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답돈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조비가 보낸 사신이 갑자기 자신을 죽이려 하지를 않나,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원담도 들고일어나니, 이미 사전에 둘이 밀약을 나눈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 그래도 장성을 넘어 요서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세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답돈은 자신을 향해 숨통을 조여 오는 흉노 병사들과 조운의 기병들을 떨쳐 내며 더욱 빠르게 말을 몰았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을 향하여 지시를 내렸다.
“호위군은 저들을 막아라!”
일부 오환 기병들이 좌우에서 좁혀 오는 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답돈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측근들만을 이끌고 빠르게 나아갔다.
하지만 호위군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모두 죽더라도 답돈만 살아남는다면 오환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제 한목숨 아까워 답돈을 지키지 못한다면, 오환은 뿔뿔이 흩어져 과거와 같이 서로 분열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다른 부족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연명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가족과 후대를 위해서라도 답돈은 살아남아 오환의 수호자가 되어야 했다.
조운은 악착같이 달려드는 오환 병사들을 보며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본시 유목을 하는 민족들은 강한 인물 아래 빠르게 모이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 만약 이번 기회에 답돈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후환의 불씨를 남기게 될 것이다.
‘답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비단 위 장군의 생사 여부뿐 아니라 중원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결심을 다잡은 조운이 말의 허리를 치며 더욱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상산 기병들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조운이 단기필마로 달려 나오자, 답돈을 호위하던 몇몇이 진을 이탈하여 조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조운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창을 들어 내질렀다.
빠르게 말을 달리며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손찬과 함께 많은 전장을 누비던 조운에게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거기다가 지금 조운이 타고 있는 말은 적토마의 피를 물려받은 명마인데다 승태가 만든 등자 덕분에 말의 위에서 움직이는 것에도 전혀 불편이 없었다.
당연히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오환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수만 믿고 조운을 금세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조운의 창에 달린 붉은 수실이 휘날릴 때마다 오환 병사들의 목을 움켜쥐거나 말 위에서 떨어지며 피 분수를 뿜어냈다.
그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이번에는 더욱 많은 수로 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앞뒤로 협공을 가하기 위해 나름 진까지 꾸리며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조운이 누구던가. 몇몇 병사 따위로 상대할 수 없는, 불세출의 명장이 바로 조운이었다.
조운은 자신을 향해 견제하듯 내질러진 창을 그대로 덥석 움켜쥐고는 달리는 속도를 유지한 채 잡아당겼다.
“끄아아아아!”
창을 빼앗긴 병사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말 아래로 떨어졌고, 곧 뒤따르던 동료의 말발굽에 짓밟혀 곤죽이 되어 버렸다.
조운은 빼앗은 창을 그대로 냅다 던져 또 다른 오환 병사를 가볍게 처리하고는 날아오는 화살 또한 가볍게 튕겨 냈다.
조운은 이대로라면 답돈을 쫓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는 그대로 자신을 노리는 병사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화살은 계속 날아왔지만, 오히려 아군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결국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오환 병사들은 조운의 창 아래 유명을 달리했다.
자신의 발을 옭아매려던 이들을 모두 처리한 조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답돈이 달아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크게 한 번 숨을 고르고는 빠르게 추격을 재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뒤를 따라잡힌 답돈은 조운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호위병 대부분이 달려들었음에도 상대를 전혀 지체시키지도 못한 것이다.
“화살을 쏘고 난 후, 빠르게 빠져나간다.”
답돈의 명령에 호위병들이 제대로 자세를 잡으며 화살을 쏘아 날렸다. 마지막까지 답돈을 따를 만큼 실력이 뛰어난 이들의 공격에 조운도 감히 무시하지 못하고 말의 고삐를 틀어잡았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창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 내었다.
다행히 공격을 막아 내기는 하였으나, 답돈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조운이 잠깐 멈춰 서는 사이에 거리를 훌쩍 벌리게 된 것이다.
이내 여러 차례 치열한 격전을 벌이며 기운을 소모한 탓에 조운의 말은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쫓는다 해도 다시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빌어먹을.”
조운은 분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뱉어 내고 말았다. 평소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의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산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의 추격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조운은 그들과 함께 군영을 향하여 말 머리를 돌렸다.
* * *
장료는 포로로 잡은 이들을 한 곳에 모조리 꿇려놓았다. 하지만 목표라 할 수 있는 답돈을 놓쳐서인지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 역시도 조운과 마찬가지로 답돈이 오환 사람들에게 가지는 위상을 잘 알고 있었다. 답돈이 건재하다면, 언제 다시 그들이 세력을 일으켜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월의 생사 확인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비록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장료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주변을 쓰윽 훑어보았다. 흉노병들은 낄낄 웃으면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보기 좋지는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장료가 호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우, 포로들에게 굳이 저렇게 욕을 보여야겠소?”
“괜찮소. 어차피 다 묻어 버려야 할 놈들이니.”
장료는 약간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환의 선우 누반이 우리의 손에 있소. 단순히 그리 처리하면 아니 될 것 같은데 말이오.”
그 말에 호주천은 깜짝 놀랐다.
“뭐요? 누반이 살아 있단 말이오? 어찌하여 그런 오환의 더러운 놈을 살려 둔단 말이오?”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지, 누반의 생존 사실을 전혀 모르는 호주천의 말에 장료는 짜증이 더욱 솟구쳤다. 하지만 이제 와 설명을 해 주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말없이 막사로 향하였다.
막사로 들어서니 염행과 조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료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위 장군에 대해 포로들에게서 따로 나온 말은 없겠지?”
“…없습니다. 만약 위 장군이 살아 있다면 그에 대해 모를 수는 없을 테니…….”
염행이 채 말을 잇지 못하자, 장료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알고 있네. 이미 예상한 바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위 장군이 죽은 것을 확실히 본 놈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답돈, 그 빌어먹을 놈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이겠지.”
“답돈은 소규모 인원만 이끌고 도망갔으니, 그에게서 사실을 듣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조운의 말에 장료는 새삼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승태가 명한 바를 이행하기는 했으나, 정작 얻어 낸 것이 영 시원치 않으니 말이다.
“휴, 이제 와 뭘 어쩌겠소? 놈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데다 오환 놈들도 뿔뿔히 다 흩어져서 사라졌으니, 이곳저곳 약탈을 일삼다가 요서로 넘어가겠지.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난 셈이니, 요동의 공손가가 잘 처리해 주기만을 바랄 뿐.”
그때, 곽원이 부리나케 막사로 들어왔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곽원의 모습에 장료는 그가 출진을 시켜 달라 할 것이라 여겨 제지하려 하였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네, 그렇습니다. 광평현을 지나 백랑산으로 향하면 됩니다.”
뜬금없이 지역을 읊는 것이 조금 황당하기는 하였으나, 곽원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오환의 근거지인 요서로 향하는 답돈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호주천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노룡계곡을 말하려는 것이오? 그곳이 얼마나 험한데, 그곳으로 간단 말이오?”
하지만 곽원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다에 가까운 길은 우기가 되면 막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호주천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대군이 움직이는 길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소로로는 충분히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오!”
장료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주천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문제는 답돈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문제인데, 만약 헛다리를 짚는다면 괜한 고생만 하는 꼴이었다.
“험지가 길어지면 군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그대도 알겠지?”
“노룡계곡은 험하기 그지없으나 길만 잘 찾으면 능히 저들보다 빠르게 요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심하던 장료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곽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좋아. 자네의 말을 믿고 움직이지. 우선 주군께 이를 알리고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세.”
* * *
조비의 사신단과 승태는 같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답돈이 주둔하던 역현에 도착한 그들은 이미 불타 버린 군영을 잔해만을 볼 수 있었다.
그에 사신 임무를 맡은 신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승태는 그저 어깨만을 으쓱일 뿐이었다.
“이런… 아무래도 우리가 한발 늦은 모양이오, 신 의랑.”
“늦은 것이 아니라 늦게 오게 만든 것은 아닌지요?”
“설마 제가 그러하겠습니까? 단지 한솥밥을 먹던 위 공의 안위가 걱정된 장 장군이 빠르게 움직인 듯합니다.”
신비는 잠시 고개를 돌려 불타 버린 군영을 바라보았다.
‘흠, 장수들의 수완이 대단하구나. 아니, 어쩌면 수춘후가 대단한 것인가?’
능글맞아 보이는 승태의 모습에도 신비는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과거, 원소 시절에도 친분을 쌓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 답돈이기에 그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조와 대치하던 상황에서도 원소에게 도움을 주지 않다가 하북이 혼란에 빠지자마자 원가의 사람을 끼고 하북을 집어삼키려 할 정도로 심계도 깊었다.
‘실로 뱀과 같은 머리와 범과 같은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신비는 전혀 모르쇠로 일관하는 승태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답돈을 끝까지 쫓아 처리하겠다는 것은 진정 천하의 안정을 바라서인가. 수춘후의 입장에서는 답돈이 살아 있는 것이 도리어 이득일 것인데… 역시 그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구나.’
자기 욕심만 챙기려는 원소나 조비 같은 인물만 보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승태를 대하니, 신비로서는 신선한 감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