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승태는 장료에게서 온 서신을 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내용이 과거, 조조가 답돈을 쫓을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거참,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는 하네.’
승태는 간단하게 서신을 작성하여 보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를 전해 드리거라. 그리고 장 태수께는 산에서 길을 찾는 법을, 저 감군께는 노룡계곡의 비도(秘道)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게.”
순간, 보즐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가끔 승태는 알아듣기 어려운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장성 근처에 무슨 비도가 있나 싶은 것이었다.
거기다가 서주 태생의 보즐로서는 유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그냥 수춘후께서 그렇게 일렀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않은가.
보즐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뭉그적대자, 승태가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아니 가는가?”
결국 보즐은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말했다.
“소신, 주군의 의도는 알겠사오나, 제가 정확히 어떠한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옵니다. 혹여나 잘못된 말을 전하면 중요한 책안에 흠이 날 것이니, 주군의 고견을 듣고자 하옵니다.”
승태는 도리어 보즐의 말에 약간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고견이랄 게 뭐가 있어? 원 역사에서는 전주가 그 길을 알고 있었으니, 혹여 저수도 알지 몰라 그러는 것인데.’
어찌 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승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예전 원상이 노룡새를 지나간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우북평(右北平)의 관아가 평강(平剛)에 있어 길이 노룡(盧龍)으로 나 있고 유성(柳城)으로 통하니, 아직 샛길이 남아 있다고 알고 있다. 험준한 백단산(白檀山)을 넘어 서무산(徐无山)을 지나고 백룡퇴(白龍堆)에 오르면, 유성까지는 200여 리 길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저 감군께 물어보란 말일세.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쓰지 않아 길이 끊어져 있을지 모를 일이니, 이러한 상황에 능한 장 태수에게 부탁하라는 것이네. 내 말, 모두 기억하였는가?”
보즐은 놀랍다는 눈으로 승태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그렇사옵니다. 소신, 주군의 뜻대로 충실히 전하겠습니다.”
그제야 승태는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옆에서 이 모든 내용을 듣고 있던 노숙 또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내용은 대체 어찌 알고 계십니까? 장성 이북에는 가 본 적도 없으실 텐데 말입니다.”
“…그냥 책을 읽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왠지 변명 같은 승태의 말에 노숙은 살짝 눈을 살짝 흘겼지만, 더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뭐, 주군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하긴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꽤 많았습니다. 혹시 주군의 복심이라 불리며 사적으로는 형님이기도 한 저 몰래 다른 사람을 쓰시는 것은 아닙니까?”
어찌 보면 굉장한 무례한 언사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승태는 그에 대해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께서 제가 거둬들이는 세액을 다 직접 움직이시는데, 거기에 구멍이라도 있었습니까?”
하지만 노숙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틀린 말은 아니나, 주군께서 운용하는 상단의 사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니 하는 말이지요.”
“그건 윗분들께 선물을 뿌리고 나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일단 공문부터 처리하시지요.”
왠지 삐친 듯한 기색으로 공문을 내미는 노숙의 모습에 승태는 어이없다는 듯 받아 들었다.
“아니, 전쟁 중에 무슨 업무를 이곳까지 올리신단 말입니까?”
“주군께서 명하신 일입니다. 관승이라는 해적을 토벌하는 데 하기가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승태는 그제야 자신이 받은 보고를 대충 넘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노숙은 눈을 샐쭉하게 뜨며 마치 타박하듯 말을 꺼냈다.
“상신한 내용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후일 신하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승태는 노숙의 따끔한 지적에 어색하게 웃음 짓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신 된 내용이 워낙 많았잖습니까. 그나저나 조정에서는 지금껏 청주 자사를 정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가 감히 저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제 앞에 이리 유능한 속관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승태의 말에 노숙은 순간 웃음이 튀어나올 뻔하였지만, 이내 표정을 추스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상신 된 내용을 제가 간략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런데 청주에서의 토벌이야 뭐 별일 없지 않았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급전이라도 날아왔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누가 무슨 공을 세웠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주군께서 직접 천거한 인물이 한 일인데.”
“아니, 제가 천거는 했지만, 그자를 활용하는 것은 태사 장군의 재량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굳이 거기까지 건드리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노숙은 승태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뭐, 주군의 말씀대로 태사 장군께서 처음에는 하기의 능력을 의심하여 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품은 것과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승태는 노숙의 말에 괜히 뺨을 긁으며 의뭉을 떨었다. 어차피 하기가 큰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당연히 태사 장군으로부터 중용이 되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숙은 마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관승이 도망치는 재주 하나만큼은 제법 일가견이 있던 모양입니다. 도무지 그를 잡지 못하자 태사 장군께서 결국 하기를 기용했고, 하기는 관승이 향할 곳을 파악해 미리 움직여 그를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원래의 역사처럼 이루어진 것을 보면, 역시 하기는 관승과의 친밀도를 어느 정도 쌓은 듯싶었다.
이야기를 들은 승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노숙은 이미 그리될 줄을 알고 있었으리라 여겼다.
“전혀 놀라지 않으십니다?”
“사실 원술도 그를 기용하려 하였고, 선대 패공께서도 그를 중히 여겼으니, 능력이야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광군 태수로 임명받을 정도이니, 군략 또한 능히 뛰어날 테고요.”
승태가 말한 장광군은 산과 바다에 인접한 지역으로, 황건적의 난 이래로 수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소위 호걸이라 불리는 이들이 봉기를 일삼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한 곳의 태수로 낙점된 인물이니, 단순히 문재(文才)뿐만이 아닌, 장수로서의 자질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뭐, 결과가 잘되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덕분에 물길이 열려 수춘에서 이곳까지 상신한 문서들을 가지고 오는 데도 시일이 대폭 줄었다 하더군요.”
“호오, 그렇습니까? 그런데 우기에도 배를 운용하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아무리 관승을 처리했다 해도 여전히 많은 해적이 남아 있을 터인데…….”
“혹 업무를 빼려고 하시는 말이라면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속셈을 알아차린 노숙의 말에 승태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관승의 능력이 대단하니, 그저 칭찬하고자 한 것입니다. 왜, 우기에 강 위에 배를 띄웠다가 가라앉은 이야기가 워낙 많지 않습니까.”
노숙도 그 점만큼은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배를 타고 이리저리 양주를 다녀 봤으니,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한 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승태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수춘으로 돌아가면 그때 보지요. 솔직히 아무리 항복했다고는 하지만, 관승 역시 심정이 멀쩡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그에게 약속할 만한 것도 없고, 그가 뭘 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으니, 잠시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뒤통수라도 맞으면 어찌하시려 합니까?”
“항장이 다른 이의 손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만, 우리만 한 거래처가 있겠습니까? 청주와 서주, 그리고 지금은 하북에서 바다를 접한 곳은 우리가 모두 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역시도 이런 사정을 잘 알 것입니다.”
승태가 서신을 스윽 훑으며 답하자, 노숙도 더는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금, 원상은 고간의 앞에서 마치 처분을 바란다는 모습으로 고개를 바짝 숙이고 있었다. 그에 고간은 결국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살핀 원담이 살짝 머리를 들어 바라보자, 고간은 새삼 짜증이 치미는 듯 말을 꺼냈다.
“그냥 머리 숙이고 있어라. 네 얼굴을 보면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이야.”
“…종형.”
순간, 고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종형이라니, 이 무슨 우습지도 않은 말인가. 그간 자신을 원가의 하인 정도라 여기던 인물들이 모든 걸 잃고 그제야 사람대접을 하려 드니,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그만! 너는 아느냐? 난 지난번 패전 이후, 조정에 머리를 숙였다. 덕분에 겨우 병주 일대의 세력은 인정받았지만, 그게 전부다. 즉, 너를 도울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울상 지으며 원망 섞인 말을 늘어놓는 원담의 태도에 고간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계륵이나 다름없는 원담을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영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놈을 이대로 조정에 바치면 원가의 세력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테고, 그런다고 괜히 숨기려다 발각되면 분명 내 목숨도 간당간당할 터인데…….’
고민이 깊어지자 고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다 일단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밖에 있는 시비들이 네가 어디로 갈지 알려 줄 것이다. 내 가신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터이니, 잠자코 기다리거라.”
원담이 뒷걸음질 쳐 물러나자, 왕수도 그를 따르려 하였다. 그에 고간이 손을 까닥여 제지했다.
“그대는 여기 남게.”
원담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왕수는 두 눈을 꾸욱 감았다. 고간이 원담에게 가장 약한 고리를 끊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노릴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원담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멀거니 서 있자, 고간은 가볍게 손짓해 그를 내보내고는 왕수에게 말했다.
“가까이 와 보게. 같이 술이나 한잔하며 이야기나 하자고.”
“소인, 왕 모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아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꽤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고간은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말을 건네었다.
“그런가? 그럼 차라도 하지.”
왕수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그의 앞에 섰다. 고간은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자네는 끝까지 원담을 따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