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관승은 승태를 만나고자 직접 군영을 찾았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면담 요청을 한 것이라 승태로서는 딱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술상을 내주며 맞이하자, 관승은 조금 놀란 반응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제후의 것이라 하기에는 술이나 음식들이 너무 소박했기 때문이다.
오랜 항해를 통해 찾아온 참이라 음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정작 승태 본인도 간소한 차만을 마시니 뭐라 따지기도 어려웠다.
“음식이 성에 차지 않으신가 봅니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없었으니,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관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태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자신 역시 그리 사치를 즐기는 취미는 아니니 말이다. 다만, 부자라고 알려진 승태가 평소에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 마음을 읽은 것인지, 승태가 직접 일어나 술을 따라 주며 관승을 달래려 했다.
“내 후일 수춘에서 그대를 맞이할 때는 크게 연회를 열어 드릴 터이니, 너무 아쉬워 마시지요.”
관승은 잔에 채워진 술을 한 번에 들이켜고는 호탕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수춘후께서 열어 주신 잔치라면, 군도로 돌아가 자랑할 게 생기겠군요.”
“군도라면… 혹여 요동과 동래 사이의 섬을 말하는 것입니까?”
관승은 승태의 말에 반갑다는 듯 표정을 풀고는 말을 꺼내었다. 사실 자신이 사는 지방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친밀도를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법이다.
이는 승태가 살던 현대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위 ‘두 유 노우’라 하며 질문에 벽안의 외국인이 어느 것 하나라도 받아 주면 그렇게 유난을 떨어 대지 않았는가.
“그곳을 아십니까?”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곳이 수군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지라 생각하여 관심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장군께서 앞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제가 할 일이 뭐 그리 있겠습니까. 어차피 후께서 다스리는 지역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 무슨 서운한 말씀입니까. 앞으로 요동과 조선(고조선)의 땅에서 많은 물건을 구하게 될 텐데, 장군의 도움은 필수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승태의 말에 관승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새삼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험한 동래 연안에서 배를 모는 것은 이 관승이 제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맡겨만 주신다면, 절대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관승의 말은 괜한 자랑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승태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요. 마땅히 그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제가 굳이 다른 사람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승태의 말속에 뼈가 담겨 있음을 느낀 관승은 순간 표정을 굳히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나 승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관승의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쭉 들이켰다.
“자, 이제 술을 나누어 마셨으니, 저와 손을 잡는 것입니다. 맞지요?”
마치 소리장도(笑裏藏刀)와도 같은 승태의 웃음에 관승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술을 다시 들이켰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본 승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물었다.
“그럼 이제 관 공께서 잘하는 것에 대하여 말을 이어 가 보도록 하지요. 우기에도 물건을 싣고 이곳까지 왔다지요? 비록 일부가 젖기는 했으나, 쓰기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혹 습기가 들어찰 것에 대비하여 단단히 옻칠한 상자들로 물건들을 준비하였지요. 그 밖에도 저희만의 방법이 있는데, 그건 지금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단호한 관승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는 그의 태도에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혹 인마도 옮길 수 있겠습니까?”
화물 운송이 아닌, 사람과 말을 옮기는 일은 이 당시에 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말은 평소에도 민감한 성격이기에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사람은 모르겠으나 말은 어렵습니다. 특히 전마의 경우,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아니 하느만 못 할 것입니다. 사람도 익숙하지 않은 이는 거의 빈사 상태가 될 것이니 불가합니다.”
그러나 승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지 다시금 물었다.
“사람은 배에서 내린 뒤에 며칠 정도 쉬면 되지 않겠습니까?”
“가벼운 상행이나 그저 이동하는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장수라 한들 거친 바다를 한 번 겪고 나면 고개를 내저을 것입니다.”
승태는 관승의 단호한 언사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만약 그 일이 가능하다면 병사들을 배로 옮겨 손쉽게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관승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배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이 며칠 동안 뱃멀미를 하며 고생하면, 사기는 떨어지고 불만만이 쌓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상륙 부대를 따로 키워야 하려나? 에이, 됐다. 지금 시대에 그냥 강을 건너는 정도면 충분하지, 무슨 식민지를 만들 것도 아닌데 말이야.’
곰곰이 따져 보니 돈만 많이 들어가는데다 양주로 돌아가면 영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배 타는 것에 익숙한 이들을 이용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고민을 마친 승태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관승을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그는 직언을 잘하는 인물로 보였다. 권위에 굴복하지도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사람됨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두어 손해 볼 것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바다에 대해 충분히 믿을 만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장군께서는 요서의 란하를 오가며 유성의 오환들과 만난 적이 있습니까?”
“과거, 섬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가 본 적은 있습니다.”
승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잖아도 장료가 유성에 도착한다고 한들 얼마나 싸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기 때문이었다.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한 부대는 결국 무너지기 마련. 물론 장료나 조운, 그리고 염행 등 대단한 인물들이 곁에 있으니 그런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은 빤하였다.
‘만약 보급만 가능하다면 수개월이고 답돈을 잡기 위해 뛰어다닐 수 있을 테지.’
“그럼 그곳으로 병사들을 위한 물건은 옮겨 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후를 위해 싸울 수도 있습니다.”
기대하던 대답을 들은 승태는 의미 모를 웃음을 흘렸고, 그에 괜히 불안해지는 관승이었다.
* * *
선우보는 장료 일행이 노룡계곡을 통하여 요서로 향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혹시 그것을 수춘후가 명하였는가?”
만일 그렇다면 선우보는 그냥 다시금 칩거나 하려고 생각했다.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되지도 않는 명령을 내리는 인물 밑에서 일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장료 또한 빈정이 상했다. 언뜻 그의 말이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하여 제대로 꼬집어 주었다.
“수춘후께서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말을 좀 조심하시지요.”
난데없는 질책에 선우보는 어이가 없어 빤히 장료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병사들을 어양에 들이는 것이 불만인데, 이제는 자신의 예법까지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여포의 사위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면 기분이 좋은가? 답돈을 상대로 몇 번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운이 좋아서 된 일이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자신이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않고, 장수들만 보내 외방을 경략한다는데 말이야. 그런 자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은가? 아니면 뭐, 머리 숙이는 것이 습관인가?”
지독한 모욕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장료는 순간 살기를 뿜어내었다. 그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조운이 그를 말리며 끼어들었다.
“그 정도만 하시지요. 엄연히 조정의 명을 받고 오신 분입니다.”
“허, 조정이 아니라 순 승상의 명이겠지. 패공이 이 꼴을 보면 참으로 좋아하겠어. 그러고 보니, 자네는 패악한 공손찬의 수하가 아니던가?”
선우보는 조운의 과거까지 들먹이며 싸잡아 욕하자, 곽원이 상을 뒤집으며 말했다.
“아, 지 주인도 못 지킨 놈이 뭔 말이 이리도 많아? 뒤에서 칼만 찌를 줄 알지, 복수도 남의 손을 빌려서 한 주제에. 그런데 감히 조정의 명을 받아 뭇 장수들을 거느리고 역당들을 처리하는 분께 하는 말이 뭐?”
안 그래도 곽원은 원상의 상태를 보고 선우보에 대한 악감정이 어마어마할 지경이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과 원가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만심이 높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원가의 다른 형제들에 비하면 총명하고 주변 사람들을 살필 줄 아는 따듯한 성정을 지녔다.
그런 원상을 거의 폐인이 될 정도로 만든 인간이 선우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칼을 뽑고 달려들고 싶은 참인데, 이제는 아예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아랫사람이니, 지금 중요한 것은 선우보를 흥분시켜 먼저 칼을 뽑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 네놈이 지금 뭐라 했느냐!”
“이젠 귀도 막혔소? 원가의 손을 잡아 복수를 이루었는데, 원하는 자리를 못 받으니 배신을 한 것 아니오! 어! 그리고 조정에서 명을 받아 역당을 처단하기 위해 나온 수춘후를 이리 대하는 것은 그들과 같이한다고 여길 만하지. 아니, 원래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는데 순 승상의 기세가 남다르고 수춘후가 답돈을 크게 이기니 오금이 저렸나 보지?”
그야말로 원색적인 비난에 선우보도 더는 참지 못하여 칼을 뽑으려 하였고, 곽원도 이에 대응하려는 순간, 장료가 조운이 나섰다.
두 사람이 각자 곽원과 선우보를 제압하자, 주변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창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장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두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놈아, 내가 네놈은 성질 좀 죽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쪽도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조정의 명을 받들고 온 것이야.”
장료가 손을 내밀자 보즐이 빠르게 뛰어나와 옥새가 찍힌 조서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선택하게. 지금 나나 조 장군도 많이 참고 있으니 말이야.”