼(借屍還魂)].남의 시체를 빌려 혼을 부활시킨다는 말이며, 왕수가 바라던 꿈이기도 했다. 원소를 죽인 조씨 정권에 머리를 조아린 원상과 달리 원담을 잘 보필한다면 능히 세력을 일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원담은 늘 잘못된 판단만을 좇고, 원상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냉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원담이 유주를 향한 것도 그런 행위의 일환이었다. 운 좋게 얻는다 하여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그저 무작정 군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런 자격지심의 결말이 지금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전에도 말했듯 유주는 주공께서 삼킬 수 없는, 커다란 물건이옵니다. 병주와 달리 모든 게 풍족하기에 많은 이들이 언제나 노릴 수밖에 없으니, 그게 마땅하지요. 혹여 때를 기다리며 세를 키운 후에 시도했다면 혹시 모르되, 그저 단순한 욕심만으로 넘보려 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이제 무엇으로 미래를 기대하겠습니까?”
왕수의 절망적인 직언은 원담을 분노케 하기 충분하였다.
“그대가 유주로 가자고 하지 않았는가! 그대가 유주로 가서 유우의 잔당들을 흡수하자고 말이야!”
이제는 자신에게까지 책임을 미루는 원담의 행태에 왕수는 그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소신 역시 청주의 난을 일으키고, 기주와 유주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죗값을 받는다고 봐야겠지요.”
“숙치, 그딴 말은 집어치우고, 해법을 달라는 말이오!”
왕수는 잠시 원담을 빤히 바라보았다. 군병은 이제 한 줌 밖에 남지 않았고, 그들 역시도 원담을 따른다기보다는 그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남은 것일 뿐이다. 그런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무언가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었다.
“지금 주공께서 이리 연금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를 볼모로 다른 거래를 한 이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겠지요.”
왕수의 정확한 진단에 원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욕심 많은 원담이라 해도 이쯤 되니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용도가 다하였으니, 조정에 팔아 답돈 스스로가 안전을 꾀하려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제야 겨우 현실을 인식한 원담은 마치 실성한 듯 허탈한 웃음만 흘려 냈다.
“그래, 그렇게 된 것이군.”
왕수는 완전히 낙담해 버린 원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모든 것을 털고 다시 일어나고자 하신다면 주공의 곁에서 도울 수 있겠으나, 여전히 허황된 꿈만 좇으신다면 소신의 능력으로도 더는 방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원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야 맑은 정신을 되찾은 듯 그의 눈빛은 과거 저수와 전풍을 끌어들일 때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왕수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찌하여 이리도 늦게 정신을 차리신 것인가? 이미 대세는 되돌릴 수가 없음인데.’
하지만 원담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내 자네의 말대로 모든 것을 털어 내겠네. 아니, 이미 털어 낼 것도 없으니 이미 늦은 것인가? 그래도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군. 그러니 부탁하네. 이대로 죽으면 청사에 웃음거리가 되어 버릴 테니,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 보아야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신을 죽이려는 듯 위협한 후에 그들이 무사히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답돈과 조정 간의 사이가 완전히 돌아설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